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 인생은 대부분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된 결과이다”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박민영 작가를 만나  책읽기의 변화가 왔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베스트셀러 위주의 책읽기 였다. 그를 만나고 주제 중심 책읽기를 시작 하였다.  이전에 들어 보진 못한 작가에 대해 검색하고 책을 구하는 활동이 시작 되었다. 처음 추천 해준 사상가는 " C.라이트 밀즈” 였다. 그의 이름은 내 기억속에 각인 되었다. 박민영 작가는 내 책읽기의 방향을 바로 잡아준 작가였다. 지금도 책을 구매 할때 박민영 작가의 분야별 추천 책 리스트를 참고 한다.   

최근에  박민영 작가의 책 출간 소식을 들었다. 두권이었다.  글쓰기 책,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와  에세이  “그 말들이 나를 찾아 왔다” 이다. 이번주 수요일에 구매 했다. 전작 읽기를 하는 작가의 책은 출간 하면 바로 구매 한다. 최근 관심 분야인 글쓰기 책부터 먼저 읽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는 글쓰기의 효용과 가치를 이야기 하고 있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글을 쓰고,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몸으로 느낀 경험을 옮겨 놓았다. 

이책을 통해 내가 느낀 글쓰기의 가치는 자유 였다. 자유롭기 위한 도구로서의 글쓰기 였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 중에 하나가 자유다. 자유를 위해 일상을 벗어 나려고 노력하고 실행에 옮겼다. 업무도, 근무지역도 많이 바꾸었다. 해외 프로젝트에도 참여 했다. 타성에 젖는 것이 싫었다. 이질적인 것에 대해서도 과감히 접해보려고 하였다. 자유롭기 위한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 했다. 그러나 추상적인 생각안에서 머물고, 실천을 위한 행동은 잡히지 않았다. 이책을 읽고 자유를 위한 글쓰기가 새롭게 다가 왔다. 나의 자유는 먼곳에 있지 않았다. 글자가 지닌 자유의 힘을 얻는 것이다.     

책에 프레더릭 더글라스(1817~1895)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마틴 루서 킹, 맬컴 X 이전에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져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알려진 노예 해방 운동가 였다. 마틴 루서 킹이나 맴컴 X의 롤모델 이었다.   그는 노예에서 시작하여,  미국 정부 고위직에 최초로 임명된 흑인 이였다. 그의 자서전인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라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미국사회에 던진 충격은 그 시기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 과  <공산당 선언>에 버금갈 정도 였다고 한다.

더 글라스가 안주인에게 글을 배우는데, 그의 남편 휴올드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배움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흑인 노예도 망쳐 놓을 거야.  당신이 저 흑인 노예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친다면 더 이상 놈을 잡아 둘 수 없어. 영원히 노예로서는 불합격이라고”  더 글라스는 그말을 엿듣고 "글자가 지닌 자유의 힘”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더글라스는 글을 배웠고, 휴 올드의 예언 처럼 그는 자유 몸이 되었다. 노예제 폐지 운동에 대해 알게 되었고, 자유주인 뉴욕으로 도망 갔다.  그곳에서 노예해방 운동가로 변신했다. 그리고  “지식은 예속에서 자유로 가는 길”이라는 말을 남겼다. 작가는 더글러스의 일화가 글 쓰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더글러스가 말한 글자가 지닌 자유의 힘에는 쓰기도 포함될 수 있다고 한다. 

글쓰기는 주체의 독립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합니다.  흑인 노예가 당연시되던 시절, 더글러스의 생각은 불온한 것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그 불온함은 읽기와 쓰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읽을 줄 알 뿐만아니라 쓸 줄도 아는 사람은 더이상 노예가 아닙니다. 노예일 수가 없습니다. 더글러스가 노예제가 폐지되기 전에 이미 스스로 노예해방을 이룬 셈입니다.
글쓰기는 독립적으로 사고할 줄 알게 만들어, 자존감을 높입니다. 또한 정치적 삶을 살게 만듭니다.  ‘정치적 삶’이란 세상의 모든 일이 정치적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고, 상대방의 정치적 의도를 간파하며, 민주 시민으로서 정치에 용의 주도하게 참여하는 것인데, 이역시 글쓰기가 추동합니다.  (162p)

작가는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위한 방법으로 글쓰기를 추동 하였다. 이 글을 읽고 자유를 위한 여정은 글쓰기로 이어져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이제 부터  글쓰기를 계속 해야 한다고 결심 했다. 나의 결심이  결심으로 만 끝나지 않도록 우화가 실려 있었다.

목이 바싹 마른 개 한마리가 갈증에 시달리며 물을 찾아 오랫동안 헤맸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시냇물을 발견했습니다. 개는 너무 기뻐서 시냇물을 따라 달렸습니다.  달리니 목이 더 마르고, 물을 찾은 기쁨이 더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시냇물을 따라 달렸습니다. 개가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직접 물가로 내려가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러나 이 개는 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시냇물을 발견 했다는 기쁨에 취해 물을 따라 뛸 뿐입니다. 
글쓰기를 배우고 그를 통해 글쓰기 방법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직접 써보지 않는 사람이 이와 같이 않을까요 ? (97p) 

이 우화도 몇년전에 박민영 작가가 메일로 보내준 내용 이었다. 나는 시냇물을 발견했다는 기쁨에 취해 물을 따라 뛰었다. 직접 물가로 내려가지 않았다. 물가로  내려가는 기간이 너무 길었다.  그 당시에 물가로 내려 갔다면 나는 또 다른 나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이제부터라도  '글자가 지닌 자유의 힘'이라는 물을 마시기 위해 물가로 한발 한발 내 딛을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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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노동



윤성근 작가의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통해  이반 일리치를 만났다. 윤성근 작가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운영하며, '이반 일리치' 제안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꾼 사상가를 알아보기로 하였다. 이반 일리치와 만남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먼저 만났다이번에는 '그림자 노동' 만났다. 교보문고 책장 상단에 꽂혀 있어 한번에 찾았다. 직원과 사다리 도움을 받아서 어렵게 확보한 책이다. 1981년에 출간한 책이지만 현재도 유효 하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는 절판되었다가 2015 사월의 출판사가 발행하였다.  


이반 일리치는 "그림자 노동" 산업사회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있어서 필수적인 보완물로 요구하는 '무급 노동'이라고 정의 한다. 그림자 노동의 예로는  대부분의 가사 노동장보기학생들의 벼락치기 시험 공부직장 통근 등이 있다이밖에도 어쩔수 없는 소비로 인한 스트레스의사의 지겨운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기관에 대한 순종강요된 일을 하기 위한 준비그리고가정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수많은 활동들이 포함된다고 한다.  그림자 노동은 자급자족 활동이 아니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자급 자족 활동에서 '임금 노동'의 형태로 변화함에 따라 생겨난 노동이 ‘그림자 노동이라고 한다. 임금 노동의  보완물이 '그림자 노동’ 인것이다.  무급이면서  자급자족에 기여하지 않는다. 임금노동이 그렇듯이 자급자족을 파괴한다고 한다 


가사 노동외에도 우리 주변에 그림자 노동이 확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있다식당이나 마트 계산대에서 손님들이 계산을 한다.  햄버거가게에서 터치 스크린으로 주문을 하고 햄버거를 받는다.  햄버거를 먹고 나서 손님이 포장지와 음료수 컵을 정리 한다무급의 그림자 노동이다.  그림자 노동으로 일자리는 줄어 듣다이반 일리치는 자본가와 관료 모두 임금 노동보다는 그림자 노동에서  많은 이익을 얻는다고 한다


그림자 노동의 필요성과 범위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산업구조 이지만 이데올로기에 의해 감춰져 있다.  경제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모든 활동은 노동 이라기보다는 필요 충족 행위로 간주되어 진다.  우리가 그림자 노동을 볼수 없는 이유이다.   


임금 노동을 하려면  일에 지원을 하거나 자격을 인정받아야 하지만그림자 노동은 나면서부터 정해지거나 부여되는 것이다임금 노동을 하려면 발탁되어야 하지만그림자 노동은 배정받는 것이다그림자 노동에 들어가는 시간노고수모에 대해서는 대가가 지급되지 않는다그럼에도 그림자 노동은 이런 무보수의 자기 규율성 때문에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임금 노동보다  중요성을 띠게 된다. (P176) 


아내는 육아 때문에 사회 생활을 그만 둔것을 후회한다. 본인이 직접 돈을 벌지 한다고 생각하니, 자존감도 떨어졌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주려고 해도 본인의 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예속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임금 노동을 지원하는 가사 노동이지만 무급 이기에 하찮게 간주된다고 한다. 집에서 논다는 표현도 들을 때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전문직을 가져야 함을 강조 한다. '고임금의 유급 노동' 이야기 한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원된다


그림자 노동과 같이 무급 이지만 다른 성격의  ‘토박이 노동 있다자급자족의 노동을 일컫는 용어이다.  집에서 키우거나 만들고 공유지에서 얻기 위해 하는 일을 말한다.  시장에서 사고팔지는 않지만 개인이 지키고 보살피는 모든 가치를 위한 일이다.  이반 일리치는 자급자족  중심의 생활양식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소비재를 사는 대신 사람이 몸소 제작을 하고 산업적 도구 대신 공생 공략의 도구를 이용 하라고 한다. 생활 양식 공동체에서는 노동의 산물인 재화와 서비스가 강제적인 소비 대상이 아니다.  노동이 창의적인 활동의 수단으로서 가치를 지난다.   곳에서는 기타가 음반보다 귀하게 여겨지고, 도서관이 교실보다 귀하다. 텃밭이 슈퍼마켓 식품 코너보다 귀하게 대접 받는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감춰진 '그림자 노동 보일 있게 만들어 책이다.  우리의 미래가 자급 자족의 공동체로 향할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로컬의 미래> 떠올렸다. 라타크에서 확인한 오래된 미래는 개발/상품 중심의 사회가 아니라 자연과 이웃이 어울리는 지역 경제 중심의 사회 였다. 이반 일리치의토박이 노동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작년 가을이었습니다. 회사 일을 마치고, 퇴근하기 위해  20층에서 건물 1층으로 내려 왔습니다.  대부분의 직원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버스 승강장으로 갔습니다. 일부 직원들은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였습니다. 개인 승용차로 퇴근하는 직원이었습니다. 저는 회사앞 자전거 주차장으로 향하였습니다. 분당 정자동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를 이용한 퇴근 입니다. 

이반일리치의 책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를 몸으로 느껴보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실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탄천으로 향하였습니다.  탄천 자전거 전용 도로가 서울 한강 자전거 전용도로까지 연결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인근 탄천 자전거 도로에 도착하였습니다. 앞을 가로 막는 건물과 신호등이 없습니다.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습니다.  콘크리트 새장을 벗어난 것입니다. 자연의 냄새를 맞습니다.  숨을 깊이 내 쉽니다. 페달을 힘차게 밟습니다. 발의 힘이 체인의 마디에 전달 됩니다. 마디가 앞으로 향하면서 바퀴가 돌아 갑니다. 몸의 힘이 체인을 따라 흐릅니다. 자전거는 바람을 가르며 강을 따라 앞으로 나아 갔습니다.  

강물 소리와 새소리도 들렸습니다.  고즈넉한 강 풍경이 흘러와 마음에 스미고,  바라처럼 스치고 지나 갔습니다.  이름 모를  풀이 녹색을 자랑 하고 있었습니다.  뒤에서 나를 따르던 자전거가  양해를 구하며 앞으로 나아 갔습니다. 나는 속도를 늦췄습니다.  뒤에서 오던 자전거가 앞 지릅니다.  앞 사람이 밟는 페달의 힘이 느껴 집니다. 나도 따라 다시 재 속도를 내기 위해 페달에 힘을 가합니다.  등에는 땀이 흐르고 있습니다. 앞에 언덕길이 나타났습니다.  기어를 1단으로 변경합니다. 힘이 작게 분산되어  언덕길을 쉽게 올랐습니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를 지나 서울로 접어 들었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계속 나아 가고 있었습니다. 끝없이 원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 갔습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페달의 리듬을 따라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자연, 자전거와 내가 하나임을 느꼈습니다. 

자전거 위에서 차량 운전자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절을 느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이와 눈이 마주치면,  웃음을 나누며 스쳐 갈 수  있습니다.  중간  쉼터에서 쉬면  서로 인사도 합니다.  1시간 20분정도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도착 하였습니다. 차량 이용보다 시간은  더 걸렸지만 자전거 타기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그 이후로 몇번의 자전거 출퇴근은 반복이 됩니다.  부서를 서울로 옮기면서 자전거 출퇴근은 중단 되었습니다. 올해 초 운이 좋게 최근에 사무실이 위치가  자전거 출퇴근 가능한 장소로 변경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주말  자전거 타기는 계속 되었습니다. 집에는 자전거 4대입니다. 가족 모두 개인 자전거가 있는 것입니다.  탄천과 양재천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여 자전거를 탔습니다.  느티나무를 지나고, 다리 밑을 지나면  과천 까지 연결 됩니다. 가족과 같이 자전거를 타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자전거를 타다 비가 와서 다리 밑에서 쉬면서 비를 한없이 바로 본적이 있습니다.  빗방울이 강물에 떨어지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자전거 타기는 비용을 적게 들이고 부족한 운동도 해결 합니다. 가족 자전거 타기는 행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인간은 에너지를 노예로 부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에서 산업화된 교통을 매개로 우리가 에너지의 노예가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차 없이는 아무데도 못 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에너지와 교통이라는 현대사회의 핵심 요소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기이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고발합니다.  이동 속도가 빨라지면서 우리의 에너지 소비도 증가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에너지 소비의 불균형도 심해 진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빠른 속도를 누릴수록 다른 누군가는 더 많은 세금,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빠른 교통 수단은 공공자원과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납세자라면 누구나 도로와 주차시설에 사용여부와 상관없이 관련 비용을 납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량은 또한 환경파괴 등 외부 비용도 발생 시킵니다. 차량 생산, 차량 유지, 차량으로 부터의 나오는 배기 가스, 비가 올 때의 기름이 환경을 오염 시킵니다. 속도와 에너지는 불평등 하다고 합니다. 

이반 일리치는 행복한 사회는 모든 시민이 자전거의 속도로 달리는 사회라고 합니다. 무제한의 힘과 속도를 가지고 있으면 인간은 쉽게 유혹에 빠집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쇼핑하고, 지나치게 먹고, 지나치게 운전을 합니다. 그리고  살이 왜 이렇게 쪘는지 늘 피로한 상태인지를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한계가 필요합니다. 행복한 사회는 적정 기술과 적정 에너지 위에서 가능 한 것입니다. 다행히 그동안 차량과 속도 위주로 설계된 도시 지역 내 도로가 사람과 안전 중심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사람 스스로 이동할 수있는 사회를 건설하면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일상 교통수단으로서의 자전거, 도보, 대중 교통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진다면 우리는 환경 피해를 엄청나게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는 자전거 대여 서비스 ‘따르릉'이 있습니다. 하루에 1000원이면 언제든지 자전거를 이용가능합니다. 어플을 통해 활용 가능한 자전거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봄이 오면  한강변에서,  양재천에서, 탄천 자전거 도로에서 여러분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왜 자전거를 좋아하는냐고 물으면 적어도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절반은 자유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자전거는 나를 구속하지 않는 정말 단순한 기계입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움직이는 범위를 한껏늘려 줍니다.  자전거 타기는 에너지 소비로 부터 자유, 이동의 자유 입니다. 대중교통이 적정한 경우에는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자가용을 이용합니다. 비용을 절약하고 환경을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어쩌면 페달 몇번 밟는 것으로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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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이상한나라의 헌책방은 윤성근 작가가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1832~1998)을 좋아해서 만든  헌책방 이름이다.  루이스 캐럴의 작품 제목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하게 지었다.  IT회사를 그만두고 차린 헌책방이다.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윤성근 지음)을 읽고 이상한나라의 헌책방을 만났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조회하다 만난 책이다.  책 첫 페지의 문구가 인상 깊었다.  '사실 내 인생은 대부분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된 결과이다’  이반 일리치와의 나눈 대화(2010)의 인용 글이다. 우리의 인생은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만나고,  책을 만난 결과이다. 그중에서 인생에 영향을 가장 많이 준것은 사람이다. 

윤성근 작가는 헌책방 이야기를 '이반 일리치’ 사상의 실천 관점으로 풀어 내었다. 이반 일리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와 교육정책을 분석하고 비판한 사상가이다. 이반 일리치 사상을 노동, 생활, 속도, 에너지, 자립, 자유, 전문가, 평화로 나누어 언급한다. 작가는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의 사상이 어떻게 실천 될 수 있는 가를 보여 준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고 삶의 일부분이다. 노동의 만족을 위해서 다른 누구의 기준대로 노동할 것이 아니라 중심을자신에게 맞추어야 한다고 한다. 인간이 기계의 노예, 자본의 노예, 미디어의 노예가 되었다고 한다. 빠름의 중독으로 부터 자유로움을 확보해야 한다. 하루 하루 노동을 하면살아가는 우리에게 노동의 방향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일리치의 사상 실천 중 평화부분이 나에게는 와 닿았다. 작가가 인생의 목표로 삼은 것이 평화였다.  정지된 세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축제 의미로 평화이다.  삶의 목표를 ‘통장’이 아니라 생명의 ‘꽃밭’이나. 꽃밭은 작가에게 평화로움이었다. 먼 곳에서 보는 꽃밭은 아름 답다. 멋진 그림 같고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기에 안정감을 느낀다. 기분 좋은 향기로 충만하다. 하지만 가까이서 다가가면 다른 모습이다. 아무것도 없는 듯 보였던 그곳에 벌, 나비, 수많은 곤충, 다양한 생명들이 있다. 제각기 자기 할일을 하고 있다.  평화로운 풍경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생명들로 가득하다. 시끌벅적한 평화라고 표현한다. 헌책방에 있는 손님들은 작가에게 이름모를 꽃과 풀 들이다. 평화로움을 만들기 위해 작은 힘을 보태 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 이었던 것이다. 함께하는 평화로움이었다. 

자립도 혼자 만의 자립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하는 자립을 이야기 한다.  고금현문 이라 불리는 중국 명나라 후기 명언집의  ‘일화독방불시춘 백화제방춘만원”을 인용한다. ‘꽃 한송이 핀것으로 봄이 온것이 아니다. 온갖 꽃들이 함께 피어야 비로소 봄’ 이라는 의미다. 자립역시 그와 같다고 한다. 시간이 걸리고 더디게 움직이더라도 여럿이 함께 설 수 있는 자립이 필요하다고 강조 한다. 

작가는 일리치 사상과 더불어 이상한나라의 헌챙방 이야기를 하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헌책방을 한다면 1년을 못 버틸 것 같다. 가게를 임대한다는 것은 본인이 먹고 살 만큼이 아니라 건물주가 먹고살 만큼 벌어야 가게가 유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0년 이상을 유지한다는 것은 나름의 노하우가 있었던 것이다. 그 노하우를 공개 하였다. 돈벌기가 목적이 아니지만 자립하기 위한, 함께 하는 평화를 위한 아이디어 인것이다. 그중 하나가 ‘심야책방’이다.  심야시간에 ‘문화행사’를 하였다. 책방이라는 공간에서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재미있으면 오게 되고,  오게 되면 책도 구매할 가능성도 높아진 것이다.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선은 작가가 재미 있어야 하고,  참여 하는 사람도 재미 있어야 한다. 요즈음 재미 있는 것들이 점점 줄어 들고 있다고 한다. 재미 있는 것은 많은데 재미 있게 즐길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것이 있더라도 개인의 삶이 재미 있어야 다른 것도 재미 있게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의 삶이 재미 있는가?  물어본다. 

재미 있게 즐길 수 있는 삶의 여유 뿐만 아니라 책 읽는 사람도 점점 줄어 들고 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성인 독서량은 심각한 수준으로 낮아 졌다고 한다.  삶의 속도가 빨라지고 디지털 매체에 너무 의존하다 보니 책읽는 사람을 찾아 보기 힘들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만들어낸 사회는 모래위에 지은 성처럼 위태롭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책과 가까워 질 수 있을까 ?  작가의 고민이 일본 책고수들을 만나고 그들의 가르침을 받게 한다. 이책의 세번째 부분이다. 일본에서 헌책방과 오프라인 서점들이 계속해서 인터넷서점과 멀티미디어 매체에 밀리고 있을때 생각해낸 해법이 문학의 역사를 발굴해서 그것을 직접 체험해보도록 한다. 일본 진보초 고서축제가 그중의 하나이다. 앞으로의 여행 목록에 고서 축제 참여를  추가 하였다. 일본에서 내가 생각 하던 동네 풍경을 읽었다.  혼자서 혹은 친구와 함께 찬책을 하다 헌책방에 들러서 책을 사고 그 책을 들고 또 천천히 걷다가 오래된 카페에 들러 책을 보며 차를 마신다. 동네 주민은 물론, 동네를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에게도 이런 일상은 그리 어색 하지 않다. 

'헌책방이 사라질수록 그나라 문화와 역사의 두께가 얇아진다는 뜻이다.”  말한다.  일본은 오래전 부터 책을 중요시하고 꼭 보관해야 한다는 인식이 깊다고 한다. 책은 곧 한시대의 역사 그자체 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헌책방은 책을 사고 파는 일을 하지만 한편으론 과거의 책을 꾸준히 수집하고 보관해야 한다는 의무도 있다고 한다. 일본도 한국처럼 헌책방이 조금씩 없어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그 전통은 이어진다고 한다.  신간을 파는 서점만 있고 헌책방이 없다는 것은  곧 그 나라 문화와 역사의 두께가 얇아진다는 뜻이라고 한다. 

"다실패한 중고서점, 알라딘만 잘나가는 이유” (쿠키뉴스, 14. 6.16) 우리의 작은 헌책방들이 경쟁을 잃고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상한나라의 헌책방’과 같은 동네 헌책 방이 많이 생기기를  기대한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삶의 방향을 고민하게 하였다. 작가의 삶의 사상으로 이야기한 이반 일리치의 사상에 대해 더 읽기로 하였다. 적절한 순간에 이반 일리치를 만난 것이다. 시간을 내서 ‘이상한나라의 헌책방’에 꼭 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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