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상상,  2018년 12월 27일 

 

 

 

 

 

 

 

 

 

 

 

 

 

 

 

 


1.  생체상품으로 노동력의 특수성 
상품은 스스로 시장에  갈 수 없고 스스로 자신을 교환할 수도 없다.  우리는 상품의 보호자 즉 상품소유자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상품을 소유 한다는 것은 전제적 지배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는 상품을  사물화 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마음대로 처분해도 좋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노동력은 '몸에 대한 사용권'을 판 것이지 '몸에 대한 소유권'을 넘긴것은 아니다. 인간 자체를 매매 대상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노예제 사회로 퇴행하는 것이다. 생체상품은 인간 생체를 벗어나는 순간 파괴되므로 노동력과 이를 소유한 인간은 물리적으로 분리 되지 않는다. 노동력이 생체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생체 사용권을 임대하듯 넘겨야 한다.  

자본가는 노동력에 대한 처분권을 얻었으므로 최대한 가치를 생산하도로 능력을 쥐어짤 것이다. 노동력은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가변자본으로 작동한다. 농동력을 주체와 능력, 주체와 활동 등으로 개념적으로 정교하게 분리해도 노동자는 노동행위 속에서 속사을 입을 수 밖에 없다. 노동시간 연장, 노동강도 강화라는 생체에 대한 폭력에 노동자는 고분고분할 수가 없다. 자본가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생체를 유순하고 유능한 노동신체로 만들기 위해 끔찍한 폭력을 행사한다. 

2.  상품교환이 전제하는 인간 관계

상품을 교환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타인이다.  이에 반해 공동체 구성원은 애초에 한몸을 이루고 있으니 서로를 타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퇴니스에 따르면 공동체 구성원들은 우리 몸에 팔다리처럼 내적 규정에 의해 통합되어 있다. 반면 사회는 개별 구성원의 선택의지에 따라 외적 규정에 의해 통합되어 있다. 이를 '비동료간 외적 유대'로 표현했다. 인간의 교환 성향은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약식의 산물로 역사적인 것이다. 

상품소유자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사용가치를 지닌 다른 상품과 교환하게 될때 자기 상품을 넘겨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교환은 개인적 과정이다. 또한 상품은 교환을 통하지 않고 가치를 실현할 수 없으므로 상품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승인을 필요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적인 과정이다. 교환의 일반적 등가물로서 화폐가 출현한다. 자신의 상품이야말로 다른 모든 상품들에 대한 일반적 등가물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개인이나 한두사람이 합의해서 통용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점에서 등가물의 출현은 '사회적 행동'의 결과 물이다. 화폐의 상징하는 가치의 통일성하에서 각각의 상품은 저마다의 가치로 개별화할 수 있다.  

상품교환이 일반화 되고 화폐가 일반적 등가물로 기능하는 곳에서는 기존의 공동체를 해체하면서 자신의 코뮨 즉 화폐공동체(상품소유자의 공동체)를 구성한다.  사실 화페는 공동체 내에서가 아니라 다른 공동체들과 만나는 소수의 지점들에서 나타난다.  다른 공동체와 끊임 없이 접촉하는 유목민족은 화폐형태를 가장 먼저 발달 시켰다. 일단 물건들이 공동체 외부에서 상품들로서 교환되기 시작하면, 그 물건들은 내부에서도 상품이 되기 시작한다.  교환이 끊임없이 반복 되어 공동체의 생산물 일부가 의도적으로 교환을 목적으로 생산 되면 노동 생산물은  상품으로 전환된다. 

공동체 내부에서 상품거래와 물품 거래는 엄격히 규제 되었지만 식민화와 공동체의 몰락이 상품과 화폐 유통을 가능하게 했다. 상품을 받아 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사물하나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관계-하나의 세계가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공동체화폐나 지역 통화 운동이라는 것도 있다. 이는 공동체적 인간관계의 회복과 생성을 목표로 한다.  공동체화폐는 공동체적 관계를 강화한다.  공동체를 소통시키는 코뮨적 화폐가 된다. 공동체 화페가 삶의 일부분, 어쩌면 아주 작은 부분만 해결해주지만 이 부분만큼은 비자본주의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

3. 자본에서 사회적이라는 말의 의미
사회적 이라는 말은 한무리의 공통규칙들을 공유하지 않는 공동체들 사이의 교환이 지니는 고유한 특징을 가리킨다. 시장에서 한 상품소유자가 다른 상품 소유자를 만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각자는 저마다 사정과 저마다의 규칙에 따라 물건을 만들어 왔지만, 개인들은 서로의 사정을 알지 못한 채 행동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결절된다는 것은 공통의 규칙, 미리 정해진 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개인으로서는 알수도 없고 제어할 수도 없다. 이런 사회적 행동을 통해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자본주의적 위기(공황)이 나타난다. 

4. 화폐의 기능
화폐가 금의 형태로 존재하느냐, 종이 형태로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 화폐의 '물질적 현존'으로 화폐를 소재의 측면에서 보는 거다. 반면 화폐가 어떤 기능으로 존재하는 지,  즉  가치척도로 존재하느냐, 유통수단으로 존재하느냐를 구별하는 것이 '기능적 현존' 이다.  유통수단으로 화폐는 서로 모르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를 일시적으로 매개하지만 어음과 같은 지불 수단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믿을 만한 관계가 이미 수립되었음을 전제한다. 
화폐는 상품유통과 무관하게 지불수단으로서 국각에 의해 만들어 졌고, 유통에 투입되고 사용되면서 가치척도가 된것이다. 확대된 가치형태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경제의 바깥에서 국가에 의해 만들어져 경제적 교환 내부로 끌어들어진 것이다.  근대의 화폐들이 온갖 목적들에 사용될 수 있게 된 것은 시장에서의 교환이 다른 유통방식들을 다 대체해버렸고 우리의 생존과 욕구충족에 필요한 재화와 용역 모두를 시장에서만 구할 수 있게 된 상황과 관련된다.  모든 것이 시장에 상품으로 나와 있다는 조건에서 돈을 가졌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5. 가치척도로서 화폐의 기능
화폐가 가치척도인 한에서 화폐는 일단 가치를 지닌 사물, 즉 상품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화폐상품이어야 한다.  모든 상품들엔는 인간의 추상노동이 들어 있다. 화폐 덕분에 상품들을 같은 단위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공통된 단위로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상품이 화폐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가치를 가진 것만이 가치를 재는 데 이용할 수 있다. 가치척도인 한에서 화페가 상품인 이유가 이것이다. 

상품들의 가치를 화폐로 표현할 때 우리는 그것을 '가격'이라고 부른다. 가격이란 화폐상품으로 표현된 해당 상품의 가치이다. 가격은 해당 상품의 가치가 표현된 것이지만 가치 자체는 아니다. 가치를 잴 때 실제 금이 필요하지 않는데  "머릿속에 있는 금", "상상적이고 관념적인 금"으로 충분하다.  상상적일 뿐인 화폐가 가치척도의 기능을 수행한다 할지라도 가격은 전적으로 실제 화폐재료에 달려있다. 

가격이란 해당 상품과 화폐상품의 교환비율이다. 교환은 가치에 따라 이루어 졌지만 교환 비율은 다를 수 있다. 각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은 그대로이지만 둘의 교환 비율이 달라진다. 시장가격이 변한거다. 가격의 변동과 가치의 변동은 이처럼 다를 수 있다.이러한 이유는 첫째 상품의 가치가 직접 나타나지 못하고 화폐상품으로만 나타난다는 사정이 있다. 가치에서의 가격으로의 질적 변신이다. 둘째는 시장의 수요 공급이 가격이 영향을 미친다. 장기적으로는 어떤  균형점을 갖지만 일시적으로 수요 공급의 사정에 따라 가격이 변화한다. 단순가격에서 시장가격으로 양적 변화가 일어난 거다. 양적 전형이다. 경쟁의 심화나 똑같은 양의 자본을 투자해도 원료나 기계에 투자한 부분과 노동력에 투자한 부분의 비율이 전체 평균에서 얼마나 벗어나는냐에  따라 상품의 가격과 가치 사이에 괴리가 나타난다.  

가격이 가치의 반영 비율에 상관없이 가치는 가격에 논리적으로 선행하한다.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시간과 내재적 관계를 맺지만 가격은 해당 상품과 교환되는 화폐상 품과의 외재적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가치척도로서 화폐를, 가치 없는 것 즉 상품도 아닌 것의 가치를 재는 데 남용하는 일이 생긴다.  이를테면 양심이나 명예에도 가격이 붙는다. 양심이나 명예나 인격이 가치를 가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이가격은 상상적인 거다. 마르크스는 이를 수학의 허수에 비유했다. 사람을 볼 때도, 땅을 볼 때도, 심지어 행성을 볼 때도 '저거 얼마짜리일까' 하는 생각을 올리는 것. 모든 사물들에 가격표를 붙이려 들고, 가치눈금이 새겨진 눈으로 사물들과 세상을 보는 것이다. 바로 자본주의다.  

상품에 가격을 부여하려면 상상적인 금을 상품에 등치시키면 되지만, 상품이 그 소유자에게 일반적 등가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실제 금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가격을 책정할때는 상상적인 금으로 되지만 해상 상품을 교환하고자 한다면 실제 금을 내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6.  유통수단으로서 화폐
마르크스는 상품교환이 이루어지는 유통을 '사회적 물질대사' 라고 불렀다. 유통이란 상품의 흐름으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공급하는 것이다. 교환이란 내가 원하는 물건을 가진 사람이 우연히 내가 가진 물건을 원할때 가능하다.  욕구의 우연적 이중일치이다. 

유통에서 상품과 화폐가 반복해서 교환된다. 내가 생산한 아마포는 사회 전체가 생산한 아마포의 한조각인 것처럼 취급된다. 내가 아마포를 더 생산한 게 아니어도 사회 전체가 과잉생산했다면 나도 과잉생산한 것으로 간주된다. 생산물을 "단 한개의 거래 품목"으로 여긴다. 거대한 아마포 한장을 모두가 생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여러사람이 여러 조건에서 아마포를 생산했지만 모든 아마포들은 하나의 아마포로서 "사회적으로 규정된 동질의 인간노동량이 대상화된 것일 뿐"이다. 

상품은 개인이 생산하지만 그 가치는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아마포 생산업자는 아마 재배자 외투 제작자와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은 생산자 개인으로서는 알수가 없다. 고립된 개인들을 매개하는 것은 상품과 화폐이다. 서로 독립해 있는데 한편으로 상품과 화폐를 매개로 묶여 있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는 "상호 간의 독립성"과 "생산물을 통한 전면적 상호 의존성"이 붙어 있는 사회이다. 

상품 하나가 유통에서 나간다 해도 그것이 관여했던 유통은 계속이어진다. 상품의 자리를 화폐가 차지하고 그 화폐의 자리를 다른 상품이 차지한다. 상품의 유통은 자본주의사회의 기본적 물질대사이자 가치대사이다. 자기 물건은 팔면서 구매에 나서지 않는 상황이 일어난다.  마르크스는 여기서 자본주의사회의 커다란 위기, 즉 공황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판매와 구매라는 "두 과정의 외적 자립화가 일정한 점까지 진행되면 그 내적 통일은 공황이라는 형태를 통해 폭력적으로 관철된다." 상품유통의 형식을 취하는 한에서 이런 상업공황의 가능성은 항존한다. 

금은의 새로운 생산지 발견에 따라 상품가격이 오른 것은 유통수단으로 기능하는 금은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그릇된 결론에 도달했다.  상품과 교환되는 금량의 급격한 증대는 금의 가치 저하와 관련이 있다.  이것은 유통수단으로서 화폐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척도로서 화폐와 관계된 문제이다.  이것은 유통수단으로 화폐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척도로 사용되는 금의 급격한 가치변동이 상품과 금의 교환 비융을 변동시켰고, 당연히 유통에 필요한 통화의 양도 증대시킨 것이다. 유통수단인 한에서의 지페는 그것이 대신하는 금량을 대체하는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유통수단의 양은 상품들의 양과 가격, 유통수단의 회전속도에 달렸고 그것을 따르면 된다. 상품들의 양과 가격, 화폐의 회전속도는 유통 자체에 달린 것이 아니다. 유통은 그저 현살일 뿐이다. 

7.  화폐로서 화폐(축장화폐)
가치 척도로서의 화폐나 유통수단으로서 화폐에서는 화폐가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었다. 거래의 최종목적이 상품이 아니라 화폐인 경우이다. 부의 물질적 대표로서 화폐이다다. 요컨대 화폐가 치부욕의 대상이자 원천인 것이다. 화폐가 욕구의 대상이 된다. 즉 축장화폐이다. 축장이란 화폐를 재물로서 모으는 것이다. 화폐가 재물로서 의미를 갖는 경우이다. 케인스는 이를 유동성 선호라고 불렀다. 불확실성을 대처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을 한다.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는 절대적인 사회적 부의 형태이다. 화폐를 사물들의 힘줄이라고 불렀다.  축장화폐가 보여주는 바는 사회적 힘을 사적인 힘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부라고 하는 사회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사물'의 형태로 존재하기 대문에 개인은 화폐를 축적함으로써, 사회적 관계에서 나오는 힘을 사유재산화하는 것이다. 축장화폐는 구체적 상품, 구체적인 물건에 대한 욕망과는 다른 욕망을 보여준다.  치부욕이다. 물욕은 한계가 있지만 치부욕은 한계가 없다. 세계 제일의 부자도 결핍감을 느끼는 것이 치부욕이다. 

화폐를 퇴장시키려는 충동이 너무커서 정부의 통화 정책이 전혀 먹이지 않을때 정부가 직접 투자자로 나서거나 중앙은행을 통해 통화량을 더 크게 늘릴 수 있다. 상품 유통이 발전하면서 상품을 건네는 것과 값을 치르는 것 사이에 시간적 괴리가 자주 나타난다. 관념적 약속의 현실적 이행시기가 온다.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는 가치척도로서 관념적으로 기능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교환가치를 지닌 일반적 상품으로서도 기능한다. 이 모순 때문에 화폐 공황이 발생한다 

상품유통이 확대되면 그에 따라 지불도 연쇄되어 있다. 한 채권자가 다른 사람에게는 채무자인 경우가 많다. 지불이 연쇄되어 있어,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사회 전체로 퍼져간다. 화폐공황이 일어난다. 이런 지불 수단의 문제 때문에 화폐를 준비금으로 저장해 둘 필요가 생긴다. 자산을 저장하는 축장 기능만이 아니라 지불을 위한 준비금을 확보해 두는 것이다. 상품의 생산 판매와는 별개로 지불문제 자체에서 파생한 공황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 발생한 금융위기이다. 이는 화폐자본이 그 운동의 중심이며 따라서 은행, 증권거래소, 금융계가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화폐의 기능적 현존에 따라 발발할 수 있는 공황의 현태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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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고병권 (지은이천년의상상 2018-08-27

 

 

 

 

 

 

 

 

 

 

 

1 『자본』이 상품에서 시작하는 이유 

『자본』은 어디서 시작하는가  마르크스는 상품 출발점으로 삼았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경제적 세포로서 상품 지목한다.  그는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또는 상품의 가치형태라고 표현했다.  상품에서 출발하는 이유를  밝힌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방대 상품더미 나타나는데 개개의 상품은 부의 기본형태다. 그러므로 우리 연구는 상품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부는  가치의미합니다.  예컨데 양말 1000켤레를 생산하던 공장에서 혁신을 통해 양말 2000켤레를 생산할  있게된다면 재화의 관점에서 부가 두배로 늘었다고   있지만 실제 가치의 총량은 그대로다. 양말  켤레에가치량만 반으로  것이다. 교환되고 증식되고 약탈되고 축적되고 확대되는 것을 바로 가치 가리킨다. 

 

2 상품에 깃든 유령 

 상품이란 사회적으로  쓸모를 인정받는 물건이며 시장에서 동등한 교환이 이뤄지는 것을 전제한다. 이러한 상품은 가치 가진  노동 생산물이다.  스미스는 가치개념에 두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하였다. 유용성을 나타내는 사용가치와 다른 물건에 대한 구매력을 나타내는 교환가치이다. 19세기 경제학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은  교환가치이다.  정확히 말하면 교환가치는 가치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형태,  가치의현상 형태이다. 따라서 상품은 사용가치임과 동시에 가치인 것이다.  상이한 물건들이 일정 비율로 교환될 있다는  우리가 보기에는 별일도 아닌데 마르크스는 너무도 신기해 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 위대함을 마르크스가 흔하디흔한 상품의 아주 기괴한 성질에 놀랐다는  있다. “ 사물들의 물리적 속성과 상관없이 등가관계가 맺어지는 부분이다.  관계 가치 비밀이 있다고  거다.  상품에서 감각으로 포착할  있는 속성들을 제거 했을  그것들에 남겨진 것은 동일한 유령적 대상성일 뿐이다”.  

 

3 추상노동의 인간학  

스미스와 리카도는 상품가치의 근거가 노동이라고 하였다. 노동가치설은 마르크스의 발명품이 아니다.  마르스크의 천재성은 당대의 노동가치설을 변형시킨 , 새롭게 해석한 것에 있다. 노동의 이중성이다. 상품에체현된 노동은 이중적이다.  구체적 유용성을 가진 다시 말해 사용가치를 가진 현물을 생산하는 구체적 유용노동이다.  다른 하나는 상이한 상품들의 교환가치(가치) 생산하는 추상노동이다. 

추상노동은 구체적 유용노동의 닮은 점을 추려낸 개념이 아니다.  또한 구체 노동에 대한 단순한 일반화도 아니다. 구체노동과 추상노동의 구분의 상품의 생산을 어느 측면에서  것인가에 달려 있다.  사용가치의 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본것이 구체적 유용노동이라면, 교환가치(가치) 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본것이 추상노동이다.  교환가치가 나타내는 공통적인   다각형과 삼각형의 관계로 설명하였다.  모든 다각형은 삼각형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공통성은 결과물 사이의 유사성이 아니라 원인의 공통성이다. 모두 인간의 노동력을 사용한 것이라는 공통성이 추상노동이다. 추상노동이 전제하는 것은 여러곳에서 일하는 상품의생산자들, 노동자들을 동일한 인간으로 가정하고 그들의 노동을 동일한 인간의 능력처럼 동등한 능력의 발휘로 본다. 추상노동은 근대의 인간학을 근거로 한다.  추상 노동은 평범한 인간이 자기 육체 안에 평균적으로 지니고 있는 단순한 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다. 단순한 평균적 노동이다.  통계학이 생겨나려면 인간을 평범, 평균, 단순이라는 말로 묘사할  있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추상노동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형태의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갖는 독특한 성격이다.  가치표현이 비밀,  모든 노동의 동등성과 등가성은….. 인간적 동등성 개념이 대중의 판단에서 확신으로 자리 잡을때 비로소 해독될  있다.  상품이 가치를 규정하는 노동의 양이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추상노동의 양은 평범한 인간이 평균적으로 지닌 능력의 지출이다. 다시말하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이란 주어진 사회의 정상적 생산조건과  사회에서 지배적인 노동숙련도와 노동강도에서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드는 노동 시간이다. 

 

4 상품교환 안에 화폐가 있다-화폐형태의 발생 기원

 상품의  교환,  상품들의 가치관계이지 화폐가 아니다.  상품이 가치를 갖는 것은 모든 상품들은 인간노동이라는 동일한 사회적 실체 표현이기 때문이다. 상품속에 숨은 가치를 알려면 상품 바깥에서 맺어진관계   상품이 다른 상품과 맺는 관계를 알아야 한다.   상품이 다른 상품을 통해 가치를 표현한다는, 바꾸어 말해  상품은  다른 사람의 가치를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상품의 가치를 나타내는 화폐가존재한다는 것을 예감할  있다. 

x량의 상품 A’ y량이 상품 B’ 교환 xA=yB 상이한  상품의 교환을 나타난다.  상품 A 상대적  가치형태 부르고 상품 B  상품 A 등가형태라고 부른다. 상품 A 자신의 가치를 자기 바깥에  있는것으로서 마주본다는 거다. 상품 B 형태로 말이다. 이게 마르크스가 말하는 대상성이다. 가치의 거울이다.  화폐란 일반화된 등가형태 불과하다. 무게를 달기 위해 저울추가 무게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듯 화폐가 가치를 부여하는  아니다.

 

흥미롭게도 일반적 가치형태는 근대적 주권형태와 닮았다.  상품과 시민(국민), 가치와 주권, 가치의 표상으로서 일반적 등가물과 주권의 표상으로서 군주(정부) 모두 동형적이다. ‘상품-가치-일반적 등가물 삼각형과 시민-주권-군주(정부)’ 삼각형이 동형적이라는 말이다.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던 에서 자연상태의인간들이 영구적 전쟁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자연권을  욥기 나오는 짐승 리바이던 양도한다.  이짐승에 대한 복종의 맹세속에 개인들은 동등한 계약을 맺고 자연상태에서  국가상태 이행한다.  홉스가  공포 통해서라도 도달하려 했던 것은 평화라기보다  질서이고 통일이다. 그는 다중 하나로 표상될  있을때 국가가 설립된다.  모두를 하나로,  한사람으로 묶어   있을때,  신체를 국가라고 부른다. 이것이 리바이던의 탄생이다.  

 

 상품이 일반적 등가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표현했다는 말과 일반적 등가물로 가치가 표현되는  보니상품이라는 . 이진경은 여기서 표현적관계가 재현적관계로 대체된다고 지적했다.  이관계가 성립하면  상품의 유일한 관심은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에 있는 등가물의 양으로  가치를 재현할 있음을 인정받느냐 하는 문제가 된다.  반대로 척도 행세를 하는 일반적 등가물은 자신이 상품의 가치를정확히 재현한다는 믿음을 유포한다.  이는 일반적  등가물로 표시될  있어야 해당 상품이 다른 상품과도교환될  있는 상품임을 인정받는다.  인정을 받아 상품이 된다는 것은 순응을 강요받는 , 복종해야 하는,  폭력을 경험하는 것이다.  상품의 가치의 등가성을 논하기 이전에, 상품화에는 권력이 개입한다. 상품이 된다는 것은 복종의 세계, 예속의 세계로 들어 가는 것이다. 노동자는 순응자, 예속자가 됨으로써만 노동력을 상품화할  있다. 노동자는 자본의 주권을 승인함으로써 상품의 자유로운 판매자가 되는 것이다.  

 

상품의 가치를 금으로 나타낸다고 가정했을때   생산성에 변동이 생겨 금을 생산하는  사회적으로필요한 노동시간 달라진다면 상품들의 가치는 불변인데도 금과의 교환비율은 달라   있다.  가치의 변동이 없는데고 가격이 변하는 것이다. 반대로 실제 상품의 가치는 변했지만  변화가 화폐,  금으로 표현되지 않을  있다.  가치가 변했는데 가격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가격이 가치를 표현하는 것임에도 가격변동은 가치 변동을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런 괴리 현상은 상품의 가치형태에 내재된 성질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작동 방식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5  물신주의-춤추는 책상

가치를 표현하는 사물이 되는 순간 책상은 스스로 춤을 춘다. 가치라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 관계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우리는 책상의 현란한 춤에 빠져든다. 중금주의자들은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금은  자체로 가치 지닌 것이어서 금을 쌓는 것이 부를 쌓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물건들은 금을 확보하는 한에서만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근대 경제학자들은 이런 중금주의자들의 미신적 태도를 비웃었다. 원시적 물신주의라는 거다.  마르크스는 그런 경제 학자들이 자본 마치 황금알을 낳는 암탉처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물신적 태도라고 한다. ‘자본 실상은 자본관계이다. 그런데 자본을  자체로 신비한 마력을 지닌 사물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신비한 성격이 명백히 형태 자체에서 온다라고 한다. ‘형태 주목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고전적 정치경제학의 근본결함  하나는 상품분석, 특히 상품가치 분석에서 가치형태 문제를 끄집어내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책상의 가치는 다른 상품의 모습을 하고 책상과 마주한다.  이른바 가치대상성이다. 감각할  없는 가치가 감각적 대상의 형태로 마주  있다. 가치가 어떤 사물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해당 상품을 생산한 인간들의 사회적 필요노동의 관계인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 사물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 나타나게 된다. 어떤 물건이 빨갛다면  그것은 해당 사물에서 나온빛과 우리 시신경이 맺는 관계의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빨간색을  사물 자체의특성으로 간주해버린다. 관계의 성격을 사물의 성격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관계를 사물로 착각하는, 인간들의 사회적 관계를 사물들의 관계로 착각하는  물신주의 이다. 일반적으로 물신주의란 특정한 사물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숭배를 가리킨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하는 상품 물신주의는 이러한 통념적 물신주의와는 많이 다르다. 이점에서 상품 물신주의를  상품의 소유나 사용에서 나타난 애착 같은 것으로 봐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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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본을 읽자  

고병권 (지은이)천년의상상  2018-08-27

 

 

 

 

 

 

 

 

 

 

마르크스의 <자본> 나를 긴장 시키며 동시에 매혹한다. 이책을 읽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에게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무엇인가 공부란 무엇인가 ?  삶의 추동하는 의지는 무엇인지 그러면 나는 부끄러울  같다. 니체는 인식의 매력이 인식의 길에 놓인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부끄러움 자체가 자기 극복의 조짐이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예전의 자기 자신과 거리가 생긴 거다. 그래서 부끄러움에는 고통과 기쁨이 함께 한다. 부끄러운  모르고 저질렀던 일이 창피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뭔가 알게 되었다는 , 조금은 내가 성숙한  같다는 생각에서 오는 수줍은 기쁨도 있다.   기쁨 덕분에 사람들은 주저하고 망설이면서도 인식의 길을 걷는  아닐까 싶다. 주체변형의 위협과 매력이 공존하는 독서를 추동하는 <자본> 다시 읽기 이다.  

 

우리가 읽을 책의 제목은 <자본> 이다.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쓰던 말들의 무리에서  자본   단어를 뽑아 내었다.  자본은 자산, , 재력, , 가치 등과 함께 쓰였다.   화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구매하고자 하는 재화들이었습니다. 인간의 욕구와 필요를 만족시키는 실절적 재화들이었다.  17~ 18세기 경제학자들이 말한 진정한  재화들이 제공하는 효용이다. ‘화폐 효용을  재화를 매개하는 수단일 뿐이다.  19세기  가치개념이 분화 된다.  재화가 풍부한 것과 가치가 큰것은 다르다. 예컨데 양말 1000켤레를 생산하던 공장에서 혁신을 통해 양말 2000켤레를 생산할  있게 된다면 효용의 관점에서 부가 두배로 늘었다고   있지만 가치의 총량은 그래로다. 양말  켤레에 들어간 가치량만 반으로 준것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가치의 축적이 중요해졌다. 고전주의 시기(17~18세기) 경제학이 부의 과학이었다면, 근대(19세기) 경제학은 가치론이었다. 자본의 시대는 가치의 증식과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이다.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소비하는 시스템이 계속 돌아가는 이유는 가치의 끊임 없는 증식을 위해서다. 가치의 증식,   잉여가치에 있다. 마르크스가 증식하는 가치를 자본이라고 불렀다. 

 

<자본>  비판한 정치 경제학이란 무엇인가.  

루소에 따르면 정치경제 내지 정치경제학이란 국가 통치술로확장된 가정관리술 이라고  수있다.  사적인 것의 공적화 이다.  가정을 꾸려가는 기술이 국가통치술로 확장 되면서 생겨났다. 다시 말해  고대 그리스의 오이코스의 영역이 폴리스로 확정 되었음을 보여 준다.    오이코스는 사적영역으로 생명유지를 위해 필요한 생계의 영역이며  폴리스는 공론의 영역이자 자유의영역으로 엄격히 분리 되었다.  공적 영역에서 생계 문제가 정치의 주제가 아니었고 그렇게  수도 없었다. 근대에서  부분이 깨진 것이다.  에코노미라는 말은 오이코스  집이라는 말과 노모스  법이라는 말에서온것으로 본래는 가족전체의 공동 이익을 위해 집을 현명하고 정당하게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말의 의미가 커다란 가족, 국가의 통치로 까지 확장되었다. 두가지 의미를 구분하기 위해 후자를  일반경제 내지 정치 경제라고 부르고 전자를 특수경제 내지 가정 경제라고 부른다. 정치경제는  두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국민들에게 풍부한 소득이나 생활수단을 제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에 넉넉한 세입을 제공해 공공서비스를 충분히 공급할  있게 하는 거다.  

 

아렌트는 사적인 이해가 오이코스에 갇히지 않고 폴리스로 확대된 , 그래서 오이코스와 폴리스 모두가 변화한것 이것이 근대사회이다.  사회계약론은 사회가 사적 부르주아들의 이익 공동체에 다름 아님을 보여준다. 결합의 주체로서 개인, 결합의 형식으로서 계약,  결합의 목적으로 이익 이것이 사회계약론이 말하는 사회 이다. 가정경제와 정치경제가 구분되는 결정적 지점이 인구이다.  미셸 푸코는 인구가 부의 분석에 도입되어 경제적 성찰과 실천의 영역을 뒤흔드는 효과를 냈을때 비로서 정치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지식 영역이열리게 되었다고 한다. 즉  정치 경제학은 인구가 앎의 대상이 된것과 깊이 관련 된다. 

 

정치경제학이  전체 국민을 풍족하게 만드는 보편 과학인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국민의  만큼이나 국민의 가난이 늘어나고 있었다. 두개의 국민이 생겨났다. 마르크스 부의 증대와 빈곤의 증대가 나란히 나타난 현실을 지적하며 가장 부유한 사회 상태를 추구하는 국민경제학이 사회의 불행을 목적으로 하는  같다고 말한다. 모든 가치의 원천은 노동이라는 정치경제학의 주장과 대비 시킨다. 가치를 생산하는 자는  가난 한가 ? 그것도 가치를 많이 생산할 수록   가난해 지는가  

 

에티엔 발리바르에 따르면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이러한 '현실'로 '이론'을 비판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이론의 더 안쪽으로 중심 원리쪽으로 파도든다.  착취를 경제적 메커니즘(이를 테면 불평등한 분배) 결과(귀결)로 정의하는  아니라 반대로 경제적 형태들을 임노동 착취의 전제적 과정의 계기들과 효과들로 정의 한다. 착취는 매커니즘의 경과가 아니라 매커니즘의 전제라는 것이다. 만약 착취가 결과  생산된 가치를 분배하는 문제 였다면 우리는 재분배를 통해 이를 바로 잡을  있다.하지만 자본주의적 경제 형태가 작동하기 위해 착취가 전제되어 있다면 다시 말해 상품 생산과 가치 증식이 착취에 입각해서만 가능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불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법자체가 문제인 상황이다. 

 

과학에 대한 비판은 과학보다 멀리 간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이론 학문 과학으로의 비판이다.  과학의 탄생이 의미하는 바를 따져 들어간다.   과학의 전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검토하며, 이 학문을 통해 표현되는계급적 욕망과 의지를  문제 삼는다. 많은 사람이 <자본> 마르크스의 과학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자본>에는 과학 다른 차원으로 비판 존재하며 여기에 <자본> 위대함이 있다고 본다.   과학,  학문에 대한 비판 이란 그것의 한계, 그것의 불가능, 그것의 파산 장소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비판이 과학보다 멀리 가는 것임을 말해 준다. 과학이 이를  없는 , 과학이 멈추는 , 과학의 한계가 드러나는 곳까지 나아가는 것이 비판이라는 말이다. 

 

정치 경제학은  역사적 생산 양식으로서 자본주의에 한정된 과학이며, 특정한 입장에서 있는 과학이다.  역사성과 당파성을 갖는다.  <자본>에서 정치경제학적 사실들이 자본주의와 더불어 역사적으로 출현했음을 지적 한다. 개인, 상품, 가치, 인구 등등 정치 경제학이 전제하고 있는 사실들 모두가 역사적인 것이다. 자본 현재의 역사와 자본 형성의 역사를 구분해야 한다.  자본주의 논리가 자리잡는 과정은 결코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 온갖 사기와 협잡, 강요, 폭행이 끼어 들었다.  마르크스는 이를 피와 불의 문자로 기록된 연대기라고 했다.  자본의 현재 역사를 가지고 자본 형성의 역사를 도출할  없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가 보려고 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우리의 시각에는 의지, 욕망, 충동 같은  개입한다.  이데아론은 자격 없는 자들을 검열하고 추방하고자 했던 플라톤의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충동의 산물이라고   있다.  이데아론을 비판 한다는 것은 플라톤의 이런 의지와 욕망을 드러내는 것일  있다.  과학을 통해 호소하고 설득하려는  장악하려는 의지와 욕망을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  철저한 논리를 동원해 지배력을 획득하려는 의지와 욕망이 있다. 

 

비판 1. 정치경제학의 역사성

마르크스는 <자본> 초판 서문에서 '현미경'과  '하데스의 투구' 비유를 썼다. 현미경은 시야를 확장하고 투구는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현미경' 비유를 통해 겉모습만 대강 보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자들의 큰 문제 중 하나가 둔한 시선이라고 생각 했던 것 같다.  역사를 보려면 작은 차이에서 큰 차이를 알아볼 수 있는 역사적 눈이 필요하다.마르크스는 신체의 세포를 보는 데는 현미경이 필요하지만 경제형태를 보려면 추상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추상력은 지능을 의미하는  아니다.  천재성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성의 문제이다. 동질화된 가치 공간은역사적 생산물이다. 생산자들 사이에 동등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상이한 노동들이 동질적으로 보일 정도로단순노동이 통계적으로 일반화되어야 한다. 자본은 결코 초역사적 법칙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역사적 사회형태로서, 역사적 생산양식으로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비판한다. 

 

 

마르크스는 기관들이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느냐에 따라 동일한 현상도 전혀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는 다고생각 했다사회적 편제에 따라 동일한 인간도 다른 존재가 된다흑인은 흑인이다그러나 어떤 조건에서 그는 노예가 된다.  하나의 동일한 현상이라도  유기체들이 상이한 총체적 구조그것들의 개개 기관의 다양성기관이 기능하는 조건들의 차이 따위로 말미암아 전혀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자본>에서 정치경재학 비판은 정치경제학 나아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철저히 역사적으로 특수한 형태로서 고찰하고있으며 자본주의의 역사적 필연성이나 미래로의 연속성을 제거하고 오직 역사적 이행 속에서만 그것을 보고있다

 

비판 2 정치경제학의 당파성

 

'하데스의 투구'는 도깨비 감투처럼 자신을 볼 수 없게 한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잡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보지 않으려는 의지에 대한 비판이다.  보지 않으려는 것은 계급적 이해와 관련이 있다마르크스는 앎만이 아니라 앎을 둘러싸고 있는 의지, 앎에 투여된 욕망을 드러낸다.  정치경제학에 투여된 욕망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정치경제학을 지배하는 욕망은 마르크스가 가장 맹렬하고 가장 저열하며 가장 추악한 감정이라고 부른 사적 이익에 대한 추구 욕망이다. 

 

이론적 비판은 과학을  받치는 근거의 근거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그것의 정치적의미는 혁명이라고   있다. 1848 혁명에 대한 마르크스의 여러 글은 부르주아 독재를 폭로하고 있다. 어떤 제도나 법률이 거추장 스럽게 되자 마자 그것을 간단히 무시하는 권력이 출현한다. 여기서 독재는 제멋대로 불법을 저지르는 권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독재의 본질은 불법성이 아니라 합법성에 있다. 힘은 법을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일차적으로 법을 통해서 작동한다 한마디로 주권 권력이다. 독재는 법을 통해, 법칙을 통해,  과학을 통해 작동하기 때문에 정말로 꼼꼼하게 그리고 멀리까지 분석을 밀고 가야 한다. 

 

루이 알튀세르는 공산주의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파르티잔'이자 '아르티잔'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아르티잔  세공업자처럼 섬세하면서도 파르티잔  투사처럼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사물들의 관계를 섬세하게 짚어가면서  구도의 특성을 읽어 내는 , 앎을 따라가면서 앎의 의지를 읽어 내는 , 거기서 자기가 대결하는 것의 정체를 드러내고 투쟁하는  말이다. 노동자 계급의 편을드는 투사인 파르티잔은 최고의 물건을 만들어 내는 장인인 아르티잔이기도 했다.  마르크스의 편들기, 입장취하기는 노골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학에 미달하는 이데올로기적 선동이 아니라 과학보다 멀리 나아간혁명적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과학 이전에 입장의 차원, 당파성의 차원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는 뜻에서 그렇다. 

 

 마르크스는 <자본> 분책할 경우  책의  부분이 너무 어려워 노동자들이 독서를 아예 포기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노동자의 공부를 독려 한다.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가파를 오솔길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 만이 학문의 빛나는 꼭대기에 도달  수있다.”  마르크스는  <자본> 노동자들이 사용할 무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강 만든 무기를 제공할  없었다. 엄격한 논리를 구성하고 과학을 따진 이유이다.   

 

 당파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물을 특정한 조명, 특정한 퍼스펙티브로 보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견해에는 색조가 있다.  동일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데도 진술의 색채가 상반된다. 자본가 입장에서 묘사하는 사건의 색채와 노동자 입장에서 묘사하는 사건의 색채가 너무 다르다. 자본가가 묘사할 때는 그저 불운한 사건이 노동자가 묘사할때는 불의의 사건이 되고, 대중의 공분을  사건의 당사자가 슬픈 사연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어떤 입장에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동일한사물의 관계도 입장에 따라 다른 색깔을 갖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잉여 가치율과 착취도는 동일한 관계를가리키는 용어이지만  말이 주는 어감은 완전히 다르다.  자신이  있는 시간  역사를 무시하는  만큼이나 자신이 서있는 자리  입장을 무시하는 과학도 형이상학이다. 

 

<자본>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자보다  보았기 때문에 잉여가치 개념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잉여가치 개념이 화학에서 산소 발견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연소 플로지스톤 이라는 연소체가 빠져나가는 현상이라는 주이었다. 가상의 물질로  존재가 실험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프리스틀리와  셀례는 플로지스톤이 들어 있지 않은  확실한 기체를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셸레는 물체를 태우면  기체가공기중에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 냈다.  이들은 산소를 손에 쥔거다. 그런데도 정체를 몰랐다.  자신들이 물려받은 플로지스톤 가설에 매여 있었기 때문이다. 라부아지에는 연소란 플로지스톤이라는 신비한 물질이 달아나는 현상이 아니라 프리스틀리가 추출해낸 어떤 원소와 물체가 결합하는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어떤 렌즈, 어떤 조명, 어떤 시각, 어떤 틀에서 보느냐에 따라 우리는 자신이 쥐고 있는 것조차   없다는 것이다. 정치경제학자와 마르크스는 다르게 본거다. 다른 눈으로 본것이다.

 

우리는 <자본> 그동안 너무 투명하게 읽었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통상적인 조명 아래서, 전통적인 시각으로, 권위자의 지도에 따라 올바른 독해를 해온 것이다. 하지만 그런 독해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는 렌즈를 빌려 끼울 수는 있지만 투명한 렌즈를 끼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어떤 독해를 올바른 독해, 보편적 독해, 정통의 독해, 순수한 독해로 간주해왔을 뿐이다.  

 

<자본>에 적용된 '나자신의' 방법 

마르크스와 헤겔의 관계는 중요한 논쟁 주제이다. 마르크스는 분명이 변증법적 방법  자신의 방법이라고 불렀다. 저자는  <자본> 결코 헤겔적인 책이 아니며  <자본>에서 헤겔에 대한 비판을 느꼈다고 한다. 저자의 언급 내용을 옮긴다. 

 

o 서술방법과 연구방법은 다르다 - 첫째 -마르크스는 2독일어판 후기에서 변증법적 방법 두고 <자본> 사용한  자신의 방법이라고 했다. 이는 서술방법이라는 뜻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헤겔은 현실과정이  인간의 두뇌에 번역된  거꾸로 세웠다. 현실 과정을 따라 자신의 두뇌 속에 관념들의 체계를 구축했으면서도, 나중에 구축된 것이 먼저 존재했고 마치 그것에 따라 현실과정이 만들어진 것처럼 생각했다. 

o 아주 우연히 훑어 본것이 - 둘째 마르크스가 변증법을 채택하게된 사연이 흥미롭다.  프라일리그라트가 보내준 헤겔의 <논리학> 훑어보다가 마르크스는 서술방법을 떠올린 것이다. 아주우연히   마르크스의 글들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자본> 이르는 동안 헤겔식 서술 방법에서 계속 멀어진다. 

o 어떻게 가상이 실재 처럼 나타나는지 - 셋째, 마르크스와 헤겔의 관계를  기묘하게 만드는 것은 헤겔식방법이 강하게 채용된 부분이다. <자본>에서 <논리학> 일과 다의 변증법 부분을 차용하고 있는데 화폐물신주의이다. 헤겔의 변증법을 직접 차용해 서술한 과정은 진리의 인식 과정이 아니라 허위의 형성과정이다.  또한 자본은 상품과  화폐로 자기 모습을 바꾸어 가며 끊임없이 증식해 나간다.  자본 헤겔의 이념과같은 운동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허위라는 것이다. 자본의 운동은 자기 운동이 아니라 그렇게 보일 뿐이다.  허위와 가상 사기의 운동 우리눈에 비친 가상을 서술할때 마르크스는 헤겔을 찾는다. 

o 논리의 실패로서의 모순과 이율배반 - 넷째 모순과 역설에 대한 것이다.   표준 노동일의 길이’(하루 노동시간)  임금  권리  권리, 옮음  옮음, 둘다 노모스를 갖추었다. 이렇게 되면 이율배반이 생겨난다. 논리가 해결할  있는 영역이 아니다. 여기에는 힘이 재판관으로 들어온다.   하나의 주장이 상반된 옮음을동시에 의미할 때도 있다. 이것이 역설이다.  마르크스에게는 모순의 변증법 이상으로 역설의 변증법이 중요하다. 역설의 상화에서는 한쪽이 커지면 다른 쪽도 커니다. 생산력이 가장 발달했을때는 자본주의가 가장 강할때 이지만 또한 자본주의가 가장 위험할 때이다. 

 

추리소설 같은 <자본>, 탐정 마르크스 

마르크스의 자본은 추리 소설 같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완전범죄에 가까운 절대 내지 살인 사건을 파헤쳐 가는 탐정 같다.  추리소설은 대개 개인적 범죄만을 다룬다. 범인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구조적인 문제를 파고들지 않는다. 추리소설은 사회구조가 개인들에게 저지른 범죄는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 추리소설은 사회의 불안요소를 오직 범죄자 개인에게 찾는다. 탐정은 위험요소를 적발하거 제거함으로써 체제를안정화 한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완전히 다르다. 그가 추적하는 범죄는 제도의 범죄, 체제의 범죄이다. 범죄성은 개인적 캐릭터가 아니라 사회적 캐릭터 이다.  자본가는 자본주의적 생산에 필수적인 기능의 수행자이며, 잉여가치를 제공하고 강탈하기 전에 그것을 창출하도록 돕는 자이다. 더욱이 잉여가치에 대한 자본가의권리는 노동력에 대해 가치를 제대로 지불한 사람이 갖는 권리라고 했다.  자본가가 단순한 절도범이나 강도는 아니라는 거다. 그의 절도와 강탈은 합법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가 추적하는 범죄는 합법적 절도와 강탈인 셈이다. 

 

마르크스는 상품더미에서 뭔가를 발견하다. 추상력이라는 특수안경을 써야만 보이는  그것은 바로 가치라고하는 것이다.  상품더미라고 했지만 실상은 가치 더미 이다. 도대체  가치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바로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이었다.  구매자는 뭔가 할일이 있는  기분좋게 성큼 성큼 앞장서 가는데 판매자는 제값을 받고 팔았으면서도 고개 처박고 쭈뼛쭈뼛 따라가는 겁니다.  한노동자가  자본가를 만나는것은 우연이겠지만 노동자가 자본가를 만나는 것은 필연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자본의 확대 재생산이 빈곤의 확대재생산이라는 것도 알았다. <자본> 광범위한 수준에서 끊임 없이 재생산되는 자본주의의 범죄 보고서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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