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노다디즘  세미나에서  전쟁기계와  포획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세미나 정리 내용을 옮겼다.  유목민에게는 역사가 없다 라는 유목민의 역사에 대한 관점에 대해 먼저 논의 하였다. 유목민에게는  역사서나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는 유목민의 고유한 시간관념 때문이다.  유목민에게 시간이란 하나의선을 이루며 연속성을 갖는 무언가가 아니다.  그들에게 시간은 어떤 고정점을 갖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것이다.  반면 제국의 연대기적 역사는 사실들을 직선적인 시간관에 따라 기록해 보존하려고 한다. 

 

기억은  개인의 정체성이다.  기억이  개인의 역사라면 조직의 기억은 역사기록이 아닐까 ?  역사가 없는집단은 무엇으로 규정할  있을까 ?  제국적인 역사관념에서 벗어나 역사를 유목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는 유목민들이 그러했듯이 역사를 아예 버리자는 주장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를 다르게다루는 방법을 유목민들로부터 배우자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역사에 얽매여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지못하게 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의 기억에 벗어나는  니체의  망각하는 것을 배우라 충고가 언급 되어 있다.  역사적 사실이나 과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롭게떠날  있는 유목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야금술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야금술사는 질료적 흐름을 따르는 자라고 한다. 이들은 국가장치에 속하지도, 전쟁기계에 속하지도 않는다.  국가장치에 속해서 일하다가도 유목민에게 옮겨 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야금술사는 이주민 또는 순회자라고   있다. 야금술사는  국가장치나 유목민의 전쟁기계와는 다른 고유한 배치를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  바로 구멍 뚫린 공간입니다.  구멍 뚫린 공간 혹은 다공공간은 국가장치의  패인 공간과도 다르고, 유목민의 매끄러운 공간과도 다른 야금술사의 고유한 공간이다.

 

야금술사는 고유한 공간을 가지지만,  야금술이 유목주의와  친연성을 갖는다고 한다. 야금술이 질료적 흐름을 따르기 때문이다.  야금술은 물질의  흐름 자체에 대한 사유라는 점에서 흐름의 사유를 따르는 유목민의삶의 방식과 공통성을 갖는다.  야금술이 먹고살기 위해서 국가장치에  합류할지 몰라도,  유목민과는 먹고살기 위해 연대하지 않는다. 유목민은 스톡을 축적하지 않는 만큼, 국가장치와 같이 야금술사가 먹고 살수 있게 해주기 어려울 것이다. 야금술사가 필연적으로 유목민과 합류하는 이유는 삶의 방식이 공통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스톡은 직접적인 효용이 없음에도 버려지지 않고 비축되는 것이다. 교환과 스톡 축적의 차이를 알아본다.  교환은 교환 당사자들의 한계효용에 따라 이루어지며 한계 효용이 감소해 사라지는 지점에서 중단된다. 반면 스톡의 비축은 소비의 효용이나 교환의 이득이 없음에도 이루어진다. 직접적인 이득이 없는데도 스톡이 비축되는 것은 다른 방식의 이득 가능성 혹은 다른 종류의 욕망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환과 스톡의 차이를 보여주는  가지 예시로 맑스가 구분한  가지 상이한 교환,  상품-화폐-상품(C-M-C′) 화폐-상품-화폐(M-C-M′) 차이를 생각해   있다.  C-M-C′  C′이라는 상품의 효용을 얻기 위해 이루어지는 상품 교환이다.  교환을 매개하는 중간의 화폐(M) 그러한 효용을 얻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M-C-M′ 목적은 화폐의 증식,  화폐라는 스톡의 비축이다.  상품으로부터의 어떤 효용을 기대하고 이루어지는 교환이 아니다. 소비와는 다른 종류의 욕망이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M-C-M′이라는 자본의 배치는 교환의 형태를 가지지만 교환의 배치보다는 스톡의 배치에 가깝다.

 

이렇게  스톡이 비축되는 배치가 바로 포획이다. 포획에는  가지 양식이 있는데, 지대, 이윤, 세금이다. 이것들은 각각 토지, 연장, 화폐라는 스톡과 연관된 포획입니다.   포획들은 각각 지주, 자본가, 조세  물가통제권자라는 권력과 결부되어 있다. 이렇게 포획의  양식을 식별함으로써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에서 주장하는 착취 개념을 극복할  있다. 기존의 맑스주의에서는 노동가치론에 입각해서 생산 지점에서 착취된 잉여가치가 지대, 이윤, 세금 등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이는 수탈의 다양한 양상을 생산에서의 착취로 환원하는 사고방식인데, 이런 생각은 정치적 실천에서는 산업프롤레타리아 중심의 혁명이라는 관념으로 이어진다.  스톡과 포획 개념을 통해 우리는 생산 이외의 지점에서 발생하는 수탈의 고유한 차원을 다룰  있다.

 

이러한 포획의 메커니즘을 포획장치라고 한다. 이는 직접적 비교와 독점적 영유에 의해 작동하는데, 들뢰즈와 가타리는  작동방식 중에 직접적 비교가 논리적으로 앞선다고 한다.  포획의 논리는 일차적으로 직접적비교에 의해 설명된다. 따라서 포획은 불공정한 강탈이 아니라 공정한 대칭적 과정으로 나타나는 마술성을얻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도 비교가 독점에 앞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독점적 영유에 의한 포획이 먼저 있어야만 그에 따른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포획장치는 폭력을 통해 수립된다고 말할 있습니다. 포획을 위해서는 우선 다른 사람들의 소유권을 배제하고 독점적인 영유를 확보하는 폭력적인과정이 필요하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맑스가 산업자본주의와 관련해 언급한 본원적 축적 개념을 일반화해모든 포획장치는 본원적 축적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에서 국가장치가 포획장치에 선행한다.  포획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국가장치의 폭력을 동반한 본원적 축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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