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나는 가치는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평가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썼다. 그렇다면 이제 더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은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인가. 나는 지금까지 꽤 많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승진, 성과, 책, 카메라, 좋은 집, 경제적인 안정.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대부분은 한 사람의 삶을 안정시키고 넓혀주는 중요한 가치들이다.문제는 다른 데 있다. 나는 이것들을 언제부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내가 선택하기 전에 이미 주어진 것들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삶을 시작하지 않는다. 태어나면 가족이 있고, 학교가 있고, 사회가 있고, 이미 만들어진 언어와 기준이 있다. 성실한 사람이 좋다고 배우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배우고, 공부를 잘하면 칭찬받는다. 직장에 들어가면 또 다른 기준이 생긴다. 성과를 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고,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 기준들을 따라 살아왔다. 그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그것들을 단순히 ‘남이 강요한 가치’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그 가치들은 실제로 나를 성장시킨 힘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가치가 앞으로도 계속 나를 데려가야 하는가.
한때 중요했던 것은 계속 중요해야 할까
승진이 그랬다. 오랫동안 승진은 성장과 성취를 보여주는 분명한 기준이었다. 더 많은 책임을 맡고, 더 넓은 역할을 하는 것. 당연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승진만 하면 삶도 뭔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가보니 내가 기대했던 변화와는 조금 달랐다. 직급은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삶의 만족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 경험은 승진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승진이라는 가치가 내 삶의 최종 목적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했다. 한때 나를 움직였던 가치가 어느 순간 질문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세대가 물려준 가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것 가운데에는 내 세대가 공유해온 가치도 있을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 내 집 마련. 자녀 교육. 노후 준비. 이런 것들은 그저 개인적인 욕망이 아니라 우리 세대가 살아온 조건과도 연결되어 있다. 불확실한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에게 안정은 좋은 가치가 된다.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세대에게 소득과 직장은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의무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안전과 안정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것도 나만의 선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어쩌면 내가 살아온 시대가 내 안에 만들어놓은 가치서판일 수 있다.
그런데 시대가 만든 가치도 내 가치가 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조심하고 싶다. “사회가 가르친 가치니까 가짜이고 내가 스스로 만든 것만 진짜다.” 라고 생각하면 너무 단순해진다. 내가 스스로 만든 언어는 하나도 없다. 생각하는 방식도 대부분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치의 출처가 외부인가 내부인가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그것을 다시 선택하고 있는가인 것 같다. 부모에게 배운 성실함이라도 지금 내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제 내 가치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내가 오래 따라왔다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의미 없는 것을 계속 붙잡는다면 그것은 습관일 수 있다.
물려받은 가치와 선택한 가치의 차이
둘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요즘은 이런 질문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무도 이것을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할까. 예를 들어 직급이 전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도 나는 지금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싶을까. 누구도 내 카메라의 가격을 모른다면
나는 같은 장비를 선택할까.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면 나는 여전히 같은 책을 읽을까. 내 글의 조회수가 0이라도 나는 계속 쓸까.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가치와 인정욕망이 어디에서 섞이는지가 조금 보인다.
책을 많이 갖는다는 것
이사와 책 정리를 앞두고 어떤 책을 남기고 어떤 책을 보낼지 고민했던 것도 비슷한 경험이었다. 책은 오랫동안 내게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읽을 가능성이고, 알고 싶은 세계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나는 이런 것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버리는 것은 물건 하나를 처분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책장을 바라보다 보면 몇 년 동안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책도 많았다. 그때 질문이 생겼다.나는 이 책을 정말 읽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가능성을 보유하고 싶은 것인가. 이 질문을 하고 나니
소유와 가치가 조금씩 분리되기 시작했다.
물건을 갖는 것과 사용하는 것
노트북과 카메라도 비슷했다. 새로운 장비를 볼 때마다 나는 그 장비로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상상했다.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존 장비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어떤 물건은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어떤 물건은 가능성을 소유했다는 느낌만 준다. 그리고 그 둘은 다르다. 이 경험을 통해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좋은 장비’의 기준도 조금 변했다. 가장 뛰어난 장비보다
실제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장비가 나에게는 더 좋은 장비일 수 있다. 가치가 바뀌자 소유에 대한 판단도 달라졌다.
조직에는 조직의 선과 악이 있다
회사에서는 더 분명하다. 조직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 어떤 조직은 빠른 실행을 높게 평가한다. 어떤 조직은
안정과 무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어떤 조직은 숫자로 보이는 성과에 높은 가치를 둔다. 오랫동안 한 조직에 있으면 그 기준은 자연스럽게 내 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어느 순간 조직의 평가와 나의 평가가 구분되지 않기도 한다. 성과가 좋으면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고, 평가가 좋지 않으면 내 존재까지 부족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조직의 가치서판은 조직이 살아가기 위해 만든 기준이다. 그것이 내 삶 전체를 평가하는 기준일 필요는 없다. 이 구분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좋은 팀장이라는 기준도 다시 묻게 된다
나는 어떤 팀장이 좋은 팀장이라고 생각하는가. 성과를 잘 내는 사람일까. 윗사람에게 신뢰받는 사람일까. 구성원이 좋아하는 사람일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는 사람일까. 아마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 다른 기준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없어도 구성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 앞의 글에서 썼던 ‘싸구려 여관’이라는 이미지가 다시 떠오른다. 사람들이 계속 나를 찾는 것이 좋은 리더십의 증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를 덜 필요로 하게 된다면 오히려 더 잘된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조직이 내게 가르쳐준 평가 기준이라기보다 살아오면서 내가 조금씩 다시 만든 기준에 가깝다.
가족이 물려준 것
가족에게서 받은 가치도 있다. 책임감, 성실함, 가족을 돌보는 마음. 이런 것은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버리고 싶지도 않다. 다만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가치조차 내 삶 속에서 다시 이해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계속 일만 하는 것을 의미하는지, 경제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희생해도 된다는 뜻인지, 그 구체적인 형태는 다시 생각할 수 있다. 가치는 이어받을 수 있지만 그 가치를 살아내는 방식까지 똑같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니체를 읽는 것도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니체의 말을 이해하려고 했다. 신의 죽음이 무엇인지, 위버멘쉬가 무엇인지, 영원회귀가 무엇인지. 그런데 읽을수록
개념보다 질문이 더 많이 남는다. 나는 왜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이 판단은 어디에서 왔지. 지금도 유효한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누가 말했지. 그리고 결국 가장 어려운 질문이 남는다.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고 싶은가. 이 질문은 책에서 답을 그대로 가져올 수 없다. 니체도 대신 답해줄 수 없다.
‘나의 가치’를 만든다는 것
예전에는 나만의 가치를 만든다는 말을 들으면 아주 거창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철학을 만들거나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물려받은 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고, 이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것은 조금 덜 중요하다.
이것은 이제 놓아도 되겠다. 라고 다시 평가하는 것. 그 과정 자체가 나만의 가치서판을 만드는 일일 수 있다. 완전히 새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물려받은 것을 다시 선택하는 것.
매일 쓰는 이유도 조금 달라진다
매일 글을 쓰는 일도 이런 재평가의 시간이 되고 있다. 하루를 보내고 나서 내가 무엇에 마음을 썼는지 적다 보면 내가 실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드러난다. 입으로는 가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하루 종일 업무 생각만 했다면 내 실제 가치서판은 말과 다를 수 있다. 책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계속 새 장비만 검색했다면 내 시간은 다른 가치를 따라간 것이다. 그래서 기록은 내가 무엇을 믿는지 적는 일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무엇에 시간을 주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 이기도 하다. 가치는 말보다 시간에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시간을 어디에 쓰는가
어쩌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싶다면 내 말을 듣기보다 내 하루를 보는 편이 정확할 수도 있다. 무엇에 시간을 쓰는가.
무엇 때문에 걱정하는가. 무엇을 반복해서 검색하는가. 어떤 일은 피곤해도 계속하고 싶은가. 무엇을 위해 돈을 쓰는가. 무엇을 위해 기다릴 수 있는가. 거기에 내가 실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 그러고 보면 나의 가치서판은 이미 매일 작성되고 있다. 다만 내가 읽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천 개의 목표 사이에서
니체는 수많은 민족이 저마다의 가치서판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제 그 말을 조금 작게 가져와본다. 가족의 목표가 있었고, 학교의 목표가 있었고, 회사의 목표가 있었고, 내 세대의 목표가 있었다. 나는 그 천 개의 목표 사이에서 여기까지 왔다. 그것들을 모두 버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중 많은 것은 앞으로도 내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다만 이제는 한 번쯤 묻고 싶다. 이것을 나는 지금도 선택하는가.
아마 나만의 가치는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가치 가운데 무엇을 다시 선택하고 무엇을 놓아줄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그래서 이제 “이것은 내 가치다.” 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먼저 묻는다. 누구에게서 배웠는가. 어떤 삶의 조건에서 필요했던가. 지금도 나를 살게 하는가.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묻는다. 아무도 이것을 요구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이것을 중요하게 여길 것인가. 그 질문을 통과한 뒤에도 남아 있는 것. 아마 그것부터 조금씩 ‘나의 가치’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