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쉐리던 감독의 영화 <윈드리버>를 보았다. 2017년 개봉작이다. 테일러 쉐리던 감독은 연기자 생활을 시작 했으나 빛을 못보고 노숙 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어울려 다니기도 했다. 각본가로 전업을 하고 <시카리오> <로스트 인 더스트>의 각본으로 명성에 올랐다. <윈드리버>는그가 각본까지 맡은 영화다. 제목<윈드리버>는 미국 서부 와이오밍주 윈드리버 산맥 부근 윈드리버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칭한다.

영화가 시작되고 어두운 밤, 하얀 눈으로 덮인 벌판을 한 여자가 맨발로 걷는다. 특정한 곳으로 향하는 것 같지 않다. 눈위의 차가움이 느껴진다. 그녀는 발걸음을 옮기다 눈위에 고통스럽게 피를 토하고 쓰러진다. 왜 그녀가 맨말로 눈위를 걷다가 피를 토했을까 ? 많이 아프거나 다친 몸으로 도망 가다 쓰러졌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화면은 전환되고 양떼가 보위가 그 주위에 어슬렁 거리는 늑대가 보인다. 이후 늑대를 향한 총구가 보이고 연이은 총소리에 늑대는 사살된다. 눈속에 횐옷으로 몸을 감추고 방아쇠를 당겼던 코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코리는 야생의 포식자로부터 가축들을 보호하는 야생 동물국 요원이다.

코리는 가축에게 피해를 입힌 퓨마의 이야기를 듣고 윈드리버 지역으로 향한다. 퓨마 발자국을 확인하고 발자국으로 부터 그 자리에서 어떤일이 있었는지 상황을 예측한다. 퓨마 발자국을 쫓다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여자를 발견한다. 첫 장면의 그 여자다. 그녀는 코리의 친구인 마틴의 딸 나탈리 였다. 이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FBI 신입요원인 제인이 파견되고, 수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신입 요원은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고 서투르다. 길도 잘 찾지 못한다. 눈덮인 지역의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왔는데 최소한의 방한복 조차 준비 하지 않았다. 부검에서도 감정적으로 목소리만 높인다. 내근자가 처음 사건에 투입된 것 같다. 그런 제인과의 옆에 코리가 동행한다. 나탈리가 사망한 장소에도 찾아 온다.

코리는 눈위의 나탈리 발자국으로 그녀가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이해한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눈위를 걸었다. 극한의 기온에서는 숨을 쉴수가 없다. 폐가 기능을 멈추고 피를 토하고 죽을 수 밖에 없다. 코리는 고통속에 죽어간 나탈리의 상황을 제인에게 이야기 한다. 제인은 수사 진행을 위해 피해자 아버지인 마틴의 집에 찾아 간다. 마틴의 아내는 딸을 잃고 울며 자해를 하고 있었다. 마티은 말이나 표정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내 못지 않은 상실감을 가졌다. 이후 자살까지 생각한다. 코리는 그런 마틴을 위로 한다. 동정이 아니다. 동병상련이다.

코리에게도 에밀리는 딸이 있었다. 나탈리와도 친구 이다. 코리가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기 위해 집을 비웠다. 그 사이 파티를 벌였고, 친구들 외에도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었다. 파티 이후 에밀리는 보이지 않았고 집에서 30킬로 떨어진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 된다. 코리는 딸을 잃은 상실감을 누구 보다도잘 알고 있다.

“이제는 절대 예전 같을 순 없다. 할 수 있는 건 슬픔을 받아들이고 견뎌야 한다. 그것만이 나탈리와 함께 하는 것이다. 절대 벗어나려 하지 말라. 그러면 함께한 기억마저 사라진다. 고통을 견디고 딸과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받아들여야 한다.”

억울하게 딸을 잃은 슬픔이 느껴 졌다. 코리가 제인을 도와 범인을 사냥하려는 이유중의 하나 였다. 수사를 위해 나탈리의 오빠를 찾는다. 오빠는 친구들과 마약을 하며 사고를 치며 경찰서를 들락날락 한다.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살아가는 인디언의 생활을 표현 한다. 희망이 없다고 한다고 한다. 보호구역이 보호를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백인을 향한 인디언의 적대감도 느껴졌다. 아마도 감독이 노숙을 하며 인디언과 어울려 다니며 느꼈던 경험을 옮긴 것도 같다.

나탈리를 오빠를 통해 나탈리가 인근 광산의 백인 경비 요원과 사귀 었다는 사실을 알아 냈다. 그 순간 나탈리가 사귄 남자를 범인으로 의심했지만 그 또한 참혹한 시체로 발견된다. 코리는 시체가 발견된 지점의 스노우모빌 자국을 조사한다. 그 경로는 나탈리가 사귄 남자 친구의 동료들이 거주하는 광산으로 향했다. 제인도 경찰들과 함께 광산으로 향한다. 범인은 광산의 경비원이었다. 어이없게도 술을 먹고 기분에 취해 저지른 범죄였다. 나탈리가 그 백인을 사귄 이유가 남자 친구와의 대화 속에 드러난다. 윈드리버를 벗어나고자 함이었다. 범인들과 총격전이 벌어지고 제인은 부상을 입는다. 코리는 범인을 잡아서 눈덮인 산으로 데리고 간다. 자백을 받고 나탈리가 경험했을 고통을 느끼게 한다. 맨발로 눈위를 달리다 얼마 못가서 쓰러진다. 피를 토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병원에서 제인은 나탈리가 느꼈을 고통을 상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영화 내내 딸을 잃은 부모의 상실감과 백인을 향한 인디언의 분노의 감정이 전달 되었다. 영화 내내 집중하고 볼 수 있었고 같이 본 아내도 내게 잘 골랐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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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을때 아내와 무료 영화를 본다. 무료 영화는 오래된 영화가 많다. 운이 좋을때 뜻밖에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영화를 만나다. 둘의 취향이 달라 둘다 만족하는 영화는 많지 않다. 2014년 영화 <내가 잠들기전에> 를 같이 보았다. 둘다 만족했다. 지루하지 않았고 기억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사고로 기억 상실증에 걸린 40대 여성 크리스틴이 기억을 되찾아가며 사고의 가해자를 찾게 된다. 크리스틴 역은 니콜 키드만이 열연하였다. 매일 아침 과거의 기억이 사라진 채 깨어난다. 아침이면 기억이 리셋 된다. 옆에 누워 있는 남편 벤 조차기억에 없다. 일어나면 남편에게 누구인지 물어 본다. 단기 기억 상실증인지 전체 기억이 없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침실 벽변에 붙여 있는 사진과 이를 설명하는 내용이 그녀가 깨어났을 때 옆에 누워 있는 남자가 남편임을 설명한다. 부부의 결혼 사진과 추억을 담은 사진이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자 전화벨이 울린다. 크리스틴의 기억 상실증을 알고 치료를 시도하고 있는 내쉬 박사이다. 내쉬 박사는 그녀에게 잘들기전 하루동안 기억한 내용을 동영상으로 녹화 한다. 그녀의 보조 기억 장치이다. 내쉬박사는 전화로 동영상 카메라의 위치를 알려주고 그 동영상을 보게 만든다. 그 영상이 자신 기억의 시작점이다. 여기에 의존하여 행동하고 판단 할 수 밖에 없다. 크리스틴은 내쉬로 부터 기억 상실증을 유발했던 사고의 진실을 듣게 된다. 온몸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나체 상태로 발견 되었다고 한다. 크리스틴은 그 사고의 진실을 찾아 나간다. 그 사고의 궁금증으로 인해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크리스틴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이 누구 였을까 ?

크리스틴은 내쉬 박사와 치료 과정을 통해 토막난 기억을 불러 온다. 출산을 했고 자녀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남편 벤은 아들 아담이 있었는데 수막염으로 세상을 등졌다고 설명 한다. 크리스틴은 내쉬 박사로 부터 남편 벤과 4년전에 이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편과 같이 살고 있는데 이혼했다니 현실과 맞지 않는 사실이다. 그녀를 애타가 찾았던 친구, 클레어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녀의 어렴풋한 기억속에 강하게 다가왔던 친구였다. 남편 벤이 말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남편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남편에게 이혼 사실을 확인했는데 그녀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 왔다고 한다. 자신의 과거를 남편의 말에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객관적인 과거를 확인해줄 옛 친구 클레어를 만나게 된다.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남편 벤에 대한 의심이 사랑의 확신으로 바뀐다. 남편 벤에게 그동안 숨겨 왔던 내쉬박사 이야기를 했을때 남편 벤은 폭력을 행사 한다. 사실 남편 벤은 그녀의 진짜 남편이 아닌 그녀의 불륜남 마이크 였던 것이다. 마이크가 사진과 이야기로 그녀의 기억을 조작하였다. 그녀의 남편 벤을 연기하고 있었다. 진짜 남편 벤은 크리스틴과 4년전 이혼했고 아들 아담과 같이 살고 있었다. 남편 역할을 했던 마이크는 크리스틴에 집착하다가 폭행까지 하고 기억 상실까지 유발하게 만들고 남편 행세를 해왔던 것이다. 결국 크리스틴은 진짜 남편 벤과 아들 아담을 만난다. 아침이면 아들 아담과 대화했던 내용을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기억을 일부 찾은 것 같았다.해피 엔딩이었다.

기억 상실증을 다룬 영화 또다른 영화 <메멘토>를 떠올렸다. 주인공의 기억은 15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자신이 겪은 일을 메모와 문신으로 남긴다. 그기록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다음 행동으로 이끈다. 잘못된 기억은 전혀 뜻박의 행동과 결과를 초래하게 한다. 두 영화 모두 기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 영화 였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기억이다. 내 정체성과 통일성은 기억으로 부터 나오고 행동도 기억에 의존 한다. 내 정체성은 내 기억에 의존하지만 다른 사람의 기억도 필요로 한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나를 기억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나는 그 곳에 없는 존재이다. 영화속에서 크리스틴을 기억해주고 잘 못된 기억을 수정해준 클레어를 통해 진실에 다가 갈 수 있었다. 기억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억하는 내용 바뀌고 동일한 과거의 경험도 다르게 해석되어 기억된다. 아픈 기억만 떠올려 삶을 구속하는 경우가 있다. 선의의 행동으로 기억되었던 내용이 진실이 알고 나나 악의 였음을 알게 되어 기억을 수정도 하게 된다. 나의 기억들을 불러와 정리할 필요성을 느낀다.

사실상 기억이 없다면 우리 각자가 ‘나' 라고 부를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와해되고 만다. ....나는 시간 속에서 끝없이 변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무언가가 있어서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일까 ? 아니면 애초에 그와 같은 불변의 자아는 환상인 것일까 ? 이와 같은 물음을 정체성 또는 자기 동일성의 물음이라고 한다. 자기 동일성의 문제는 시간적 사건들을 하나의 실로 연결하는 기억의 작용을 고려하지 않으면 답할 수 없다. (91p, 물질과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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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말에 오래된 영화를 본다. 주말 오전 테니스를 하고 오후에는 천변 산책, 저녁에는 영화를 본다. 오전은 나만의 시간이고, 오후와 저녁시간은 아내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다. 중간 중간 짬을 내서 책을 읽지만 자분량은 한계가 있다. 아내는 내가 혼자 책읽고 글쓰는 것보다 같이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 한다. 영화 선정은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제와 오늘 <메맨토>, <토탈리콜 2012>, <토탈리콜> 보았다. 기억에관한 영화다.

<메맨토> 아내의 살인사건으로 인해 10분밖에 기억을 못하는 극중 레너드 이야기이다. 정상적으로 말하고 추론하는데 별문제가 없지만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곧바로 잊어 버린다. 신경심리학의 임상 사례를 다룬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지미라는 남자와 같은 증상이다. 지미의 기억은 1분도 지속되지 않는다. 알코올로 일어난 유두체 변성  코르사코프 증후군이다. 지미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곧바로 잊어 버리기 때문에 시간의 관념이 없다. 그의 기억은 19세에서 멈추어 있고 45세가 넘은 현재까지 일어난 일들은 의식에서 살아져 버렸다. 따라서 그의 정체성도 19세에 머물러 있다. 그는 자신을 19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순간 속의 존재이다. 말하자면 망각이나 공백이라는 우물에 갇혀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에게 과거가 없다면 미래 또한 없다. 끊임없이 변동할  아무 의미도 없는 순간순간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66p,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영화에서 레너드도 지미처럼 아내의 살인 사건에 멈춰 있다. 그의 미래는 기억이 사라지기전 찍어 놓았던 즉석 사진과 메모에 의존한다. 문식에 세겨진 기억을 참조 한다. 아내의 복수가 그의 미래이자 정체성이다. 사진과 메모로 복수를 계획하지만 한계가 있다.

 

사실상 기억이 없다면 우리 각자가 ' 라고 부를  있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와해되고 만다. 나는 시간속에서 끝없이 변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무언가가 있어서 나를 나라고 말할  있게 하는 것일까 ? 아니면 애초에 그와 같은 불변의 자아는 환상인 것일까 ? 이와 같은 물음을 정체성 또는 자기 동일성의 물음이라고 한다. 자기 동일성의 문제는 시간적 사건들을 하나의 실로 연결하는 기억의 작용을 고려하지않으면 답할  없다. (91p, 물질과 기억, 시간의 지층을 탐험하는 이미지와 기억의 미학)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있다. 기억이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과 감정 심지어는 우리의 행동가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 루이스 부뉴엘

문신에 세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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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인의 삶을 보았다 . 배경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인 1984년 동독이다. 그 당시 동독에서는 10만명의 비밀 경찰이 국민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영화 첫부분에 정보기관인 국가보위부(슈타지)의 비밀 요원 ‘게르트 비즐러’가 용의자를 심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잠을 재우지 않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며 기계적으로 심문을 한다. 그는 그  장면을 녹화한 영상을 보여주며 경찰들에게 강의를 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말만 반복한다, 잠을 재우지 마라, 결백한 사람은 여기서 화를 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조용하거나 침묵하거나 운다."  그는  감정이 없으며 , 오로지 조직에 충성을 다하는 냉혈인간으로 보인다. 당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관료주의형 인간의 전형이다. 조직을 위해 인간에 대한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비즐러는 동료와 함께 동독의 희곡 작가 드라이만의 집을 24시간 도청하고 감시한다. 비즐러에게 드라이만 감시를 지시한 것은 헴프 장관이다. 헴프 장관은 극작가와 연출가에게 당의 노선을 따르도록 강요한다. 연극 배우이자 드라이만의 연인인 트리스타에게 성관계를 요구한다. 트리스타는 연극을 계속 하기 위해 장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 그녀는 무대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극작가, 연출가, 배우 들에게 중요한 것은 재능이나 예술성이 아니라 권력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당에 비판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친구들과 드라이만은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권력에 순응하는 모습이다. 드라이만의 친구인 예르스카는 권력에 대항한 대가로 연출가의 자리를 잃었다. 이는 예르스카를 죽음으로 이끈다. 친구의 죽음으로 드라이만은 폐쇄된 사회 동독의 자살율 통계로 비판한다. 동독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드라이만은 감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버즐러는 드라이만과 같이 살고 있는 트리스타의 삶을 감시 하고, 그 내용을 보고 한다. 그러던 중 드라이만의 집에서 훔쳐온 브레히트의 시집을 읽고 감명을 받는다. 브레히트는 사회주의를 연극 작품에 접목시킨 좌파 극작가 였지만 동독에서 체제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작품을 남겼다. 비즐러의 삶의 변화를 예견한다. 드라이만은 예르스카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한다. 비즐러는 그 음악을 도청하면서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찾는 과정으로 보았다. 비즐러는 드라이만과 트리스타의 삶을 관찰하며 자신의 삶을 바라 보았다. 조직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사랑하고 부딪히며 관계를 이어 나가는 일상의 삶이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고 자신의 삶을 보게 된다. 자신의 삶으로 나아간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이 동독 체제에 대한 비판 글을 썼다는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 한다.

트리스타는 헴프 장관과 관계를 끊었다.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연극 무대에 설수 없게 되었다. 연극 무대에 서기 위해 연인인 드라이만의 반체제 글쓰기를 고발한다. 이로 인해 드라이만이 위기에 처했지만 비즐러의 도움으로 이을 모면하게 됬다. 트리스터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 하며 드라이만의 삶에 눈감는다. 그녀에게는 사랑보다는 연극 무대가 먼저 였다. 뒤늦게 잘 못을 인정하고 드라이만에게 용서를 구한다. 타인은 알 수 없는 무한의 심해이다.

드라이만은 독일 통일 후 자신이 감시 받았고, 자신을 지켜주었던 비즐러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를 직접 찾아 간다. 그에게 감사의 표시를 할 줄 알았는데 버즐러를 멀리서 보고 그냥 돌아간다. 시간이 흐른 후 버즐러를 위한 책을 출간한다. 책 제목이 '아름다운 영혼의 소나타’ 였다. 비즐러가 도청 중 들었던 피아노 연주곡 제목과 일치 한다. 첫 페이지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HGW XX/7(비즐러의 코드명)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가 쓰여져 있었다. 버즐러는 서점에서 드라이만의 책 광고를 보고, 책을 열어 본 후 책을 구입한다. 서점 직원이 "선물 포장해 드릴까요?"라고 묻자, "아니오, 이 책은 나를 위한 겁니다."라고 담담하게 대답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타인의 삶’이 한 인간의 삶을 변화 시켰다. 

 

타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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