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전쟁기계와 수: 전쟁기계의 수적 측면
1) 조직의 세 유형
모든 인간 조직을 혈통적 조직, 영토적 조직, 수적 조직으로 나눌 수 있다. 혈통적 조직은 가족, 씨족, 가문과 같이 동일한 조상을 갖는다. 부족처럼 영토적 형식과 중첩되기도 하며 몇 대조, 몇 대손이라는 방식으로 숫자가 관여 하기도 하지만 혈통적 요인이 일차적이다. 영토적 조직은 영토를 필수 요소로 갖는다. 이러한 영토는 소유와 긴밀한 관련을 갖고 있다. 여기서 소유란 인류와 대지 사이의 탈영토화된 관계로서 자연적인 기능과는 상관이 없다. 영토적 조직에서 인구조사, 조세 등과 관련된 숫자나 계산이 국가의 시공간적 틀, 영토적 틀 안에 소재를 복속시키는 기능을 한다. 수적 조직에서는 유목이라는 삶의 방식과 긴밀히 결부된 조직이다. 가장 기본적이고 자연 발생적인 단위의 가족 내지 가구를 묶어서 번호를 붙여 조직하고 관리한다. 칭키스칸의 10호대, 100호대, 1000호대 조직이 그예이다. 이동을 하든 멈추든 관계의 일정한 지속성을 유지하기 쉽다. 이러한 번호적 조직은 군대에서 볼 수 있다.
2)유목민과 수
서양의 수학이 기하학을 모태로 하며, 동양의 수학은 산술을 기반으로 한다. 서양 사람은 0과 음수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동양사람은 파이와 같은 무리수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토를 소유하고 구획하는 정착민과 유목민들의 점과 선, 공간 개념이 근본적으로 달랐으며, 숫자를사용하는 방식 또한 달랐다. 유목민의 번호적 조직은 동양의 산술과 연결 시킬 수 있다.유목조직에 붙인 10호대 100호대 등 각각에 붙인 번호는 이름에 불과 하다. 축구 선수의 등번호와 같은 의미이다. 여기서 숫자의 크기를 비교하고 계산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숫자가 계산이나 측정의 수단이 아니라 운동의 수단이다. 매끄러운 공간을 움직이는 것은 숫자 그 자체다. 이런 점에서 홈 패인 공간의 부동적인 기하학과 대립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런 수를 ‘세는 수’라고 부른다. 반면 어떤 척도로서 비교되고 계산되는 수, 측량에서 사용되는 수는 하나의 척도에 정확한 비례관계를 갖는 수는 ‘세어진수’이다. 요컨대 유목민의 수는 ‘암호화된 수, 리듬적/방향적/자율적 이동적인 수’이다. 반면 국가장치에서 사용하는 수는 사람이나 영토에 부착된 영토적인 수고 그것을 통계적으로 계산하기 위한 수며, 사람들의 삶이나 움직임을 포착하고 통제하기 위해 코드화 기능을 수행하는 수다.
3) ‘세는 수’의 특징
세는 수는 복합성과 산수적 복제 내지 이중화라는 두가지 특징이 있다. 세는 수는 언제나 수들의 복합체라는 점에서 복합적이고 복잡하다. 가령 주민 조직을 표시하는 10이나 100이란 수에 전투원의 비율, 예비와 저장의 역할, 사람/물건/동물의 보존을 표현하는 산수적 관계 등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예로 유목민의 전투단위 ‘인간-말-활’ 은 1x1x1=1 이라고 쓸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산수의 기본 단위는 배치의 단위 이다. 다음으로 산수적 복제 내지 이중화이다. 유목민의 조직에는 상이한 종류의 불균등하고 비대칭적인 두 개의 계열이 있다. 칭키스칸의 예에서 10호 100호 1000호등 각각의 수적 조직에는 지휘자가 있다. 10호장, 100호장, 100호장이 그들이다. 1000호장 이상이면 귀족으로 간주되었다. 이들을 '노얀'이라고 불렀다. 이와는 전혀다른 조직이 있었으며 일종의 친위대 내지 별동대 인데 개개인이 1000호장 보다 지위가 높았다. 노얀과 별동대의 긴장과 투쟁이 그들의 조직을 혈통적인 국가조직으로도, 제국적 관료제국가로도 만들지 않았다. 칭키스칸은 혈통적 조직에서 별동대의 병사나 간부들을 뽑기도 했지만 능력이 있다고 보이면 노예, 외국인, 투항자 등을 과감하게 별동대 병사로 등용했다. 탈영토화된 사람들로 자신을 재구성하는 한편 거꾸로 그렇게 탈영토화된 인물들을 적극 이용하여, 제국적인 법령, 문자들을 전혀 다른 배치, 전쟁기계의 배치 안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
4)유목민과 역사
유목민에게는 역사가 없다. 그들에게는 다만 자리가 있을 뿐이다. 몽골인 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 인디언들도 역사가 없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의 연대기는 가무의식 속에 놀아 들어 있다. 우리들의 역사는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사람들의 기억속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백인들의 역사와 달랐다.” 인디언은 역사가 정말 중요한 것들을 하나라도 드러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는 제국적 국가와 더불어 발생하며 자신이 이룩한 사건들을 결코 무화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것을 통해 위대함을 상기시키고 그 위대함에 다른 사람을 복속 시키고자 한다. 역사가 그저 순환적이고, 모든 것이 일정시간 이후 제자리로 되돌아 온다는 것을 뜻하면 무화되고 만다. 역사를 만든다는 것은 순환의 형식으로 무화되지 않는 시간 개념을 직선적인 시간 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구성하기 위하여 이전의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 역사라는 이름의 관성에서벗어나 새로운 클리나멘을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8. 전쟁기계와 무기: 전쟁기계의 감응적 측면
명제 7 “유목민의 실존은 정쟁기계의 무기를 ‘감응’으로 갖고 있다.” 감응(affect)이란 말은 스피노자의 <에티카>에서 사용했던 개념인데 정동 혹은 정서로 번역된다. 어떤 양태가 다른 양태의 촉발/변용에 응하여 갖게 되는 감정/정서이다. 이런 감응에는 어떤 움직임이나 움직임을 야기하는 힘이 포함되어 있다. 감응으로 무기와 도구를 구분하고자 한다.
1) 무기와 도구
무기와 도구의 차이를 다섯가지로 구분한다. 밖으로 던지는 것인가 안으로 던지는 것인가(방향), 속도인가중력인가(벡터), 자유행동을 모델로 하는가 노동을 모델로 하는가(모델), 보석인가 기호인가(표현), 감응인가 감정인가(정염 내지 욕망의 톤) 이다.
첫째 투척과 투입이다. 무기란 밖으로 던져지는 것으로 투척과 특권적 관계를 맺는다. 반면 도구는 안으로 던져지는 것이며 내향적이고 투입적이다. 던져지면 무기가 되고, 칼이나 창도 쥐고 사용하면 도구가 될 수 있다. 무기는 던져지는 것이 야기하는 감응과 결부 되어 있다. 도구는 정복하고 이용해야 할 저항에 맞부딪치는 반면 무기는 적을 공격하거나 반격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속도와 중력이다. 무기와 도구는 각각 속도와 중력에 관련 되어 있다. 도구는 저항을 이겨야 하듯이 중력을 견디고 이겨야 내야 하는 노동이며 고통을 요구 한다. 무기는 속도를 발명한다. 속도가 관통하는 힘을 만들어 낸다. 만약 무기를 천천히 건네준다면 그건 운송이지 속도를 가진 무기도 아니고 전쟁 기계의 일부가 아니다. 하지만 매복 같이 속도에 반하는 듯 한 현상도 전쟁에 포함 된다. 멈추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강밀한 속도를 응축하는 것이다. 중력이 운동을 한 방향(중력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면 속도는 거기서 벗어나는 선을 그리는 클리나멘을 갖는 것이다. 중력에서 자유로운 힘과 방향을 갖는 힘(벡터) 을 갖는다.
셋째 자유행동과 노동이다. 무기는 자유행동 모델에, 도구는 노동 모델에 연결되어 있다. 한점에서 다른 점으로의 선형적 치환은 도구의 상대적 운동(노동)을 구성하고, 무기의 절대적 운동(자유행동)을 구성하는 것은 소용돌이 꼴의 공간 점유다. 자유행동과 노동을 결정하는 것은 배치이다. 생존의 중력을 이기기 위한 공부는 노동이지만 자신이 좋아서 하는 공부는 중력의 저항과 고통의 성분이 없는 자유행동이다. 노동력이 화폐로 구매되고, 그 화폐를 통해서 생산 수단과 결합하는 그런 종류의 배치가 노동을 만들고 어떤 사물을 도구로 만드는 것이다.
넷째 감응과 감정이다. 감응과 감정이 무기와 도구에, 전쟁기계의 배치와 노동기계의 배치에 상응한다. 감응은 움직이는 신체, 요소들 간의 속도와 속도의 조성에만 관계 된다. 정서의 급속한 방출, 반격인 반면에 감정은 항상 치환되고, 지체되며, 저항하는 정서다. 감응은 느끼는 사람보다는 느낌을 야기하는 것에 일차적으로 속한다. 감정은 감응을 가리고 보지 못하게 한다.
다섯째 기호와 보석이다. 두 가지 상이한 배치에는 각기 상이한 표현의 체제가 있다. 노동의 체제나 도구에 상응하는 것이 ‘기호’라면, 전쟁기계나 무기에 상응하는 것은 보석이다. 노동이 있는 곳에는 국가장치에 의한 포획과 문자에 의한 행동의 기호화가 있다. 무기는 보석류와 본질적 관계를 갖는다. 이러한 보석이나 장식은 무기의 감응을 표시하는 표현적 특질을 갖는다.
2)무기와 노동의 동맹
무기와 도구의 구별은 배치에 따른다. 무기와 도구가 새로운 배치들 속에 싸여 있다면 다른 동맹 관계에 돌입하게 된다. 전쟁기계를 재발명하는 것은 산업 또는 농업노동자들에게서 더 자주 일어난다. 배치를 달리함에따라 도구가 무기가 되거나 그 반대가 가능하다. 도구가 노동으로부터 자유행동으로 나아가는 분열적 취향, 무기가 평화의 수단으로, 평화 획득의 수단으로 전환되는 분열적 취향이 존재한다. 전쟁기계 개념 자체가 새로운 차원에서 국가장치의 외부를 발명하는 문제로 변형된다. “포연없는 전쟁”의 새로운 형식과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배치의 창안, 그리고 통신망 등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공간에 달라붙어 그것을 매끄러운 공간으로 만드는 새로운 유목주의의 창안 등이 그것이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에서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의 투쟁은 새로운 전쟁기계이다. 노동과 자유행동 사이에서 빌려온 것들은 항상 양방향으로 흐르며 투쟁은 더욱더 다양해진다.
9. 전쟁기계와 야금술
1) 무기와 기계적 계통
"유목민은 어떻게 자신의 무기를 발명하거나 찾아내는가 ?" 무기를 다루고 만드는 야금술사와 유목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답이 바로 명제8이다. 명제8. 야금술은 본질적으로 유목주의와 필연적으로 합류하는 흐름을 구성한다. 이 부분에서 말하는 것은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 무기의 발명, 이용 및 배치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기계적 계통'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둘째, 무기의 발명에 실질적인 주역을 담당하는 존재로서 야금술사의 고유성에 대한 것이다. 셋째, 야금술이 유목주의와 합류하는 흐름을 형성하는 것이다.
왜 유목민은 대포나 화기로 인해 패배했는가 ? 왜 그것의 발명과 이용에 나설 수 없었는가 ? 그건 오직 국가장치만이 이 할 수 있는 경제적 투자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전쟁기계는 정의상 국가 장치의 외부고 부의 국가적인 포획과 집중화에 반하는 메커니즘이었다. 대규모 부의 포획과 집중은 전쟁기계라는 배치 안에서는 형성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목민이 화기 이전에 사용했던 무기들은 어떻게 그들의 손에서 탁월하게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던가 ? 기병도는 진과 한의 제국에서 발명된 것이지만 유목민이 그것을 이해하고 재발명할 능력이 있었다. 말을 타고 사용하는 유목민의 배치에 더욱 적합하게 계열화 될 수 있었고, 이런 유에서 유목민에 의해 가장 탁월하고효과적으로 이용 되었다. 이런의미에서 유목적인 계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계통이란 말은 전통적인 분류학에서 종, 속, 과, 목, 강, 문, 계에서 ‘문’을 표시하는 낱말이지만 여기서는 배치에 의해 구별되고 계열화되는 기계적 요소의 분류를 위한 개념이다. 형태의 동일성과 차이가 아니라 배치에 따른 감응들의 계열화에 의한 것이다. 퀴비에의 분류학은 생명의 기관들로 비교 분류하지만 여기서는 배치의 기계적 접속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것에 따라 달라진다. 배치가 달라지면 얼마든지 다른 것과 연결되고갈라지고 합쳐지는 리좀적인 ‘계통도’를 그리게 된다. 모든 계통을 하나로 묶는 것으로 ‘단일한 기계적 계통’도 다양한 기계들에 공통된 물질성, 그 질료적 흐름의 공통성을 표시하는 일종의 ‘일관성’이다.
기계적 계통이란 배치들의 분류적 계통이라기보다는 배치에 속한 요소의 분류적 계통이라는 점에서 일정한 계열화의 선을 따라 상이한 배치들을 넘나들면서 그 상이한 배치들에 속하게 되는 어던 특이성을, 기계적 요소의 ‘질료적 흐름’을 말한다. 형태를 넘어서 획득되는 질료적 흐름의 단일성이다. 극한에서 만들어지는 기계적 계통을 금속이라는 ‘물질성’이라고 말한다. 사물성과 대비해서 물질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금속성의 질료적 흐름 때문이다. 각각의 기계적 계통도 고유한 질료적 결을 갖는다. 유물론의 물질개념과 구별되지만 동시에 어떤 고유한 결을 갖기에 의식이나 정신, 주관 같은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외부성을 표시하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야금술사란 질료적 흐름을 따르는 자고 기계적 계통을 다르는 자, 질료적 결을 따르는 자라는 점에서 이동하는 내지 순회자라고 부른다.
2) 야금술과 구멍 뚫린 공간
야금술사의 고유성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유목민과는 어떤 관계를 맺는가? 그들은 국가장치에 속하는 국가인도 아니고 전쟁기계에 속하는 유목민도 아니다. 국가 장치와 그것의 외부인 전쟁기계라는 두 가지 배치에대해서 말해왔고 그 양자의 이항적 대립을 지속해왔다. 야금술사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고유한 배치를 갖고 있다. 매끄러운 공간과 홈 패인 공간과 구별되는 구멍 뚫린 공간, 많은 구멍이 있는 다공공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야금술사를 ‘이주민’이라고 부른다. 야금술은 변형의 기술이고, 물질성을 통해 어떤 형식화된재료의 문턱을 넘는 기술이며, 근본적으로 물질성의 흐름 자체에 대한 사유라고 할 수있다. 이러한 사유가유목적 과학의 특징이며 다른 공간을 갖고 다른 본성의 삶을 살고 있는 야금술사와 유목민의 합류지점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야금술사가 국가장치에 포섭되는 것은 그들의 식량이나 국가장치의 농업적 스톡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포섭을 근거로 야금술사의 삶의 방식이나 사유 방식이 국가장치와 어떤 동형성을 갖는다고 가정할 수 없다. 야금술사는 흐름의 사유, 변형의 사유, 비유기적인 삶의 방식의 공통성이라는 측면에서야금술과 유목주의는 합류하는 흐름을 형성한다.
10. 전쟁기계와 전쟁
명제 9는 (일정한 조건 아래서) 전쟁과 전투가 필연적으로 야기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전쟁이 반드시 전투를 자신의 목표로 하지는 않으며, 전쟁기계 또한 반드시 전쟁을 자신의 목표로 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크게 세 질문을 던진다. “전투는 전쟁의 ‘목표’인가? 전쟁은 전쟁기계의 ‘목표’인가? 어느 정도까지 전쟁기계는 국가장치의 ‘목표’가 되는가?”
1) 전투와 전쟁
전투와 전쟁의 관계에 있어서 전투를 하려는 것이 반드시 공격적인 것은 아니며, 전투를 피하려는 것이 항상 방어적인 것은 아니다. 전투는 전쟁과 동일한 것이 아니며 전투가 전재의 목표는 결코 아니다. 병력의이동이나 배치의 변경만으로도 공격과 동일한 효과를 가지기도 한다. 비-전투도 전투만큼이나 공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투와 비전투 모두가 전쟁의 목표라는 것이고, 이는 공격적인 것과 방어적인 것, 혹은 본래적인 전쟁과 게릴라전이라는 개념과 일치 하지 않는다.
2) 전쟁과 전쟁기계
전쟁이 적의 무력을 절멸시키거나 굴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 전쟁기계는 그런 종류의 전쟁을 반드시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쟁기계란 매끄러운 공간의 구성적 요소고 그 공간의 점유며 그 공간안에서 자리는 바꾸는 것이고, 그에 대응하는 민중의 구성때문이다. 이를 노모스라고 명명합니다. 이러한 목적만으로는 전쟁이 발생한 이유도, 전투가 발생할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전쟁기계의 목표가 가로 막히고 홈을 파려는 국가 장치와 충돌하기 때문에 전쟁으로 귀결된다.
<수호지>에서 '양산박'은 전국 각지에서 국가인의 핍박과 억압에 쫓겨 탈영토화의 선을 그리는 호걸들이 모여들어 강력한 전쟁기계를 형성하지만 이들 또한 전쟁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이들의 목적은 국가인의 핍박과 억압이 통하지 않는 공간을 만들고 거기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전쟁'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할 것이다. 국가장치의 억압과 출동을 피하지 않으며 기꺼이 그것과 싸우려 하지 않는다면 전쟁기계로서 존립할 수 없다. “전쟁기계가 전쟁이 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다”. 결국 전쟁기계에게 전쟁은 목표가 아니지만 필연적인 것이다. 전쟁은 전쟁기계의 바깥(국가장치와의 관계)에서 추가된 것이고, 그런 만큼 전쟁기계에 대해 외적인 것이고 그것의 과잉이지만 전쟁기계의 불가피한 기능을 추가하는 보충이고, 자신을 통해 전쟁기계를 표상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3) 전쟁기계의 국가적 영유
국가 장치는 어떤 식으로 전쟁기계를 ‘목표’로 하는가? 국가는 어떻게 전쟁기계를 영유할 것인가, 즉 어떻게그것의 규모, 지배, 목적을 자기 자신을 위해 구성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전쟁기계가 변성되는 세가지 계기를 명확히 한다. 첫째, 전쟁기계는 유목민의 발명품이고, 그 자체로는 전쟁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둘째, 국가가 전쟁기계를 영유하면 전쟁기계의 본성과 기능이 완전히 달라진다. 셋째, 국가장치는 전쟁기계를 내적인 요소로 하지 않는다. 국가장치가 전쟁기계를 영유한다면 전쟁기계에 부과할 목표는 그 일차적 목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전쟁이 된다.
전쟁기계는 국가장치를 영유할 수있는가 ? 국가들을 정복한 유목민은 절멸시켜 매끄러운 공간으로 되돌려 놓을 것인가? 국가장치를 존속시켜 직접 창취할 것인가 하는 망설임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칭기스칸 대법령은 몽골인들에게 정착적인 생활방식을 택하거나 도시에 거주하는것을 금 지하였다. "정착민 지역의 행정에 개입하지 말것, 특별히 지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금을 징수하지 말 것, 일정한 목축 이동로를 따라 옮겨 다니며 초원과 산간지에 살지, 결코 가축을 데리고 경작지를 짓밟지 말 "’을 결정했다. 이는 절멸노선에 대비 온건 노선이지만 국가 장치와 정착에 대한 확고한 선을그으려는 것이다. 정착민의 생활방식과의 공존을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독립성을 지속하려고 했다. 특히 세금을징수하지 말라는 규정을 통해 정착민의 세계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포획장치라는 새로운 배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수많은 국가 장치를지배하고 영유 하는 거대한 제국을 이루면서도 새로운 정치적 국가장치를 구성하지 않고 전쟁기계로 계속해서 남을 수 있었다. 이런 조치는 정착민 제국의 일부가 되어 버린 쿠빌라이와 대비 된다.
4)전쟁기계외 전쟁의 양상 변화
전쟁이 실제로 나타나는 것은 오직 전쟁기계가 국가 형태와 대립하는 가운데이다. 국가 편에서는 전쟁기계를 영유하고 이 전쟁기계에 전쟁을 목표로 하게 만들 기회를 노린다. 국가에 의해 영유됨으로써 전쟁을 ‘분석적’ 목표로 하게 된 전쟁기계가, 국가의 정치적 목적마저 자신의 목표아래 종속시킴으로써 오직 전쟁 그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무제한적 과정을 야기한다. 이러한 사례를 나치나, 파시즘의 경우메 발견한다.
계통과의 관계속에서 일관성의 구도, 창조적인 탈주선, 치환의 매끄러운 공간을 그려내는 한에서는 ‘이데올로기적’, 과학적 혹은 예술적 운동은 전쟁기계 일수 있다. 겔릴라전, 소수자전쟁, 혁명전쟁 이 본질에 부합하다면 ‘대리/보충’을 위해 전쟁을 더욱 더 필요한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오직 자신들이 다른 무언가를 동시에 창조하는 조건에서만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대리/보층 관계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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