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되기란 음악과 음악 아닌 모든 것이 만나는, 음악과 음악 외부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10장에서  되기의 과정이 음악 아닌 것에서 음악으로 넘어갔다면, 이번 장에서는 음악에서 음악 아닌 것으로 나아간다.

 

1. 리토르넬로란 무엇인가

1) 음악에서의 리토르넬로

리토르넬로는 기악곡을 구성하는 형식과 관련이 있다. 연주의 순서가  총주(A라고 가정) 시작하고 다른 악구인 B 연주한다. 그게 끝나면 다시 변형된 A’ 연주하는 총주가 등장한다이를 도식하면 A-B-A′-C-A″…A이다. 이처럼 변형되면서 반복되는 A 계열들(A, A′, A″ )을 리토르넬로라고 부른다모호하고 혼돈된 것에 어떤 하나의 질서와 통일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단순한 후렴처럼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A, A′, A″ 등과 같이 변형되면서 상이하게 반복된다. 차이화하는 반복이다. 이는 리듬과 매우 밀접하다. 선율이나 편성의 변화에도 리듬이 반복된다면 어떤 통일성이나 안정성을 느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선율을 반복하며 리듬을 변주하거나 리듬과 선율 모두 반복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음색과 음량 등의 차이를 줌으로써 반복을 유효하게 한다차이 없는 동일한 선율과 리듬의 반복은 견딜 없을 것이다니체식 영원 회귀와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과 밀접하게 결부된다. 

 

2) 리듬적 인물과 선율적 풍경

음악에서 어떤 주제를 변주하며 만들어지는 선율적 텍스처에 대해서도 차이나는 반복으로 리토르넬로를 구현할  있다. 리듬으로 어떤 곡을 구별하는 것을 영토성이라고 표현할  있다. “, 이건 폴로네이즈, 이건바로크 음악, 군악대의 행진곡 하는것이다여기서 반복과 결부되어 있는 것을  영토적 모티프(동기)’라고부른다 모티프에 대위적인 선율을 붙여 나름의 표현적 형식을 구성하는 것이 영토적 대위법이다.  모티프는 반복되는 요소임에 비해, 대위적 음들은  반복적인 모티프에 끊임없이 차이를 부여하는 요소이다. 들뢰즈/가타리는 전자를 리듬적 인물’,  후자를 선율적 풍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인물은 반복의 방식으로 일련의 장면들에 어떤 통일성 부여하고, 풍경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동일한 장면에 머물지 않도록 차이화한다.  리토르넬로란 반복되는 리듬뿐만 아니라, 이질적 요소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배치로 만들어내는 반복적 성분이라고   있다.

 

3) 음향과 배치

새의 노랫소리는 새의 영토를 표시하며 동종의 새들에게  ‘가까이 오지마’라는 거리를 두게하는 방식이다. 음향적 성분에 의해 지배되는 배치를 특정화하는 개념이 리토르넬로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음악-되기는 단지 음악이라는 특정한 영역이 아니라, 음향적 성격을 갖는 모든 종류의 배치에 관련된 것이다. 시계나 시간표에 맞추어 자신의 신체와 행동, 자신의 삶을 조절하는 능력이 리토르넬로를 통해 만들어진다영토적 배치를 형성하고 표현적 리듬을 형성하는 나아가 이행의 성분을 작동시켜 절대적 탈영토화를 향해 배치를 개방하는 , 이를 위해 음향적 성분을 이용하거나변형시키는 , 이것이 음향적 배치 안에서 음악-되기의 중심적 문제다들뢰즈/가타리는 음향적 성분 자체의 특권화를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청각적 리토르넬로가 갖는 특권적 성격을 강조한다이는 음악의 탈영토화 계수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그러나 음악-되기를 강조하는 것은 어떤 음악적 형식이나 영역을 특권화하는것이 아니라, 차라리 음악적 형식에서 탈영토화될 가능성을 뜻한다.

 

2. 리토르넬로의  가지 측면

 리토르넬로에는 방향적 성분, 차원적 성분, 이행적 성분 세가지가 있다.  각각  방향을 표시하고  질서 구성하며, 다른 배치로의 이행 성분이다.  

 

1) 방향적 성분

폴로네이즈는 폴란드의 춤곡 형식이다. 춤곡은 반복되는 동작에 리듬을 부여한다. 동작이나 소리의 카오스적인 흐름에 리듬적인 형식으로 변환시킨다 쇼팽 작품에 폴로네이즈란 이름을 가진 곡이 많다이는 폴란드민속적인 춤곡만을 뜻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이미 탈영토화되어 일반화된 어떤 리듬적 형식의 이름을 표시하면서 폴란드 춤곡이라는 발생적 기원을,  영토적 기원을 표시한다. 방향적 성분은  영토적 배치의 기초(하부) 이룬다는 점에서 하부배치라는 개념에 대응시킨다. 

 

2) 차원적 성분

차원이란 말이 측도의 복잡성을 정도를 표시한다. 차원적 성분이란 애초의 선율에 대위적 음들을 붙이며 다른 차원으로 확장하고 풍부화하면서  나름의 구성적  조직을 만드는데 작용한다. “예술이란 우선 포스터요 플래카드라 말이 어떤 영토를 표시 했다면  차원적 성분으로  독자적인 표현적 구성물로 바뀌고, 이는독립적인 스타일 된다. 가령 모차르트의 <작은  주제에 의한 변주곡>  반짝반짝 작은 …” 이란 노래의 선율에 대위적 음들을 붙여 원래 동요와 다른  피아노 곡이 된다. 원래 동요의 곡이 방향적 성분이라면 모차르트가 붙인 대위적 음들은 차원적 성분이다이는 배치의 내부에서 배치를 특정한 표현형식으로 조직한다는 점에서  내부배치 이룬다고도 말한다.

 

3) 이행적 성분

하나의 배치에서 다른 배치로 이행하는 성분이다. 동일한 선율을 그대로 반복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음악에서의 모든 주제는  자체로 이미 변주라고   있고, 이는 차이를 통해 하나의 배치에서 탈영토화하는것이라고   있다. <작은  주제에 의한 변주곡>에서 원래의 동요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배치로 들어 갔으며, 반복될때 마다 새로운 변형을 포함하며 나타난다. 이는   가지 상이한 배치 사이에 있다는 점에서 사이-배치라고도 한다.

 

3. 배치와 리토르넬로

1) 카오스에서 환경으로

카오스적인 질료에서 리듬을 통해 환경이 발생하는 계기가 영토적 배치의 기초를 이루고,  영토적 대위법이라는 차원적 성분을 통해 표현적인 질을 획득할때 영토가 발생한다고 정의 한다. 하나의 영토 위에서 이행적 성분을 통해서 상이한 배치로의 이행이 발생한다.  카오스에 대한 환경의 응수가 리듬이다. 환경이란 개체의 외부가 아니라 개체와 외부의 중간, 개체가  외부화되는 지대면서 외부가 개체 내부로 진입하는 지대다. 환경은성분의 주기적 반복에 의해 구성되는 -공간 블록이다. 생명체는 물질로 소급되는 외적 환경을 갖고 구성하는 요소와 구성되는 실체로 소급되는 내적 환경을 가지며, 막과 경계로 소급되는 매개적 환경을 갖고, 에너지원천과 지각 행동으로 소급되는 부속환경을 갖는다. 각각의 환경은 코드화 되고 하나의 코드는 주기적 반복을 통해 정의 된다.   환경 자체에는 코드들이 섞이거나 변이됨으로써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지는 교호와 횡단이 항상 존재한다. 환경은 그자체로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환되는 코드, 가변화되는 리듬을 통해 카오스라 불리는 변형의 요소에 늘상 닿아 있다. 

 

2) 영토와 표현

환경이 기능와 결부되어 있다면 영토는 표현과 결부되어 있다.  영토는 환경이 아니라 환경과 리듬을 영토화한 산물이다. 영토를 정의하는 것은 표현질료의 출현이다. 개가 영양을 섭취하고 배설하는 고유한 대사작용과 관계된 것이라면 환경을 구성하는 기능적 행동이다. 하지만  동네 여기저기에 오줌을 누고 똥을 싼다면  영역표시를 하는 것이다.  표현적 배치를 형성하는 것은 고유한 스타일이 만들어질 때이다.  고유한 스타일로그게 누구의 영토인지를    있다.  환경이 다른 종을 만드는 것이라면 영토화는 종안에서   안에 있는다른 개체와 비판적(임계적) 거리를 만드는 거다.  코드화된 행동이 어디서나 동일하게 반복하는 것이란 점에서 영토 이전적인 것이고, 영토적 행동이란 어딘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 만큼 코드화의 여백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3) 영토와 스타일

스타일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 질표는 어떻게 표현적 질을 얻게 되는가 ?  음악가인 새와 -음악가인 새를 객관적으로 구별해주는 것은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모티프와 대위-점들에 대한 능력이다. 그것이야말로리듬을 분절하고 선율을 조화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인해 어떤 새가 노래를  잘한다고 하거나  어떤것이 다른 것에 비해  낫다고 하는 이야기도 가능해 진다. 표현적으로 얼마나 훌륭한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어떤 표현적 일관성을 만들어냈는지를  평가할  있기 때문이다. 

 

표현적 질의  요소는 영토적 모티프와 영토적 대위법이다. 영토적 모티프는 리듬적인 얼굴 내지 인물을 형성하고, 영토적인 대위-점들은 선율적인 풍경을 형성한다.  오페라에서 아직 인물이 나타나지 않았어도 모티프가 나오면 등장인물을 예상할  있다.   모티프를 유도동기라고 하며   유동동기는 다른 색조로 변주되고 변형된다.  계속 변주되고 변형되는 말뚝이다. 하나의 장면을 구성하는 다른 음들과 다른 모습으로 섞이면서 등장하는 모티프-인물이다. 선율적 풍경은 가곡<마왕>에서 긴박한 변화와 교차 가운데서도 운명처럼 닥쳐오는 죽음과  죽음 앞에서의 불안과 공포, 극것을 극복하기 위한 긴박하고 처절한 쟁투가 하나로 어우러져 일관성을 만들어 낸다.  전혀 다른 선율의 전혀 다른 소리들이  변화속에 만들어지는 풍경을 만들어, ‘마왕이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하나의 인물 생생하게 만든다.  선율적인 풍경도 무한히 변화하는 리듬적인 인물이 된다고 한다. 

 

4) 배치와 이행

배치는 영토와  다르다. 동일한 영토에 상이한 배치가 대응할 수도 있고,  반대도 가능하다. 굴뚝새과 트로글로디티다에 수컷은 침입자에 경호하는 뮤직박스 리토르넬로를 생산하여 자신의 영토를 만들고 그것에 약간의 변주를 부가하여 암컷을 향한  구애의 리토르넬로 만든다.  영토적 배치에서 구애의 배치로 이행한다.  여기서 새는 영토를 떠나지 않은  배치를 바꾼 것이다. 이를 배치의 이행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영토적배치 안에서 새로운 배치의 형성을 항상화하는 것이다. 이는 내부-배치에서 사이-배치로 넘어가는 운동이다.  암컷을 향한  영토의 혁신적 개방이 수반된다. 하나의 영토적 배치는  언제나 끊임없이 다른 배치로 이행한다.  탈영토화의 도중에 있으며, 최소한 잠재적으로나마 다른 배치로의 이행의 도중에 있다.

 

4. 배치와 일관성

1) 일관성 

 배치와 관련해 일관성의 개념은 두가지 상이한 수위에서 사용된다. 하나는 이질적인 것들이 하나의 배치가되게 묶어주는 것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배치를 이루는 요소들이  배치의 일부가 되기 위하여탈영토화되는 것을 통해, 절대적 탈영토화에 이르는 것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일관성이란 영토적 배치의 성분 전체를 하나로 묶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바이올린과 포도는 이질적인 대상이지만 피카소는 그들의 원래모습과 색깔을 탈영토화 하나의 그림으로 묵어 낸다.  여기서  통일성이 아닌 일관성이라 함은 요소가 갖는이질성을 제거하지 않는 것이랑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질적이고 상이한 배치들이 서로 이행하고 교대할  있게 해주는 것이 두번째 의미에서 일관성이다.  상이한 배치들이 이행이라는 것을 통해 잠재성의 차원에서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다.  앞서의 것이 어떤 요소를 하나의 배치로 묶어주는 것이었다면, 이번 것은 여러 배치를 이행 가능성이라는 잠재성의 차원에서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다.  예를 들어  라는 개념으로 도자기와 난의 잎과 산세, 혹은 검의 감응 등을 하나로 묶는다. 이는 있는 그대로   탈형식화된 양상을 하나로 연결하여 포착하는 것이다 .

 

  일관성의 구도(플랑)에서  플랑이란  접속의 양태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일관성의 구도는 모든 방향에서 접속에 대해 열린, 그리하여 모든 종류의 양태가   있는 구도라고   있다.  접속의 선이 증가함에 따라 다른 성질을 갖는 다른 양태가   있는 구도다.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개개의 양태와 대비되는 실체, 혹은 개개의 양태에 내재하는 실체라는 개념과 닿아 있다. 

 

2) 일관성과 이질성 

 이질성이 유효한 범위내에서 하나의 배치로 묶이고 일관성을 형성하기 위해서 자신이 갖고 있는 기능이나성격, 위치 등이  영토화 되어야 한다.  각각의 이질성이 그대로 잔존하기에 다른 배치로 이행하게 하는 변환자로 쉽게 전환된다. 하지만 이질적인 요소들을 결합하여 콜라주하는 경우 콜라주된 각각의 부분들이 살아남아서  성질을 그대로 발휘하고 있다면 그건 그야 말로 오려 붙이기에 지나지 않는다. 남의 것을 많이따다썼는데도 만들어진 전체가 원래의 요소들과 전혀 다른 종류의 표현적 능력을 갖게 될때 우리는 비로소나름의 표현적 자율성을 획득했다고 말한다. 수합한 쪼가리들이 모여 일관성을 형성할 정도로 충분히 탈영토화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이 하나의 새로운 작품이라고 말할  있는 경우이다.  일관성은  응고라는개념으로 설명할  있다.  이질적인 것이 합쳐져 강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응고는 세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첫째,  선형적으로 계속되는 시작과, 밀집화 강밀화, 보강, 주입, 첨가  있다. 둘째  응고시키기 위해선구멍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간격의 이동, 불균등의 분배가 있다. 마지막으로  박자나 운율을 부과하지 않으면서 행해지는 이산적 리듬의 중첩, -리듬성 내부의 분절이 있다. 

 

3) 배치와 기계  생명

 어떤 배치가 탈영토화하는 운동 속에서 포착될 때면 언제나 하나의 기계가 발동한다. 기계란  탈영토화되면서 새로운 배치의 구성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는 배치로 영토화되는 것이며, 배치로 영토화되는 한에서만 어떤 기계로서 규정되고 작동된다. 여기서 기계는  어떤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을 일컫는다. 여기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생명의 자리는  일관성의 이득을 뜻한다고 말한다. 어떤 것을 원래 그것이 속해 있던 지층에서 떼내고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 획득할  있는 능력이 일관성의 이득이고, 탈지층화의 잉여가치이다. 그리고 이처럼 어떤 것을 탈지층화 하여 하나로 묶음으로써  이득을 획득할  있는 것이 바로 생명이다. 변환 변용 능력을 통해 정의된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능산적 자연개념에 가깝다. 

 

5. 음악에서의  가지 배치(고전주의, 낭만주의, 모던)

 1) 고전주의

고전주의 특징은 카오스의 힘들을 길들여 조직화되지 않는 음향적 질료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고전주의 배치는 하나에서 둘로 나누어지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동적인 것과 정적인 , 빠른 것과 느린 , 불규칙적인 것과 규칙적인  등의 상반되는 요소가 교차하고 공존하거나 갈등을 만들어 내고 해소되는 식으로 진료들이 조직화 된다. 

 

 2) 낭만주의

   신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영웅이 낭만주의적 배치에 고유한 것이다. 독일 낭만주의에서는 민중적인 영웅이아니라 대지의 영웅이다.  라틴계 슬라브계는  대지적인 힘조차 민중을 통과하고 민중을 매개한다. 대지로의영토화가 아닌, 민중의로의 영토화가 나타난다. 바르톡의 경우 다양한 민요의 음계나 리듬의 요소를 섞어서새로운 음계와 리듬을 구성해내거나 여러음계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전통적 조성을 넘어 새로운 지대까지 나아간다. 민요를 탈영토화해서 새로운 음계와 리듬, 색채의 소리를 만들어 낸것이다. 이러한 바르톡이작업이 민중들의 소리를 기악화 했다고 말한다. 독일의  나치는 민중들을 대지로 영토화하는데 바그너 음악을 이용하였다. 낭만주의 배치에서 플롯이라고 부르는 형식을 이용 극이나  음악의 흐름을 극적인 방식으로조직하고  극적인 흐름으로 청중들의 감정을 끌고가서 가타르시스를 이루게 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도취효과를 이용해 청중의 감정을  작품의 흐름에 동일화 시킨다. 이런 도취효과를 극대화  것이 바그너 음악극이다. 

 

3) 모던 

  절대적 탈영토화를 향해 개방되는 배치가 바로 모던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배치를 특징짓는다. 배치는  이상 카오스의 힘과 대면하지 않고, 대지의  내지 민중의  안에서 깊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주의 힘을 향하여 개방된다.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라는 음악이 대표적이다.  이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했던 사람중하나가 윤이상이다.  서양음악과  한국의 전통음악을 탈영화하여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냈다.  전자음악과한국 전통음악의 소리들을 하나로 묶어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냈다. 소수적인 음악을 통해서 다수적 음악을 더듬거리게 하는 훌륭한 소수적 음악을 창조했다.   우주적 탈영토화는 질료와 형식이라는 고전적 요소가아닌, 소재와 힘의 요소라 저자는 말한다.  어떤 음향적 소재를 통해서 비가시적인 힘을표현하는 것이다.  소재는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첫째 그것은 분자화된 소재고,  둘째,  그것을 포착해야  힘과 관련돼있으며  셋째 그것에 포함된 일관성의 작용에 의해 정의 된다.  일관성을 형성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간결성이다. 

 

6. 리토르넬로와 민중 

 리토르넬로와 민중에 대해 다시 이야기 한다. 현대의 예술가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민중이라는 것이다.  책은 민중을 필요로 한다라는  말라르메의 말을, “문학이란 민중에 관한 문제 라는 카프카의 , “민중은본질적이지만 가장 결여된  이라는 클레의 말을 인용한다.  카프카에게 문학이 민중의 삶에 어떤 출구를보여주는  이를 위해 지금은 비가시적인 다른 방식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중의 삶을 바꾸는 문제를다루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색깔로는 민중을 움직이지 못한다. 깃발은 트럼펫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며, 레이저 광선은 소리로 조절된다. 리토르넬로는 무엇보다도 우선 음향적이다.  하나의 리듬으로 사람들을 묶어줄  있는 음향은 민중들이 움직이고 싸우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시간이 많을때 아내와 무료 영화를 본다. 무료 영화는 오래된 영화가 많다. 운이 좋을때 뜻밖에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영화를 만나다. 둘의 취향이 달라 둘다 만족하는 영화는 많지 않다. 2014년 영화 <내가 잠들기전에> 를 같이 보았다. 둘다 만족했다. 지루하지 않았고 기억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사고로 기억 상실증에 걸린 40대 여성 크리스틴이 기억을 되찾아가며 사고의 가해자를 찾게 된다. 크리스틴 역은 니콜 키드만이 열연하였다. 매일 아침 과거의 기억이 사라진 채 깨어난다. 아침이면 기억이 리셋 된다. 옆에 누워 있는 남편 벤 조차기억에 없다. 일어나면 남편에게 누구인지 물어 본다. 단기 기억 상실증인지 전체 기억이 없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침실 벽변에 붙여 있는 사진과 이를 설명하는 내용이 그녀가 깨어났을 때 옆에 누워 있는 남자가 남편임을 설명한다. 부부의 결혼 사진과 추억을 담은 사진이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자 전화벨이 울린다. 크리스틴의 기억 상실증을 알고 치료를 시도하고 있는 내쉬 박사이다. 내쉬 박사는 그녀에게 잘들기전 하루동안 기억한 내용을 동영상으로 녹화 한다. 그녀의 보조 기억 장치이다. 내쉬박사는 전화로 동영상 카메라의 위치를 알려주고 그 동영상을 보게 만든다. 그 영상이 자신 기억의 시작점이다. 여기에 의존하여 행동하고 판단 할 수 밖에 없다. 크리스틴은 내쉬로 부터 기억 상실증을 유발했던 사고의 진실을 듣게 된다. 온몸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나체 상태로 발견 되었다고 한다. 크리스틴은 그 사고의 진실을 찾아 나간다. 그 사고의 궁금증으로 인해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크리스틴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이 누구 였을까 ?

크리스틴은 내쉬 박사와 치료 과정을 통해 토막난 기억을 불러 온다. 출산을 했고 자녀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남편 벤은 아들 아담이 있었는데 수막염으로 세상을 등졌다고 설명 한다. 크리스틴은 내쉬 박사로 부터 남편 벤과 4년전에 이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편과 같이 살고 있는데 이혼했다니 현실과 맞지 않는 사실이다. 그녀를 애타가 찾았던 친구, 클레어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녀의 어렴풋한 기억속에 강하게 다가왔던 친구였다. 남편 벤이 말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남편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남편에게 이혼 사실을 확인했는데 그녀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 왔다고 한다. 자신의 과거를 남편의 말에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객관적인 과거를 확인해줄 옛 친구 클레어를 만나게 된다.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남편 벤에 대한 의심이 사랑의 확신으로 바뀐다. 남편 벤에게 그동안 숨겨 왔던 내쉬박사 이야기를 했을때 남편 벤은 폭력을 행사 한다. 사실 남편 벤은 그녀의 진짜 남편이 아닌 그녀의 불륜남 마이크 였던 것이다. 마이크가 사진과 이야기로 그녀의 기억을 조작하였다. 그녀의 남편 벤을 연기하고 있었다. 진짜 남편 벤은 크리스틴과 4년전 이혼했고 아들 아담과 같이 살고 있었다. 남편 역할을 했던 마이크는 크리스틴에 집착하다가 폭행까지 하고 기억 상실까지 유발하게 만들고 남편 행세를 해왔던 것이다. 결국 크리스틴은 진짜 남편 벤과 아들 아담을 만난다. 아침이면 아들 아담과 대화했던 내용을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 기억을 일부 찾은 것 같았다.해피 엔딩이었다.

기억 상실증을 다룬 영화 또다른 영화 <메멘토>를 떠올렸다. 주인공의 기억은 15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자신이 겪은 일을 메모와 문신으로 남긴다. 그기록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다음 행동으로 이끈다. 잘못된 기억은 전혀 뜻박의 행동과 결과를 초래하게 한다. 두 영화 모두 기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 영화 였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기억이다. 내 정체성과 통일성은 기억으로 부터 나오고 행동도 기억에 의존 한다. 내 정체성은 내 기억에 의존하지만 다른 사람의 기억도 필요로 한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나를 기억해준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나는 그 곳에 없는 존재이다. 영화속에서 크리스틴을 기억해주고 잘 못된 기억을 수정해준 클레어를 통해 진실에 다가 갈 수 있었다. 기억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억하는 내용 바뀌고 동일한 과거의 경험도 다르게 해석되어 기억된다. 아픈 기억만 떠올려 삶을 구속하는 경우가 있다. 선의의 행동으로 기억되었던 내용이 진실이 알고 나나 악의 였음을 알게 되어 기억을 수정도 하게 된다. 나의 기억들을 불러와 정리할 필요성을 느낀다.

사실상 기억이 없다면 우리 각자가 ‘나' 라고 부를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와해되고 만다. ....나는 시간 속에서 끝없이 변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무언가가 있어서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일까 ? 아니면 애초에 그와 같은 불변의 자아는 환상인 것일까 ? 이와 같은 물음을 정체성 또는 자기 동일성의 물음이라고 한다. 자기 동일성의 문제는 시간적 사건들을 하나의 실로 연결하는 기억의 작용을 고려하지 않으면 답할 수 없다. (91p, 물질과 기억)

 

'문화 읽기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원에 뿌려진 고통 - 영화 <윈드리버>(2017) 를 보고  (0) 2022.02.05
메맨토  (0) 2021.11.16
영화 ‘타인의 삶’  (0) 2021.11.11

 

4. 분자-되기, 음악-되기

 

1) 분자-되기, 혹은 되기의 분자들

 -되기에서 중요한 것을 스스로를 변용시켜 개와 관련된 어떤 것을 구성하는 이며, 그로써 분자적인개를 생산하는 것이다. 개를 정의하는 요소 내지 원소를 생산하는 , 개의 특질, 개의 감응을 만드는 어떤 분자를 생산하는 것이다.  종적인 개가 아니라 개의 감을 만들어 내는 분자적인 요소들의 구성물의 개고,  사물로서의  아니라  되기로서의 라고   있다.  이것이 개의 분자적 성분을 통해 정의되는 -되기이다.  동물-되기는 이런식으로 어떤 동물의 분자를 생산하고 분자적 동물을 방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저자들은 모든 되기들은 이미 분자적이라고 말한다. 모든 되기는 짝으로 선택한 항의 감응과 특질을갖는 분자를 생산를 생산하는 것이다. 

 

가령 버지니아 울프가 글을 쓸때, 그는  여성으로서 글을 쓰는  아니라 글을 쓰면서 여성이 된다. 소수-, 여성-되기란  여성이 되는 것이고 소수자가 되는 것이지 그들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 저런 개가  있는 분자적 성분들을 자유롭게 생산하고 구성할  있을  그는 다양한 능력을 갖는 게가  것이다.  어떤 질의 항도   있는 원소-되기,  양자-되기 개념에 이르게 된다. 분자 -되기의 문턱을 넘어서  멀니. 나아가는 경우 질이 추상된 되기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어떠한 , 어떠한 항이라도   있는 원소적 되기의 지대는, 지각불가능한 되기의 지대이다. () 혹은 () 지대 도라고 불리는 지대가 나타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일관성의 구도라고 부른다. 

  

2) 되기의 블록

성가를 부르는 것은 오랫동안 남성들만   있었다. 성가에도 음역이나 음색이 다양화 되고,  여성과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고유한 음색을 사용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남성들이 알토나 소프라노의 음역을 노래할  없지만  여성이나 아이들의 소리를 내게하는 방법이 만들어 진다.  카운터 테너라고 불리는 가성을 이용하는 방법과 카스트라토  사춘기 지나기 이전의 소년을 거세하여 소프라노 음역을 노래하게 하는 방법이 .  가스트라토 특별한 인기를 얻었던 것은 상이한 신체조건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성량과 음색의 차이, 표현력의 차이 였다. 기계적인 조작을 통하여 여성-되기, 아이-되기를 하는 방법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되기가 이루어지는  이항성은 분해되고 깨진다. 이는 데리다와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사이가 다른 함축을 갖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데리다가  항이 섞이는 사례를 통해 이항적 구별 자체를 비판하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혹은 이것인 동시에 저것인 경우의 존재 통해 사이 정의한다면, 들뢰즈와 가타리는이항적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되기 통해,    사이 지나가는 생성의 선을 통해, 현실로 존재하는이항성의 지배를 깨고 뒤엎으려고 한다.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이의. 거대한 이항적 구별이 사라진다.  남성, 여성, 성인, 아이라는 몰적인 집합체는탈토화의 선을 따라 붕괴된다.  되기는 이처럼 이항적인  사이의 되기는,   사이를 지나가는 생성의 선이고, 이항성의 지배를 깨고 뒤엎는다. 양성성의 존재가 아니라 남성도 여성도 양자-사이에 있는 여성-되기속으로 말려-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카운터 테너나 카스트라토의 여성-되기, 아이-되기는, 이중의 탈영토화운동으로 봐야 한다. 하나는  소리가 여성-, 아이- 되는 것이고 다른  여성 내지 아이가 소리, 순수한 음향이 되는 것이다.

  

3) 되기와 모방

음악에서 동물-되기를 이해하려면  제니스 조플린의 <서머 타임> 들어 봐야 한다.  이는 사람의 목소리가표현할  있는 영역을 새로이 만들어 냈다.  추가적으로 음악에서 -되기를  보여준 사람은 메시앙 이다.  그는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조류도감>이란 곡을 통해 음악에서 -되기를 실행 하였다.  새소리를 모방하고 묘사한  아니라 새소리를 음향학적으로, 음계와 음조, 리듬 등을 음악학적으로 연구하여각각의 새들이 음악 만들어내는 표현형식을 찾아냈다. 그것을 이용해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화가나 음악가는 동물을 모방하고 묘사한  아니다.  새소리를 음향학적/음악학적으로 탈영토화하여 재구성함으로써, 그것을 통해 악기소리로 새의 감응을 만들어  것이다.  <자연>과의 가장 깊은 화합 속에서 동물을 자신들이 원하는 어떤 것으로 되게 하고, 그들 스스로도 동물이 되는 것이다.

  

4) 분자-되기와 소수-

여성-되기나 동물-되기에서 실제로 만들어진 것은 여성의 목소리도 늑대의 목소리도 아니다.  각각의 성분들이 모여서 고유하게 만들어지는 분자적인 소리고, 때와 장소에 다라 달라지는 특개성을 갖는 목소리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되기는 새로운 분자적인 성분을 만들어내는 창조요 창안이고, 분자적이며 분자-되기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지배적이고 다수적인 척도에 따라, 지배적인 몰적 구성체에 따라 분별하고 판단한다. 몰적인 구성체로 포착할  없는 것들은  지각될  없는  된다.  지각 불가능한 것은 거대한 절단기계에 의해  예술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양단되어 다수적인 것이 되거나 아니면 무시되고 버려지거나 억압되는 선택만이 남는다.  지각될  없는 분자적 차이만으론 불가능하다. 그것이 만드는 독자적인 세계를 개념으로 포착하고 말로 표현해야 한다. 성인 남성이라는 다수자가 지배하는 몰적 구성체에서 벗어나기위해 여성이나 아이라는 소수자의 몰적 성분을 이용하는 것이고 지각 불가능한 분자적 차이를 지각 가능한 몰적 개념으로까지 밀고간다.  이처럼 되기란 무어라 명명할  없고 무언지 명확하게 지각할  없는 분자적인 것을, 특개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배적인 , 다수적인 , 익숙하고 통념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것일  밖에 없다. 지각 불가능한 것은 되기의 극한이다.  이런 의미에서  되기는 소수적이며, 모든 되기는 소수-화일 수밖에 없다. 남성-되기, 백인-되기란 없다.

    

5. 지각-불가능하게-되기와 비밀 

1) 지각-불가능하게-되기

되기는 언제나 지각-불가능하게-되기를 향해가며, 지각 불가능한 것은 되기의 극한이다. 잠행자는 지각-불가능하게-되기를 추구한다.  잠행자는 현재의 체제, 현재의 상태 안에서 살지만 그것을 그것을 벗어난 무엇을 추구한다. 유토피아라 부르든, 이데올로기라 부르든 다른 상태를 향해 나아가며 현재와  지향점 사이에서 살고 있다.  체제 전복을 꿈꾸는  숨는 것이 아니며 지각 불가능한 것을 추구한다.  가장 탁월한 잠행은사람들 속에 사는 것이며, 모든-사람이-되는-것이고, 어떠한 사람이라도   있는 것이다.  잠행자-되기의가장 완벽한 극한이다.  

 

지각 불가능한 것을 지각하기 위해, 지각 불가능하게 되기 위해 지각을   바꾸는 인위적인 수단으로 약물을쓰기도 한다.  모든 약물은 속도와 속도의 변환과 관련 되어 있다 . 약물의 배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그것은 지각될  없는 것이 지각되고, 지각이 분자적이며, 욕망이 지각작용과 지각되는 것에 직접적으로 투여하도록 만드는 지각적 인과성의 성이다.”   양물에 의한 분자적인 미시지각은  양물에 따라서 환각, 망상, 허위지각, 환상, 편집증적 발작에 의해 뒤덮이는데,  이것들이 끊임 없이 일관성의 구도의 구성을 방해하는 무수한 유령이나 분신처럼 매번 형태와 주체를 재수립한다. 이런점에서 약물의 배치는 지각-불가능하게-되기의 수단일  있겠지만 거기서 우리는 결코 속도와 이웃관계의 주인으로 머물  없으며, 반대로 약물의 속도에 끌려가고 그것의 노예가 된다는 점이다. 

  

2) 비밀-, 혹은 비밀의  유형

되기는 모두 분자-되기며 그런 만큼 지각 불가능한 것을 포함하고 있기에 비밀이라는 개념과 결부되어 있다. 들뢰즈 가타리는 비밀의 세가지 유형을 제시한다. 첫째 내용으로서의 비밀이다. 어린이가 대응한다.  통상적인  비밀의  가까운 개념으로  무언가 감추어진 내용을 의미한다. 이러한 비밀스런 지각에는  어린이, 여성, 동물이 함께 한다. 남성의 몰적인 지각으로는 비밀을   없기 때문이다.  영화 <식스센스> <양철북> 어린이와 비밀의 빌접한 관계를  보여 준다.  둘째는  형식으로서의 비밀이다. 무한한 남성적 형식이라고 말한다.  정신분석학학에 해당된다.  증상들의 이면에 감추어진 비밀을 찾는 것이다.  상징이나 상상적인 것을통해 그것으로 표상되지 않은 실재계를 탐색하는 것이다.  다양하고   없는 형태를 취하는 말과 행동이결국은 아버지와 남근이라는 내용을 감추는 비밀스런 기호들이란 것을 밝히는 것이다. 형식으로서의 비밀이이런 의미이다. 세번째로  선으로서의 비밀이다. 순수한 여성적 선으로 비밀이라고 말한다. 여성은 아무것도숨기지 않은 채로도 투명함, 순수함과 속도에 힘입어 비밀스러울  있다. 무언가를 감출 생각 없이 나름의선을  그리며 가는데, 그것이 몰적인 개념이나 관념으로 이해될  없다는 의미이다.  모든 것을 감추지 않고드러내지만, 다수적인 척도 지배적인 관념, 몰적인 구획선을 비껴나고 벗어나 있기에 그런 척도, 그런 관념을갖고 있는 사람들로선 이해할  없는 사람인 것이다. 

 

6. 음악-되기의 원소들은 어디로 가는가?

1) 목소리의 기악-

베리오아 베르디가 목소리를 직접 악기로 사용하여   사람의 목소리는 노리에서 벗어나 기악적인 소리가 되었다.  이러한 기악화는 점음렬주의와 전자음악을 거치면서 주파수 변조라는 일반적 음향학적 성분으로 분해되고 그것을 통해 재조립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모델로 성악적인 소리와 창법 자체를 변환시키게 된다. 목소리가 분자-화의  혹은 원소-화의 선을 그리며 나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2) 분자-, 이온-, 원소-

프랑스 작곡가인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라는 제목의 작품은 음악적인 혹은 음향적인 화합물을 구성하는이온들의 상태로 소리들을 분해하고 결합하려는 문제의식이 표면에 강하게 드러난다.  이온화하는 방법은  악기의 소리와 악기 아닌 물체들이 내는 소리를 섞는 , 사이렌의 글리산도를 광범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 소리의 이온-, 음악적 소리의 원소-화는 원래의 음색에서 탈영토화되어 다른 종류의 소리를 구성하는 이온적인 원소로 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시도들은 모든 주파수를 음악적 소리로 사용하는 방향으로나아간다. 이제 주파수 변조 통해서 새로운 음색, 새로운 음향을 만들어내는 것이 음악가들의 중요한 작곡 방법이 된다.  이후 철도소리, 사람소리, 악기소리 등의 구체적 소리들을 녹음하여 이를 기계적으로, 전자기적으로 조작하여 변조하는 시도들로 이어진다. 이를 구체음악이라고  한다. 예상된 소리를  예상 밖의 소리로 바꾸는 시도는 우연음악으로 이어진다. 

 

3) 음악-되기의 블록, 혹은 일관성의 구도

메시앙은 다양한 반음계적 지속들을 융하하여 드러나게 했다.  별과 산의 무한히  시간과 곤충과 원자의 무한히 짧은 시간 사이의 관념을 암시하기 위해 그는  가장 거대한 지속과 가장작은 지속을 번갈아 가며 교체했다.  원소적인 힘과 우주적인 힘은 음악-되기의 블록을 구성하는 두개의  영토화의 성분이다.  이러한 되기의 블록은 우주적인 힘이 음악적 소리가 되기도 하고, 음악적 소리 자체가 원소화 되는 것이다.  우주적 힘의 음향화와 음향의 원소화이다. 음향이 원소화가 고유한 음악적 표현형식을 규정한다면 그것을 통해 표현되는 우주적인 것의 다양한 힘들이 내용의 형식을, 리토르넬로를 규정한다. 음악-되기의 블록에서 원소-화란 음악적 성분이 모든 영토적 성분이나 형식적 요소에서 절대적으로 탈영토화되는 과정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일관성의 구도에 이르는 길이다. 음악의 재료가 모든 주파수의 소리, 모든 길이의 소리를 포함하는 입자/파동의 수준으로까지 추상화되었다.  탈열토화를 통홰 동시에 모든 것을 구성할  있는 구성의 구도이다.  크세냐키스는 메시앙의 작품을 비판하며 음렬주의를 비판한다. 음렬이 12개의 소리로 제한되어야 하는가와 실제로 인간이 들을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적인 소리를 입자 내지 분자라는 원소적 층위가지 밀고가  흐름을 통해 어떤 우주적인 힘을 표현하는 . 이는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선들의 상이한 기울기들 그것들의 중첩과 혼합, 교차로 표시되는 음들을 음양화함으로써 우주적 힘을 음향화하고 있는거라고 말할  있다. 제니스 조플린의 음향적 늑대, 메시앙의 음향적 까마귀, 베베른의 음향적 알프스,바르톡이나 베리오의 음향적 민중, 크세냐키스의 음향적 건축이나 음향적 성운, 리게티의 음향적 대기 등등은 모두 이러한 원소-화와 우주-화의 블록안에 있다. 

  

4) 탈영토화에 관한 정리들

회화가 얼굴의 탈영토화라면 음악은 음성의 탈영토화이다.  음성이 먹는 기관으로부터 입이 탈영토화되면서나타난다면, 음악은 이제  음성이 사람의 말소리에서 탈영토화되어 노래가 되고, 또다시 거기서 탈영토화되어 악기의 소리로, 분자적인 음향으로 탈영토화된 것이란 말도   있다.  음성이 신체로부터 탈영토화되어 표현의 지층을 형성한다면, 음악은 그것을 다시 탈영토화하여 분자적인 되기로, 원소-, 이온-화로 이끌며 결국은 일관성의 구도에 이른다. 회화에 비해 음악은 훨씬  크고, 동시에 훨씬  강밀하고 집합적인 탈영토화 힘을 지닌 듯하며, 마찬가지로 음성도 탈영토화될  있는 능력이 훨씬    같다. 이것이 음악이갖는 강력한 매력의 힘이다.  4개의 탈영토화 정리에 이어 추가적인 4개의 정리이다. 

  

정리 5 : 탈영토화는 언제나 이중적이다.  음악의 -되기는 새의 음향-화라는 이중적 블록을 이루면서 진행된다.  음악과 새가 변환가능한 이웃지대를 형성한다. 

정리 6 : 비대칭적인 이중의 탈영토화는 탈영토화하는 힘과 탈영토화되는 힘을 할당할  있게 해준다. 새의음향화가 탈영토화하는 힘이요 탈영토화를 이끌어 가는 성분이라면 음악의 -되기는 탈영화되는 힘이다. 

정리 7 : 탈영토화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표현의 역할을 하고, 탈영토화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내용의 역할을한다. 새의 음향화는 음향적인 표현형식으로 음악의  되기를 표현한다. 

정리 8 : 하나의 배치는 탈영토화의 힘과 속도에 있어서 다른 배치와 동일하지 않다.

  

7. 일관성과 특개성

1) 되기와 차이 개념

차이의 철학이란 감산(A-B) 아니라 합산으로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고 생성하는 것으로서 차이란 A B 접속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고,  A B 종합의 결과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남에 의해, 접속에 의해, 종합에 의해 만들어진 차이이다.  자유주의 정치학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강조하는게 아니다.  스스로를이전과 다른 것으로 변환시키는 변이 변환 정치학이다. 스스로 다른 것이 되는 되기의 정치학이다.  A에게 있는 어떤 성질을 기준으로 B에게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하는 초월적 개념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과접속을 통해  A 스스로 만들어내는 A 자신과의 차이란 점에서 내재적 개념이며 내재적 차이라고 한다. 이런점에서 이는 초월성과 대비되는 내재성이란 개념에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으며 그런 내재성의 구도로서 일관성의 구도라는 개념에 직결된다. 

  

2) 기준, 혹은 일관성의 구도

비교의 내재적 기준이 있다. 인간이든 새든 그것이 되기 내지 변환을 통해  좋아졌는가  나빠졌는가를 비교한다.  강밀도가 차이를 비교할  있는 기준이 된다. 비교나 평가란  그가 하려고 하는 것을 얼마나 잘했는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가 하고자 하는 것에 의해 실제로 행한 것을 평가하는  그게 바로 내재성 평가이다. 내재적 평가가 욕망이라는 하나의 속성, 하나의 평면/구도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일관성의 구도, 구성의 구도란 어떤 것도   있는 순수잠재성 자체이며, 절대적인 구성능력, 절대적인 생성능력이다. 

 

되기란 운동과 멈춤, 빠름과 느림, 속도와 강도 등의 변환을 만드는 것이다. 하나의 양태 자신의 능력을 상승내지 하강시킬  있으며 나아가 다른 양태가 되기도 한다.  일관성의 구도란 절대속도, 절대강도로서, 모든되기를 향해 열린 절대적 극한이다.  이런 의미에서 되기란 일관성의 구도상에서 일반화   있다.  되기란운동과 멈춤, 빠름과 느림의 상이한 관계를 만들고, 강밀도의 상이한 분포를 만드는 변용이고 작용/행동이다. 변용되며 촉발하는 관계 속에서 특정한 감응의 형성이 바로 되기라는 것이다.  

 

일관성의 구도를 내재적 비교와 평가,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  하고자 하는 것을 바라는만큼    있는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강밀도의 연속체로 탈영토화할  있는 능력을 비교하는것이고  순수 강밀도의 지대를 통해서 욕망 자체의 탈영토화 능력을 욕망자체의 생성능력을 비교하는 것이다. 비교의 결과는 그걸 느끼고 감지할  있는 능력(내공) 따라 달라진다. 어떤 평가자도 자기보다 높은것은 제대로 평가할  없으며, 자기가 파악할  있는 한에서만 평가가 가능하다. 득도한 이는 () 통하는 , 도를 추구하며 어디나 넘나들며 어떤 신체가 도달한 경지를 파악할  있다. 자유로울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주어진 상태에서 벗어날  있는 능력을 의미하고, 되고자 하는 것을   있는 능력을 뜻하며, ‘하고자 하는  관성이나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바뿔  있는 능력을 뜻한다.  이러한 자유의 능력은 자신의 신체를 탈영토화할  있는 능력을 뜻한다. 

 

3) 신체의 경도와 위도

욕망의 배치와 탈영토화의 정도는 신체를 파악하기 위한   가지 축이다.  경도 어떤 신체가 어떠한 욕망의 배치 속에서, 다시 말해 어떤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기계로 기능하고 있는가를 표시한다.  신체의 경도란 어떤 신체 내지 신체적 부위가 어떤 활동/작용을 하는 어떤 기계인가 하는 규정성을 의미하고,  신체의 외연을 의미한다.  신체의 능력이란 신체의 강밀도고, 최대강도며, 또한  신체의 변환 능력 내지 탈영토화 능력이다.  신체가 감당할  있는 수용능력들 그리고 이능력들이 갖는 감을 위도라고 한다.  신체의 경도가 그것의 외연을 규정하는 외연적인 것이라면, 신체의 위도는 그것의 능력을 규정하는 내포적인/내공적인 것이다. 하나의 신체가 어떤 규정된 활동을 훌륭하게 수행해내는 것뿐만 아니라, 얼마나 다른 규정들을 수용할  있는가가  신체의 능력이다. 경도를 달리하며 이동할  있는 능력, 경도상의 탈영토화 능력이다. 신체의 능력이 강밀도의 분포를 바꾸는 것인 , 그것은 위도상의 탈영토화 능력이라고 말할  있다.  경도가 신체의 , 신체의 속성을 규정하는 욕망이요 의지이며, 위도가 신체가 갖는 힘이고 강밀도이다. 욕망이란차원에서 속성을 달리하는 기관없는 신체들의 집합이 강밀도의 연속체로서 기관 없는 신체와 하나의 동일한것을 이해한다면,  경도적인 차원에서 신체의 극한과 위도적인 차원의 신체의 극한이 하나의 동일한 것이다.

  

4) 특개성

신체의 위도와 경도를 통해 어떤 개별적인 신체가 그때마다 상이한 것이 되는 양상을 포착할  있다. 이를들뢰즈와 가타리는 둔스 스코투스의 개념인 특개성과 연결한다. 특개성이란 어떤 개체에 고유한 것이지만시간과 공간은 물론 이웃관계의 조건, 배치와 강밀도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뜻하며, 그렇기 때문에 정의  없고 그때마다 직관으로 포착할 수밖에 없는 어떤 감응이다. 특정한 순간의 개체를 특별하게 만드는 감응이며, 그런 감응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강도와 속도, 그리고 그것을 특정하게 만드는 이웃관계들을 통해서구성된다. 배치 전체가 특개성이 구성되는 조건이며, 특개성은 바로 이처럼 어떤 배치 자체에 속한다. 서양의주류적인 사유방법이 주체성이나 실체성에 의한 개체화, 소유하고 있는 성질을 통한 개체화 방법에 사로잡혀 있다면, 동양은 그와 반대로 특개성에 의한 개체화 방법을 많이 갖고 있다고 말한다.  서양 의학은 사람의신체를  유기체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분류학적 관점에서 동일한 것으로 보며  , 치료의 개념을 평균에 의해 얻어진 보편성에 입각한다. 반면 한의학은 장기들 간의 관계, 그것을 관통하는 기의 흐름과 모임, 장기들간의 영향/변용을 통해 파악하며,  사람의 특이성에 따라 그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신체의 특개성을 정확하게 포착할때에만 올바른 진단과 처방이 만들어 진다. 

  

5)  개의 구도

하나가 일관성의 구도라면 다른 하나는 초월성의 구도이다.  초월성의 구도는 발전의 구도요, 조직화(유기체화) 구도로서, 구조나 발생, 진화, 발전, 유비, 외화 등의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신이나 이데아, 형상, 구조 등과 같이 수많은 개체들을 만들어내는 원리지만   자신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체로는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던 것이든 잡아당기는 그런 원리이다. 헤겔 철학에서 발전이란 개념처럼초월적인 어떤 (절대정신, , 이데아 ) 스스로 자기 아닌것으로 외화하여 구체적인 사물들의 세계,  활동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만들어 내고 발전 시켜  궁극적인 끄트머리(목적, 종말)까지 밀고나가는 원리내지 구도를 의미한다.   발전의 구도를 위해서  정신 이원리의 실현을 위해 자신도 모르게 봉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사물들의 변화 과정 안에 내재하는 내재적 발전 구도라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헤겔이 스피노자를 포획하여 내재성의 구도를 자신의 초월적 구도아래 포섭하고 초월적인 구도로 변용시킨 방법이다.  

 

 일관성의 구도는  초월성과 반대로 내재성을 특징으로 하기에 내재성의 구도이며, 강밀도의 연속체 안에서변환들의 연속성을 획득하기에 강밀도의 구도라고도 하며, 모든 양태들을 구성하고 생성하며 창조할  있다는 점에서 구성의 구도, 생성의 구도라   있다.  모든것을 기나 도라는 개념을 통해 하나로 묶는 일관성의 구도를 동양의 예술이나  사유와 활동에서 발견할  있다.  그것은 어떠한 형식화도 불가능한 개념이고, 그렇기에 어떠한 조직화의 구도나 발전의 구도도 만들어내지 않는, 그저 순수한 흐름으로서 오직 상대적강함과 약함, 집중과 분산, 빠름과 느림을 가지며 그런 것들로 그때마다 다른 특개성을 만들어내는 일관성의구도를 이룬다.

 

일관성의 구도가 우리도 감지하지 못한  초월성의 구도로 변환되거나 혹은 초월성의 구도에 사로 잡히는경우가 있으며 반대로 초월성의 구도가 내부로 부터 와해되며 일관성의 구도로 이행하는 경우가 있다. 누구나 갖고 있는 잠재성으로서 부처 수행을 통한 내재적 변환의 장에서 벗어나 문자에 사로잡혀 하나의 교조나 숭배의 대상이 될때 발생한다. 베토벤은 소나타의 형식적 구조가 와해되는 탈영토화의 지대를 만들어 냈다.  12 기법과 음렬주의 형식적 구도를 탈영토화 하여 일관성의 구도로 향한 내재적 변환의 장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  성즉리, 성이 곧리다 라는 주자학의 초월적 교의에 성이란 개념이 있던 자리에 마음을 넣음으로써,  마음을 양지라는 개념으로 대체함으로써 유학 자체를 내재성의 철학으로 변환시켰다고  있다. 

 

 

 

 

안티 오이디푸스 이후 코드화는  영토화와 짝을 이루지만 동시에 대비되면서 그만큼 자주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코드란 암호나 부호, 규칙   뜻하는데 정보 통신이나 언어 활동과 결부되어 흔히 사용됩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알아 들을려면  말을 사용하는 코드를 알아야 합니다. 문법은 물론 소리와 단어들을 분절하는  규칙도 알아야 합니다. P F 구별하는 분절 규칙이 없기에 한국인은 Punk Funk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둘은 아주 다른 종류의 음악이지만 한국어로 표기하면 둘다 펑크가 됩니다. 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와 입술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를 뚜렷하게 내서 내가 지금 내는 소리가 f  시작하는 말임을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목청껏 Puck You  라고 해도 미국인은  소리야  겁니다.  한국어의  원래 f 발음이 없으니 평소대로 발음하면 Puck You  겁니다.  나중에야   소린지 알아 들은 상대방은 오히려 웃을겁니다. 그걸 욕이라고  거냐고. 욕을 하려해도 코드를 따라야 합니다. 

 

암호는 의미를 이해할  없도록 부여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전송받은 상대가 해독할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은닉된 코드가 사용됩니다. 코드화 한다 함은 기호 사용 규칙을 이처럼 부호화  하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규칙에 따라 기호를 사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주어진 기호 사용 규칙에서 벗어나는것을 탈코드화 라고 합니다. 그렇게 규칙에서 벗어난 기호들의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것을 재코드화 하라고합니다.  주의할 것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어떤 기호들을 다른 기호 들로 바꾸는 것을 코드화라고 바로  규칙에 의해  기호들을 원래 기호로 되돌리는 것을 탈코드화라고 하는 정보 이론이나 소통 이론의 통상적인어법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A T G C  구성되는 유전자 정보와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도 코드를 통해 작동합니다.   개의 뉴클레오티가 결합하여 아미노산의 코드를 형성하고  아미노산 분자들이  다른 코드에 따라 결합되어 단백질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DNA  유전자 코드를 RNA 복사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스플라이싱(Splicing) 자리바꿈 인자 레트로바이러스  다양한 요인에 의해 탈코드화가 발생합니다. 유전 공학은 역전사 유전자를이용해 유전자 코드를 목적에 맞게 재코드화 하려는 기술입니다. 이처럼 의미화의 지층  아니라 유기체의지층에서도 코드화와 탈코드화와 재코드화는 일상적으로 일어납니다.  코드란 말은 법이나 규약  뜻하기도 하고 그처럼 명시적 이지 않은  규칙들  지칭합니다.  신분적인 코드,  직업적인 코드,  젠더적인 코드,  종교 의례나 식사매너,  식사나 의복,  요리를 규제하는 다양한 문화적 코드들이 있습니다.

 

만나고 헤어질 때의 예절,  교통신호나 스포츠  게임의 규칙도  코드입니다. 인간이 사는  어디나 코드가있습니다.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규칙에

충실하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고 강요합니다. 사회적 코드에  충실히 복종할   사회에서 요구하는 주체가됩니다.  사회적 코드는 이처럼 주체화의 지층을 구성하고 유지합니다.  그런데 사회적 코드는 사회를 상이한코드에 따르는 집단들로 분할하고  위계화  합니다. 자유인과 노예 귀족과 농민은 결코 인간 같은 하나의 범주로 묶일  없는 상이한 질의 집단 입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엄격한 분화를 유지하는  카스트는 이런 코드화  집단의 불연속성과 위계성을  극단적으로 강화한 체제입니다. 

 

주체화는 이렇게 분할된 상이한 코드에 따라 상이한 주체들을 생산합니다.  이처럼 상이한 코드들의 실존은상이한 집단에 속한 이들에게 의문과 저항을 야기합니다.  신분에  반하는 투쟁 들이 역사적으로 반복되었던  것은  때문입니다.  투쟁의 양상이 아니어도 주어진 코드에서 이탈하려는  시도들도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농노나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 도망치는 흐름도 있고 공동체로부터 추방되어 표류하는 이들도있습니다.

 

젠더적 코드의 강요를 벗어나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연인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주체화의 지층에서 이탈하는 탈주선을 그리는 것입니다.  이런 탈주선이  집합적인 유출의 흐름을 형성할  주어진 코드로 부터탈코드화  흐름이 형성됩니다.  탈코드화  흐름이 범람 하게 되면 신분,  직업,  젠더 등의 지층을 형성하고  코드들이 와해  됩니다.  가령 서구의 봉건 사회는 도시를 찾아 도망치는 탈코드화  흐름에 의해 또한엔클로저에 의해 토지를 잃고 부랑하게  농민 들의 탈코드화  흐름에 의해 해체 되게 됩니다. 그러나 이처럼 탈코드화된 흐름이 범람 하게 되면 사회나 질서 혹은 통치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게 다른 코드들로  흐름을 포획하려 하게 됩니다.  재코드화하는 시도들이 발생하는 겁니다. 코드화가 기존의 상이한코드들을 와해 시키고 탈코드화  흐름을 유출시켜 거대한 하나의 코드로 통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초코드화 하라고 합니다. 

 

가령 중국 최초의 거대 제국인 진은 이전의 부족 집단들이  작은 국가들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해 씁니다 이는 이전 사회의 코드  속했던 신분이나 직업에서 이탈하는 탈코드화된 흐름을 야기합니다.  제국의 국가는이들을 광산 이나 제련  제국적 필요에 따른 새로운 영토로 영토화 합니다.  영토화가 코드화가 아니라 탈코드화와 짝을 이루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조는 도량형과 화폐, 문자와 역등을 통일 합니다. 이전의 코드들을 해체하고 새로운 하나의 코드로 초코드화  것입니다.  그런데  경우에는 신분이나직업 등의 새로운 집단의 분할과 위계가  도입되기에 이러한 초코드화는 여전히 하나의 코드화의  일종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와 달리 초코드화의  일종이지만 탈코드화  흐름을 다시 위계화된 집단으로 나누지  않고  집단에 상이한 코드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코드 없는 체계로 통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엔클로저로 인해 토지를 잃은 거대한 불황의 흐름이 출연하는데 이들은 직업이나 신분을 잃은 만큼  신분적 예속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토지로부터 탈영토화 되고 신분에서  코드화   잠재적 노동력의 흐름이 자본의 흐름  만날 자본주의가 탄생합니다. 자본주의는 이들을 다시 신분 으로 재코드화 하지 않습니다. 시장에서는 신분이 무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죠.   상품을 얼마에  사겠다는  지만 중요합니다. 시장의 논리는 모든 이들에게이런 종류의 등가성을 부여합니다.  인간이란 보편적 범주가 이로부터 출연합니다. 이전에는 신분적 코드가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규제 했습니다.  코드가 사라지면 이런 규제가 불가능해집니다.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홉스의 질문은 이로부터 나온 겁니다.

 

자본주의는 신분에 따라 정해진 코드 대신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규칙의 체계를 수립합니다.  고용을 통해 직업을 얻어라.  노동을 통해 가치를 생산 하라. 노동을 하지 않으면 먹을  없다.  등가교환의 따라물건을 사고 팔라.  모든 가치의 척도는 돈이다 등등.  이전의 코드로 부터 이탈한 흐름 전체를 하나의 보편적규칙들의 체계로 통합했다는 점에서  또한 초코드와  일종입니다.

 

그러나 이전의 제국적 초코드화가 위계적 지위를 갖는 집단으로 사람들을 재분할하고  속한 집단에 따라 다른 규칙을 강요하던 것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일종의 공리처럼 자명해 보이는 보편적 규칙들의 체계로 통합했다  점에서 이를 공리계화 라고 합니다.  하나의 지층 안에서 발생한 탈영토화 운동이 다시 어떤 영토로재영토화 되고  다시 탈코드화  흐름도 재코드화 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탈코드화란 기존의 코드를 대대적으로 부수어 없애기도 하지만 특정 요소를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유럽의 고전음악 에는 여러 형식의 코드들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화성 조성의 코드, 대위법이나 소나타  학곡 형식의코드,  협주곡 이나 교향곡 등의 장르적 코드 등등 악보로 그려진 하나의 작품은 복수의 코드들이 중첩된 결과물 이죠. 연주와의 관계에서 보면 악보 또한 연주자의 행위를 반복하게 하는 일종의 규칙이란 점에서  하나의 코드라고   있겠습니다.  연주자는  악보 코드에 따라 연주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속도 내지 템포는 주어진 리듬 패턴이나 선율을 그대로    코드   있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안단테,  프레스토  템포 기호를 악보에 적어 두지만 사실 템포 자체는 연주할 때마다 달라집니다.  연주자가 자신의 해석을 강조하기 위해 크게 바꾸기도 합니다.  글렌 굴드는 느린건  느리게 빠른   빠르게 연주하여 자기 색깔을 만듭니다.  터치  악기 소리에 강도도 악보를 그대로   바꿀  있습니다.  째즈 뮤지션은 주제의 진행을 따르면서 선율을 바꿉니다. 이것들은 정해진 악보의 명령으로부터 이탈하는 유연성이나 탄력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여백 이라 하겠습니다.   여백이 허용하는 가변성은 그것만으로도  코드와가능하게 해줍니다.  이러한 여백을 들뢰즈 가타리는 탈코드화의 여백 이라 합니다.  언어도 그렇습니다.  같은 문장이라도 읽거나 말할 때마다 우리는 다른 톤으로 읽거나  말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톤을 비명 소리에 가깝게 크게 하거나 몽골인들의 후미 창법 처럼 아주 낮은 목소리로 발화하면 애초에 기호에  담겨있던 의미는 사라지고 비언어적인 소리  바뀝니다.

 

, 이건 동물의 소리야 !”   여기서 음성적 또는 의미화 하는 언어로 부터 벗어나는  코드화의 여백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이런 소리가 반복되며 어떤 새로운 규칙을 갖게 되면 다른 유형의 소리로 재코드화 됩니다.  스트라빈스키는 무용 음악 봄의 제전에서 악센트의 규칙성을 깨는 불규칙한 강박을 사용해서 서양음악의 박자 구조를 탈코드화 했죠. 메시아앙은 이렇게 탈코드화  박자를 비서구 음악의 리듬을 이용하여 새로운 리듬 선법으로  코드 합니다.

 

이처럼  탈코드화의 여백을 통해 발생하는 탈코드화와  재코드화를 코드변환이 라고 합니다. 이러한 코드 변환은 대게 어떤 코드의 사슬로 부터 일부를 떼어내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를 들뢰즈 가타리는 코드의 잉여가치를 포획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코드는  이상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조각들은 하나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슬에 묶여 있기에 조각들은 자유롭게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탈코드화의 여백을 통해 일부 조각을 떼어내 다른 방식으로 사용할  있죠.  다른 코드 속에 넣어서  일부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경우 떼어낸 조각은 애초에 갔던 가치와 다른 가치를 갖게 됩니다.   조각이 갖는 잠재성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애초에 갖던  가치 이상의 가치란 점에서 이를 잉여 가치라고 합니다.

 

이런 잉여가치는 애초에 속했던 코드안에서의 가치를 초과하는 잉여 가치란 점에서 코드의 잉여가치 입니다.  코드 변환을 통해 어떤 코드의 조각을 이용하는 것은 이러한 잉여가치를 자신의 이득을 위해 영유하는것입니다.  이를 잉여가치의 포획 이라고 합니다.  앞서 음악 연주자들은 자신의 음악적 해석이나 스타일을위해 작곡자가 악보나 이전 음악 속에 코드화 했던 소리들을 떼어내 코드의 잉여가치를 포획하는 것이라고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애초에 맑스가 경제학적 개념으로 정의해 놓은 잉여 가치란 개념이 해석이라는 주관적개념으로 해소되는  아닌가 하고 반문   있습니다.  그렇진 않은데 먼저 경제학의 경우를 보자면 원격지 교역을 통해 상품을 팔아 얻는 이득이 바로 코드의 잉여가치 입니다.  상품의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는 사회마다 다르게 코드화 되어 있습니다. 소의 내장이나 뼈는 미국에선 먹지 않고 버리지만 한국에선 훌륭한 음식 재료지요.  러시아에서 사슴의 뿔은 별다른  모가 없지만 한국에선 귀한 약재죠.  이처럼 어떤 사회의 코드화  가치의 사슬로 부터 내장이나  같은 일부 조각을 떼어 내어 코드를 달리하는 사회속으로 이전 시키면 코드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잉여 가치를 포획할  있습니다. 원격지 교역에서 상인들이 얻은 이득은 이처럼 코드의 잉여 가치 경제적 형태를 보여 줍니다.  생명체의 생존에서도 코드의 잉여가치는 널리 발견 됩니다.  말벌의 형태를 모방하여 말벌을 유혹하고 그것을 이용해 수분하는 난초  이웃한 식물의 잎을 모방하는보킬라 트리폴리아타의 의태는 생명체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개체들로부터 코드의 잉여가치를 포획하는 경우입니다. 

 

자궁속에 인간의 태아가 모체의 면역반응을 면할  있는 것은 인간의 유전체 안에 있는 ERV-3 라는 레트로바이러스의 유전자 코드 덕분입니다. 애초에 바이러스의 유전자 사슬에 속해있던 유전자 조각들을 포획해  코드의 잉여가치를 획득하는 것이죠.  생명의 자리란 탈지층화의 잉여가치를 뜻한다는 들뢰즈 가타리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있을 겁니다.

 

사실 인간의 유전체 안에는 유전자 보다 많은 바이러스나 미생물 유전자가 들어 있다고 하죠. 알파프로텍터박테리아나 고세균의 뜻하지 않은 공생은 동물이나 식물의 유전 형질 자체가 이질적인 미생물들의 유전자들을  코드와 하여 구성된 것임을 함축하합니다.  코드는 그에 고유한 탈코드와 과정으로부터 분리할  없다.  유전적 표류  없는 유전학  없다.  현대 돌연변이 이론은 코드가 필연적으로 개체군과 연관되어 있으며 본질적인 탈코드화의 여백을 갖는다는 것을 명쾌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코드들 간의 번역이 아니라 우리가 코드의 잉여가치 또는 방계적 소통이라고 부르는 단일한 현상과 관련된다.”

 

그런데 안티 오이디푸스에는 이와 약간 다른 뉘앙스로 코드의 잉여 가치 개념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포틀레치나 쿨라 같은 의례화된 증여에서는 주고 받는 선물에 비평형성이 두드러집니다.  말하자면 받은 것보다 많은 것을 주는 자가 이기는 게임입니다. 이때 많은 것을 주는 자는 위신을 획득합니다. 이는 주고받은 선물의 비평형성을 만회하는 요소인 셈인데  책에선 이를 코드의 잉여가치 라고 합니다.  니체에 따르면 형벌의 기원에는 죄인이 끼친 손해만큼 고통을 주는 생각해보면 기이한 방정식이 있죠. 이는 죄인의 고통에서 눈이 없는 쾌감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쾌감이 바로 코드의 잉여가치 라고 말합니다. 이는 코드의 조각을 이용해 얻는 잉여가치 보다는 특정한 코드 안에서 선물이나 채무가 야기한 비평형성과 짝을 이루는 어떤 대가를 뜻합니다. 이는  다른 코드로 이행하는 데서 발생하는  아니라 주어진 코드 안에 있지만 명시되지 않은 어떤 이득입니다.  이러한 뉘앙스의  개념은 천의 고원  가면 사라지고 코드의 잉여가치는 어떤 코드의 조각을 다른 코드로 옮기는 코드 변환과 대응되는 개념으로 명확하게 한정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