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는 그리스어로 ‘우시아’이다. 직역하면 ‘존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내린 실체의 정의는 이렇다. 서술어로 쓰이지 않고 주어로만 쓰여서 다른 것이 그것에 관해 서술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다. 동물은 생장하며 이동가능한 실체다. 여기서 ‘사람’이나 ‘동물’은 주어로도 술어로도 쓰인다. 주어로만 쓰이는 단어가 실체라고 한다. 다른 술어를 가져와서 소크라테스에 대해 설명할 수는 있지만 소크라테르가 술어가 되는 법은 없다. 주어로만 쓰이려면 범위가 가장 작아야 한다. 이런 건 개별적인 사람이나 개별적인 사룸이라야 한다. 소크크라테스가 말하는 실체는 눈에 보이는 하나하나의 사물들, 즉 개별자이다. 더 부연 설명하면 실체는 이것 저것 이렇게 지시가 가능해야 한다. 그러려면 눈에 보이고 시공간 상에 존재재야 한다. 두번째로 실체 끼리는 분리 가능하고 독립적으로 존재 한다.

꽃은 실체이다. 그런데 이 꽃이 갖는 여러 특성이 있다. 분홍색이고 향기롭고 송기가 크다. 이런 특징들이 있다. 이런한 특징들도 존재하지만 실체가 존재하는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실체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이런 특징들은 실체에 의존해서만 존재 한다. 실체에 속하는 특성으로만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특징들을 ‘속성’이라고 부른다. 속성이 실체에 의존해서만 존재한다는 건 아리스토텔레스 특유의 생각이다. 플라톤이라면 분홍색의 꽃은 분홍의 이데아에 참여함으로써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분홍색을 떠받쳐주는 게 꽃이 아니라 이데아라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적 속성과 우연적 속성을 구분한다. 본질적 속성은 공통으로 가지는 속성 즉 사람이라면 사람이기 위해서 반드시 가져야 하는 속성이다. 이와는 달리 우연적 속성은 말 그대로 우연히 가지게 된 특징을 말한다. 피부색이 흰지 검은지, 키가 큰지 작은지 등이다. 본질과는 상관없는 속성이다.

실체에 대한 설명하는 주요 이론은 질료-형상설, 4원인설, 가능태-현실태 등이 있다. 질료-형상설은 모든 실체는 질료와 형상이 결합된 복합체라고 본다. 어떤 재료에 특정한 모양을 부여해서 사물이 생겨났다고 본다. 이를 질료-형상설이라고 한다. 형상은 플라톤에서 이데아랑 같은 말이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사물의 기능적 형태로 본다. 반면에 이데아는 공통되는 보편적인 특성이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은 이데아와는 다르다. 질료-형상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물을 어떤 수준에서 보느냐에 따라 질료와 형상이 달라진다. 가령 신체의 기관을 실체로 보면 그 질료는 물, 불, 흙, 공기같은 4원소이고 형상은 그것들이 결합하는 방식이다. 몸전체로 보면 질료는 기관들이고 형상은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다. 거기서 좀더 나아가 사람 자체를 실체로 보면 그 질료는 몸이고 형상은 영혼, 즉 몸을 움직이게 하는 원리인 영혼이다.

다음은 4원인설이다. 모든 변화에는 원인이 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원인은 개념이 조금 다르다. 그는 왜 라는 물음에 대해 대답으로 제시할 수 있는 걸 원이라고 본다. 왜 걷는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따져 볼 수 있는데 그걸 설명하는 답변들이 모두 원인이라고 본다. 이러한 원인으로 여러가지가 있지만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이다. 질표인은 사물을 구성하는 질료의 특징으로 인한 원인이다. 형상인은 사물의 형태적 특성으로 인한 원인이다. 작용인은 외부에서 그 사물에 끼친 여향이다. 목적인 말그대로 지향하는 목적을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체력단련을 한다. 왜냐하면 그는 건강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목적인의 예이다.

세번째 실체를 설명하는 개념은 가능태와 현실태이다. 실체들은 끊임 없이 변화한다. 생성하고 소멸하고 운동을 한다. 변화를 설명하려면 ‘있다’와’있지 않다’ 사이의 이분법적인 대립을 넘어서야 했다. 이를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내 놓은 해결책은 바로 가능태와 현실태라는 개념이다.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과 그것을 현실화하는 작용이 결합하여 변화가 일어난다고 본다. 가능태란 변화의 능력이 있는 상태, 다시 말해 아직 X가 아니지만, X가 될 수 있는 능력이 내재한 상태이다. 현실태는 그런 능력이 발휘되어 이제 현실화된 상태이다.

여기서 질문하나 해본다. 변화는 왜 일어나는 걸까 ? 가능태가 변화의 능력이긴 한데, 능력이 있다고 무조건 발휘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변화를 촉발하는 것, 변화의 능력을 실현하도록 이끄는 것, 그건 뭘까 ?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게 현실태라고 답했다. 가능태인 씨앗이 꽃이 되고 싶어서 스스로 변화를 일으킨다는 거다. 4원인설의 목적인에 해당한다. 건강을 이루기 위해 식사조절도 하고 적절한 운동도 한다. 건강자체가 우리에게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것이다. 변화를 촉발하는 건 목적에 대한 욕구라고 한다. 씨앗도 꽃이 되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싹을 틔우고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이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고 생각 했다. 목적을 향한 이 변화가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씨앗이 나무가 되고 나무가 집이 된다. 씨앗의 목적은 나무이고 나무의 목적은 집이고 집의 목적은 사람사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목적이 사물에 존재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삶의 의미를 자주 묻곤 하는데 이는 이런 목적론적 세계관을 받아 들이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이 있는 모든 운동이 지향하는 단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본다. 그게 바로 “신”이다. 신은 세상 모든 변화의 궁극 목적이면서 동시에 최초의 원인인 것이다. 신은 최초의 원인이라서 자신을 변화하게끔 하는 다른 원인이 없다. 신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을 ‘부동의 원동자’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변화와 운동이 이 부동의 우너동자에서 비롯한다고 보았다. 신은 순수한 현실태로만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변하지 않으니 가능태를 함축하지 않으며 신은 질료가 없고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신이 순수현실태라는 말은 신이 어떤 종류의 활동을 한다는 말이다. 그리스인들이 신의 본성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 활동은 ‘사유’이다. 사유는 비신체적이고 가장 지성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철학사 수업, 김주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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