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다. 주위가 밝았다. 일찍 일어나고자 했던 계획이 어긋나 있음을 순간적으로 알았다.  어긋난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시계에 시선이 먼저 갔다.  어제보다는 양호하다.  바쁨 모두로 전환한다.  운동복으로  빨리 갈아 입었다.  손에는 테니스 라켓이 들려 있다. 몸은 테니스 구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테니스 구장에 회원에 많지 않았다. 일요일은 사람이 몰려서 늦게 가면 경기에 참여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 해야 한다.  오늘은 한 경기만 하고 집으로 와야 했다.  막내하고  점심 약속이 있었다.  내가 장소를  정해야 하고,  교통편도 확인해야 한다.  생각보다 경기가  빨리 끝났다. 한 경기를  더참여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경기 참여를 고민하다 시간만 보냈다. 어느새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매주 막내를 위해 일요일 오전에 아빠표 아점을 준비 했는데 오늘은  점심 외식이었다. 막내 요청사항은  세가지 였다.  커리하고 나은  맛있어한다. 식당이 인도 분위기가 나야 되고 너무 작아서도 안된다.  마지막으로 집에서 너무 멀면 안된다. 지난주에  같이 가서 먹었던 인도 음식이 맛있나 보다.   

집에 돌아와서 외식 준비를 했다. 주중에 틈틈히 생각 해놓은 식당을 인터넷으로 찾아 보았다.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지 확인하였다. 최종적으로 두곳을 정하여 막내에게 선택하게 했다. 본인이 선택하면  선택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큰애는 일이 있어서 안간다고 하였다. 같이 가자고  설득했는데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이전 같으면 부모의 힘으로 같이 가게 했을 텐데.. 이제는 선택을 존중해 준다. 

도착한 인도 식당은 지난번 보다 넓었다.  인도를 생각하게 하는 인테리어다. 막내의  평가는 지난 주 식사 했던 곳이 더 인도 분위기가 더 난다고 했다. 인도인이 서빙을 했고 음악도 인도 음악 이었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서빙도 한국인이고 음악은 없다고 했다.  난과 커리, 그리고 라씨를 주문 했다. 막내는 커리에 대한 평가도 하였다. 여기가 진한 맛이 나고 치킨 커리에 치킨외에 다른 재료도 들어 갔다고 하였다. 난은 따뜻해서 좋다고 하였다. 전반적으로 만족한다고 하였다. 집에 돌아가면서 나에게 고맙다고 한다. 조용히 팔장을 낀다. 오늘 점심 임무는 성공적으로 완수 했다. 

오후에 막내 테니스 수업이 계획 되어 있다.  운동을 하지 않아 내가 좋아 하는 운동으로 설득 하였다. 처음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운동을 시작 하였다. 요즘은 조금 재미를 붙였다. 일주일에 삽십분 한번이다.  일요일이니 부담도 없다고 하였다. 점심을 같이 먹었으니, 혼자 다녀 오라고 하였다. 막내가 운동하는 동안 다른 일을 하려고 했다. 막내는 내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댓구를 한다. 아빠가 자녀에게 관심이 있어야지.. 주말에라도 시간을 같이 보내야지... 테니스장에 따라와서 운동 끝나면 공을 주으라고 한다.  옆에 아내도 동의 하는 분위기이다.  우리는 테니스장으로 향하였다.  막내가 가는 테니스장은 내가 참여하는 테니스 장이 아니다. 나는 운동을 할 수 없어 책을 챙겼다.  이십여분을 걸어가야 한다. 걷는 동안 여러 이야기를 하였다. 나뭇잎들이 어느새 갈색이다 라고 한다. 담장에 붙어 있는 나뭇잎은 떨어지지 않았는데 저 잎이 봄에 다시 녹색이 될까 ? 아니면 새로운 잎이 돋아 날까 등 일상 이야기다.  막내와 이야기 할때 피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공부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무관심해야 할 영역인 것이다.  관심을 가지면 동물들이 자기 영역을 침범 당했을때 처럼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막내가 테니스를 하는동안  책을 읽었다.  공이 잘 넘어가는 지 .. 폼은 괜찮은지 잠깐씩 확인 하였다. 운동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물었다.  책만 읽었는지 ? 관심있게 운동하는 것을 보았는지 ?  운동은 내가 관심을 가져야할 영역이다.  운동 중간에 살펴보길 잘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잘했다는 평가만 하면 안된다. 개선점을 포함해서 이야기 해주었다. 개선점이 있어야 다정한 관심인 것이다. 잘했다만 이야기 하면 영혼 없는 평가라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맨홀 조심하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뜻밖의 막내는 진정한 관심이라고 이야기 한다. 거실문을 들어 설 때도 먼저 들어가라고 양보 했다. 막내 평가는 만족 이었다.

관계는 늘 어렵다. 같이 하는 시간과 겹치는 공간이 많은 가족이라는 관계는 더 어렵다. 내의지 대로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어떤 책에서 '다정한 무관심’이라는 읽은 적이 있다. 다정한 관계이면서, 특정영역에서 대해서는 무관심하는 것으로 해석 했다. 막내 와의 관계에서는 공부는 아빠에게 무관심해야 할 영역이다. 본인이 알아서 하면 된다. 도움이 필요할때 옆에 있어야 한다. 관심이 있어야 도움이 필요할때 옆에 있을 수 있다. 서로 존중해주면서 관심을 갖다 보면 건강한 관계가 됨을 확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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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점심 시간은 공식적으로 12시부터 1시까지 이다. 특별히 점심 약속이 없는 날은  회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12시에 사내식당에 가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11시 40분 정도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회사앞 외부 식당에서 같이 먹기로 하였다. 식당에 들어 서려고 하자  건축 작업복 차림의 아저씨 여러명이 앞서서 먼저 들어갔다. 순간 방학때 했던 건설 아르바이트가 생각이 났다. 벽돌을 나르거나  부서진 콘크리트를 리어커로 실어 나르기도 했었다. 옷에 시멘트 먼지도 묻었다. 점심시간이면 먼지를 털고 식당에 들어 갔다. 새벽에 일어났기 때문에 점심 밥이 맛있었다.

 작업복 차림의 아저씨들을 지켜 보았다. 나의 아르바이트 시절을 생각하며 젊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였다. 젊은 사람은 없었으나 두세명의 백인 노동자를 발견하였다. 순간 먼지 묻은 복장이 안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은 러시아인일 거야 였다. 만약 동남아인 이었다면 나의 시선도 끌지 않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자리에 앉아 밥을 먹으며서도 일행을 지켜 보았다. 백인 아저씨가 음식도 챙기고 수저도 챙겼다. 짧은 시간이나마 그들의 권력관계상 아래 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낯설게 보였다.    

내 안에 새겨진 서양인, 백인의 이미지와 달랐다. 내 시선을 끌었다. 한국에서 만나는 서양인의 이미지는 긍정적 이미지이다.  백인이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 동양인이 하는 말보다 보다 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것처럼 들니다.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들어와 있는 것일까 ? 밈(meme)일까도 생각했다. 밈은 생물학적 유전자가 개체에 영향을 주듯 문화심리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말한다고 한다. 부모의 여러 문화적 취양이 전달되고, 유전자처럼 복제 된다는 것이다. 이전 세대가 가져던 이미지와 생각들이 복제 된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부모로 부터 아니면 앞세대로 부터 받은 영향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서양인에 대한 우월적 이미지와 동양인에 대한 열등적 이미지 인것이다.

책을 보다가 내안에 새겨진 이미지가 미디어나 텍스트의 영향임을 추측 할 수 있는 내용을 발견하였다. 자연스럽게 생성된 생각이 아니었다. 백인의 의도와 관점이 보편적인 생각인것처럼 받아 들이게 만든 문화적 영향이 있었다. 옛날 신문에서 이런 기사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제 3세계에 물조를 원조할 때, 수혜를 받으려면 국영 방송에서 미국 드라마 ‘타잔’을 적어도 2회 이상 방영해야 된다는 거였다.  물자 원조의 배후에 문화 공작이 있다는 것이다. 타잔을 보여 주면 강력한 문화적 감염이 일어 난다고 한다. 지상에서의 선의 표상이 달라진다고 한다.  타잔의 용모, 피부색, 사용하는 언어, 몸짓, 발짓이 그들이 도달하고픈 이상적 표본으로 된다고 한다. 미국인의 용모를 미적 가치의 척도로 삼게 만든다고 한다.(삶은 언제 에술이 되는가, 131p)  

나의 생각은 만들어진 생각이었다. 타잔을 재미 있게 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각 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설명하였다. 

일본인 우치다 타츠르가 미국 영화인 <진주만>을 보고  미국인 주인공과 일본 비행사가 벌이는 공중전을 보면서 계속해서 미국 비행사의 승리를 바라고 일본 비행사가 조정하는 비행기가 추락하기를 기원합니다 홍콩 영화인 <정무문>을 보면서 악랄한 일본인 무술가를 때려 눕히는 이소룡의 활약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어떤 영화평론가는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의 한 영화관에서 터져 아온 흑인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사례를 보고한 적이 있습니다. 백인 선장으로 나오는 조지 라프트가 적에게 쫓길 때 배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짐짝’인 흑인노예를 바다에 던저버리는 장면에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에드가 모랭, ‘영화-또는 상상속의 인간) 

인간이란 이런 존재 입니다.  우리는 확고한 견해를 가진 인간으로 텍스트를 읽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앞에서 말한 영화의 예에서 보듯이 텍스트 쪽이 우리를 ‘그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주체’로 형성합니다
텍스트와 독자는 사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매우 충격이 강한 책의 경우 마지막까지 읽은 다음 다음 성이 차지 않아 다시 읽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읽으면서 첫번째 읽을때 알아채지 못했던 의미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 읽을때 놓친 의미를 어떻게 발견 할 수 있을 까요 ? 그것은 그 책을 한번 끝까지 읽은 덕분에 우리의 견해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즉 그 책으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읽어 내는 읽을 수 있는 주체로  우리를 형성한 것은 텍스트를 읽은 경험 그 자체 였던 것입니다.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137p ) 

의심하지 않고 받아 들이기만 하는 텍스트 읽기는 자칫 세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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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변화시킨 사건 


나를 변화시킨 사건을 생각하다 보니, 내 삶 전체를 돌아  보게 되었다. 어렸을때 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 간다. 내 삶의 방향을 바꾼 사건들을 떠올렸다. 많은 사건이 있어서 하나하나 돌아 본다면 시간이 꽤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 하나 떠올리고 지우고 보니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건은 죽음의 문턱까지 간 경우이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는 이전과 이후의 삶이 많이 바뀔거라고 생각 했다. 죽음의 고비만 넘긴다면 완전히 다른 내가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쉽게 망각하고 이전의 나로 되돌아 갔다. 이전의 환경과 사람들 관계에서 변화하기 쉽지가 않았다. 

사건의 강도 측면이 아니라 시간측면에서 돌아 보았다. 최근에 주요한 사건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내 일상과 환경을 바꾸어 버린 인도 파견일을 잊을 수 없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출발한 날이다. 4.26일 이었다. 한국은 봄이었지만 인도는 뜨거운 여름이 있다. 인도 도착해서 비행기에 내렸을때 밀려 오는 뜨거운 기운이 나를 맞이 했다.  이로서 3년의 인도 생활이 시작 되었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나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 하였다. 이전과 다른 삶을 경험 하였다. 인도 여러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자연 환경과도  만났다. 친절한 현지인도 만났고 나를 속이려고 했던 사람도 만났다. 그러면서 나의 생각들이 바뀌었다.  

처음 떠날때 자유를 위해서 떠났다. 가족들과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보 부터 자유를 생각했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자 했다. 현지 현실은 내가 생각 했던 생활과 달랐다. 또 다른 커다란 감옥이었다. 호텔과 회사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생활이 연속 이었다. 교통도 불편하고 제 3의 공간을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제약에서 자유의 개념이 바뀌었다. 무엇 무엇으로 부터 자유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할 수 있는 자유로 바뀌었다.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 였다. 인도 여행과 현지 커뮤니티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자유를 추구 하였다. 한줌의 용기와  학습을 요구하는 자유 였다. 혼자 계획하고 떠나는 미지의 여행 이었다. 몸으로 느끼고 생각하며 나는 변해 갔다.

현지인을 만나고 커뮤니티에  참여 하면서 현대화 의미를  생각 하였다. 발전의 의미를 생각하였다. 내가 생활한 뭄바이는 과거와 현대가 상존하는 공간 이었다.  한쪽에는 백화점이 있고 스타벅스와 글로벌 패스트 푸드점이 있다. 한쪽에는 거대한 슬럼가와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빈부 격차가 컸다. 환경 차이도 컸다. 농촌에서 가족을 위해 도시로 온 가장들도 많았다. 그들의 힘든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내가 만난 운전 기사는 월급을 약 20만원을 받는다. 5만원은 방값으로 지불한다. 5만원은 부모님께 송부 한다. 5만원은 식비로 지출한다.  만 8천원은 집으로 송부한다. 만 8천원은 용돈이다. 나머지는 기타 비용이다. 백화점 물가와 스타벅스 커피가격은 우리와 비슷하다.  발전과 근대성의 의미와 영향을 정리하고 싶었다. 4.26일부터 시작된 인도 생활이 나에게 부여한 물음 이었다. 글로벌 경제화가 자연과 공동체  중심의 로컬 사회를 파괴한다. 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에서 몇 십년간의 경험으로 이야기 한다. 이야기의 중심이 인도 라다크 사회이다. 우리 앞세대가 경험한 생활이었다.  

현지에서 새로운 운동,  테니스를 만났다. 주중과 여행가지 않는 시간을 테니스로 채웠다. 나의 생활에 중심으로 들어 왔다.  아침에 테니스로 하루를 시작했다. 한시간 테니스 후 출근 하였다.  퇴근하면 동료 들과 테니스 경기를 하였다. 금요일이면 자정을 넘어 운동을 하였다. 땀을 흘리고 샤워하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린다. 비가 계속되는 우기때는 비가 조금이라고 그치면 물을 밀어 내고 운동하였다. 가끔 그 열정을 이야기 한다. 운동을 충분히 즐긴 시간이었다.  복귀 해서도 주말에 테니스를 한다.  내일 아침에도 여전히 라켓을 챙겨서 테니스 코트로 향할 것이다. 테니스의  재미를 알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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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릴께요"
 

출근 시간이었다. 사무실까지 대중교통으로 한번에 가지 못한다. 전철에서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전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 왔다. 두더지가 지상으로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출근 시간 버스는 항상 만원이다.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사람들이 버스를 따라 총총걸음으로 발길을 옮겼다. 중앙차선을 이용하는 버스가 아니기 때문에 인도에서 그 버스를 보고 모여 들었다.  모이를 줄때 닭이 모여드는 모습 이였다. 가장 붐비는 곳은 승객이 버스에 오르는 앞 문는 내리는 문 주변이었다. 승객이 내리는 원래의 목적으로 사용 되지 못하였다. 버스에 승차하기 위해  내리는 문으로 대부분의 승객이 모여 들었다. 내리는 문이 더 넓기 때문에,  빨리 승차 할 수 있었다.  또한  자리가 많은 뒷 좌석에 빨리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버스에 오르면  버스를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 감도 잠시였다. 자리 경쟁이 시작 되었다.  어느새 빈자리가 없었다.  출근 시간 승객이 많을때는 경로 우대석도 잘 보이지 않았다.나도 겨우 뒷문으로 버스에 올랐다. 뒷문이 닫힐 수 있도록 승객을 밀었다.   

몇 정거장을 갔을까.   버스 정거장에 도착 했을 때 일부 승객들이 내렸다.  내리는 문 앞에서 휴대폰으로 카톡 메시지를 확인 하고 있었다.  옆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내려요”  그때  버스는 문을 닫고 있었다. 문은 닫혔고,  버스는 출발하고 있었다. 다시 “내려요” 소리가 들렸는데 소리는 작았다.  버스는 아무일도 없는듯 무심히 가고 있었다. 기사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누구도 옆에서 크게 “내려요”를 외쳐 주지 않았다. 나도 외칠 시기를 놓쳐 버렸다.  버스는 아무일 없는 듯 더 빨리 달리고 있었다.  ‘내려요’를 작게 이야기한 어르신은  운전석으로 조용히 걸어 가고 있었다.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자 어르신은 기사에게 작은 소리를 불만을 이야기 했다.  멀리 있어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대략적으로 내린다고 했는데 왜 내려 주지 않고 출발 했느냐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다음정거 장에  버스는 멈추었는데 어르신은 내리지 않았다.  계속 기사와 실랑이를 하였다. 시선이 집중 되었고 동시에 시계에 눈이 갔다.  늦었는데  빨리 출발 했으면 했다. 실랑이는 계속 되었고 언성도 조금씩 높아 졌다.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버스 정거장을 지나친것도 아니고 문을 열어 드렸는데 왜 못내리고 이제와서 그러세요”  “여기서 내려서 한정거장 다시 가면 됩니다. 비용은 추가 되지 않습니다”  앞 문에 실랑이를 벌이던 어르신도 이에 답하였다. “내가 내린다고 외쳤는데 왜 계속 갔느냐고 했다”.  앞문을 닫고 버스가 출발 하려고 하자 어르신은 다시한번 이야기 했다. “내린다니까”  버스 문이 다시 열렸다.  그러나 내리지 않았다. 계속 문앞에 서 계셨다. 

 그 순간 좌석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내리세요 당신 한사람때문에 여러사람이 못가고 피해를 보잖아요” 어르신은 댓구하지 않았다. 기사에게 다시 이야기 했다. "당신이 잘못 했다고 사과 했으면 바로 내렸다”. 좌석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핸드폰을 보다가 못 내리셨으면서  왜 기사에게 잘못을 돌리세요”  어르신은 경찰서로 가자는 이야기까지 하였다. 기사의 목소리도 더 높아져 갔다. 그러자 몇몇 승객을 더이상 못 기다리겠는지 뒷 문으로 내렸다. 다른 버스를 타야겠다고 이야기 하였다. 나도 잠깐 동안 생각했다. 내려서 다른 버스를 탈까   늦은 거 더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다.  어르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사과만 했으면 빨리 내렸을 터인데” 그리고 내렸다.  

버스 문을 닫았다. 버스가 츨발 하려고 하자 내렸던 승객들이 뒷 문을 두드렸다. 뒷문은 다시 열리고 승객들이 다시 탔다.  누군가  어르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 저 어르신 아내는 정말 답답 하겠네요”  그러자 다른 승객이 이야기 했다. “결혼도 못 했을 거예요”  그 어르신은 짧은 순간 공공의 적이 되었다가 이제는 뒷담화 대상이 되어 버렸다.  씁쓸 하였다. 버스가 빨리 가야 된다는, 조금이라도 늦으면 안된다는 공통 목적 때문에  어르신은 지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어르신은 원하는 정거장에 못 내렸으면, 다음 정거장에 쿨하게 내려서 가면 됐었다.  기사도 뒷문은 열었지만 '내려요'를  못 들었다고 이야기 하고 사과 했으면 빨리 끝날 일이었다. 나도 카톡 메시지를 보면서 ‘내려요’를 못 들은척 했다. 진행 사항만 지켜 보았다. 우리는 모두 남남이었다.  단지 이해 관계에 따라 같은 목소리를 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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