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의 철학』을 읽으며 센스를 감각에서 시작해 리듬까지 생각해보았다. 처음에는 센스를 무엇인가를 잘 느끼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센스는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정해진 모델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무엇인가를 포착하는 능력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리듬에 관한 부분에서는 또 하나의 생각이 이어졌다. 우리는 반복을 통해 다음을 예상하고, 그 예상과 실제 사이의 작은 어긋남을 경험한다. 그 어긋남이 리듬을 만든다. 그런데 책을 조금 더 읽다 보니 이번에는 ‘우연성’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센스와 우연성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리는 삶을 자꾸 완성하려고 한다.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그것을 채우려고 한다. 업무에서도 그렇다. 목표가 100인데 현재가 80이라면 자연스럽게 부족한 20을 찾는다. 목표 → 현재 상태 → 부족함 발견 → 보완 → 목표 달성. 이 방식은 매우 익숙하고 효과적이다.
업무에서는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고 개선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계획에서 빠진 것을 찾고, 위험요소를 발견하고, 목표와 실적의 차이를 줄이는 것은 일을 잘하기 위한 기본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삶 전체를 바라보는 방식이 될 때 생기는 것 같다. 100을 목표로 하는 순간 80은 ‘80을 이루었다’가 아니라 ‘20이 부족하다’가 된다.
그리고 부족한 20을 채우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긴다. 부족함 → 노력 → 성취 → 새로운 부족함 → 다시 노력 끝없이 이어진다.
부족함을 모두 채우면 우연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진다.
책에서 흥미롭게 느껴진 부분은 부족함을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다. 부족하면 채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계획하고 빈틈없이 채워놓을수록 예상하지 못한 것이 들어올 여지는 줄어든다. 모든 시간을 계획하고, 모든 결과를 목표에 맞추고, 모든 어긋남을 수정하고, 모든 부족함을 보완한다면, 그 삶은 효율적일 수 있지만 처음부터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나타날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우연성을 생각하게 된다. 우연은 계획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통제의 관점에서는 방해가 될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어긋남을 모두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앞서 센스에 대해 생각하면서 ‘헤타우마’라는 개념이 인상적이었다.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하지 못했다고 해서 반드시 실패한 것은 아니다. 실제 대상과 조금 어긋났는데 그 어긋남 속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매력이 나타날 수도 있다. 여기에서도 같은 구조가 보인다.
목표 → 결과 → 차이가 생겼을 때 우리는 보통 그 차이를 오류로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차이가 제거해야 할 오류일까. 어떤 차이는 실수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차이는 처음부터 계획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능성일 수도 있다. 그래서 결과가 예상과 다를 때 두 가지 질문이 가능하다.
“무엇이 부족했는가?”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무엇이 생겨났는가?”
첫 번째 질문은 개선을 위한 질문이다. 두 번째 질문은 발견을 위한 질문이다. 센스에는 어쩌면 두 번째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되는 것 같다.
개선 능력이 너무 강하면 발견 능력이 약해질 수도 있다
업무를 하다 보면 부족한 부분을 빨리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 문제가 보이고, 누락된 것이 보이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 보인다.
분명 중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개선의 관점에서만 보면 예상과 다른 것은 자연스럽게 수정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러면 우연히 나타난 좋은 결과도 제거할 수 있다. 원래 계획과 다르지만 더 나은 방법, 실수에서 시작했지만 새로운 가능성이 된 결과, 목표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그 사람만의 특징이 나타난 결과. 이런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한 가지 역설을 생각하게 된다.
개선 능력이 너무 강하면 발견 능력이 약해질 수도 있다.
늘 부족한 부분을 찾다 보면 이미 존재하는 좋은 것보다 없는 것이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우연성은 ‘아무렇게나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연성을 긍정한다는 것이 계획이나 노력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연에 맡긴다는 것과 우연이 들어올 공간을 남긴다는 것은 다르다.
계획은 필요하다. 목표도 필요하다. 반복하고 연습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것은 이 정도다. 계획을 세우되 계획 밖의 것을 볼 수 있는 것. 목표를 가지되 목표와 다른 결과를 곧바로 실패라고 하지 않는 것. 노력하되 모든 부족함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그 빈틈 속에서 우연한 무엇인가가 나타날 수 있다.
자신의 우연성을 남긴다는 것.
책의 표현 중 특히 흥미로운 것은 ‘자신만의 고유한 우연성을 남긴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흔히 자신다움을 명확한 정체성이나 일관된 취향에서 찾는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것을 좋아한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일한다.”
그런데 자신다움에는 그렇게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신체성처럼 나도 모르게 반복하는 행동이 있고, 우연히 만난 사람이나 책, 장소 때문에 생긴 취향도 있다. 처음부터 계획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나다움’은 완벽하게 설계된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우연이 쌓인 흔적인지도 모른다.
사진에서도 우연은 중요하다.
사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좋은 사진을 찍겠다고 완벽하게 계획할 수는 없다. 어느 시간에 어느 장소로 가고 어떤 렌즈를 사용할지는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 빛이 어떻게 들어올지, 누가 지나갈지, 어떤 표정을 마주칠지,
내가 왜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추게 될지는 모두 계획할 수 없다.
사진가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나타난 것을 알아볼 준비를 하는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센스 있는 사진은 모든 것이 계획된 사진이라기보다,
계획 속으로 들어온 우연을 놓치지 않은 사진
이라고 표현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리듬과 우연성. 앞선 글에서 리듬에 대해 생각했다. 반복이 있어야 예측이 생기고, 예측이 있어야 어긋남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우연성도 완전히 무질서한 상태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어느 정도의 반복과 리듬이 있을 때 그 반복에서 벗어난 것이 눈에 들어온다. 반복 → 예측 → 어긋남 → 발견. 자기 리듬이 있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감각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리듬을 너무 완벽하게 유지하려고 할 때다. 어긋남이 나타날 때마다 원래대로 되돌린다면 우연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 리듬을 가진다는 것은 우연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연을 발견할 수 있는 기준을 갖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남겨둘 것인가.
결국 센스에 대한 생각은 다시 ‘정도’의 문제로 돌아온다. 모든 부족함을 그대로 두는 것도 아니다. 모든 부족함을 채우는 것도 아니다. 모든 우연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모든 우연을 제거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채울 것인가. 무엇을 남겨둘 것인가. 어떤 어긋남을 수정할 것인가. 어떤 어긋남을 조금 더 바라볼 것인가. 를 감각하는 것이다.앞서 센스를 ‘어긋남 속에서도 중요한 무엇인가를 포착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리듬을 읽으면서는 ‘자기 리듬을 가지면서도 그 리듬을 깨뜨리는 세계의 신호를 감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우연성을 생각하면서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센스란 모든 것을 계획대로 완성하는 능력이 아니라, 계획 밖에서 찾아온 우연이 무엇을 가져왔는지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부족함을 모두 채우지 않는 것. 어긋남을 모두 수정하지 않는 것.
삶의 한쪽에 조금의 빈 공간을 남겨두는 것. 그곳으로 들어온 예상 밖의 것을 알아보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자신만의 스타일도, 새로운 생각도, 삶의 중요한 변곡점도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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