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과 이직 사이 


“가능하면 회사에서 오래 버텨, 회사를 나와 보니 시베리아야”  점심 시간에 몇년전 희망퇴직 하신 옛 선배를 만났다.  점심을 같이 하면서 그동안 살아 온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희망 퇴직 했을때는 희망을 가지고 퇴직 했는데,  지금은 생활비를 벌 수 있을 정도의 회사에 다니고 있어”  지금의 상황을 한마디로 이야기로 하였다.  희망 퇴직 결정전에 나에게 이야기를 먼저 했었다.  그 당시 나는 왜 퇴직하려고 하는 지 부터 물었었다.  내부에서 권고 했는지 부터 물었다. 권고는 없었다고 했다. 퇴직 후 구체적 계획이 있는지 ? 준비는 했는지 물어 보았었다. 이전부터 준비 했던 사업이 있었다고 했다. 온라인 판매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채권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퇴직을 경정 하였다.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계획 했던 사업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고 했다. 투자비만 몇 억을 날려 버렸다고 하였다. 이전에 고기집도 하였다고 하였다. 하지만 독감이 유행하여, 유동인구가 줄었다고 하였다. 인건비와 경비가 늘어나 문을 닫았다고 하였다. 퇴직 하였을때  제일 먼저 전화를 한 곳이 은행 이었다고 한다. 제직 여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퇴직 하였으며 바로 대출을 갚아야 한다는 공지였다고 한다.  회사에 다닐때는 몰랐던 현실을 하나 둘씩 알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 보았다. 중소 기업에 임원으로 취직 했다고 한다. 그럼 이직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1년 계약이라고 했다. 이력서나 능력 보다는 회사 생활하면서 알고 지낸 분의 안면으로 취직했다고 하였다. 요즘 1년단위로 강제 이직한다고 하였다. 순수하게 이력서와 경력으로만 취직은 힘들다고 했다. 철저하게 결과 위주로 연장여부가 결정된다고 하였다. 성격이 억세고 추진력이 있다면,  꼭 다녀야만 한다면 악착같이 일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없다고 하였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 안정성과 신뢰성 바탕으로 경영관리 위주의 일에 맞다고 하였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변화 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하였다. 다행히 아이들도 학교를 마쳐서 생활비 정도면 벌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불안한 생활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남긴 권고가 현실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퇴직은 마지막 선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구체적인 준비를 많이 하고 계획을 세워도 기존 급여의 유지가 힘들다고 하였다. 새로운 사업을 하기 보다는 자격증을 취득 하라고 하였다. 희망 퇴직 하신 분들 중에서 가장 잘된 경우가 자격증 취득 후 전문성을 살려 재취업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한다. 즉 희망 퇴직금을 받고 이직 하는 것이다. 회사 다닐때 자격을 많이 취득 하라고 하였다.  자격증은 정년 이후에도 사용가능하니 공부할 수 있을때 취득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하였다. 자격증도 시간이 갈 수록 더 어렵다고 한다. 진입 장벽을 더 높아 지기 때문에 빨리 취득 하라는 말도 덧 붙였다. 불안한 노후를 위한 자기 계발인 것이다. 이직을 위한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내용 이었다. 주식이나 선물/옵션을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많은 돈을 벌었지만 대부분이 결국에는 원점으로 돌아 왔다고 하였다. 여러 사람의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를 설명하니 더 현실적으로 다가 왔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 자신을 돌아 보았다. 이전에는 회사에서 열정적으로 열심히 일했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수동적으로 변했을까 ?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중 일까 ?  단정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내 자신의 삶을 돌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시대적 상황이 영향을 주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노후 준비를 위해 별도 시간을 투자 해야 한다는 말에도 귀가 쫑긋한다. 노후를 위한 시간과 현재의 삶에 충실하는 시간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후를 위한 삶이 자격증을 취득해서 이직을 준비 해야 하는 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전에는 나이를 먹으면 현명해져서, 선택의 문제가 명확해 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이를 먹어도 삶에 대한 고민은 비슷하다고 생가 했다. 나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를 알고 되었고, 몇천년 살아온 인류의 몸에 새겨진 유전자의 영향도 알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선배가 이야기한 자격증을 찾아 보았다. 지금은 읽기와 쓰기로 내공을 쌓기로 결정하였다. 내가 회사를 그만 두면 후배한테 할말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 일 수 있다” 조지오웰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쌓고 축적하고 평가받기 바쁜 세상에서 빈터 남겨두기 필요하다.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는 빈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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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 대해서 생각하다. 

집들이에 다녀 왔다.  오랜만에 친구가 집들이에 초대 했다. 아내와 함께 다녀 왔다.  친구가 분양을 받아서 새로 입주한 아파트는 대단지 아파트이다. 전철을 이용하여 갔다.  아파트 입구에서 부터 친구 집에 도착하기 까지 10여분이 더 걸렸다. 이전 아파트를  허물고 새로운 지은 재건축 아파트 였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주차장이 지하로 옮겨 가니,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지상에 설치된 조형물의 조명에 예쁘게 보였다. 이곳 저곳 입주가 진행되고 있었다. 동이 많아서 찾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아파트 밖에서 볼 때는 높은 아파트를 빽빽히 들어서서 답답해 보였다. 아파트에 들어서서  걸어 가보 니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내와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다 보니 친구 집에 도착 하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저녁 식사를 시작 했다. 오랜만에 집에서 갖는 식사 모임이었다. 요즘 집에서 식사 모임을 갖지 않는다. 외부 식당에서 식사하고,  차나 커피를 마시러 집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에서 여러명의 식사를 준비하기에는 부담스럽고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한다. 친구는 집에서 일부 음식을 준비하고 일부는 배달 음식으로 채웠다고 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옛날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월의 빠름에 대해서, 나이 먹어 감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어느새 우리가 이 나이가 되었는지.. 머리 카락은 빠지고 흰머리카락이 늘었다고 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자녀 이야기로 옮겨 갔다. 자녀가 관심 있어하는 것이 무언지 이야기 했다.  지나고 보니 비슷한 관심분야를 가지고 있었다. 경험도 비슷하였다. 공룡과 로보트를 좋아 했다. 동물을 좋아 해서 열대어, 곤충, 올챙이, 새, 햄스터, 고양이 등을 키웠다고 했다. 그 중 한 친구네 집에서 병아리를 키웠다고 하였다. 시골집에서 할아버지가 병아리 사료까지 보내 주었다고 하였다. 아파트에서 병아리 키우기가 싶지가 않았다고 하였다. 냄새가 가장  힘들었다고 하였다. 어느 새  병아리가 커서 닭이 되려고 하자 어떻게 할 수 없어 시골집에 보냈다고 하였다. 내가  어렸을때에도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판매한 적이 있었다.  병아리 몇마리를 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친구집에서는 병아리 이후 앵무새 세마리를 키웠다고 하였다.  자녀 수에 맞추었다고 한다.  앵무새는 냄새도 나지 않고 소리도 크지 않아 쉽게 키웠다고 하였다. 오늘날 앵무새 한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들 고양이가 공격을 해서 눈앞에서 사라 졌다고 했다. 윙 컷이 되어 있어  앵무새는 날지도, 도망가지도 못했다고 했다. 들 고양이를 찾아서 보복하기 위해 아이들은 새총을 가지고 몇 주동안 탐색에 나섰다고 하였다.  앵무새의 일이 안타 까웠다. 그렇다고 고양이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기도 힘들다고 생각했다. 본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앵무새 이야기는 이어 갔다. 앵무새 하나를 잃자 아이들은 앵무새에 더 관심을 가지고 보살 폈다고 한다.  여름 더위에 혹시나 열사병에 걸리지 않을까 선풍기를 틀어 주었다고 하였다.  관심히 가했는지 앵무새들은 감기에 거렸다고 하였다. 감기에 걸리면 부리의 색깔이 변한다고 하였다. 애들끼지 동물병원에 갔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게 나왔다고 했다.  감기인데 엑스레이를 찍고 각종 검사를 다해서 비용이 꽤 많이 나왔다고 했다. 동물 치료비가 아까운 것이 아니고 애들의 동심을 이용한 과 검사나 치료가 아니었는지를 이야기 했다. 그 비용으로 앵무새 10마리 이상을 분양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요즘은 모든게 돈으로 비교 되다 보니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되었다.  

앵무새 치료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한번더 애들이 동물병원에 데려 갔는데 이번에도 비용이 지난번 보다 2배 나왔다고 하였다. 동물 병원에서 비용 초과 되었다고 전화가 걸려 왔다고 하였다. 진료 내역을 물어 보니 각종 검사 비용 이였다고 한다. 친구는  왜 부모에게 물어보지 않고 각종검사를 다 했는지 확인 하였다고 한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야기는 애들이 아니고 대학생 같았다고 그랬다고 하였다. 중학생이 갔는데 대학생이라고 판단 했다면 다른 의도가 개인되지 않았는지를 의심 했다. 과진료가 아닌지 였다. 친구로 전해 들은 이야기라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들었지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앵무새를 잃은 막내는 한마리를  분양 받아야 된다고 부모를 설득 했다고 한다. “엄마 나의 앵무새가 필요해”  "집에서 살 수 있는 전체 가족수가 정해졌어”  "아빠가 집을 나가면 앵무새가 들어 올 수 있겠네”  친구는 아빠의 그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원룸을 알아보고 실제 나가려고 하는 것처럼 행동 했다고 하였다. 그러자  자녀가 나가지 말라고 눈물을 글썽 그렸다고 하였다. 우리 아이가  생각났다. 지금도 아이는 독립하게 되면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한다. 우리는 아이에게 항상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아파트가 아닌 시골처럼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 이었다면, 우리는 쉽게 동물을 키 수 있을 거야.” 현실이 결여된 우리의 논리 였다.  

집들이 이야기는 집 인테리어 이야기로 옮겨 갔다. 이후  회사 이야기, 취미 이야기 다양한 분야로 옮겨 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고 집을 나왔다. 집에 오면서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남아 이었다. 이전 모임에서 접했던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 책이 생각났다. 동물 실험과 공장식 노동의 실상을 확인하였다. 채식주의에 대해 이야기 한 책이었다. 윤리적 삶을 이야기 하였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피터 싱어의 책을 펼쳐 들었다. "동물 해방”과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이다 . '이기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실천 윤리'의 부제가 눈에 띄었다. '동물 해방', '실천 윤리' 다음주에 관심있게 들여 다 볼 키워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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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써의 끌쓰기 

주말 아침이면 테니스장으로 향한다. 동네에 위치한 테니스장이다. 지난해 부터 테니스 동호회에 일원이 되었다. 아침 테니스 경기에 참여하는 회원들의 이름과 얼굴은 알 수 있다.  개인마다 테니스장에 오는 시간대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주말 아침에 오는 사람은 거의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오후에 오는 회원들은 잘 모른다.  어제도 아침에 테니스 장에 갔다. 회원들이 많이 오지 않아서 오랫동안 연습 게임을 할 수 있었다. 회원들이 하나둘씩 도착하자 정식 게임을 하였다. 첫번째 게임을 마치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  테니스장에 있는 실내 공간으로 들어갔다. 의자와 탁자가 중앙에 있고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다. 가정용 냉장고와 생수통 정수기가 있다. 들어가서 왼쪽 모서리에  씽크대와 가스레인지가 있어 간단한 요리를 해서 나누어 먹을 수 있다. 텔레비젼을 보면서 차한잔 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바깥쪽은 넓게 유리로 되어 있어 테니스 경기를 지켜볼 수 있다. 

처음 이곳에 앉았을때 서먹 서먹 하였다. 회원을 알아 가는 과정이 필요 했고, 내가 누구라는 것도 알려야 했다.  테니스 모임이다 보니 테니스 구력에 대해서 물어 본다.  다음에는 어디에서 사는지 물어 보게 된다. 어느정도 시간이 흘러 직업에 대해 물었다. 직업에는 한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를 포함한다. 직업에 따라서 한사람의 태도와 취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직업 현장에서 쓰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학자가 제창한 개념인 아비투스를 직업을 통해 추측한다. 아비투스는 개인의  문화적인 취향과 구조화된 취향체계를 말한다고 한다. 공무원과 직업군인, 선생님과 대기업 직원의 아비투스는 많이 다르다.  언어와 외모에서 풍겨나오는 느낌도 다르다. 그래서 인지 업무상 한사람을 가장 빨리 아는 방법은 명함을 교환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직업과 위치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동호회 모임에서는 명함까지는 주고 받지 않지만, 직업의 직함을 불러 주었다.  은퇴한 하기전 직함으로 부른다.  교장선생님, 장군님, 이사님, 교수님으로 부른다.  직업과 동시에 물어 보는 정보는 나이이다. 하지만 직업과 나이로서 한사람을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직업은 직업이 가지는 특성을 반영한 특성을 보인다.  본인의 의지나 선호와  관련이 먼  특성 들이다. 감정 노동자의 친절함은 본인의 의지와는 관련이 없다.  그 사람의 보다 더 깊은 내면을 알기 위해서는 관심 분야를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을 가슴뛰게 만드는 일, 설레이게 만드는 일을 알아야 한다. 물론 직업으로서의 일이 가슴을 뛰게 만들고 설레이게 만들 수 있지만 대다수는 아닌것 같다.  직업은 이사회에서 먹고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의무적 활동인 것이다. 하지만 주말이나 여가 시간에 자발적으로 자기가 좋아서 하는 활동은 개인의 취향이자 취미 인것이다. 한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취미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

테니스장 실내 공간에서 자주 이야기 되는 취미가 있었다. 골프 였다. 오늘도 텔레비젼은  골프 방송이고,  골프장에 다녀온 이야기며 골프체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골프가 유행이다.  잠깐 동안 골프 이야기를 듣다가 나왔다. 나는 골프를 하지 않는다. 업무상  필드에 몇번 나가본 경험이 있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는 운동이었다. 골프도 개인 취향이다. 개인 취향은 논쟁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내 주변에서 골프는 순전히 개인 취향에 의한 선택보다는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다.  일반인이 주말마다 골프채를 들고 필드에 나가기에는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골프를 즐기기 위해서는 경제적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운동으로 골프를 선택한 사람을 많이 보았다. 순수 내면의 취향이라 기에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한동안 와인 열풍이 분적이 있었다. 취미로 와인 수집을 하는 사람도 보았다. 와인 수집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최고급 비싼 와인만을 수집한다고 하면 졸부의 속물 취미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와인의 특성과 맛을 분별하고 와인의 역사를 포함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다르게 보였다.  주변에 음향 기기에  대해 취미가 있는 사람을 보았다. 오래된 진공관 앰프, 스피커 등을 수집하고 음악을 감상 하였다. 막귀인 나는 명기의 차이를 구분 하기 힘들지만 그 들은 차이점을 구별해 내었다. 그렇기에 더 진귀한 기기를 확보하는것이 그에게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유행하고 선호되는 고가의 물품을 구매하고 수집하는 일은 그의 경제적 능력을 나타낸다. 하지만  오랜 시간과 정성을 투재해서 감각의 차이를 만드는 일은 그의 취향을 표현한다. 그일에 미치고 자발적으로 할 때에 가능한 것이다.  

테니스 경기를 지켜보며 누군가 나의 취미를 물어 본다면 무엇이라고 답할까 생각해 보았다. 요즘은 취미에 대해서 누가 묻지 않지만 옛날에  질문을 받았다. 미팅에 나갔을때는 가장 많이 이야기한 취미는 '음악 감상'이었다.  실제 취미가 아니라 멘트로서의 취미였다. 나름 준비도 해 갔다. 어떤 음악을 왜 좋아 하는지.. 어떤 작곡가의 음악에 감동했는지.. 지금은 기억할 수 없다. 그 당시에  고상한척 보이기 위한 취미 였었다.  지금의 취미는 무엇이라고 답할까 ?  나의 취미는 글쓰기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직은 취미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내가 원해서 글을 쓰고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간을 투자하고 있으니 당당히 나의 취미는 글쓰기 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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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존엄을 찾고자 하는 여행 

직장인 소통  장소는 담배 피는 곳이다. 일이 안풀릴때나,  장시간 화면을 보았을때 잠시 쉬기 위해 담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도 커피를 들고 따라 나간다. 잠시 외부 공기를 마시며 대화 한다. 일의 진행을 이야기 하고, 개인 적인 고민도 공유 한다. 오늘도 바쁜 일을 마무리하고 커피 한잔을 들고 동료와 밖으로 나갔다. 동료 아들이 군입대를 위한 신체 검사를 받았다고 하였다. 2급 판정 현역이라고 하였다. 대화의 주제는 군대 이야기를 흘렀다. 

군대에서 먹었던 초코파이 이야기를 하였다. 훈련소 시절 초코파이가 너무 맛있어서 한 박스를 먹었다고 하였다. 일요일 종교 행사에 천주교에 다녀온 경험을 이야기 하였다.  천주교에 갔더니 과자도 주고,  합창단 성가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회 기분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하였다. 이 소문이 훈련소내에 퍼져 일요일 천주교 종교행사에 훈령병이 많이 몰리고 다른 종교 행사에는 사람이 적었다고 하였다. 이 사실을 눈치챈 훈련소 교관이 천주교 행사를 마친 훈련병들에게 오리 걸음으로 복귀하라고 하였다고 한다. 사제 기름을 빼야 된다고 하였다고 한다. 훈련병은 부당한 지시 였음에도 거부하지 못했다. 아니 부당함 마저도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옛 군대에서는 배도 고팠고, 인간적인 존엄도 인정 받지 못하였다. 모욕당했으며 무시 당했다. 그럼에도 군이라는 위계 질서 속에서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였다.

대량 생산의 산업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군에서 몸에 각인 시켰다. 위계 질서 안에서 복종하였고 받아 들였다. 직업을 가진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에 반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공장에서, 고공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왜 투쟁을 했을까 ? 여러가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를 분석한 책이 있다. 악셀 호네트의 ‘인정 투쟁’이다. 철학자인 호네트는 인정이라는 틀로서 이러한 투쟁을 분석하였다. 

고문이나 폭행이 단순히 신체적 고통과 속박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자기 존엄의 추구를 짓밟고 모멸감을 유발 하게 한다. 우리는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인격 무시나, 기본적인 요구가 부당하게 무시 될 때 모멸감과 모욕감을 느낀다. 또한 우리에게 응당 부여 되어야 하는 권리에서 배제 되었을 때도 굴욕을 느낀다.

인정 투쟁의 출발점 이라고 한다. 인정 투쟁은 모욕당한, 훼손된 자기 존엄을 찾고자 하는 여행이라고 표현하다. 투쟁에 동기를 부여하는 또 다른 원인도 무시 경험과 연결되었다고 한다  사회적 수치감 속에서 굴욕과 모욕을 수동적으로 참아낼때 가지게 되는 자기 존엄의 상실에 대한 대항 감정이라고 한다. 인정 투쟁이라는 정치적 투쟁에 참여함으로써 무시당했던 자신의 존엄을 공개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상실된 자기 존중을 되찾게 된다고 한다. 훼손된 존엄을 찾기 위한 행동이 인정투쟁의 원인 이라고 하였다.  

인정 투쟁이 욕심을 채우기 위한 탐욕도, 배부른 돼지의 투정도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존엄을 되찾기 위해 인정 투쟁을 벌이는 이웃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의 의무라고 역설한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훼손된 존엄을 위해 인정 투쟁을 벌이는 이웃들에게 침묵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도 뉴스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사회 투쟁은  이러한 인정 투쟁이다. 

다른 인정 투쟁이 있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 팀원간의 경쟁이 있다. 회식에서 제일 먼저 술을 따르고,  2차 노래방에가면  머리에 넥타이를 두르고 템버린을 치며 흥을 돋군다.  출근은 먼저 퇴근은 다음이다. 기회가 있을때 마다 실적을 최대화해서 어필 해야 한다.  ‘의전’이라는 명목으로 일상에서, 출장에서 눈치를 보며 최고의 만족을 위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 신경을 쓴다. 여기에서 자기는 없다. 상사의 마음에 들고 눈도장 찍혀 다음 승진 일순위가 되고자 한다. 속류화된 인정 투쟁이다. 아부의 능력이 인정과 연결 된다.  

사람은 각자의 가치관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 한다고 한다. 자신의 안경으로 세상을 본다. 배부른 돼지와 속류화된 인정에 익숙한 사람들은 인정 투쟁을 개인적인 욕심이나 투정으로 본다고 한다. 이전 군에서 경험한 것 처럼 훼손당한 자존감에 분노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 했다고 한다. 자기 존엄과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을 하는 사람들 뜻을 알려고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뉴스를 본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사적인 이익을 위한 투쟁 인지 ? 훼손된 존엄을 찾고 약화된 존중을 찾기 위한 인정 투쟁 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관심을 갖고 깊은 곳 까지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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