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지나간 아침은 흐리고 조용하고 물기를 머금고 있다 .어제 내린 비의 추억일까 . 다가오는 비의 소식일까 젖은 대기 안에서 세우가 분말처럼 뿌린다. .. 나또한 하류에 도착했다. 급류를 만난듯 너무 갑작이어서 놀랍지만 어차피 도달할 곳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하류는 밤비 지나간 아침처럼 고요하고 무사하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 나의 다정한 사람들,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깊이 사랑했던 세상에 대해서 나만이 쓸수 있는 한권의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지금 내가 하류의 서재에 도착한 이유가 아닐까 ? (75)

오늘 아침처럼, 김진영 철학자의 아침은 고요하고 무사하다.  2017년 7월 암선고를 받고, 18년 8월 영면하기까지의 일상을 남긴 글이다. 책의 제목처럼 이글을 읽고 있으면 차분하고 조용한 음악이 흐른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Moon River> 의 부드럽고 친절한 선율이 흐른다.  제일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물소리도 들을 수 있다.  

정신과 몸이 함께 떨리는 울림도 들을 수 있다.  종소리처럼 번지고 스미지만 피아노 타음처럼 정확하고 자명하다. 더불어 글이 무엇인지도 비로소 알겠다. 그건 사건들의 정직한 기록들이다. 글을 어떻게 쓰는 건지도 알겠다. 그건 백지위에 의미의 수사를 채우는 이이 아니라 오선지 위에 마침표처럼 정확하게 음표를 찍는 일이다.  마음의 사건-그건  문장과 악보의 만남이기도 하다.(53p)
하모니는 관계다 관계는 모두가 음악이다. (105p)

김진영 철학자를 처음 만난건 해외에서 프로젝트 수행중이었다. 해외에서 생활하면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생긴다. 그러나 그 시간을 내의지대로 쓸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인문학 인터넷 강의 였다.  김진영 철학자의  “꿈꾸는 우울: W. 벤야민을 이해기 위하여”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호텔방에 이 강의를 일정기간 동안 계속 들었다. 그 이후 한국에 복귀 하였다. 뉴스에서 철학자의 영면 소식과 ‘아침의 피아노’ 책 이야기를 접했다.  꼭 한번 읽겠다고 했는데 이제야 읽었다. 

이 책은 일상의 삶이라는 셔터를 내리고 환자의 삶을 살아가면 남긴 기록들이다.  아포리즘으로 남았다. 한번  읽고 지나가는 책이 아니다. 책의 페이지가 뒤로 갈수록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생의 마지막으로 향해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도달한 상태는 마지막 2장에 남았다. "적요한 상태", “내마음은 편안하다” 드넓은 바다로 갔다. 

현자가 말했듯 물은 다투지 않는다 제일 낮은 곳을 제자리로 찾아 흐르기 때문이다. 물은 꿈이 크다 가장낮은 곳에는 드넓은 바다가 있다. 그렇게 물은 언어 없이 흐르면서 자유의 진실을 가르친다. 물소리를 들으며 생각하면 지난날도 다가올 날도 아쉽다. 그러나 아쉬움은 아쉬움일뿐 지금 내게 주어진 건 남겨진 시간들이다 그 시간도 흐른다. 사는 건 늘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었다. 남겨진 시간흐르는 시간, 새로운 시간 그 가운데 지금 나는 또 그렇게 살아 있다. (28p) 

글들을 남긴 이유도 여러곳에서 발견 할 수 있고 한 철학자의 삶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바쁨이라는 일상속에 갇힌 우리들에게 ‘성찰'을 선물하였다. 

나를 위해서 쓰려고 하면 나 자신은 너무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그러나 남을 위해 쓰려고 할때 나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된다고 .. (40p)

한개체의 내면 특히 그 개인성이 위기에 처한 상황 속 개인의 내면은 또한 객관성의 영역과 필연적으로 겹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비슷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 조금이나마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반드시 변명만은 아니다. (282p)

더 오래 살아야 하는 건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미루었던 일들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애서 이불가능한 삶과의 투쟁이 무슨 소용인가 ? (72p)

아침에 눈떠서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받기만 했다고 받은 것들을 쌓아 놓기만 했다고 쌓인 것들이 너무 많다고 그것들이 모두 다시 주어지고 갚아져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살아야 겠다고 …(94p)

늘 익숙해서 당연하게 받아 들이는 것을 새롭게 생각 하였다. 우리는 항상 "오늘 하루가 첫날이고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잊고 "지금 살아 있다"는 것도 자주 잊어 버린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오늘만은 첫날 처럼, 그리고 마지막 처럼 보내야 한다. 

늘 듣던 말의 새로움: “날마다 오늘이 첫 날이고 마지막 날이야” (95p) 지금 살아 있다는 것 - 그걸 자주 잊어 버린다. (1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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