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범위만큼 생각할 수 있다. 


가끔 이동중에 인문학 강의를 들을 때가 있다. 헤드폰을 쓰고 핸드폰과 블루투스로 연결 시킨다. 겨울에는 헤드폰이 귀마게 역할까지 충실하게 해 준다. 거리를 걸을 때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드폰은 지하철이나 버스로 먼거리 이동중에만 사용 한다. 평일에는 퇴근 시 보다는 출근시 자주 듣는다.  들을 수 있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업무로 에너지가 소진되면 퇴근 시간에는 헤드폰을 꺼내는 것도 귀찮다. 강의를 들어도 들어 오지 않는다. 특별하게 주제를 선정하고 듣는 것이 아니다. 그때 그때 관심 분야에 따라 주제가 달라 진다. 이번에는 소쉬르의 언어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흔히 언어(말,글)가 사물을 지칭하거나 ‘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인간이 실재하는 사물을 머릿속에서 의식하고, 그 의식된 내용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먼저 실재하는 사물이 있고, 그 다음에 이 사물에 대한 개념이 있다. 그 다음에야  이 사물의 개념을 표현하는 언어가 있다는 생각이다. 대부분은 우리는 언어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즉  의식이 언어에 선행한다고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소쉬르는 언어의 자의성을 강조하면서 사물과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의식은 언어 체계를 상정할 경우에만 이해되고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의적인 기호 체계를 통해서 사물과 세계를 인식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언어가 의식에 선행하는 것이다. 

언어의 자의성의 의미는 기표(청각 이미지)와 기의(개념)가 결합되는 방식이 자의적임을 의미하다. 이 둘 사이에 그 어떠한 자연적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소쉬르가 자의성을 언급하는 이유는 기호의 정체성이 기호 바깥의 다른 어떠한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에게 있어 기호는 오직 그것 이 속하는 기호체계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즉 기호는 존재하기 위해 그것 외의 다른 것들에 의존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그것 바깥의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 자율적인 것이다. 쉽게 표현해  ‘떡’과  '실제 떡' 사이에는 어떤 유사 관계나 일치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즉 '실제 떡'을  '땅'  또는 '띵' 이라는 언어(기호)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언어는  하나의 관념을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하나의 사물과 결합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언어는 기표와 개념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언어 기호의 정체성은 외부의 사물과는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획득되는 것이라고 한다. 

언어가 의식에 선행에 한다는 것은 우리는 언어의 틀로서 세상을 경험하고 바라본다는 것이다.  에스키모인과 우리가 눈에 대한 인식이 틀리는 다는 것이다. 에스키모인의 언어에는 눈의 종류가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 한다. 눈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눈 종류의 이름만큼이나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의 언어에는 의성어가 발달되어 있다. 발달된 의성어로 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한 방에서 여러사람이 누워서 잘때 젖먹이 아이는 ‘색색’, 유치원다니는 아이는 ‘콜콜’, 아버지와 어머니는 ‘쿨쿨’이다. 서양인들은 어른이나 그들의 숨소리가 그저 ‘제트(z)”로 들릴 뿐이다. 

언어가 자의적이라고 하면  하나의 기호는 어떻게 의미를 지니게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소쉬르의 대답은 ‘차이’이다. 소쉬르에게 있어 기호의 의미는 ‘가치’에 서 유래하며, 가치는 기표들 간의 차이-관계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기호의 의미를 결정짓는 것은 바로 기표들 간의 차이 관계이다.  즉, 개념적 의미는 기표와 기의 간의 지시관계에서 성립하는 반면에, 가치는 기호체계 안에서 기호들이 서로간에 맺고 있는 차이 관계에서 성립한다고 한다. 결국 개념적 의미(기의)를 최종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바로 차이이다.  “떡”은  “빵”도 아니고, “밥”도 아니고, “과일”이 아닌 것이다. 그들간의 차이를 규정하는 것이다. 소쉬르의 기호의 자의성에 대한 주장은 바로 기표들 간의 차이 관계라는 생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 차이는 하나의 언어 단위에 부차적으로 부여된 성격이아니라  차이가 기호의 가치를 규정한다 말한다. 

소쉬르는 제네바에서 파리로 향하는 오후 8시45분 에 출발하는 기차의 예를 든다. 오늘 오후 8시45분에 출발하는 기차(기호)는 어제 오후 8시45 분에 파리로 출발한 기차(기호)와 같은 기차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기차들을 같은 기차들이라고 말한다. 왜 같다고 여기는 것일까 ?  오늘 오후 8시45분에 파리를 향해 출발하는 기차는 다른 시각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기차들(다른 기표들)과 비교해 볼 때 어제 오후 8시45분에 파리를 향해 출발했던 기차와 같다는 ‘의미’를 얻게 되는 것이다. 소쉬르는 기차의 예를 통해서 하나의 사물이 어떻게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기차의 예가 말해주는 것은 결국 하나의 사물은 그것이 그 안에서 다른 사물들과 관계하는 체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쉬르적인 관점에서 볼 때, 사물의 참된 의미는 사물 자체의 속성과 기능에서가 아니라, 기호의 체계 안에서 기호들이 서로 간에 맺고 있는 관계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다. 

실재는 기호로서, 언어로서 실재하게 되었다. 물론 이 말은 언어 외적인 실재가, 언어화되지 않은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 것은 단지 언어와 동떨어져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언어 이전의 실재는 우리에게 있어 무의미 하다는 것을 말한다. 애초에 우리가 인식할 수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적어도 인간에 의해서 표현되고 의미를 갖는 실재는 언어적 기호에 의해 형성되고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말한다. 세계 경험의 비밀은 의식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 속에 있다는 것이다. 언어의 범위 만큼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감으로 소통하기
 

매주 수요일은 토스터마스터 모임이 있는 날이다. 토스터마스터는 회원들에게 발표를  하는 모임이다. 작은 테드 모임이다. 테드는 발표자가 정해져있지만 토스트마스터는 회원누구나가 발표를 할 수 있다. 단순 발표가 아니라 프로그램에 따라 단계별로 주제를 정해서 한다.  한국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 모임이 있다.  국내는 영어 발표 모임이 대부분을 차지 한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모임은 영어 발표 모임이다. 회사에서 영어 프리젠테이션 직무 교육에 참여 한적이 있었다.  원어민 강사가 적극 추천하여서 참여하게 되었다. 여러 사람에서 발표를 해야하는 울렁증과 영어로 발표 하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 영어 말더듬을 극복해야 한다.  두가지를 역량을 향상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다양한 회원들을 만나 경험도 공유할 수 있다.  모임에서 서로 역할을 맡아가며 지속적으로 운영한다. 이번주에는 발표 경진 대회가 있었다. 나의  역할은 심사위원의  발표 평가 결과를 수합하여 우승자를 가리는 것이다.  

퇴근 시간이 될 무렵 바빠지기 시작한다.  업무를 빨리 끝내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모임 때문에 수요일 오후가 여유가 없어지기도 하지만 시간을 할당을 해놓았기에 집중적으로 일할 수 있다.  일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끝이 없다.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완성도를 추구하면 더 자유로워 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일에 대한 핵심을 파악하고  인정 욕구를 한단계만 낮추면 된다.  5분 정도 늦게 모임 장소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큰 모임 공간 이었다. 50여명도 들어가도 넉넉할 정도였다. 이웃 토스터마스터 회원도 많이 와 있었다. 게스트 소개가 있었다.  경진 대회 교칙을 소개하고 드뎌 참여자의 발표가 시작 되었다. 경진대회 참여자는 모두 5명이 참여하였다. 우승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참여한다.  경진대회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자신을 노출 시킴으로써 발표를 배우는 과정이다.  발표자 모두 내가 알고 있는 회원 들이었다. 여러번 일상 모임에서 발표를 들었다. 발표하러 앞으로 나가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였다. 경진대회이기에  발표의 완성도가 높았다. 제스쳐도 잘 사용하고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공간도 넓게 사용하였다.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발표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회원은 영어가 유창 하였고 속도도 빨랐다. 발표는 언어의 종합 예술 같다. 글쓰기와 다르다. 발표자 만들어 내는 시각적 요소와 음성이 어우러져 우리와 눈과 귀에 들어 온다.  한명이 출연하는 드라마와 같다.  옷이나 표정, 인상에서 풍기는 느낌이 눈에 먼저 들어 온다. 우리의 눈을 맞추고 제스처를 사용하면서 설득을 하는 것이다. 목소리와 발음도 중요 한다. 소리의 태도도 다양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는 톤에서 부터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힘있게 다가오기도 하였다. 목소리의 높낮이 변화도 관심을 끌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구조이다. 글쓰기와도 연관이 깊은 항목이다. 크게는 사실과 논거중심에 논리적 호소를 하는 발표자와 스토링텔링 중심의 감성적 발표자가 있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로 부터 시작된 삶의 이야기는 청중들이 집중하게 만들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사람들은 그느낌을 공감하였다. 이야기는 가장 강력한 정보 정보 절단 도구가 맞았다. 우리 가슴에 울림을 주고 오래도록 기억 되게 만들었다. 사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논리도 필요하지만 감성적 부분이 중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발표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발표자에게 공감하며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5명의 발표가 끝나고 평가 결과를 수합 하였다. 내가 평가한 결과와 비슷하였다. 발표의 유창함 보다는 경험을 이야기로 엮어낸 발표자가 우승을 하였다. 이야기가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가고,  메시지가  의미를 지닐 때 청중들은 감동을 선물 받았다.  

공감할 수 있는 발표가 가장 좋은 발표 였다. 좋은 발표 방법과 내용은 지식으로 알고 있지만  직접 해보면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실제 몸이 기억하게 만들어야 한다. 많이 발표 경험을 통해 몸에 새겨야 한다. 피드백을 받고 고쳐야 한다. 이부분은 글쓰기와 닮았다. 머리속에서 글을 어떻게 써야 된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쓰면 생각처럼 진행 되지 않는다. 실제 앉아서 글쓰는 것을  몸이 시키게 해야 한다. 글쓰기 습관이 들면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자신의 피드백 이다.  자신의 글을 읽다 보면 이상한 부분이 드러난다. 다양한 글을, 좋은 글을 읽다 보면 내 글을 읽었을때 피드백의 정보가 더 많아진다. 내 안목이 높아 지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피드백은 한계가 있다. 다음 단계는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필요로 한다.  토스터마스터  모임의 장점이  피드백이다. 좋은 점을 발견 해줌으로써 자신감을 갖게 한다. 부족한 점을 드러냄으로써 개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동료들의 관심 메시지도 에너지가 된다. "발표 내용이 괜찮았어요.” "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어요.” " 다음 발표도 기대 되요” 작은 쪽지에 볼펜으로 쓰여져 있는 메시지는 다음 발표를 준비할 힘들 준다.   

발표 경진대회를 통해 발표와 글쓰기를 비교 해보았다.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글쓰기도 스토리텔링 줌심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감각의 감수성을 가져야만 글로 풀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머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경험하고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요즘 깨닫는다. 공감으로 소통하기는 발표와 글쓰기 모두 해당된다.  말이 어눌하고 글이 다소 서툴더라도 공감할수 있는 내용이 있으면 소통이 가능함을 오늘도 깨닫는다. 




북 토크쇼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처음으로 북 토크쇼를 다녀 왔다.  우석훈 경제학자의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북 토크쇼 였다.  집으로  빨리  복귀하라는 가족의 명령 수준의 요청을 거부하고 일을 저질렀다. 회사 동료와의 번개 모임 유혹도 뿌리 쳤다.  몇 년만에 가보는 숭례문 학당이었다. 4호선 전철을 이용한 것은 처음 이었다.  회현역에서 걸어 갔다.  마음은 급한데 횡단보도  신호등은 빨리 바뀌지 않았다. 서두른 덕택으로 도착하였을 때 우석훈 경제학자의 북토크쇼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를 시작하였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가가 좋았다. 우석훈 작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하고 달랐다.  동네 아저씨 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한국 직장 문화를 이야기 할때 갑질이라는 단어를 빼 놓을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갑질은 직장내에 문제가 개인 한사람의 일탈로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직장내의 민주주의가 실현이 안되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경직된 군대 문화에 기인 한다고 하였다. 제국주의 일제강점기로 시작 되었다고 한다. 일본이 2차대전후 군사 문화에서 멀어지는 것과 대조적으로 우리는 군사정권과 함께 군대 문화는 전방위적으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한국이 독특한  공채 기수와 나이가 수직적인 문화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학벌도 수직 문화 형성에 기여 했다고 한다. 
직장 내의 세대간의 차이 만큼이나 직장을 바로보는 시야가 차이가 난다고 하였다.  과장 이상 직원은 이상적인 회사로 ‘가족 같은 회사’를 말한다고 한다.  반면 대리 이하가 바라는 건 ‘사생활 보장’이라고 한다. 젊은 직원들은 회사 사람들과 밥 먹기도,  영화 보기도  ‘단톡방’도 싫다고 한다. 팀장이 팀원을 '우리 애들'이라고 부르는 게 제일 싫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는 혼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우석운 작가는 이야기 하였다.  
질문을 통해 확인한 ‘직장내 민주주의’의 실천은 직장인들이 싫어하는 것을 안하는 문화라는 것이다. 성희롱 금지와 같이  '회사 단톡방’ 금지, 원하지 않는 회식 하지 않기 라고 한다.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윤리는 실천하기 힘들지만 작은 에티켓은 하나씩 실천 해 나가자고 하였다. 직장 민주주의 하나로 동일 노동에 대해 Equal Payment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였다. 남녀 임금 격차가 너무 크다고 하였다. 
아는데 못 푸는 문제가 있고, 몰라서 못 푸는 문제가 있다. 직장내 민주주의는 몰라서 못 푸는 문제에 가깝다고 한다. 하나씩 알게 만들면 직장내에 민주주의가 멀지 않다고 한다.  개인이 자신의 개성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그것을 조직의 성과로  만드는 것이 노르딕 모델의 직장민주주의라고 한다. 노르딕 모델의 직장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직장 민주주의 모델이다. 내일도 출근을  한다. 직장 민주주주의 관점에서 회사 생활을 바라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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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벗어난 퇴근길 


퇴근을 하기 위해 사무실 나섰다.  출입문을 나서자 테니스 장이 눈에 들어 왔다. 올해 옮긴 사무실 사옥에는  테니스장이 있다.  환한 불 빛아래  테니스를 경기를 하고 있었다. 바쁘고 피곤할 때는 테니스장도 스쳐지나 갔는데 오늘은 나의 발길을 유혹했다. 출구로 직직하는 대신  테니스 장 펜스문을 열었다.  가벼운 인사를 하고 테니스 경기를 한참 동안 지켜 보았다. 테니스 공이 코트 양 사이드를 오갈때 나의 시선도 공을 따라 음직였다.  테니스 코트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전에 전화 주셨던 분이세요 ?”  질문을 받자 머릿속에서 과거 기억을 짧은 시간동안 떠올렸다.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몇 주전 테니스장 이용 방법을 전화로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 바로 그 전화 통화자였다.  “예” 하고 답하자.  "화요일과 목요일에 테니스 라켓 들고 오세요”라고 반갑게 이야기 하였다.  같은 운동, 관심 분야를 가지는 사람들은 그것을 매개로   가까워지기 쉽다.  목요일 부터 퇴근 후 테니스 경기를 참여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일 부터라도 라켓과 테니스화를 사무실로 옮겨 나야겠다. 평일에도 운동을 할 생각을 하니 퇴근길이 더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버스 정류장에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선택 해야 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와  서점을 향하는 버스가 있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더 자주 온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두번 정보 보냈다. 일이 일찍 끝났고 여유가 있어서 서점을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로 30여분을 가면 서점이 있다.  대형 서점과 중고 서점 두곳이 모여 있다. 특별히  사고 싶은 책이 있어서, 서점으로 향한 것은 아니었다.  버스에서  혹시 내가 좋아하는 작가 책이 있는지 조회를 해 보았다. 작가로 책제목으로 대여섯번을 조회 했는데  검색한  책이 없었다. 마지막 조회 해본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가 있었다. 이 책한권과 우연히 마주치는 책을 사기로 하고 서점으로 들어 갔다. 조지 오웰 책을 찾았다. 안내한  책 꽂이에 책을 찾았는데 없었다. 중고 서점은 대부분 책이 한권이다.  잠시 머뭇거렸다.  조지 오웰 책은 꼭 사야 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새 책으로 사기 위해 서점을 옮기지는 않았다. 나는 지름신이 있어서 계속 사는 습관이 있었다. 다행히 책이 한정된 중고 서점을 이용하여 나의 지름신이 제어 되고 있었다. 중고서점을 이용하면 다른 장점도 많다.  베스트셀러에 묻혀서 발견하지 못한 책을 뒤늦게 나마 만날 수 있다. 절판된 책도 만날 수 있고 저렴한 비용으로 내 책을 소유할 수 있다. 내 책은 밑줄 치고 메모 하며 읽을 수 있다.   

좋아하는 분야 책꽂이로 자리를 옮겼다. 박노자의 ‘전환의 시대”와 김이경의 ‘마녀의 독서처방’을 꺼내 들었다. "책 읽는 마녀" 는 블로그에서 서평 글을 읽어 본 경험이 있다. 책으로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골랐다.  박노자는 이전 부터 알고 있는 작가라 선택 하였다. 책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 간다. 집에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조지 오웰 책이 있는지 확인 하였다. 이번 에는 바로 발견 하였다. 3권을 구매하고 밖으로 나갔다. 새로운 책까지 만나니 한결 기분 전환이 되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에 전화 했다. 지금 가는 것 보다 막내 학원 끝날 시간에 맞추어 마중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시간이 더 여유가 생겼다. 막내 학원 10시에 끝나니 1시간정도 여유가 되었다.  버스를 타는 대신 또 다른 서점에 들렀다. 잠깐 둘러 본 후 황광우의 ‘촛불 철학’을 구매 하였다. 작가만  보고 선택하였다.  이제 학원으로 향하였다. 학원 인근에 도착 했는데도 시간이 남았다. 인근 커피숍 으로 들어 갔다.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구매한 책을 읽기 시작 했다.  일사에서 벗어난 책 읽기 였다. 책 내용이 바로 들어 왔다. "나는 왜 쓰는가” 부분을 읽었다. 이전에 발췌부분을 읽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확인하고 싶었다. 작가는 글쓰기 동기를 4가지로 나누었다..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이었다.  "‘정치적’ 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 되었다.  이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294p) 이 부분을 읽고 나니 박노자와 황광우 책이 바로 눈에 들어 왔다.  ‘전환시대’와  ‘촛불 철학’ 모두 정치적인 동기가 강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 학원 끝날시간이 되어 서둘러서 나왔다.  일상을 벗어나 계획에 없던 책 읽기 였다. 키보드를 가지고 다니며,  일상에서 벗어난 글쓰기도 시도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막내는 마중을 나오면 좋아한다. 많은 학생들중에 내가 막내를 찾아야 한다. 시선을 집중하고 학원 앞을 바로 보았다. 막내가 눈에 들어 왔다. 웃으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같이 집으로 향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상에서 벗어난 퇴근길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뿌듯하였다. 자주 일상에서 벗어난 퇴근을 시도해볼 가치가 있음을 확인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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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동기를 잘 드러내는 책 표지 글이다. 이 표지의 글과 같은 세상이 왔으면 한다. 

전환의 시대  (박노자) 

내가 꿈꾸는 미래의 대한민국은 시민 홍길동이 학창 시절 교사한테 존댓말을 듣고, 지시가 아닌 '제안'을 받는 사회다. 입시가 사라지고 '명문대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 어느 대학에 진학해도 똑 같이 무상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는 사회다... "군대 갔다 와야 남자가 된다"는 말 대신에 "아이를 길러봐야 남자가 된다"는 말이 속담 처럼 도처에 들리는 "여자 같은 남자"라는 말이 남성에게 최고의 칭찬이 되는 사회다. 그리고 주말에 바람 쐬러 평양이나 원산에 다녀오는 것이 당연지사로 여겨지는 사회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꿈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많은데, 꿈은 맞다. 한데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꿈이야 말로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

촛불철학 (황광우)

과욕을 버리고 검소를 실천해야 한다. 무한 경쟁의 광기에서 벗어나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사는 '연대의 삶'을 실천하자.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한 삶인지 저마다 행복한 삶에 대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행복은 인간의 본성을 충실하게 실현하는 곳에 있다.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이다. 창조적 활동을 하는 곳에 기쁨의 원천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나누고 도우며 사는 곳에 즐거움의 원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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