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를 오랫동안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누가 시키지 않는 것. 간섭받지 않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결정하는 것. 그래서 복종은 자유의 반대라고 생각했다. 명령하는 사람은 자유롭고, 명령받는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다고. 그런데 니체는 「전쟁과 전사」에서 이상한 말을 한다. 노예에게는 반항이 고상하지만, 전사에게는 복종이 고상하다고. 더 이상한 것은 이 말이다. 전사에게는 “나는 하고자 한다”보다 “너는 해야 한다”가 더 듣기 좋다고.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니체는 자유정신을 말하면서 왜 갑자기 복종을 칭찬하는 것일까.
이 문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누구에게 복종하는가’를 물어야 할 것 같다. 타인에게 복종하는 것과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회사에서 누군가 시킨 일을 하는 것. 사회가 좋다고 정한 기준을 따라가는 것. 남들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이것이 외부의 명령에 대한 복종이라면,니체가 전사에게 요구하는 복종은 조금 다르다.
스스로 정한 것을 스스로 지키는 것. 아무도 보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을 수행하는 것.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내가 선택한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렇다면 전사의 복종은 복종이라기보다 자기명령에 대한 충실함에 가깝다.
이렇게 생각하니 자유에 대한 내 생각도 조금 달라진다.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능력일까.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는 능력일까. 물론 그것도 자유의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만 따라가는 사람은 정말 자유로운가. 오늘은 쓰고 싶어서 쓰고, 내일은 귀찮아서 쓰지 않고, 오늘은 운동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일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미루고, 오늘은 소비를 줄여야겠다고 결심하고, 며칠 뒤에는 다시 욕망에 끌려간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것일까.
아니면 그때그때 가장 강하게 올라오는 충동에 끌려다니는 것일까. 이 질문 앞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과 자유가 꼭 같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니체가 말하는 전사는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말하는 전쟁을 실제 전쟁이라기보다 가치와 가치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으로 읽고 싶다.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사회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사이의 싸움. 지금 당장 편한 것과 오래 지키고 싶은 것 사이의 싸움.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내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 사이의 싸움. 그렇다면 전장은 멀리 있지 않다. 대부분의 전쟁은 내 안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 역시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일 수 있다.
자료에서는 노동과 전투를 대비한다. 처음에는 조금 거슬렸다. 노동은 나쁘고 전투는 좋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읽으면 의미가 달라진다. 문제는 노동 자체가 아니라 누구의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노동인가이다. 다른 사람이 만든 목표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도 필요하다. 조직에서 일하려면 그것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삶 전체가 되면 문제가 생긴다. 왜 이 일을 하는지 묻지 않고, 누가 정한 방향인지 묻지 않고, 그저 더 잘 수행하는 것만 남게 되면, 나는 성실한 사람은 될 수 있어도 내 삶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은 아닐 수 있다. 이때 노동은 단순히 일을 많이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기 방향을 잃어버린 상태가 된다.
이 지점에서 이전글에서 생각했던 ‘바쁨’이 다시 떠오른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언제나 삶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잊기 위한 방법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왜 바쁜가. 누구의 명령을 수행하느라 바쁜가. 나는 지금 내 삶에서 무엇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가. 이 질문을 하지 않은 채 열심히만 사는 것은 어쩌면 타인의 전쟁을 대신 치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니체는 적에 대해서도 이상한 말을 한다. 경멸할 만한 적이 아니라 증오할 가치가 있는 적을 가지라고 한다. 처음에는 과격하게 들리지만, 여기에도 중요한 뜻이 있는 것 같다. 좋은 적은 나를 소모시키는 적이 아니라 나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적이다. 그 적은 꼭 사람일 필요도 없다. 나에게 가장 큰 적은 어쩌면 게으름일 수도 있고,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습관일 수도 있고, 성과로만 나를 판단하는 기준일 수도 있고, 한번 결정한 것을 쉽게 포기하는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적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적과 싸우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적을 잘못 고를 때가 많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 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 내 의견과 다른 사람. 그들을 적으로 만들면 싸움은 쉽게 외부로 향한다. 하지만 그런 싸움은 끝이 없다. 한 사람을 이기면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비교를 기준으로 살아가는 한 항상 새로운 경쟁자가 생긴다.
반면 내가 싸워야 할 적을 내 안에서 찾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자기 기준을 지키는 것. 쉽게 흔들리던 부분에서 한번 더 버티는 것. 남의 평가 때문에 선택을 바꾸려는 순간, 왜 처음 그 선택을 했는지 다시 묻는 것. 그런 싸움은 누군가를 이겨야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싸울수록 내가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니체가 말하는 전사는 결국 자기입법자에 가까운 것 같다. 자기입법자. 말 그대로 자기 삶의 법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 처음에는 이 표현도 거창하게 들렸다. 하지만 꼭 대단한 철학적 원칙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정하는 것. 그 기준을 쉽게 남에게 넘겨주지 않는 것. 그리고 한번 정한 기준을 나 자신에게도 적용하는 것.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지막이다. 우리는 타인에게는 기준을 쉽게 적용하면서 자신에게는 예외를 만들 때가 많다. “오늘은 특별하니까.” “이번만은 괜찮으니까.” “상황이 이러니까.” 그 순간 자기입법은 무너진다. 자기 자신에게 법을 만들 수는 있어도, 그 법에 복종하지 못하면 그것은 아직 내 법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가 말하는 “너는 해야 한다”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명령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내리는 명령일 수 있다. “나는 하고 싶다.” 이 말에는 욕망이 있다. 하지만 욕망은 쉽게 변한다. 오늘의 나는 원하지만 내일의 나는 원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너는 해야 한다.” 이 말에는 약속이 있다. 내가 어제 선택한 가치를 오늘의 기분 때문에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 그래서 전사의 복종은 자유의 반대가 아니라 어쩌면 더 어려운 자유의 형태인지도 모른다. 자유는 아무것에도 복종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가치에 스스로 복종할 수 있는 힘. 하지만 여기에도 위험이 있다. 자신에게 명령한다고 해서 모든 명령이 좋은 것은 아니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더 잘해야 한다.” “실수해서는 안 된다.” “항상 강해야 한다.” 이런 말도 자기명령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사회와 조직, 타인의 기대를 내면화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더 중요한 질문이 필요하다. 이 명령은 정말 내가 만든 것인가. 니체가 말하는 자기입법은 단순히 자기통제를 강화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내가 따르고 있는 법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계속 묻는 일이다.
회사에서 배운 것인지, 가족에게서 배운 것인지, 사회가 성공이라고 말해서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내가 살아보며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 것인지. 그 질문을 통과하지 않은 자기명령은 사실 타인의 명령을 내가 대신 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반항도 충분하지 않다.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롭다. 나는 오랫동안 자유로운 사람은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남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갈 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니체에게 반항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아니오”라고 말한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 기존의 가치를 부정한 다음 무엇을 새롭게 긍정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 반대하는 대상에 묶여 있다. 내 삶의 기준이 여전히 상대방에게 있기 때문이다. 사자가 “아니오”라고 말해 기존의 가치를 부수는 존재라면, 그다음에는 아이처럼 자신의 새로운 “예”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하나의 고정된 사람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의 높이가 아니라 나의 높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계속 미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결국 여기까지 온다.
그 삶의 방향을 누가 정할 것인가.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을 반복해야 하고, 때로는 오늘의 나를 어제의 내가 세운 약속에 복종시켜야 한다. 그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남의 명령에 저항하는 것보다 자신의 명령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 자유를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자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아니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상태만도 아니다. 자유는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고, 그 결정의 결과까지 내가 떠맡는 능력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그 힘은 거창한 곳에서 생기지 않는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내가 한 약속을 지키는 것. 외부의 보상이 없어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을 계속하는 것.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세운 기준으로 하루를 살아보는 것. 그런 작은 복종들이 쌓여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니체가 전사를 말할 때 나는 이제 칼이나 전쟁을 떠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혼자 있는 사람을 떠올린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것을 묵묵히 지키는 사람. 다른 사람을 이기는 데 힘을 쓰기보다 자기 힘을 자기에게 돌려주는 사람. 그리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오래된 가치와도 싸울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조금 알 것 같다. 반항하는 것만으로는 자유로울 수 없다. 남의 명령에서 벗어난 다음에는 내가 나에게 어떤 명령을 내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진짜 어려운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