토요일 노다디즘  세미나에서  전쟁기계와  포획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세미나 정리 내용을 옮겼다.  유목민에게는 역사가 없다 라는 유목민의 역사에 대한 관점에 대해 먼저 논의 하였다. 유목민에게는  역사서나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는 유목민의 고유한 시간관념 때문이다.  유목민에게 시간이란 하나의선을 이루며 연속성을 갖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들에게 시간은 어떤 고정점을 갖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것이다.  반면 제국의 연대기적 역사는 사실들을 직선적인 시간관에 따라 기록해 보존하려고 한다. 

 

기억은  개인의 정체성이다.  기억이  개인의 역사라면 조직의 기억은 역사기록이 아닐까 ?  역사가 없는집단은 무엇으로 규정할  있을까 ?  제국적인 역사관념에서 벗어나 역사를 유목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는 유목민들이 그러했듯이 역사를 아예 버리자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를 다르게다루는 방법을 유목민들로부터 배우자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역사에 얽매여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지못하게 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의 기억에 벗어나는  니체의  망각하는 것을 배우라 충고가 언급 되어 있다.  역사적 사실이나 과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롭게떠날  있는 유목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야금술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야금술사는 질료적 흐름을 따르는 자라고 한다. 이들은 국가장치에 속하지도, 전쟁기계에 속하지도 않는다.  국가장치에 속해서 일하다가도 유목민에게 옮겨 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야금술사는 이주민 또는 순회자라고   있다. 야금술사는  국가장치나 유목민의 전쟁기계와는 다른 고유한 배치를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  바로 구멍 뚫린 공간입니다.  구멍 뚫린 공간 혹은 다공공간은 국가장치의  패인 공간과도 다르고, 유목민의 매끄러운 공간과도 다른 야금술사의 고유한 공간이다.

 

야금술사는 고유한 공간을 가지지만,  야금술이 유목주의와  친연성을 갖는다고 한다. 야금술이 질료적 흐름을 따르기 때문이다.  야금술은 물질의  흐름 자체에 대한 사유라는 점에서 흐름의 사유를 따르는 유목민의삶의 방식과 공통성을 갖는다.  야금술이 먹고살기 위해서 국가장치에  합류할지 몰라도,  유목민과는 먹고살기 위해 연대하지 않는다. 유목민은 스톡을 축적하지 않는 만큼, 국가장치와 같이 야금술사가 먹고 살수 있게 해주기 어려울 것이다. 야금술사가 필연적으로 유목민과 합류하는 이유는 삶의 방식이 공통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스톡은 직접적인 효용이 없음에도 버려지지 않고 비축되는 것이다. 교환과 스톡 축적의 차이를 알아본다.  교환은 교환 당사자들의 한계효용에 따라 이루어지며 한계 효용이 감소해 사라지는 지점에서 중단된다. 반면 스톡의 비축은 소비의 효용이나 교환의 이득이 없음에도 이루어진다. 직접적인 이득이 없는데도 스톡이 비축되는 것은 다른 방식의 이득 가능성 혹은 다른 종류의 욕망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환과 스톡의 차이를 보여주는  가지 예시로 맑스가 구분한  가지 상이한 교환,  상품-화폐-상품(C-M-C′) 화폐-상품-화폐(M-C-M′) 차이를 생각해   있다.  C-M-C′  C′이라는 상품의 효용을 얻기 위해 이루어지는 상품 교환이다.  교환을 매개하는 중간의 화폐(M) 그러한 효용을 얻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M-C-M′ 목적은 화폐의 증식,  화폐라는 스톡의 비축이다.  상품으로부터의 어떤 효용을 기대하고 이루어지는 교환이 아니다. 소비와는 다른 종류의 욕망이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M-C-M′이라는 자본의 배치는 교환의 형태를 가지지만 교환의 배치보다는 스톡의 배치에 가깝다.

 

이렇게  스톡이 비축되는 배치가 바로 포획이다. 포획에는  가지 양식이 있는데, 지대, 이윤, 세금이다. 이것들은 각각 토지, 연장, 화폐라는 스톡과 연관된 포획입니다.   포획들은 각각 지주, 자본가, 조세  물가통제권자라는 권력과 결부되어 있다. 이렇게 포획의  양식을 식별함으로써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에서 주장하는 착취 개념을 극복할  있다. 기존의 맑스주의에서는 노동가치론에 입각해서 생산 지점에서 착취된 잉여가치가 지대, 이윤, 세금 등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이는 수탈의 다양한 양상을 생산에서의 착취로 환원하는 사고방식인데, 이런 생각은 정치적 실천에서는 산업프롤레타리아 중심의 혁명이라는 관념으로 이어진다.  스톡과 포획 개념을 통해 우리는 생산 이외의 지점에서 발생하는 수탈의 고유한 차원을 다룰  있다.

 

이러한 포획의 메커니즘을 포획장치라고 한다. 이는 직접적 비교와 독점적 영유에 의해 작동하는데, 들뢰즈와 가타리는  작동방식 중에 직접적 비교가 논리적으로 앞선다고 한다.  포획의 논리는 일차적으로 직접적비교에 의해 설명된다. 따라서 포획은 불공정한 강탈이 아니라 공정한 대칭적 과정으로 나타나는 마술성을얻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도 비교가 독점에 앞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독점적 영유에 의한 포획이 먼저 있어야만 그에 따른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포획장치는 폭력을 통해 수립된다고 말할 있습니다. 포획을 위해서는 우선 다른 사람들의 소유권을 배제하고 독점적인 영유를 확보하는 폭력적인과정이 필요하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맑스가 산업자본주의와 관련해 언급한 본원적 축적 개념을 일반화해모든 포획장치는 본원적 축적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에서 국가장치가 포획장치에 선행한다.  포획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국가장치의 폭력을 동반한 본원적 축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뭄바이 내 이동시 전철을 자주 이용한다. 대부분 전철 문이 닫히지 않은 상태로 운영하기에 조심해야 한다.  승객들이 너무 많아 원치 않은 방향으로 밀려 나갈 수 있다. 별도로 표를 확인 하는 시스템은 없다. 사람이 많지 않은 칸을 이용하려면 추가 부담금을 내고 1등석 자리를 구매한다. 1등석이 더 좋은 환경은 아니다 수요가 줄어 사람이 덜 붐비는 장점이 있다. 현재지하철은 없고 지상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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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라는 말은, ‘이데올로기에 속박된다’든가 ‘그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처럼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본래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19세기 초에 ‘관념학’ 이란 의미로 생성된 것이다. 즉  ‘형이상학’에 대비되는 과학이론으로서의 ‘관념학’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최초로 이데올로기란 용어를 부정적으로 상요한 것은 나폴레옹이었다고 한다. 그는 관념적인 학자들의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상식을 이데올로기라고 비난했다. 현재와 거의 비슷한 의미로 상용했다고 할 수도 있다.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으로서 최초로 정식화한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당시 철학자들, 예를 들어 포이에르바흐와 바우어 등의 철학을 가지각색의 이데올로기(허위의식)로 비판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단순한 ‘허위의식’으로만 받아들이면 ‘허위의식’에 대응하는 ‘올바른 의식’이 존재하는 것이 되며, 어느 쪽이 올바른가 하는 이른바 이데올로기 투쟁에 빠지게 된다. 냉전의 종언을 ‘이데올로기의 종언’으로 받아들인 역사관도 같은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생활의 여러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현실적인 여러 관계(‘소통’이나 ‘생산’)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허위의식’에 대해서 ‘올바른 의식’을 대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런 ‘허위의식(환상)’을 탄생시킨 구체적인 조건들을 탐구할 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장치’라는 사고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부터 <독일 이데올로기>를 독해하는 과정에서 종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경제적인 과정에서만 이데올로기의 형성 원인을 구한 데 반해, 사회의 가지각색의 일상적 실천 속에서 이데올로기의 형성을 발견해 낸 것이다.  “무릎 꿇고 기도 하라, 그러면 믿을 것이다.”라는 파스칼 말 인용한다.  제도화된 물질적 장치와 거기서 행해지는 특정한 방식의 실천을 통해 존재하고 작동한다.  교회(물질적 장치)에 나가서 손을 모아 기도(실천) 해야 신(이데올로기)을 믿게 되는 것처럼 이데올로기 역시 마찬가지다.  가정, 학교, 직장, TV 같은 제도화된 물질적 장치에서 그에 합당한 실천을 함으로써 이데올로기가 형성된 것이다.  인간이 사회에서 태어나고 세계와 관계하는 이상, 이데올로기의 존재는 불가결한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의식과 관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함으로써 발생하는 상상적인 표상이자 그 상상적 표상을 형성하는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그결과로서의 개인(주체)을 형성해내는 사회구조 그 자체도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p.189,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 사상)


표상은 감각적으로 외적 대상을 의식상에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단어를 보고 의식상에 떠올리는 것이다. 감각 지각에 입각하여 머릿속에 재현시킨다. 어떤 행동이나 판단이든 특정한 표상과 함께 한다고 한다. 이를 ‘표상 체계’라고 한다. 동일한 경험이나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표상체계가 유사한 구조로 되어있다. 가정, 학교, 직장과 같은 제도적 장치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동일한 표상 체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다르게 표현하면 ‘세상 사람들의 표상체계" 라고 한다.  "우리가 이데올로기에서 발견하는 표상, 즉 세계에 대한 상상적 표상 속에서 반영된 것은 인간들의 존재 조건 들이고 따라서 그들의 현실 세계이다". 즉 우리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표상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 한다고 주장 한다.  이데올로기 장치는 개인(주체)을 형성하는 이데올로기가 현실에서 기능하는 사회공간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억압적인 법과 정치제도 등의 국가 장치만이 이데올로기 장치는 아니며,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제도를 이데올기 장치로 보는 것이다. 학교, 종교단체, 매스미디어, 각종 조합 등 모든 제도가 이데올로기 장치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이런 제도 속에서 일상적인 실천을 통해 우리의 몸에 이데올로기를 각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를 당연시하고 이것 외에는 삶의 대안이 없는 것처럼 내면화 한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데올로기의 역할은 상식, 즉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정의하고 감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상식은 일상의 모든 영역을 결정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식의 명령대로 살아간다. 이데올로기가 그러한 역할을 할 때 이데올리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의 내면화 과정으로 호명을 이야기 한다. 다양한 이데올로기에 호명된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호명으로 인해 한 개인의 생각이나 판단, 행동에 이데올로기라는 무의식적인 표상 체계가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호명은 특정한 사회적 구성이 주체를 지명하는 비강제적 과정을 가리킨다. 존재의 실제 조건에 개인이 갖는 상상적 관계다. 호명 과정에서 개인은 자신을 주체로 오인한다. 자신이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자신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이데올로기 조건에서 개인들은 사회적으로 생산된 가상 재현을 그들의 실제 자아로 오인한다(교양인을 위한 철학 사전).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개인들을 주체로 호명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아주 흔한 경찰의 일상적인 호명과 같은 유형 속에 그것을 표상할 수 있다. “헤이, 거기 당신!”만일 우리가 상정한 이론적 장면이 길거리에서 일어난다고 가정한다면, 호명된 개체는 뒤돌아볼 것이다. 이 단순한 180도의 물리적 선회에 의해서 그는 주체가 된다. 왜냐하면 그는 호명이 ‘바로' 그에게 행해졌으며, '호명된 자가 바로(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 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일과 삶, 학교와 직장, 사회와 역사에 대하여 그 근원을 캐묻고 본질을 파악하기 시작하면  우리에게 강요하는 이데올로기(허위의식)에 대한 각성이 가능하다. 당연하게 받아 들이는 상식을 의심해야 한다. 그 것은 단지 허위의식에 눈을 뜨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도 분석을 통한  이데올로기의 형성과정을 분석하고, 실천(행위)의 수준에서 사회적 관계들을 변화 시켜야 한다.  나를 다르게 불러줄 사람을  찾고 그들과 연대하여 호명관계를 바꾸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허상을 벗겨내고 자유롭고 당당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기 보다,  세계와 관계함으로써 발생하는 상상적 표상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 사상>(빌리스 듀스 지음, 남도현 옮김, 계마고원, 2003년) 

 <교양인을 위한 인문학 사전>(이안 뷰캐넌, 윤민정/이선주 옮김, 자음과 모음, 2017년 )

 <개념어 사전>(남경태, 들녘,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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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와  극들

  1) 마법사-황제와 판관-사제

국가의 정치적 주권은  가지 양상으로 작동한다. 마법사-황제의 극은 폭력과 기호를 통한 포획의 방식으로표현적 지층에 해당하고, 판관-사제의 극은 법과 계약에 따른 지배의 방식으로 내용적 지층에 해당한다. 국가장치는 생산자가 포획장치 안에서 노동하게 하기위해, 자립적-자율적 노동할 조건을 제거해 버린다. 

 

  2) 국가는 전쟁기계를 어떻게 포획하는가

국가에 의한 전쟁기계의 포획은  가지 방식을 모두 필요로 한다. 황제와 제국의 극에 의해 이루어진 포섭은법과 계약의 형식에 의해 자연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나타난다.  결과 포획은 어떤 원인을 갖지 않고 자연적인 사태처럼 보이는 마술적인 것이 된다. 국가의 원인으로 흔히 지적되는 폭력이나 전쟁, 공적 기능, 사유재산, 화폐 등은 국가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국가의 원인이   없다. 따라서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으로서의국가인 원국가를 상정할 필요가 있다.

 

2. 어느 것이 일차적인가?

잉여와 스톡,  농촌과 도시,  원시사회와 국가중에 어느것이 일차 적인가 

 

  1) 극한과 문턱

배치의  문턱은  다른 배치로 들어가게 하는 경계점이다. 문턱을 넘지 않은 직전은 극한이라고 정의 한다.  문턱은 최종적인 것으로  변화를 표시하며극한은 끝에서  번째로 재시작을 포함한다.  원국가란 권력의 집중이 극한을 향해 나아가지만 아직 문턱을 넘지 못한 국가이다.

 

  2) 잉여와 스톡

잉여가 먼저인가, 스톡이 먼저인가 ?  경제학에서 스톡이란 플로우의 대개념으로 어떤 시점에서 소유한 자산의 의미이다.  여기서 사용하는 스톡은 소비나 단순한 교환에 사용되지 않고 비축되는 재화를 지칭한다. 스톡은 잉여가 이미 존해해야 있을  있다. 잉여가 존재하고 그것이 스톡이 되고 재산이 되며 사적 소유를 낳는다.  씨앗으로 사용할 곡물의 스톡이 없다면 농작물의 경작은 불가능할 것이다.  윈시 사회에서   잉여를 생산하지 않은 것은 잉여가 무의미하고 불가능한 배치와 결부되어 있다.  농경은 스톡이 존재하는 배치를 이미 전제한다.  농업을 창조하는 것은 국가다. 국가가 농경적 생산을 하나의 양식으로 만든다.  잉여보다는 스톡이농업보다는 도시가 생산 양식보다는 국가가 먼저이다. 이는 원국가의 가설을 지지한다. 

 

  3) 예견-방지 메커니즘

원국가는 극한을 향해 나아가지만 아직 문턱을 넘지 못한 국가이다. 원국가는  언제나 이미 존재했다.  국가없는 자급자족적 원시사회는 존재하는 않았으며,  원시사회는 국가가 문턱을 넘지 않도록 만드는  예견-방지메커니즘이 있었다.  윈시사회들은 국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벡터 그것을 격퇴하는 메커니즘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었다.  

 

  4)  개의 문턱

국가와 결부된 문턱에는 도시와 국가라는  가지 상이한 유형이 있다. 국가란 브로텔이 영토적 국가라고 했던 것으로 국민국가 형태로 일반화 했던 국가를 지칭한다.  스톡의 생산과 유통, 순환이 도시를 하나의 포획장치로 구성하는 요인이다.  도시가 들어오고 나감에 의해 정의 되는 길의 상관물이라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따라서 도시를 특징짓는 것은  -일관성과  수평적인 연결과 순환의 망이다.  반면 국가는 국가 내부의 다양한 영역과 지대들을 통합하는 -일관성을 통해 작동한다.  공명에 의존하는 내적 순환이며 네트워크의 나머지로 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회귀의 지대다. 

 

  5) 자본주의와 예견-방지 메커니즘

국가의 예견-방지 메커니즘은 자본주의에도 적용될  있다. 도시는 자신들의 독점적인 이윤을 위해 도시를넘어 자본주의가 확대되는 것을 막았다는 점에서 도시는 자본주의의 예견-방지 메커니즘으로 작동했다고  있다.  자본주의는  영토적 국가가 자본주의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리카도는 자본주의는이윤율 저하에 의한 종말을 추론 했지만 대량 생산에 의한 가변자본이 줄어드는 이윤율 저하의 상쇄 요인이발생한다.   이윤이 아니라 사회화된 다른 목적에 의해 생산이 이루어진다. 이윤율 저하경향이 새로운 배치의문턱을 격퇴하는 방식으로 예견하는 자본주의의 극한을 표시하는 법칙이라고   있다.  

 

3. 포획

  1) 포획이란

교환에서 아무런  추가적인 이득을 얻을  없음에도 버리지 않고 비축할 ,  비축되는 것을 스톡이라고한다.  비축되는 물건이 교환과는 다른 이런 종류의 배치를 포획이라고 한다. 

 

  2) 교환과 스톡

한계주의에 따르면 교환은 한계효용을 얻기 위해 행해진다.  내가 주려는 물건의 한계효용보다 교환해서 받을 물건의 한계 효용이  크다면 교환이 이루어진다. 교환은 마지막 구매물의 최종적 효용이 마지막 판매물의 효용보다  때까지 지속되며, 그때까지 그것들은 교환의 배치 안에 있다. 하지만  이상 교환이 이득이되지 않게 되면, 교환과는 다른 배치로 들어가면서 스톡의 비축이 시작된다. 스톡의 비축은 교환이나 직접적인 소비 이외의 이득을 획득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스톡으로부터의 이득은 스톡을 소유한 자에게 귀속될 텐데, 이것이 바로 포획이다. 스톡이 되는 것은 다른 방식의 이득 가능성, 다른 종류의 욕망 가능성을 담지하고있을 때이다. 

 

  3) 포획장치

포획장치는 직접적 비교 독점적 영유라는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포획의 논리를 설명하는데 일차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 직접적 비교이고,  포획개념의  독창성을 구성한다.  비교로서 포획은  비대칭적이고불공정한 강탈이 아닌 공정한 대칭적 과정으로 나타난다. 스톡은 토지, 연장, 화폐라는  측면을 갖으며, 여기에는 지대, 이윤, 과세라는 포획의  양식이 상응한다. 또한 각각의 포획에는 지주, 자본가, 조세  물가통제권자라는 권력의  측면이 존재한다.

 

 4) 지대의 포획

재대는 토지라는 스톡을 소유함으로써 영유하는 것이다. 차액지대는 토지 상호  산출량의 직접적 비교를통해서 성립한다. 보다 산출량이 많은 토지의 소유자는 그만큼의 추가적인 산출량만큼을 차액지대로서 포획한다. 그렇다고 해서 최열등지의 소유자가 지대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최열등지의 소유자는 토지를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 절대지대를 포획한다. 그렇게 지주는 절대지대와 차액지대를 더한만큼을 지대로써 포획한다. 비교에 의한 이득과 독점적 소유에 의한 이득의 여유가 두가지 포획의 양태이다. 

 

  5) 이윤의 포획

포획의 대상은 노동이다. 활동과 대비되는 노동이 스톡으로 비축된 노동이다.  노동과 관련한 비교 메커니즘의 수립을 통해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적 활동과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비생산적 활동을 구분하는 척도가 확립된다. 노동이란 개념 자체에 가치라는 개념과 비교라는 행위가 전제되어 있다.  척도에 따라 노동을 비교하여 지대의 경우와 같이 이윤을 포획한다. 그런데 노동의 포획은 잉여가치의 착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을 하나의 척도에 포섭해 가치화함으로써 노동의 포획은 노동 자체에 대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잉여가치만이 아니라 노동 자체도 항상 이미 포획이다. 잉여노동이 노동의 현실적 필요조건이고 노동의 현실적전제이다. 잉여 노동 없는 노동은 없으며, 노동은 항상 이미 잉여노동을 전제하고 있다. 

 

  6) 세금의 포획

화폐라는 스톡을 통한 세금의 포획이다. 화폐는 국가에 의해 발행되고 국가에 의해 유통되는 것이다. 시장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발생한 것이아니다. 자국 내부에서 통용되는 화폐의 발행은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려는 국가의 필요에서 비롯되었다.  국가가 세금을 부과하고 그것을 화폐로 받아 화폐로 하여금 교환수단과 지급수단으로서의  일반성을 획득할  있게 해주었다.  이런 점에서 세금이 상이한 노동과 상이한  들간의 등가성을 확립하게 해주었다.  국가는 나아가 시장에서 상품화하려는 시도 자체에 세금을 징수함으로써 포획을 한다. 은행의 경우는 화폐의 독점적 영유에 기초해 이자라는 세금을 포획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는화폐 발행을 통한 물가 상승을 통해서도 포획을 행한다.

 

  7) 포획장치의 추상기계

화폐 발행을 통한 포획의 경우, 포획은 화폐를 사용할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를 발행하거나 창조하는순간에 발생한다.  화폐를 추가로 발행하자마자 무물가가 상승하지 않지만 이때 포획이 이루어 진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실질임금이 감소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독점적 영유화와 직접적 비교라는 두가지 포획방식은 복합되어 작용하며 누구도 포획당하지 않은 것처럼 공정성 규칙에 알맞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포획의 마술성을 보여준다. 생산자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 획득할 기회가 없는 것을 상실 했기 때문이다. 

 

  8) 포획장치와 폭력

빼앗기는 줄도 모르는  빼앗기는 , 그게 바로 포획의 마술적 성격이다.  폭력이 행사되지만 폭력인  모르는 국가적 폭력의 마술적 성격이다. 맑스가 발한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본원적 축적도  국가를 통해자본주의에 선행하는 폭력 이었다.  포획장치가 수립될 때마다 본원적 축적이 존재한다.  포획이란 일종의 국가적인 폭력을 통해서 어떤 것들을 스톡으로 전환시키고, 포획 장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포획이 발생해서국가장치가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포획장치를 구성하는 국가장치가 항상 선행했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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