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의 철학』을 읽으며 센스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처음에는 센스를 감각이라고 생각했다. 이후에는 재현에서 벗어난 작은 어긋남 속에서 중요한 무엇인가를 포착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했고, 리듬에 관한 부분을 읽으면서는 반복과 예측, 그리고 예측오차 사이에서 적절하게 흔들리는 것이 센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연성에 관한 부분에서는 모든 부족함을 채우고 모든 어긋남을 수정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즐거움과 향락, 그리고 생명의 자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즐거움의 본질은 그저 안심하고 안정된 상태가 아니다. 즐겁다는 것은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문제’라는 표현이 이상하게 들렸다. 우리는 보통 문제가 없는 상태를 좋은 상태라고 생각한다.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고, 걱정할 것이 없으며, 아무런 불편도 없는 상태를 원한다. 하지만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그것을 계속 즐겁다고 할 수 있을까. 리듬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다시 떠올렸다.
반복 → 예측 → 예측오차 → 다시 예측
완전히 똑같은 반복만 계속된다면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변화가 없다. 다음 박자가 조금 늦어지거나 예상하지 못한 음이 들어올 때 리듬이 살아난다. 즐거움도 비슷한 것 같다.
안정 → 작은 어긋남 → 긴장 → 반응 → 다시 안정
어쩌면 즐거움은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작은 문제가 계속 생겨나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게임의 결과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면 재미가 없다. 여행도 모든 순간을 미리 알고 있다면 설렘이 줄어든다. 사진을 찍으러 나갔을 때도 예상했던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 생각하지 못했던 빛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더 즐거울 때가 있다.
우연성이 들어오는 순간이다. 즐거움과 불안 사이에는 ‘정도’가 있다. 그렇다면 어긋남이 클수록 더 즐거운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예측에서 아주 조금 벗어나면 변주가 되고 즐거움이 될 수 있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면 불안과 공포가 될 수도 있다. 내 나름대로 연결하면 이렇다.
예측과 일치 → 안정
작은 어긋남 → 변주와 즐거움
의미 있는 어긋남 → 발견
기존 리듬을 바꾸는 어긋남 → 사건
감당하기 어려운 어긋남 → 불안
결국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정도’다. 센스는 어긋남이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어긋남을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지를 감각하는 것과 관계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왜 고통스러운 것까지 반복할까
여기에서 책의 이야기는 조금 더 낯선 곳으로 간다. 생물이라면 기본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고 할 것 같다. 그런데 인간의 행동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때로는 불편하고 힘든 것을 알면서도 반복한다. 조금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 그 결과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다시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책에 등장하는 향락과 죽음 충동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서 죽음 충동을 문자 그대로 죽음을 욕망하기 보다는 생물로서 안정과 자기 보존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반복과 이탈의 힘으로 이해 했다. 쾌락과 향락도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쾌락이 불편함을 줄이고 편안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향락에는 오히려 불편함과 고통이 섞여 있다. 그런데도 계속 끌린다.
“오늘은 괜찮아”라는 말
일상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힘든 하루를 보낸 뒤 평소보다 많이 먹거나,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거나, 술을 평소보다 많이 마시는 경우가 있다. 그 순간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오늘 정도는 괜찮아.” 생각해보면 이 말은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평소 자신이 지키던 규칙을 잠시 해제하는 허가처럼 작동할 수 있다. 평소에는 절제해야 한다. 아껴야 한다. 적당히 해야 한다. 라는 자기 리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괜찮아”라고 말하는 순간 그 리듬에서 잠시 벗어난다. 그리고 그 일탈 자체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과식은 불편함을 남기고, 불필요한 소비는 후회를 남기며, 과음은 다음 날의 힘겨움을 남길 수 있다. 그러면 이상한 순환이 만들어진다. 부정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부정성으로 바뀌었고, 그 사이에 강한 쾌감이 들어간 것이다. 리듬을 깨는 행동이 또 다른 리듬이 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런 행동이 반복될 때다. 처음에는 일상적인 리듬에서 잠시 벗어나는 일탈이었지만 반복되면 그 일탈 자체가 하나의 패턴이 된다.
리듬을 깨기 위해 했던 행동이 어느 순간 또 다른 리듬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향락이라는 개념이 조금 이해된다. 평소의 리듬을 벗어나는 강한 자극에서 쾌감을 얻고, 그 자극을 반복하면서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는 것. 그 강도가 자신을 조절하던 기존의 리듬을 넘어설 때 자기 파괴적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욕망이나 충동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느 지점에서 내 리듬을 잃기 시작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한기자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왜 안정으로 돌아가는데 만족하지 않고 일부러 리듬을 깨뜨리려 할까. 단순히 자극을 좋아해서 일까. 아니면 반복된 상태와 다른 방향으로 움질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생명에게 중요한 것은 아닐까
당구공에는 센스가 필요하지 않다.
책에서 물리와 생명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를 만났다. 당구공 두 개가 부딪친다고 생각해본다. 공의 속도와 방향, 충돌 각도와 마찰 같은 조건이 정해져 있다면 결과도 물리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 같은 조건인데 공이 그날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간다면 당구라는 게임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리는 그렇게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생명은 이상하다. 생명 역시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물리 법칙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생명의 행동은 당구공처럼 하나의 결과로만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A를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B를 선택한다. 심지어 같은 사람도 어제와 오늘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자극 A → 반응 B 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극 A → 여러 가능성 → 선택 → 결과 가 가능해진다.
물론 인간의 행동 역시 신체적 조건, 환경, 경험 등 수많은 원인의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를 물리 법칙에서 벗어나는 자유라고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게 흥미로운 것은 생명에는 과거의 반복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생명의 자유는 어긋날 수 있는 자유인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처음 센스에 대해 생각했던 ‘어긋남’이 다시 돌아온다. 당구공에게 어긋남은 오차다. 하지만 생명에게 어긋남은 반드시 오류만은 아닐 수 있다. 매일 같은 길을 걷다가 어느 날 다른 길로 갈 수 있다. 오랫동안 해왔던 방법 대신 다른 방법을 시도할 수도 있다. 늘 지나치던 풍경 앞에서 어느 날 갑자기 멈춰 카메라를 들 수도 있다. 그 작은 어긋남에서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반복 → 예측 → 어긋남 → 선택 → 새로운 리듬
이렇게 보면 생명의 자유는 아무런 규칙도 없는 무질서한 자유가 아니라 자신의 리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그 리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우연성도 의미를 갖는다. 우연한 만남이나 사건이 일어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받아들여 이전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우연은 내 삶의 일부가 된다. 결국 다시 센스로 돌아온다. 자신의 리듬을 가지면서도 때때로 그 리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어쪄면 그것이 생명에게 주어진 작은 자유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양면성이 있다. 어긋남은 즐거움과 발견을 만들지만 지나치면 불안이 될 수 있다. 일탈은 해방감을 주지만 반복되면 또 다른 리듬이 되어 나를 지배할 수도 있다. 안정만 추구하면 삶은 경직될 수 있지만 강한 자극만 추구하면 자신의 리듬 자체를 잃을 수도 있다. 결국 센스는 다시 ‘정도’의 문제가 된다.
언제 반복할 것인가. 언제 벗어날 것인가. 어떤 어긋남을 즐길 것인가. 어떤 충동에서는 멈출 것인가. 그리고 어떤 우연 앞에서는 지금까지의 나와 다른 선택을 해볼 것인가. 당구공에는 이런 고민이 필요 없다. 하지만 생명은 다르다. 어쩌면 센스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당구공처럼 정해진 궤도만을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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