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의 마지막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제자들에게 뜻밖의 말을 했다.“나를 떠나라. 그리고 너희 자신을 찾도록 하라.” 나는 이 말을 따라 1부를 마쳤다. 스승에게서 배웠다면 언젠가는 스승에게서도 벗어나야 한다. 니체에게서 배운 것조차 하나의 정답으로 붙들어서는 안 되고, 이제는 내가 보고 느끼고 살아낸 것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2부를 펼치자 조금 이상한 장면이 나온다. 제자들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했던 차라투스트라가 다시 산을 내려가려고 한다. 그는 1부의 가르침을 마친 뒤 다시 산속 동굴로 돌아가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지냈다. 자신이 뿌린 씨앗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날 꿈속에서 한 아이가 거울을 들고 나타난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악마의 험상궂은 얼굴이 비쳤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가르침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자신이 뿌린 밀 사이에서 잡초가 자라 밀의 행세를 하고 있었다. 그의 적들은 가르침을 다른 뜻으로 바꾸어놓았고, 벗들조차 그가 준 것을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이 장면을 읽다가 오래전에 했던 한 번의 강의가 떠올랐다. 2018년, 학교 후배의 부탁을 받아 경기도의 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 시간 정도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주제는 무선통신 기술과 직무였다. 오랜만에 학생들 앞에 서는 것이기도 했고, 귀한 시간을 내준 만큼 무엇인가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다. 자료를 꽤 열심히 만들었다. 학생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기본 개념부터 차근차근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 파워포인트 자료가 50장을 넘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다. 한 시간 동안 50장이 넘는 자료라니. 아는 것을 가능하면 많이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도 알게 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강의를 시작했는데 예상과 달랐다. 서너 명 정도만 눈을 맞추며 듣고 있었고, 컴퓨터를 바라보는 학생도 있었고 조는 학생도 보였다. ‘내용이 재미없는 건가?’ ‘내가 방향을 잘못 잡았나?’ 강의를 하면서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나는 내 나름대로 이유를 만들었다. 학생들이 요청한 수업도 아니고 지금 당장 필요한 내용도 아니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준비해온 것이 있으니 설명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10분 정도를 남겨놓고 기술 이야기를 멈췄다. 학생들 가운데 무선통신 분야로 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지금까지 준비한 기술 이야기가 이들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도 알 수 없었다. 대신 인생 선배로서 그 나이의 나에게 누군가 이야기해주었으면 좋았을 법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생각만 바꾸려고 하지 말고 행동을 바꾸고 만나는 사람을 바꿔보라고 했다. 책이나 다른 사람의 평가만 듣고 어떤 것을 결정하지 말고 가능하면 직접 경험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기록해두라고 말했다. 그런 기록이 쌓이면 언젠가는 자신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말을 하고 있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이런 생각까지 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보다 먼저 살아본 사람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까.’ 그래서 집에 돌아와 책장을 뒤졌다. 이전에 읽었던 인생에 관한 책들을 다시 펼쳤다. 이미 읽은 책인데 처음 읽는 것처럼 낯선 문장도 있었다.
당시에는 그 경험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후배에게 알려주는 일’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차라투스트라의 두 번째 하산을 읽으면서 조금 다르게 보인다. 나는 그날 정말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학생들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50장이 넘는 자료에는 학생들의 질문보다 내가 가진 지식이 더 많이 들어 있었다. 학생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를 충분히 묻지 않았고, 내가 무엇을 알려주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 강의가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내가 열심히 준비했느냐보다, 내가 건넨 것이 상대에게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말은 입을 떠나는 순간 더 이상 말한 사람의 것이 아니게 된다. 내가 좋은 뜻으로 한 말도 상대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내가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한 것도 상대에게는 전혀 다른 뜻으로 남을 수 있다. 내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건넨 조언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꼰대의 말’일 수도 있다.
차라투스트라가 본 거울 속 악마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악마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가르친 것이 세상으로 나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돌아온 것이다. 그는 씨를 뿌렸지만 씨앗이 무엇이 되었는지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내려간다.
이번 하산은 1부 처음의 하산과 조금 달라 보인다. 처음에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나누어주기 위해 내려왔다면, 이번에는 자신이 나누어준 것이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내려간다. 강의자료 역시 두 번째 하산을 ‘벗과 적을 다시 찾아가는 새로운 서사의 시작’으로 설명하면서, 자족적인 호수에 머물던 차라투스트라의 사랑이 다시 벗과 적의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고 읽는다. 여기서 ‘적을 찾아간다’는 말도 흥미롭다.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만 만난다면 내 생각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내 말을 오해한 사람, 반대하는 사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인 사람을 만나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말했고 무엇을 빠뜨렸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르친다는 것은 그래서 일방향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말하고 상대는 듣는다. 내가 알고 상대는 배운다. 이렇게 끝나는 일이 아니다. 말을 건네고, 그 말이 나에게서 떠나고, 상대에게서 전혀 다른 것이 되고, 그것을 다시 보면서 나 또한 달라지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회사에서도 비슷하다. 팀장이 되어 이야기를 하고 지시를 한다. 설명했다고 생각하고, 구성원들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좋은 뜻으로 조언도 한다. 그런데 내가 설명한 것과 상대가 들은 것은 정말 같을까. 내가 ‘자율적으로 하라’고 말했는데 상대는 ‘알아서 책임지라’고 들었을 수도 있다. 내가 ‘잘되기를 바란다’며 한 조언이 상대에게는 평가나 간섭으로 들렸을 수도 있다.
내가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만 확인해서는 알 수 없다. 상대에게 가서 물어야 한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가 다시 산을 내려가는 장면이 이제 조금 다르게 읽힌다. 가르침이 끝났기 때문에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가르침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내려간다.
1부의 마지막에서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했다. 그런데 떠난 제자들을 붙잡으러 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자신에게서 받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만나러 가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차라투스트라 자신도 다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는 선언한다. “나는 새로운 길을 간다.” 2부의 시작을 알리는 이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나도 오래도록 무엇인가를 배우면 먼저 제대로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다음 과정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해한 것을 세상에 가지고 나가보는 것. 다른 사람의 반응 속에서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얼마나 다른지 보는 것.
그리고 필요하다면 다시 고쳐 생각하는 것. 어쩌면 배움은 산 위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이 산 위의 시간이라면,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 생각이 부딪치고 흔들리고 때로는 오해받는 시간도 필요하다.
2018년 그날, 나는 학생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려고 학교에 갔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알게 된 것은 오히려 다른 것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 가운데는 아직 내가 충분히 살아내지 못한 말도 있다는 것. 그래서 가르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배우게 된다.
차라투스트라가 다시 산을 내려간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지 않을까. 내가 옳다는 것을 다시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이 세상 속에서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를 보기 위해서. 그리고 그 거울 앞에서 자신도 다시 변하기 위해서. 2부는 그렇게 시작된다. 산 정상에서 더 높은 진리를 찾아서가 아니라, 다시 사람들 속으로 내려가면서. 내가 건넨 말은 상대에게서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그리고 그 모습을 다시 만난 나는 이전과 같은 사람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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