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전쟁기계와 : 전쟁기계의 수적 측면 

 

1) 조직의  유형

모든 인간 조직을  혈통적 조직, 영토적 조직, 수적 조직으로 나눌 수 있다. 혈통적 조직은 가족, 씨족, 가문과 같이 동일한 조상을 갖는다. 부족처럼 영토적 형식과 중첩되기도 하며   대조,  대손이라는 방식으로 숫자가 관여 하기도 하지만 혈통적 요인이 일차적이다.  영토적 조직은 영토를 필수 요소로 갖는다. 이러한 영토는 소유와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다. 여기서 소유란 인류와 대지 사이의 탈영토화된 관계로서 자연적인 기능과는 상관이 없다.  영토적 조직에서 인구조사, 조세 등과 관련된 숫자나 계산이 국가의 시공간적 , 영토적  안에 소재를 복속시키는 기능을 한다. 수적 조직에서는 유목이라는 삶의 방식과 긴밀히 결부된 조직이다. 가장 기본적이고 자연 발생적인 단위의 가족 내지 가구를 묶어서 번호를 붙여 조직하고 관리한다. 칭키스칸의 10호대, 100호대, 1000호대 조직이 그예이다. 이동을 하든 멈추든 관계의 일정한 지속성을 유지하기 쉽다. 이러한 번호적 조직은 군대에서   있다. 

 

2)유목민과 

서양의 수학이 기하학을 모태로 하며,  동양의 수학은 산술을 기반으로 한다. 서양 사람은 0과 음수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동양사람은 파이와 같은 무리수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토를 소유하고 구획하는 정착민과 유목민들의  점과 선, 공간 개념이 근본적으로  달랐으며,  숫자를사용하는 방식 또한 달랐다. 유목민의 번호적 조직은 동양의 산술과 연결 시킬  있다.유목조직에 붙인 10호대 100호대  각각에 붙인 번호는 이름에 불과 하다. 축구 선수의 등번호와 같은 의미이다. 여기서 숫자의 크기를 비교하고 계산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숫자가  계산이나 측정의 수단이 아니라 운동의 수단이다. 매끄러운 공간을 움직이는 것은 숫자 그 자체다. 이런 점에서  패인 공간의 부동적인 기하학과 대립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런 수를 세는 라고 부른다. 반면 어떤 척도로서 비교되고 계산되는 , 측량에서 사용되는 수는 하나의 척도에 정확한 비례관계를 갖는 수는 세어진이다. 요컨대 유목민의 수는 암호화된 , 리듬적/방향적/자율적 이동적인 이다. 반면 국가장치에서 사용하는 수는 사람이나 영토에 부착된 영토적인 수고 그것을 통계적으로 계산하기 위한 수며, 사람들의 삶이나 움직임을 포착하고 통제하기 위해 코드화 기능을 수행하는 수다. 

 

3)  세는  특징 

 세는 수는 복합성과 산수적 복제 내지 이중화라는 두가지 특징이 있다. 세는 수는 언제나 수들의 복합체라는 점에서 복합적이고 복잡하다. 가령 주민 조직을 표시하는 10이나 100이란 수에 전투원의 비율, 예비와 저장의 역할, 사람/물건/동물의 보존을 표현하는 산수적 관계 등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예로  유목민의 전투단위 인간-- 은  1x1x1=1 이라고 쓸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산수의 기본 단위는 배치의 단위 이다. 다음으로 산수적 복제 내지 이중화이다.  유목민의 조직에는 상이한 종류의 불균등하고 비대칭적인 두 개의 계열이 있다. 칭키스칸의 예에서 10 100 1000호등 각각의 수적 조직에는 지휘자가 있다. 10호장, 100호장, 100호장이 그들이다. 1000호장 이상이면 귀족으로 간주되었다. 이들을 '노얀'이라고 불렀다. 이와는 전혀다른 조직이 있었으며 일종의 친위대 내지 별동대 인데 개개인이 1000호장 보다 지위가 높았다. 노얀과 별동대의 긴장과 투쟁이 그들의 조직을 혈통적인 국가조직으로도, 제국적 관료제국가로도 만들지 않았다. 칭키스칸은 혈통적 조직에서 별동대의 병사나 간부들을 뽑기도 했지만 능력이 있다고 보이면 노예, 외국인, 투항자 등을 과감하게 별동대 병사로 등용했다. 탈영토화된 사람들로 자신을 재구성하는 한편 거꾸로 그렇게 탈영토화된 인물들을 적극 이용하여, 제국적인 법령, 문자들을 전혀 다른 배치, 전쟁기계의 배치 안에서 이용할  있었다. 

 

4)유목민과 역사 

유목민에게는 역사가 없다. 그들에게는 다만 자리가 있을 뿐이다. 몽골인 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 인디언들도 역사가 없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의 연대기는 가무의식 속에 놀아 들어 있다. 우리들의 역사는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사람들의 기억속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백인들의 역사와 달랐다.” 인디언은 역사가 정말 중요한 것들을 하나라도 드러내 보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는 제국적 국가와 더불어 발생하며 자신이 이룩한 사건들을 결코 무화될  없는 어떤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것을 통해 위대함을 상기시키고 그 위대함에 다른 사람을 복속 시키고자 한다역사가 그저 순환적이고, 모든 것이 일정시간 이후 제자리로 되돌아 온다는 것을 뜻하면 무화되고 만다역사를 만든다는 것은 순환의 형식으로 무화되지 않는 시간 개념을 직선적인 시간 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구성하기 위하여 이전의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역사라는 이름의 관성에서벗어나 새로운 클리나멘을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8. 전쟁기계와 무기: 전쟁기계의 감응적 측면 

명제 7 “유목민의 실존은 정쟁기계의 무기를  감응으로 갖고 있다.”  감응(affect)이란 말은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사용했던 개념인데 정동 혹은 정서로  번역된다. 어떤 양태가 다른 양태의 촉발/변용에 응하여 갖게 되는 감정/정서이다 이런 감응에는 어떤 움직임이나 움직임을 야기하는 힘이 포함되어 있다. 감응으로 무기와 도구를 구분하고자 한다. 

 

1) 무기와 도구

무기와 도구의 차이를 다섯가지로 구분한다. 밖으로 던지는 것인가 안으로 던지는 것인가(방향), 속도인가중력인가(벡터), 자유행동을 모델로 하는가 노동을 모델로 하는가(모델), 보석인가 기호인가(표현), 감응인가 감정인가(정염 내지 욕망의 ) 이다.  

 

첫째 투척과 투입이다무기란 밖으로 던져지는 것으로 투척과 특권적 관계를 맺는다반면 도구는 안으로 던져지는 것이며 내향적이고 투입적이다. 던져지면 무기가 되고, 칼이나 창도 쥐고 사용하면 도구가   있다무기는 던져지는 것이 야기하는 감응과 결부 되어 있다. 도구는 정복하고 이용해야  저항에 맞부딪치는 반면 무기는 적을 공격하거나 반격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속도와 중력이다무기와 도구는 각각 속도와 중력에 관련 되어 있다. 도구는 저항을 이겨야 하듯이 중력을 견디고 이겨야 내야 하는 노동이며 고통을 요구 한다. 무기는 속도를 발명한다속도가 관통하는 힘을 만들어 낸다. 만약 무기를 천천히 건네준다면 그건 운송이지 속도를 가진 무기도 아니고 전쟁 기계의 일부가 아니다. 하지만 매복 같이 속도에 반하는   현상도 전쟁에 포함 된다멈추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강밀한 속도를 응축하는 것이다. 중력이 운동을  방향(중력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면 속도는 거기서 벗어나는 선을 그리는 클리나멘을 갖는 것이다중력에서 자유로운 힘과 방향을 갖는 (벡터)  갖는다. 

 

셋째 자유행동과 노동이다무기는 자유행동 모델에, 도구는 노동 모델에 연결되어 있다. 한점에서 다른 점으로의 선형적 치환은 도구의 상대적 운동(노동) 구성하고, 무기의 절대적 운동(자유행동) 구성하는 것은 소용돌이 꼴의 공간 점유다자유행동과 노동을 결정하는 것은 배치이다생존의 중력을 이기기 위한 공부는 노동이지만  자신이 좋아서 하는 공부는 중력의 저항과 고통의 성분이 없는 자유행동이다.  노동력이 화폐로 구매되고, 그 화폐를 통해서 생산 수단과 결합하는 그런 종류의 배치가 노동을 만들고 어떤 사물을 도구로 만드는 것이다. 

 

넷째 감응과 감정이다감응과 감정이 무기와 도구에, 전쟁기계의 배치와 노동기계의 배치에 상응한다. 감응은 움직이는 신체, 요소들 간의 속도와 속도의 조성에만 관계 된다정서의 급속한 방출, 반격인 반면에  감정은 항상 치환되고, 지체되며, 저항하는 정서다. 감응은 느끼는 사람보다는 느낌을 야기하는 것에 일차적으로 속한다. 감정은 감응을 가리고 보지 못하게 한다. 

 

다섯째 기호와 보석이다.  가지 상이한 배치에는 각기 상이한 표현의 체제가 있다. 노동의 체제나 도구에 상응하는 것이 기호라면, 전쟁기계나 무기에 상응하는 것은 보석이다. 노동이 있는 곳에는 국가장치에 의한 포획과 문자에 의한 행동의 기호화가 있다. 무기는 보석류와 본질적 관계를 갖는다. 이러한  보석이나 장식은 무기의 감응을 표시하는 표현적 특질을 갖는다. 

 

2)무기와 노동의 동맹

무기와 도구의 구별은 배치에 따른다. 무기와 도구가 새로운 배치들 속에 싸여 있다면 다른 동맹 관계에 돌입하게 된다. 전쟁기계를 재발명하는 것은 산업 또는 농업노동자들에게서  자주 일어난다. 배치를 달리함에따라 도구가 무기가 되거나   반대가 가능하다. 도구가 노동으로부터 자유행동으로 나아가는 분열적 취향, 무기가 평화의 수단으로, 평화 획득의 수단으로 전환되는 분열적 취향이 존재한다. 전쟁기계 개념 자체가 새로운 차원에서 국가장치의 외부를 발명하는 문제로 변형된다.  포연없는 전쟁 새로운 형식과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배치의 창안, 그리고  통신망 등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공간에 달라붙어 그것을 매끄러운 공간으로 만드는 새로운 유목주의의 창안 등이 그것이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에서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의 투쟁은 새로운 전쟁기계이다.  노동과 자유행동 사이에서 빌려온 것들은 항상 양방향으로 흐르며 투쟁은 더욱더 다양해진다.

 

9. 전쟁기계와 야금술 

1) 무기와 기계적 계통 

"유목민은 어떻게 자신의 무기를 발명하거나 찾아내는가 ?" 무기를 다루고 만드는 야금술사와 유목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답이 바로 명제8이다.  명제8. 야금술은 본질적으로 유목주의와 필연적으로 합류하는 흐름을 구성한다. 이 부분에서 말하는 것은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  무기의 발명, 이용  배치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기계적 계통'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둘째, 무기의 발명에 실질적인 주역을 담당하는 존재로서 야금술사의 고유성에 대한 것이다. 셋째, 야금술이 유목주의와 합류하는 흐름을 형성하는 것이다.

 

 유목민은 대포나 화기로 인해 패배했는가 ?   그것의 발명과 이용에 나설  없었는가 ? 그건 오직 국가장치만이    있는 경제적 투자를 함축하기 때문이다전쟁기계는 정의상 국가 장치의 외부고 부의 국가적인 포획과 집중화에 반하는 메커니즘이었다. 대규모 부의 포획과 집중은 전쟁기계라는 배치 안에서는 형성할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목민이 화기 이전에 사용했던  무기들은 어떻게 그들의 손에서 탁월하게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던가 ? 기병도는 진과 한의 제국에서 발명된 것이지만 유목민이 그것을 이해하고 재발명할 능력이 있었다. 말을 타고 사용하는 유목민의 배치에 더욱 적합하게 계열화   있었고, 이런 유에서 유목민에 의해 가장 탁월하고효과적으로 이용 되었다.  이런의미에서 유목적인 계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계통이란 말은 전통적인 분류학에서  , , , , , , 계에서  표시하는 낱말이지만 여기서는 배치에 의해 구별되고 계열화되는 기계적 요소의 분류를 위한 개념이다. 형태의 동일성과 차이가 아니라 배치에 따른 감응들의 계열화에 의한 것이다. 퀴비에의 분류학은 생명의 기관들로 비교 분류하지만 여기서는 배치의 기계적 접속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것에 따라 달라진다. 배치가 달라지면 얼마든지 다른 것과 연결되고갈라지고 합쳐지는 리좀적인 계통도 그리게 된다. 모든 계통을 하나로 묶는 것으로  단일한 기계적 계통 다양한 기계들에 공통된 물질성,  질료적 흐름의 공통성을 표시하는 일종의 일관성이다.

 

 기계적 계통이란 배치들의 분류적 계통이라기보다는 배치에 속한 요소의 분류적 계통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계열화의 선을 따라 상이한 배치들을 넘나들면서  상이한 배치들에 속하게 되는 어던 특이성을, 기계적 요소의 질료적 흐름 말한다. 형태를 넘어서 획득되는 질료적 흐름의 단일성이다.  극한에서 만들어지는 기계적 계통을 금속이라는 물질성이라고 말한다.  사물성과 대비해서 물질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금속성의 질료적 흐름 때문이다. 각각의 기계적 계통도 고유한 질료적 결을 갖는다.  유물론의 물질개념과 구별되지만 동시에 어떤 고유한 결을 갖기에 의식이나 정신, 주관 같은 것으로 환원될  없는 외부성을 표시하는 것으로 이해   있다.  야금술사란 질료적 흐름을 따르는 자고 기계적 계통을 다르는 , 질료적 결을 따르 자라는 점에서 이동하는 내지 순회자라고 부른다. 

 

2) 야금술과 구멍 뚫린 공간

 야금술사의 고유성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유목민과는 어떤 관계를 맺는가? 그들은 국가장치에 속하는 국가인도 아니고 전쟁기계에 속하는 유목민도 아니다. 국가 장치와 그것의 외부인 전쟁기계라는  가지 배치에대해서 말해왔고  양자의 이항적 대립을 지속해왔다. 야금술사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고유한 배치를 갖고 있다. 매끄러운 공간과  패인 공간과 구별되는 구멍 뚫린 공간, 많은 구멍이 있는 다공공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야금술사를 이주민이라고 부른다. 야금술은 변형의 기술이고, 물질성을 통해 어떤 형식화된재료의 문턱을 넘는 기술이며, 근본적으로 물질성의 흐름 자체에 대한 사유라고  수있다.  이러한 사유가유목적 과학의 특징이며  다른 공간을 갖고 다른 본성의 삶을 살고 있는 야금술사와 유목민의 합류지점이라고    있다.  야금술사가 국가장치에 포섭되는 것은 그들의 식량이나 국가장치의 농업적 스톡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포섭을 근거로 야금술사의 삶의 방식이나 사유 방식이  국가장치와 어떤 동형성을 갖는다고 가정할  없다. 야금술사는 흐름의 사유, 변형의 사유, 비유기적인 삶의 방식의 공통성이라는 측면에서야금술과 유목주의는 합류하는 흐름을 형성한다. 

 

10. 전쟁기계와 전쟁 

명제 9 (일정한 조건 아래서) 전쟁과 전투가 필연적으로 야기될  있다고 하더라도, 전쟁이 반드시 전투를 자신의 목표로 하지는 않으며,  전쟁기계 또한 반드시 전쟁을 자신의 목표로 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크게  질문을 던진다. “전투는 전쟁의 목표인가? 전쟁은 전쟁기계의 목표인가? 어느 정도까지 전쟁기계는 국가장치의 목표 되는가?”

 

1) 전투와 전쟁 

 전투와 전쟁의 관계에 있어서 전투를 하려는 것이 반드시 공격적인 것은 아니며, 전투를 피하려는 것이  항상 방어적인 것은 아니다.  전투는 전쟁과 동일한 것이 아니며  전투가 전재의 목표는 결코  아니다.  병력의이동이나  배치의 변경만으로도 공격과 동일한 효과를 가지기도 한다. -전투도 전투만큼이나 공격일  있다는 것이다. 전투와 비전투 모두가 전쟁의 목표라는 것이고, 이는 공격적인 것과 방어적인 , 혹은 본래적인 전쟁과 게릴라전이라는 개념과 일치 하지 않는다. 

 

2) 전쟁과 전쟁기계

 전쟁이 적의 무력을 절멸시키거나 굴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기계는 그런 종류의 전쟁을 반드시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쟁기계란 매끄러운 공간의 구성적 요소고  공간의 점유며  공간안에서 자리는 바꾸는 것이고, 그에 대응하는 민중의 구성때문이다. 이를 노모스라고 명명합니다. 이러한 목적만으로는 전쟁이 발생한 이유도, 전투가 발생할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전쟁기계의 목표가  가로 막히고 홈을 파려는 국가 장치와 충돌하기 때문에  전쟁으로 귀결된다. 

 

 <수호지>에서  '양산박'은 전국 각지에서 국가인의 핍박과 억압에 쫓겨 탈영토화의 선을 그리는 호걸들이 모여들어 강력한 전쟁기계를 형성하지만 이들 또한 전쟁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이들의  목적은 국가인의 핍박과 억압이 통하지 않는 공간을 만들고 거기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전쟁'은 가능한 한 피해야  것이다. 국가장치의 억압과 출동을  피하지 않으며 기꺼이 그것과 싸우려 하지 않는다면 전쟁기계로서 존립할 수 없다.  전쟁기계가 전쟁이 되는 것은  지점에서다”.  결국 전쟁기계에게 전쟁은 목표가 아니지만 필연적인 것이다. 전쟁은 전쟁기계의 바깥(국가장치와의 관계)에서 추가된 것이고,  그런 만큼 전쟁기계에 대해 외적인 것이고 그것의 과잉이지만 전쟁기계의 불가피한 기능을 추가하는 보충이고,  자신을 통해 전쟁기계를 표상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3) 전쟁기계의 국가적 영유 

국가 장치는 어떤 식으로 전쟁기계를 목표 하는가?  국가는 어떻게 전쟁기계를 영유할 것인가,   어떻게그것의 규모, 지배, 목적을 자기 자신을 위해 구성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전쟁기계가 변성되는 세가지 계기를 명확히 한다.  첫째, 전쟁기계는 유목민의 발명품이고,  자체로는 전쟁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둘째, 국가가 전쟁기계를 영유하면 전쟁기계의 본성과 기능이 완전히 달라진다.  셋째, 국가장치는 전쟁기계를 내적인 요소로 하지 않는다. 국가장치가 전쟁기계를 영유한다면 전쟁기계에 부과할 목표는  일차적 목표가 아니라  그대로 전쟁이 된다. 

 

전쟁기계는 국가장치를 영유할 수있는가 ?  국가들을 정복한 유목민은 절멸시켜 매끄러운 공간으로 되돌려 놓을 것인가?  국가장치를 존속시켜 직접 창취할 것인가 하는  망설임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칭기스칸 대법령은 몽골인들에게 정착적인 생활방식을 택하거나 도시에 거주하는것을 금 지하였다.  "정착민 지역의 행정에 개입하지 말것, 특별히 지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금을 징수하지  , 일정한 목축 이동로를 따라 옮겨 다니며 초원과 산간지에 살지, 결코 가축을 데리고 경작지를 짓밟지  " 결정했다. 이는 절멸노선에 대비 온건 노선이지만 국가 장치와 정착에 대한 확고한 선을그으려는 것이다. 정착민의 생활방식과의 공존을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독립성을 지속하려고 했다. 특히 세금을징수하지 말라는 규정을 통해  정착민의 세계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포획장치라는 새로운 배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수많은 국가 장치를지배하고 영유 하는 거대한 제국을 이루면서도 새로운 정치적 국가장치를 구성하지 않고 전쟁기계로 계속해서 남을  있었다. 이런 조치는 정착민 제국의 일부가 되어 버린 쿠빌라이와 대비 된다. 

 

4)전쟁기계외 전쟁의 양상 변화 

전쟁이 실제로 나타나는 것은 오직 전쟁기계가 국가 형태와 대립하는 가운데이다. 국가 편에서는 전쟁기계를 영유하고  전쟁기계에 전쟁을 목표로 하게 만들 기회를 노린다.  국가에 의해 영유됨으로써 전쟁을  분석적 목표로 하게  전쟁기계가, 국가의 정치적 목적마저 자신의 목표아래  종속시킴으로써 오직 전쟁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무제한적 과정을 야기한다.  이러한 사례를 나치나, 파시즘의 경우메 발견한다.  

 

계통과의 관계속에서 일관성의 구도, 창조적인 탈주선, 치환의 매끄러운 공간을 그려내는 한에서는 이데올로기적’,  과학적 혹은 예술적 운동은 전쟁기계 일수 있다. 겔릴라전, 소수자전쟁, 혁명전쟁  본질에 부합하다면 대리/보충 위해 전쟁을 더욱  필요한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이  다른 무언가를 동시에 창조하는 조건에서만 전쟁을 벌일  있다는 대리/보층 관계의 말이다. 

 

 

 

 

 

 

 

 

4. 유목적 과학과 국가적 과학

 명제 3. 전쟁 기계의  외부성은 인식론에 의해서도 증명 되는데 이는 유목적 내지  소수적 과학의 실존과 항속성을 암시한다.  명제가  국가작 과학 내지 왕립 과학과 대비하여 유목적 과학 내지 소수적 과학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유목적 과학이란 바로 인식론의 영역에서 전쟁기계를 뜻한다예로 고대학의 유클리드 기하학이 국가적 과학이었다면 아르키메데스 기하학은 소수적 과학 이었다. 주류적인 위치를 확보한 다수적 과학과 거의 인정되지 않고 묵살된 과학이 소수적 과학이다결과론 적이지만 요체는 사유형식 자체의 차이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1) 유목적 과학의 특징

유모적 과학의 트징을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 '유체와 흐름의 이론'이다.  원자를 다루면서도 흐름과 결부된 것으로 비처럼 흘러내기거나 비껴나는 선을 그리며 흐리고 충돌하는 흐름을 다룬다흐름은 원자 자체보다도  실재적인 실재  자체거나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로 묶는 일관성이라고 말한다. 이런 흐름에는 흐름 자체를 다루는 흐름과 수로라는 홈을 파서 흐름을 가두어 이용하는 경우이다.  동양의 고대사상에서 흐름을 다루는 이론은 매우 중요하다. '공'이나 '도'의 개념은  어떤 형태나 사물에 갖히지 않는 흐름 자체에 대한 개념이었다.  가령 화엄학에서 등장하는 '이' '공' 이라는 개념에 상응하는 절대적 흐름 자체를 표현하는 개념이었다면 이것은 주자학에서 '도'를 표시하는 개념으로 채택되고 그것이 '선'으로 환원될  없는 성과 동일시됨으로써 선악의 도덕적 개념에 갖히게 된다. 그것이  <주자가례>에서 처럼  예의 구체적 코드로 구현되는 무엇이 되면 '이'는 더이상 흐름이 아니라 고정된 형식이 되고 만다. 이런 문제가 17세기 조선에서 중요한 국가적 문제 였다.  

 

둘째 생성과 이질성의 모델을 추구한다. 생성을 더이상 복제물의 이차적 특징으로 보지 않고 생성  자체를 모델로 삼는다.  매번 발생하는  생성의 양상은 달라도 그러한 생성을 포착하고 사유하기 위한 개념은 있을 수 있다. 원자의 움직임을 표시하는 클리나멘이라는 개념이  원자의 운동을 사유하기 위한 하나의 모델이다. 클리나멘은 편위라고 번역되는 그리스어 이며 선을 그리는 성분이다. 중력이나 관성의 직선적인 움직임에서벗어나 최소각을 말한다. 이러한 클리나멘을 갖는 원자들의 우발적 마주침에 따라 세계는 그때그때 다른 것으로 생성된다는 것이다. 

 

셋째  소용돌이형 모델이다.  물질이 섞이지 않고 평행선으로 나아가는 층류상의 흐름과 대비되는 소용돌이형 흐름이다. 모든 방향을 허용하며, 주어진 공간을 흐름이 전체로서 점유하며 만들어진다. 알튀세르의 말에 따라 유목적 과학이 다루는 흐름은 '투르바'에서 '투르보'로 향한다고 말한다. 투르바는 대중, 대규모 주민, 소동을 가리키며 투르보는 둥근 형태의 원추나 소용돌이 나선이다. 사물의 기원과 질서의 시작은 투르바에서 투르보로의 미묘한 이행 속에 있다. 

 

넷째  문제 설정적이다. 안정적인 본질로부터 파생되는 성질을 연역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로부터 그것을 조건 짓고 해결하는 사건들로 나아간다. 국가적 과학이 기존 체계에 부합하는  그것을 정리 형태로 공리에 종속시키고 체계안에 제한하려 하는 반면 유목과학은 구체적인 계기를 통해 문제를 찾아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사유의 방법, 개념을 고안한다. 예를 들어 아르키메데스의 기학은 포물선이나 타원과 같은 원과 다른 성질의 곡선을 어떻게 다룰 것이가 ? 그것의 길이와 면적을 구할  있을 것인가 ? 하는 문제를 통해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 였다. 여기서 문제는 치유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새로운 창안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점에서 공리적이고 안정적인 체계안에서 환원하고 그에 복속시키는 것으로서의 해결인 치유해야할 질병으로서의 문제인 국가적 과학과 대비 된다. 

 

2) 유목과학과 국가의 관계

유목적/소수적 과학은 국가적 과학의 요구와 조건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감금되고 제지되고 엄금에 처해진다. 예를 들어 투시법과 데자르그의 사영기하학의 관계도 그렇다. 투시법은 1425 브루넬레스키의 유명한대중적 실험이래 회화나 건축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확고하게 차지하였다. 도시와 도로 구성에서 거리와 건축물의 배열에서 투시법은 오랜 동안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데카르트보다 먼저 찾아낸 사영기하학은 2세기 가까이 완전히 무시되었다가 19세기 후반에 정규적인 기하학의 중요한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잡게 된다. 

 

국가적 과학과 유목적 과학의 차이를 플라톤이 말했던 콤파르스 ‘디스파르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콤파르스는 법칙을 찾아내려 하고 어떤 보편적인 상수를 찾아내려는 모델이다. '변수들에 대한 불변의 형식'을 찾으려 하며 항상적이고 동질적인 형상을 찾으려 하는 '질료형태학적' 모델이다.  소재들이 갖는 이질성과 가변성을 추상화한 불변적 형식이나 형상을 찾아내는 모델인 질료와 형상(행식)이라는  이루어져 있다. 디스파르스는 변수들을 지속적인 변이 상태에 두려 한다는 점에서 유목과학에 상응한다. 질료-형상이란  대신에  소재 자체의  특이성이나 힘을 포착하려고 하는 소재-힘이란 짝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국가적 과학에 유목적 과학이 포섭되고 포획된다. 이미 척도적 지위를 갖는 국가적 과학에 결부되어 진행된다. 예를 들면  한의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나 기술들은 소통수단 공통의 척도가 되어버린 근대과학이나 서양의학의  개념들로 번역되어야  한다. ‘라는 비가시적이고 비형태적 개념은 가시적인 형태로 변환되어야 하고, 전기나 자기적인 현상으로 치환된다. 

 

5. 사유의  가지 양상

1) 사유의 국가적 모델

명제 4는 전쟁기계의 외부성을 사유학에서 입증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유 자체를 국가장치와 전쟁기계라는  가지 극에 의해 분할하는 것을 뜻한다. 무엇을 사유하기 이전에 이미  무엇을 설정하는 방법, 그것을 사유하는 방법과 규범 등의 사유형식이 주어져 있고 그것이 우리의 사유를 먼저 규정하고 제한 한다. 모든 사유를 뒤덮는  사유의 이미지가 있다. 제도안에 규범으로 자리잡고 있는 사유의 형식이다. 국가 장치에서 빌려오는 사유의 모델이다. 이러하한 사유 속에 자리잡은 국가적 모델에는 두개의 머리가 있다. 하나는 마술적 포획, 강탈 혹은 구속에 의해 작동하는 것으로 신화의 효율성을 구성하는 참된 사유의 절대권이다. 다른 하나는 약속또는 계약에 의해 진행되며, 입법  사법 조직을 구성하고 근거의 재가를 수행하는 자유정신의 공화국인  로고스이다. 국가와 사유는 서로를 이용하고 필요로 한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국가는 사유 내부에  내적인 전개라는 내부성의 형식을 부여하고, 사유는  내부성을 부여하는 국가에다 보편성의 형식을 부여한다.

 

국가적 모델이라는 사유의 이미지에는  가지 보편자가 나타난다. 하나는 전체, 다른 하나는 주체이다. 고전적인 사유의 이미지와 그것이 초래하는 정신적 공간의  파기는 보편성을 열망한다.  존재의 최종근거 혹은모든 것을 총괄하는 지평으로서의 전체와 존재를 우리를 위한 존재 전환시키는 원리로서의 주체가 그것이다. 언제나 보편성을 획득할  있는 방법으로 진행될 때에만 사유결과의 보편성을 입증할  있다는 것은근대 과학철학의 중요한 명제 입니다명제입니다.

 

2) 대항사유

대항 사유는모델을 빌린 사유형식 자체에 반하는  사유고, 국가적 사유형식을 깨고 부수어 비국가적 사유의 흐름에 다양한 출구를 만들어 내는 사유이다. 어떤 사상가가 시간을 두고 완성해간 어떤 사상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사사상가에 주어지는 외부들과 그의 사유가 접속한 결과고, 그런 만큼 하나의 사유 안에 항상-이미 복수의 사유가 뒤섞여 공존하는 그런 것이란 저에서 외부 문제고 외부의 사유 문제다문제다. 외부성을 자신의 내적인 특질로 갖고 있다. 

 

6. 전쟁기계와 공간: 전쟁기계의 공간적 측면

여기서부터는 공리공리 2 ‘전쟁기계는 유목민의 발명품이다. 그런 전쟁기계는 세가지 측면을 갖는데, 공간-지리적 측면, 산술적 내지 대수적 측면, 감응적 측면이 그것이다.  명제명제 5유목민의 실존은 필연적, 공간적으로전쟁기계의 조건을 유효화 한다. 

 

1) 점과 

 점은 일차적으로 멈춤과 고정, 고착과 결부되어 있다. 반면 선은 이동의 경로를 표시한다. 정착민은 정착하기 위해서만 이동한다. 유목민은 떠나는 도중에 멈출뿐이다. 이동의 궤적이 그리는 선이 우위를 갖는다. 유목민들은 통과하는 과정에서 잠깐 멈출 뿐이다. 흘러가면서 멈춘다. 그렇기 때문에 거꾸로 유목은 앉아서 하는 것일  있으며,  움직이면서 멈추어 있는 정착 또한 있을  있다. 9년간 면벽수행을 했던 달마대사는 새로운 사유의 흐름을 앉은채 일으켰으며,  여행을 하지만 과정은 버리는 시간이고 목적지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정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점과 선의 개념은 외연적인 형태를 통해 표상되는개념이 아니라, 내포적이고 강밀도적인 개념이다 

 

정착민과 유목민에게 선의 기능이 다르다 예를 들어 정착민의 도로가 사람들에게 폐쇄된 공간을 분배하고,  사람에게 몫을 할당하고,  몫들간의 소통을 중재한다면, 유목민의 궤적은 사람들을 열린 공간, 불확정적이고 비소통적인 공간에 분배한다분과와 전공을 표시하는 점들과  점들 사이를 잇는 제도적인 이동의 경로들, 분과적 규칙과 전문가라는 단어로 표상되는 규제되는 소통의 목적과 양상, 그리고 각자의 업적과 점수로 환산되는 활동의 실적들이다. 이 경우 점과 선은 패이고 폐쇄된 공간을 만드는 요소들이고, 사유와 연구, 지식의 흐름을  공간안에 가두는 기능을 하는 것들이다. 다른 하나는 옆길로 새듯이 흐르면서 규칙에서 벗어난 횡단을 통해 뜻 밖의 지식을 생산하는 선이다. 실적이 아니라 확산과 촉발, 공유와 변용을 위한 지식이 생산된다. 횡단적 지식, 소용돌이의 지식, 그것을 만들어내는 클리나멘 같은 선들, 이것이 유목적 지식의 분배(노모스) 이루어지는 그런 선이다. 

 

2) 유목민의 공간

다른 점과 선을 갖는다면 그것들로 이루어지는 공간 역시 다른 질을 가진다. 이를  패인 공간과 매끄러운공감이라는 말로 개념화 한다. 유목민의 공간은 탈영토화의 공간이다. 대지와 하늘을 가르는 것은 없다. 중간의 거리도, 투시법이나 윤곽선도 없다. 시계는 제한된다. 하지만 점이나 대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닐, 특개성들 내지 관계들의 집합들에 의존하는 유난히 정교한 위상학이 있다. 그것은 시각적 공간이라기보다는촉각적 공간, 촉감적 이고 음파적인 공간이다.  

 

유목민의 공간은 국지적 입니다. 그러나 원하는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있다. 이는 원거리-시각적 공간의 경우에는 소실점에서 가능했던 절대적인 이동 가능성을 모든 국지적인 점들이 갖고 있음을 뜻한다. 사물이나 흐름, 움직임을 가두는 홈이 없으나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있다는 거다. 이를 국지적 절대라라고 부른다. 국지적이지만 절대적이다. 유목민의 공간은  있는 곳이 어느 점이든, 원하는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있다. 이는 원거리-시각적 공간의 경우에는 소실점에서만 가능했던 절대적 이동 가능성을 모든 국지적 점들이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유목민의 공간은 매끄러운 공간이고 정착민의 공간은  패인 공간이다. 유목민은 운동보다 속도와 관계된다. 운동은 매우 빠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운동에 속도를 주는 것은 아니다. 속도가 매우 느리거나 심지어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것은 속도다. 운동은 외연적/연장적이고, 속도는 내포적/강밀도적이다. 운동이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는 것과 달리 속도는 공간을 전체적으로 장악한다.

 

3) 국가 장치와홈파기

국가 장치의 근본적 과업중의 하나가 홈파기이다.  국가 장치는 들판에서  숲을 제거하는 , 농업적-격자화,  농업과 정착민적 식품생산에 동물 사육,  상업에 기초한 도시-시골(폴리스-노모스)간 소통을 수합하는것이다. 홈파기의 이유는 모든 방향으로 흐르면서 공간을 전체로서 장악하는 유목적인 흐름을 일정한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 그것의 운동이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는 원숙한 이동을 택하도록 하는 , 이를 위해 운동을 분해하고 재구성하고 변형하여  속도를 통제하는 것이다유목민이 전쟁기계를 형성한다면, 절대속도를 발명함으로써다. 절대속도는 제한된 방향, 제한된 크기에 갇히지 않는 속도의 자유로운 변이능력과 결부된다국가는 전쟁기계에 상대적 운동의 형식을 부여하지 않고는 그것을 영유하지 못한다.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를 주목해야 한다.  이도시는 20세기  미국의 특징과 열망을 상징하는 메타포와 같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는 오락과 유흥 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할  없는 도시이기에, 공공담론조차 하찮은 오락거리로 변질시키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문화의식을 물들인다미국의 정치, 종교, 뉴스, 스포츠, 교육과 상거래는 별다른 저항이나 소리소문 없이 쇼비즈니스와 유사한 부속물로 변질되었다.  결과 우리들은 죽도록 즐기기 일보 직전에 있다.(p.17)

미국인들보다  뛰어난 자동차를 만든다는 소리를 듣는 일본인들도 경제란 과학이라기보다는 공연 예술에가깝다고 하는데, 도요타자동차의 연간 광고비를 보면 수긍이 간다.(p.19)

나는 의사소통이란 용어를 포괄적 은유로 사용하는데, 담화뿐 아니라 특정문화권의 사람들이 서로 메시지를교환할  있는 모든 방법과 기술체계를 뜻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문화자체가 의사소통 행위이며, 조금  명확하게는 상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이 얽히고 설킨 관계인 셈이다. 이제 여기서 공공담론을 표현하는 형식이 어떻게  형식 자체로 인해 드러나는 내용을 규제하고 심지어 지시까지 하는지주목해 보도록 하자. 예로, 원시적인 연기 신호 체계를 생각해보자. 철학을 논하기 위해 연기 신호를 이용할수는 없다. 이처럼 의사소통 형식자체가 전달되는 내용을 제한한다.(p.22)

하루의 뉴스는 우리의 기술적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다. 조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는 미디어가 주관하는 이벤트에 불과하다. 요사이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단편적인 뉴스를 접하는데, 이는 우리가 이용하는 여러가지 매체가 의사소통 과정을 무의미한 조각정보로 파편화시키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빛과 같이 빠른 매체가 없는 문화(이를테면 연기신호가 공간지배 도구로서 가장 유용한 문화)에는 오늘의 뉴스가 없다. 뉴스의 형식을 만들어 내는 매체가 없으면, 오늘의 뉴스도 존재하지 않는다(p.24)

마샬 맥루한의 경구(미디어는 메시지다) 처럼 수상쩍게 들린다면,  연관성을 부인하지 않겠다. 나는 30전에 맥루한을 만났는데, 당시 나는 대학원생이었고 그는 알려지지 않은 영문과 교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나는 맥루한이 오웰과 헉슬리의전통을 따라서 예언자처럼 말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문화를꿰뚫어보는 가장 명확한 방법으로 의사소통 수단을 살펴야 한다는 그의 가르침을 여전히 나의 발판으로 삼고 있다.(p.25)

 문화에서 접할  있는 의사소통 매체가  문화의 지적 사회적 선입관 형성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추측하는 것은현명할 뿐만 아니라 심히 타당하리라 확신한다. 말하기는 당연히 근본적이고 필수불가결한 매체다. 말로 이해 인간다울  있고인간으로 살아갈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말하는 행위가 인간 존재를 규정한다...우리는 언어구조의 다양성이 이른바 '세계관' 차이를 낳는다고 이해할 만큼 언어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문법적 특성은 시간과 공간을 인지하고, 사물과 과정을 인식하는 사고방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마음 한뜻으로이해하리라고는 감히 추측할 수도 없다. 

 문화가 다를  세계관의 차이는 얼마나  클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왜냐하면 문화가 (하기) 소산이기는 하지만, 문화는 모든 종류의 의사소통 매체(그림에서부터 상형문자와 알파벳을 거쳐 텔레비전까지) 의해 다른 방법으로 재창조되기 때문이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매체는 생각하고 표현하고 느끼는  있어서 새로운 방향감각을 제시하기 때문에독특한 담론형식을만들어낸다. 이는 물론 맥루한이 매체는 메세지라고 말하면서 의미했던 바이다. 그러나맥루한의 경구 그대로는 메시지와 메타포를 혼동할  있기에 개선할 필요가 있다.(p.26~27)

*메타포: 행동, 개념, 물체 등이 지닌 특성을 그것과는 다르거나 상관없는 말로 대체하여,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내는일(네이버사전)

 

우리가 말을 통하든 아니면 문자나 텔레비전 카메라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든지 간에, 우리가 접하는 매체가방출하는 메타포는세계를 분류하고 계열화하고  지우고 확대하고 축소하고 채색하여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름대로의 인식론을 편다.(p.27)

 그런데 특이하게도 사람들은 매체가 개입함으로써 우리가 보거나 알게  것을 지정하는 역할에 대해서는별로 주의를 기울이지않는다.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시계를 힐끗 쳐다볼  사람들은 그러한 행위가 자신의 정신세계를 어떻게 체계화하고통제하는지 대체적으로 관심이 없으며 , 텔레비전 또는 시계가어떠한 세계관을 제시하는지에 대해선 더더욱 둔감하다.(p.28)

  중에서도 20세기 말에 이러한 사실을 알아챈 사람들이 있다.  위대한 관찰자 중의  사람이 루이스 멈포드였다. 그는 단순히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보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시시각각 모든 사람들의신경을 잡아끄는 시계의 역할보다는, 시계가 어떻게 '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는지에 훨씬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시계의 철학,  메타포로서의 시계에 주목했는데, 이는 당시 시계제작자는 물론 지성계에서조차 드물었던 관점이었다.

 멈포드는 "시계는 분과 초라는 '생산품' 만들어내는 강력한 기계장치와 같다" 단정지었다. 어떤 제품을생산할  시계는 인간활동을 시간과 분리시키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이로 인해 수학적으로 측정 가능한 일련의 독립세계가 있다는 믿음을 조장한다. 시계가 만들어내는 순간순간은 자연에서도 신에게서도 비롯된 개념이 아니다. 이는 자신이 만들어낸 기계장치를 통해 자기자신과 대화하는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다.(p.29)

 음성표기로 인해 지식에 대한 새로운 개념뿐 아니라 정보, 청중, 미래세대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 형성되었음이 분명한데, 이는문자발전 초기단계에 플라톤이 이미 모두 알아챈  있는 사실이다.

 철학은 비평 없이는 존재할  없는데, 글쓰기를 통해 생각하는 바를 지속적이며 집중적으로 파고들  있으며 편리하기까지 하다. 글쓰기는 말하기를 동결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문법학자, 논리학자, 수사학자, 역사학자를 낳았다. 이들은 모두 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디에 오류가 있는지, 지향점이 어디인지 파악하기위해 눈앞에서 언어를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매달려야하는 부류들이다.(p.30)

 플라톤은  모두를  알고 있었는데, 이는 글쓰기를 통해 인간의 언어처리기관이 귀에서 눈으로 이동하는지각혁명이 도래할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플라톤은, 그러한 인지 전환을 촉진시키기 위해 학생들이 자신의 학파에 들어오기 전에 기하학을 익히도록 요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옳은 판단이었는데, 위대한 문학비평가 노스럽 프라이가 했던말에서  이유를 발견할  있다. "기록된 글은 단순한 기억보다 훨씬 강력하다. 기록은 과거를 현재에 재창조하고, 익히 알고 있는 사실뿐 아니라 환상을불러일으킬 정도로 눈부신 긴장감을 선사한다." 

 노스럽 프라이가 시사했듯이, 인류학자들은 기록된 글이 그저 반복되는 말소리가 아님을 알았다. 이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소리로, 마법사의 일급 속임수와 같다. 글을 발명한 사람에게도 이같이 보였음이 확실한데, 티무스 왕에게 글을 발명해 소개했다는 이집트의  토토가 마법의 신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도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글쓰기에서 놀랄 만한것을 찾아낼  없겠지만, 인류학자들은 순전히 구어만을 쓰는 사람들에게  쓰는 행위(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얼마나 기이하게 보였는지  알고 있었다.(p.31)

우리는 자연이나 지성이나 인간욕구나 사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언어로 드러나는  대로만 본다. 따라서언어는 우리가 이용하는 매체이고, 언어라는 매체는 우리의 메타포가 되며, 이메타포가 문화의 내용을 형성한다. (p.34)

 

 

1. 전쟁기계란 무엇인가?

1) 전쟁기계와 전쟁

전쟁기계에 대한 개념정의는 하지 않으며  문장 정의 형식으로  제시된다. “유목민의 전쟁기계는 표현의 형식이고, 순회적 야금술은 그것과 상관적인 내용의 형식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의는 아니다.  전쟁기계가 한미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다양한  면모를 갖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전쟁기계란  무엇인가 ?’ 라는 대신에 어떤 것인가 대답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전쟁으로 포착하려고 하는 것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새로운 ,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시도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고 보존하며 통합하는 것을 기능으로 하는 국가와 충돌하는 사태 이다.  이러한  전쟁 개념은 니체의 '아곤'이라는 개념과 결부되어 있다.  니체는 그리스의 정치를 아곤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는  이는 적대를 뜻하는 '안타곤;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상이한 가치의 정치, 삶의 방식들이  적대없이 경쟁하면서 새로운 것을 창안하고 창조하는 그런 전쟁이다.  이 개념은 하나의 국가나 체제로 통합되는 것을 막는 매커니즘이었고, 국가의 형성을 저지하는 매커니즘 이었다. ‘아곤 전쟁적인 요소가 초월적인 권력의 출현을 막아온 것으로 생각한다. 

 

아곤은 적대를 만들지 않기에 경쟁자를 방해하거나 비난하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우위를 확보하는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긍정적 방식으로 자신의 우위를 확보하고자 한다.  선의의 경쟁 다른 점은 전쟁을 불사하면서 까지 창조적 선을 계속해서 밀고 나가려 한다는 점이다. 전쟁기계 이런 전쟁을 수행하는 배치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활동이나 사유, , 움직임, 창작 등의 모든 자유로운 흐름에 상관적인 배치로 형성되고 작동되는 기계라고   있다니체, 카프카, 클라이스트의 작품처럼 글로 씌어진 작품도 기존의 삶과 가치에 대해 전쟁을 수행하는 전쟁기계라고   있다. 

 

2) 전쟁과 국가장치

전쟁 능력을 국가가 포섭하여 통합하든, 아니면 해체하여 독점하는 경우에만 구가가 수립될  있다.  원시사회 전쟁이란 국가 장치의 구성을 저지하는  매커니즘이 있었다. 권력이나 지도력, 가치나 힘을 어느 하나의중심으로 집중하는 것을 저지한다. 이는 어느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삶과 가치의 창조이자 그런능력의  생산이다.  인디언 사이에 행해지는 포틀래치 매커니즘도 이런 측면이 있다고   있다. 선물을   있는 능력이 가장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 경제적 재화의 집중을 분산시키는 한에서만 정치적 지도력이 인정된다. 부와 정치적 권력이 동시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지도력의 필요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권력의 집중을 최대한 약화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권력이 통합되고 집중되는 것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국가장치는  전쟁기계에대해 두려움과 불편함을 갖는다. 양산박이나 활빈당에 대해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의 힘보다는 국가자체의 존립을 위협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존재 자체가(국가에 대해서는) 폭력이고 전쟁인 존재이다.  폭력없는 폭력이라는 개념에 가깝다.  전쟁기계의 능력은  촉발/변용 능력을 뜻할 뿐이어서,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무언가를 산출하지 못한다면  힘과 능력은 유지되지 못한다.  이경우 존재 자체만으로 국가인들을불안하게 하는 그런 위치를 상실하게 된다.  창조적인 능력이 고갈되어 무언가를 창조할  없지만 기존의 가치나 국가 권력에 대한 부정의 정신은 더욱 명료해 질때, 국가권력이나 소시민적 안정에 대한 욕망을 혐오하게 될때, 전쟁기계는 전쟁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계로 돌변한다. 

 

2. 전쟁기계는 국가장치에 외부적이다.

1) 신화에서 전쟁기계의 외부성

전쟁기계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국가 장치로 환원   없고, 국가의 주권 외부에 존재하며, 법률에 선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쟁기계는 다른 곳으로 부터 온다.  전사의 신인 인드라는 미트라뿐만 아니라바루나와도 대립한다.  전사의 신은 국가의  극을 이루는 신들과 다르고,  그것 모두와 대립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고유의 전쟁기계를 갖고 있지 않다. 국가는 오직 군사제도라는 형식을 통해서만 전쟁기계를 전유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는 국가가 군사제도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을 해명해준다.  

 

2) 장기와 바둑

국가장치에 대한 전쟁기계의 외부성을 체스와 바둑이라는 게임을 통해 입증한다.  장기는 국가 내지 법정의게임이다. 왕이 있고 병졸들의 배치가 있다.   각각의 말은 이동의 코드로 표시되는 /권력을 갖는다.   각각은 상대적인 권력이 부여된 언표 주체이고 하나의 언표 행위의 주체인 경기자에 의해서, 게임의 규정성 아래서 내부성의 형식으로 결합된다. 

 

바둑은  영토를 뺏고 빼앗기는 전쟁의 게임이다.  자신의 집을 만드는 영토화, 상대방의 집을 깨는 탈영토화,  그것을 자신의 영토로 만드는 재영토화만이 있다.  바둑알은 내적인 질이나 속성 혹은 이동의 규칙이 없다. 이웃하는 다른 바둑알과의 이웃 관계에 의해 달라지는 집합적인 기능, 기계적인 기능이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각각의 바둑알은 외부성을 특징으로 한다. 장기의 말이 각각의 말에 내적인 본성이 있는 것과 다르다.  바둑의 매끄러운 공간은 장기의  패인 공간과 대립한다. 바둑의 노모스와 장기의 국가아 대립한다.  노모스는 폴리스에 대립한다.  그차이는 장기가 공간을 코드화  탈코드화하는 반면 바둑은 공간을 영토화 하거나 탈영토화 한다. 

 

전쟁기계는 코드화, 탈코드화 방식으로 작동하는  아니라  영토화,  탈영토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패인 공간 안에서 어떤 위치를 확보하려는 투쟁이 아니라, 개방된 공간에서 공간 자체를 장악하면서 삶의 지반 자체를 변환시키려는 투쟁이다.  법이라는  패인 공간안에서 어떤 위치를 확보하려는 투쟁과 개방된 공간에서 공간 자체를 장악하면서 삶의 지반 자체를 변환시키려는 투쟁은 분명히 다르다. 

 

3) 국가장치와 전쟁기계

전사는 법과 법정이라는 제도화된 전쟁을 배반하는 자고 그럼으로써 입법하는 자를 무시하는 자며, 구가 권력에서 벗어나는 자다. 이런 자들은 제국과 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 도시와 문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라는것이다.  유목민들은 도시라는 현상을 문명이라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문명이나 예절을 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안정된 권리를 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목숨을 걸고 혁명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국가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면, 아편과도 같은 막강한 힘을 갖는 어떤 이념을 가정해야 한다.

 

국가장치와 전쟁기계는 서로 외부적이다.  전쟁기계란 국가장치가 이해할  있는 어떤 내부에서 오는 것이아니다.  그런데 이런 외부성을 국가장치의 일부로 착각하게 하고 그래서 전쟁기계과 국가장치를 뒤섞게 만드는 것은 많은 경우 국가장치가 전쟁기계를 포획하여 사용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군대가 대표적 사례이다. 군대를 동원해 국가 장치를 장악하는 쿠테타가 그것이다. 국가에 포획되어 있는 군대가 국가인들의 권력다툼에 동원되고 이용되는 거다.  전쟁기계가 국가 장치를 장악하는 것은 군대를 이용해 국가 장치를 장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쿠테타 이후 새로운 권력자 중심으로 작동된다는 점에 이전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없다 .반면 전쟁기계가 국가 장치를 장애하는 경우 대개 국가장치를 잉요해 전쟁 자체를 재생한하고 유지하려는 사태가 발생한다.

 

3. 국가장치의 구성을 저지할 방법이 있는가?

1) 국가장치를 저지하는 요인

클라스트르는 원시인들이 국가 장치와 같이 복잡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통념을 반박하려 한다.  그는원시인들이 복잡한 국가장치를 몰라서 단순한 형태의 조직만을 갖고 있었던  아니라, 반대로 일부러 그런국가장치의 출현을 저지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관계를 만들었다. 예로 추장은  위신 외에는 제도화된 무기가없고, 설득 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으며, 집단의 욕망에 대한 감지 외에는 다른 규칙이 없는 상황이다.  추장은권력자라기 보다는 스타에 가깝다. 항상 백성들에게 거부당하고 버림받을 위기에 처해 있다. 높은 위치를 과시하기 보다는 무거운 부담들과 여러가지 책임을 진다. 전권을 장악하는 군주가 아니라 불확실한 다수의 동의를 유지하는 정치가이다. 미개민족들 사이에서  관대함이 권력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힘들고 굳은 일을 도맡아 하고, 필요한 것을 구해주며, 가진 것을 동료들에게 나눠주는 사람이다. 그의  추종자들이  모든 것을최대한 이용한다.

 

전쟁기계 하면 군대를 떠올리기 쉽고 군대는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 규율과 훈육을 떠올린다.  훈육은 국가가전쟁기계를 전유한 뒤에 나타나는 특성이다.  전쟁기계는  전사의 근본적인 무규율, 위계제에 대한 문제제기, 떠나겠다거나 배반하겠다는 영구적인 공갈, 명예에 대한 변덕스러운 감각에 생기를 불어 넣으며,  모든 것들은 다시 한번  국가의 형성을 방해한다.

 

2) 국가장치와 교환

전쟁이 국가에 반하는 것인 만큼 전쟁을 통해 국가 장치의 성립을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국가를 설명해주는 것은 교환이다.  전쟁은 교환을 한계짓고 동맹  틀안에서 유지하는 것이다.  전쟁은 국가적 성분이되는 것을  집단들이 하나로 융합하는 것을 저지한다.  클라스트는 원신사회에서 전쟁을 교환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에 발생하는 다른 수단에의한 교환의 연속이라고 보았던 레비-스트로스를 비판한다.  전쟁의기능은 자급자족[체제의 유지] 위해 교환과 싸우는 것에 있다. 전쟁은 각각의 공동체에게 다른 공동체와의차이를 통해 하나의 통일성을 주면서 집단의 분산과 세분화를 유지시킨다. 전쟁이야 말로   사회의 동력이었다. 왜냐하면 전쟁에 의해서만 독립하려는 의지, 원심적 경제를 추구했던, 그리고 통합적 권력이나 국가, 불평등, 위계재 등의 부재를 추구했던 이들 사회의 기능의 논리가 이해   있다. 

 

국민적 규모의 시장 형성이 근대 국민 국가의 형성에서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도시국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가와 교환사이의 긴밀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 사회계약론은 계약에 의해 국가의 발생을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홉스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전쟁이라는 끔찍한 전쟁 상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계약에 의해 대표자를 선정하여 그에게 모든 권리를 위임한다는 것이다.  전쟁 상태에 대한  홉스의관념 역시 등가적인 인간들이 거래하는 시장에서 출현했을 것이다. 내것은 비싸고 팔고 남의 것은 싸게 사야하는 내정한 전쟁 같은 상황이 그게 바로 시장의 상항이다. 교역과 계약이라는 시장의 모델을 통해서 국가와그것의 탄생을 설명하고 있다.  

 

3) '원국가'  국가 저지 메커니즘

노동시간의 문제는 단순히 생산성이나 생산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먹고사는  필요한 것만 생산하면 되는사회인가 아니면 그것을 넘어서 비축하거나 축적할 것을 생산해야 하는가 하는 차이가 결정적이다.  원시인들에게 저장하는 것이란 도덕적으로 경제적으로도(자연의 저장량을 고갈시킬  있음) 사회적으로도 (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이 나타날  있음)비난할 만한 일이었다. 이런점에서 사회와 역사, 단순한 것과 복잡한 간의 진화론적 선형성에 대한 클라스트르의 비판에 동의 하지만  국가가 대규모 생산력 발전의 전제라고 보는 점에서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국가 없는 원시 사회와 국가 있는 문명사회의 이항성에 동의 하지 않고 니체식의 원국가 가설을 지지하는방식으로 국가 없는 사회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국가는 항상 존재해왔다고 말할  있다.  경우 국가 저지매커니즘은 어떻게 되는가 ?  원국가란 권력의 집중이 극한을 향해 진행되지만 문턱을 넘기 전에 격퇴되고방지되는 그런 국가로 정의하고 있다. 국가 장치로서 확고하게 지배력을 획득하진 못했지만 권력의 집중이문턱을 넘기  극한에 이른 상태이다. 

 

원국가의 외부에서 원국가를 겨냥하여 작용하는 것이 국가 저지  매커니즘이다. 전쟁기계는 항상 국가 장치와의 상호관계 속에서 보아야 한다. 독립성의 관점이 아니라 영구적인 상호작용의  속에서 공존과 경쟁의관점에서 외부성과 내부성,  변형의 전쟁기계와 동일성의 국가장치, 밴드와 왕국, 거대기계와 제국에 대해 사고해야 한다. 동일한 장이 국가 안에서 자신의 내부성을 한정할  아니라 국가에 대항하는  안에서 자신의외부성을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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