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운동 형태

 

<자본론> 1권의 주제가 ‘자본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방법’, ‘자본이 형성되는 방법’ 이라면, 2권은 ‘자본이 가치를 증식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운동하는가’, ‘자본이 생산한 상품들은 어떻게 팔리는가’이다.  가치를 증식하려는 자본은 계속 ‘운동’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이 과정에서 자기의 형태를 계속 바꾼다. 

 

 

 -산업자본의 순환 M—W(MP)(LP)—P—W’—M’(S)(M)

  자본은 처음 화폐(M)로 투하되고, 상품(Ware)인 생산수단(MP: Means of Production)과 노동력(LP: Labor Power)을 구매하여 생산요소로 변하며, 노동자가 기계로 원료를 가공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생산과정(P)에서는 처음(100원)보다 큰 가치를 가지는 새로운 상품(W′)이 나타난다.  새로운 상품(W′)은 시장에서 팔려 다시 화폐 형태로 자본가에게 되돌아온다.  이와 같이 산업자본은 가치를 증식하는 운동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모습을 바꾼다. 주류경제학자들은 “자본은 기계”라고 말하지만, 사실 “자본은 화폐 · 생산요소 · 상품의 형태를 취하므로, 화폐나 생산요소나 상품은 모두 자본”이라고 답해야합니다. M은 ‘화폐자본’, MP와 LP는 ‘생산자본’, 그리고 W′은 ‘상품자본’이라고 부른다. 

 

 

자본의 회전시간

 

   

자본이 유통과정과 생산과정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자본의 회전시간은 각각 자본가가 시장에 가서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구매하는 시간(구매시간-유통과정①) , 생산과정, 생산품을 판매하는 시간(판매시간-유통과정 ②) 으로 되어 있다. 구매시간과  판매시간을 합해 ‘유통시간’이라 한다. 자본이 1회전하는 데 드는 시간은 유통시간+생산시간이다.   

제품의 생산시간을 짧게 하고 판매시간을 짧게 할수록 자본가에게 유리하다.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제품을 빨리 생산하려고 하고, 단골이나 주문생산을 통해 판매시간을 단축하려 한다.  이러면 기업 운영에 투자하는 자금이 빨리 회수되면서 일정한 기간에 얻는 잉여가치가 더욱 커진다.  제품을 판매하는 시간동안에도 생산을 쉬지 않고 해야하기 때문에 화폐자본이 여유있게 필요하다. 

 

자본의 회전시간과 이윤율

    어떤 라면 공장의 자본의 회전시간은 하루라고 가정하면,   투하한 화폐 100원이 하루 뒤에 화폐 120원(자본가치 100원과 잉여가치 20원)이 되어 다시 나타난다. 이 자본가는 ‘하루의 이윤율’ 20%라는 매우 높은 이윤을 얻는다.

 1년에 얻는 이윤은 7,300원(=20원×365일)이 된다.  연간이윤율은 1년 동안 얻은 잉여가치를 투하한 자본 총액으로 나눈 것을 퍼센트로 나타낸 것이므로, 이 라면 공장이 얻는 연간이윤율은 다음과 같은 공식에 의해 7,300%가 된다. 

 

최초 자기의 자본 100원만 가지고 1년 동안 365번 회전시켜 매일 이윤 20원의 365배가 되는 7,300원을 버는 것이다.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라면 제조 기술이 부족하고, 기계시장, 원료시장, 판매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라면을 만들어 파는 데 이틀이 걸렸다 가정해보자.  연간이윤율은 1년에 얻는 이윤 3,650원(=20원×365/2)을 투자금액 100원으로 나누고 100%를 곱하면 3,650%가 되며, 지금의 연간이윤율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생산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온갖 기술적 혁신을 개발하고 도입하며, 유통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판매 상점의 대형화와 상품 가격의 할인을 실시하고, 운송 · 통신 시설의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시설 투자는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고 장래의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자본가계급 전체의 이익을 증진하려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정보 · 운송 · 통신 시설을 혁신하였다. 

 

고정자본과 유동자본

 

 

 모든 상품의 생산에는 기계와 건물이 필요하고, 이런 생산수단은 오랫동안 상품 생산에 기여한다.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일반 경제학자들은, 자본가가 라면 공장에 투하하여 하루에 모두를 회수할 수 있는 자본을 유동자본이라 부르고, 오랜 기간에 걸쳐 회수하는 자본을 고정자본 이라고 불렀다. 이 둘은 자본가가 투자한 자본이 ‘어떻게 회수되는가’를 기준으로 분류되었다. 마르크스의 용어인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은 자본가가 투하한 자본이 ‘생산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가, 창조하지 않는가’를 기준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원료와 노동력의 구입에 투하한 유동자본은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면 모두 회수된다. 기계와 건물에 투자한 고정자본은 유동자본의 1회전시간을 넘어 여러 회전에 걸쳐 조금씩 회수된다.  노동력의 구입에 투하한 자본은 노동자가 생산과정에서 ‘새롭게 노동함으로써’, 잉여가치까지 생산하므로 가변자본이고, 기계 · 건물과 원료에 투자한 자본은 노동자가 생산과정에서 그것들의 가치(또는 가격)를 변화없이 그대로 상품에 옮기기 때문에 불변자본이라고 부른다. 

 

 기계와 건물에 투하한 고정자본은 생산과 유통시간이 지난 뒤에도 몇 차례나 더 유동자본의 회전시간을 지나야 회수될 수 있기 때문에, 고정자본의 회전시간은 ‘자본이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에 묶여 있는 시간’이다.  따라서 라면 공장에서, 상품의 생산시간과 유통시간의 합계는 하루이기 때문에, 유동자본의 회전시간은 하루이지만, 기계와 건물에 투하한 고정자본의 회전시간은 1년(365일)입니다. 정리하면 ‘유동자본(임금, 원료)의 생산시간과 유통시간은 상품의 생산시간과 유통시간과 동일하고’, ‘고정자본(건물, 기계)의 생산시간과 유통시간은 고정자본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기간이 된다. 

 

  고정자본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기간’은 사용해서 닳게 되는 것 외에 녹슬고 썩어 망가지는 것을 고려해야 하며, 더 좋고 값싼 새로운 기계나 건물이 등장하여 기존의 것을 사실상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기계 값이 폭락하는 것까지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를 처음 도입한 자본가는 기계를 조금씩 오랫동안 쓰기보다 개선된 기계가 나오기 전에 최대한 많이 사용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자본가는 거액의 자본이 투하된 기계가 밤에 쉬는 것까지도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손실’이라고 생각하며,  밤낮으로 24시간 일을 시킨 것이다. 

 

상품이 제값에 팔리지 않는 경우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그 상품에 들어 있는 자본가치와 잉여가치는 화폐로 실현되지 않고 자본가는 손해를 본다.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과 소비가 개별 생산자나 개별 소비자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따라서 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기는 쉽지 않다.  생산이 소비보다 적으면 상품 가격이 상승하여 생산이 촉진되고 소비를 억제하며, 생산이 소비를 앞지르면 상품 가격이 저하하여 생산을 억제하고 소비를 촉진한다.  가격 변동이 수요와 공급을 ‘즉각적으로’ 바꾸지 못하면, 상품 가격은 ‘폭등’하거나 ‘폭락’하고 경제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원료 가격이 폭등하면 그 원료를 생산하는 산업부문은 수익성이 나아져 원료를 더 많이 생산한다.  이 원료를 사용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산업부문은 완제품의 가격 상승으로 판매가 감소해 생산 규모가 줄어 노동자들을 해고하게 된다. 반대로 원료 가격이 폭락하면, 원료 생산부문은 가격의 하락이 판매를 촉진해 수입이 증가하는 경우에만 생산 규모를 유지 확대한다. 그러나 생산자들은 대부분 이전 상품 가격에 근거하여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하므로, 가격의 폭등과 폭락이 상품 판매 수입을 감소시킨다면 은행 빚으로 인해 대규모로 도산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경제를 시장에 맡기면 수요 · 공급의 법칙에 따라 문제없이 작동한다”는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생산의 무정부성(무계획성)이 과잉생산 공황을 일으킨다.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독점자본주의로 발전하고, 이후엔 독점체와 국가가 유착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발달하면서, 생산의 무정부성(무계획성)이 약화하여 새로운 사회로 넘어간다고 주장했다. 엥겔스도 이렇게 주장한 측면이 있고, 스탈린이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지배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계획경제’라고 선언했다. 이런 주장은 사실상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개연’(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과는 큰 차이가 있다. 자개연은 노동자가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됨에 따라 자본가도 인간을 착취하는 비인간적 행동으로부터 해방되므로,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계급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소련련의 급속한 공업화를 통해 자본주의 선진국들의 ‘공격’을 물리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당과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전국적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할당하고 감독하게 되었다. 사실상 자본주의 체제의 임금노동처럼, 고위 관료의 명령에 의해 강제적으로 노동하는 노예노동이 되었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스스로 경제계획을 세우고 사회 현안을 함께 민주주의적으로 해결할 거라는 기대는 사라지고, 개인들은 노동을 싫어하게 되어 자발성, 창의성, 헌신성 등을 발휘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소련 붕괴의 근본 원인이라고 이야기 한다. 

  독점자본주가 생산의 무정부성을 억제한다고 말할 수 없다. 독점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 독점가격에서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고, 기술 혁신이 가열되므로 생산의 무계획성은 유지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들 사이의 이윤 획득 경쟁이 생산이 무정부성을 낳는 주요 원인중 하나이다. 

 

 

자본가들이 공급하는 1년간의 생산물은 누구에게 팔리는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의 무계획성을 잘 알았고 1년동안 생산된 상품들이 어떤 조건에서 다 팔릴수 있는가를 검토했고 이런 조건은 자본주의 사회가 충족시키기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준다. 생산수단은 공장을 가진 자본가가 구매한다. 그리고 생활수단은 먹고살아야 할 자본가와 노동자 둘 다 구매자가 된다

  어떤 자본가가 생산수단인 원료를 2014년 12월 31일에 구매했다면, 이 자본가는 그 다음 해인 2015년에도 생산을 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자본가들이 2015년에는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하면 원료가 팔리지 않는다. 노동자가 생활수단을 살 수 있는 것은 그가 자본가로부터 임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본가가 2015년에도 생산을 계속하기 위해 원료를 사고 노동자를 고용했기 때문에, 노동자가 임금을 받고 생활수단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모든 상품들 즉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이 팔리려면 자본가들이 2015년에도 생산을 계속하겠다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상품들이 팔리지 않아, 경제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실업자가 대규모로 발생하며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은, 자본가들이 내년에도 생산을 계속하겠다는 결정이다. 마르크스가 상품들이 누구에게 팔리는가를 이야기하면서 근본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점은, 왜 한 사회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근본 문제를 대자본가들 몇 명에게 맡기는가?  바로 이것이다. 

 

 

평균이윤율의 형성과 이윤율의 저하-상승 경향

  8장부터는 『자본론』 3권에 해당한다.  3권의 제목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입니다. 1권에서는 ‘자본의 생산과정’을, 2권에서는 ‘자본의 유통과정’을 다루었기 때문에, 3권에서는 자본주의 경제 전체를 다루기 위해 산업자본가들 사이의 경쟁, 상업자본과 상업이윤, 금융적 자본과 신용 · 이자 · 주식, 그리고 토지소유와 지대 따위를 고찰한다. 

이윤율은 얼마를 투자하면 얼마를 이윤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이윤율은 자본가의 투자 의욕을 자극하는 지표가 된다. 그리고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경우에는, 돈을 빌리는 이자율과 돈을 투자해 얻을 이윤율을 비교하는 것은 당연하다.  연간이윤율 r의 공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본의 회전 시간과 이윤율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자본가에겐 유동자본의 회전시간(=생산시간+유통시간)을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장의 컨베이어벨트를 1시간에서 30분에 한 바퀴 돌리도록 하는 방식이 이윤율을 높이는 것이다. 

 

    연간이윤율의 공식에서 s/v는 지불받지 못한 노동/지불받은 노동이고 ‘잉여가치율’이며 다른 말로 ‘착취율’입니다. 이 착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연장시켜 s를 증가시키는 방법과, 필요노동시간을 감소시켜 잉여노동시간을 증가시키는 방법(v를 감소시키고 s를 증가시켜 잉여가치율을 높임)이 있다.

    표준노동일이 법률로 정해지면, 노동일을 연장하여 잉여가치를 증가시킬 수 없으므로 노동일 중 필요노동시간을 감소시켜 잉여노동시간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생산성 향상을 통해 노동자가 소비하는 생활필수품의 가치를 저하시켜 노동자의 임금수준 v를 낮추어야만 합니다. 이것을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산업자본가들 사이의 경쟁과 평균이윤율의 형성

    산업자본가들은 더 높은 이윤율을 얻으려고 경쟁한다. 다른 자본가가 새로운 생산방법으로 자기보다 높은 이윤율을 얻는다면,그것을 모방하여 이윤율을 높이려고 한다. 이런 경쟁 과정에서 모든 자본가들이 동일한 이윤율을 향해 간다. 이 동일한 이윤율이 이론적으로 ‘평균이윤율’이다.  서로 끊임없이 더 높은 이윤율을 얻기 위해 경쟁하기 때문에, 평균이윤율이 형성되더라도 곧 파괴되어 버린다. 따라서 평균이윤율은 모든 자본가들이 끝까지 경쟁하여 얻게 되는 동일한 이윤율이라고 가정한다. 

   평균이윤율이, ‘동일한 산업부문 안’에서 형성되는 과정과, ‘상이한 산업부문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과정은 서로 다르다. ‘이윤율의 저하 경향’은, 기계화가 잉여가치를 창조하지 않는 기계와 원료의 수량을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취업노동자의 수보다 상대적으로 증가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법칙이다. 다른 한편으로 기계화는 노동생산성을 향상시켜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윤율을 상승시키는 ‘경향’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되면, 잉여가치율 s/v가 증가하고, 투자총액(=c+v)은 감소하며, 유동자본의 연간 회전수 t는 증가하기 때문에, “이윤율을 상승시키는 ‘경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리하여 기계화 · 자동화 · 로봇화는, 한편으로는 이윤율의 저하 경향, 다른 한편으로는 이윤율의 상승 경향이라는 상반되는 경향들을 만들어 낸다. 이 상반된 경향을 ‘이론의 차원’에서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이윤율이 현실적으로 저하한다거나 상승한다고 예측하지는 않은 것”이다. 통계를 통해 자본주의의 긴 역사를 바라보면, 이윤율은 대체로 주기적으로 상승과 저하를 반복한 것 같으며, 일정한 상승 경향이나 저하 경향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이윤율의 저하 · 상승 경향과 공황

이윤율 저하와 공황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마르크스는 이윤율뿐 아니라 ‘이윤량’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윤율의 저하 경향과 상승 경향이 서로 작용하여 실제로 이윤율이 저하하더라도, 경제가 큰 혼란에 빠지는 경우는 대체로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이윤율이 저하하여 이윤량이 어떤 수준 이하로 감소하는 경우.

    이윤율은 실제로 저하하더라도 이윤량이 증가하는 경우라면 자본축적은 계속될 수 있다. 더욱 많은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구입하여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잉여가치 또는 이윤이 자본으로 전환하려면, 이윤의 규모가 최소한 기계, 원료와 노동력을 구입할 수 있는 수준 —‘자본의 최소 규모’ — 이상으로 커야만 한다.  어떤 주요한 대기업 A의 이윤율이 저하하여 이윤량이 자본의 최소 규모 이하로 감소한다면, A는 생산 규모를 확대할 수 없고, 이렇게 되면 사회 전체적으로 연쇄작용이 발생한다. 

A에게 생산재와 소비재를 공급하던 기업들은 재고가 생기고, 은행에서 차입한 금액을 갚을 수 없어 도산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A도 이윤율의 저하를 예상하지 않고 미리 생산 규모의 확대를 계획했다면, 은행 차입을 제때에 갚지 못해 도산할 수 있다. 이리하여 경제 전체에서 생산재와 소비재에 대한 유효수요가 부족해지고 채무를 제때에 상환하지 못해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공황이 발생한다.     

  이처럼 자본주의적 공황은 항상 ‘과잉생산’ 현상을 취한다.. 상품들의 과잉생산은, 상품들이 가격을 인하해야 할 정도로 생산되어, 자본가들이 자본의 가치 증식을 도모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 때 발생하는 실업자는 자본가의 가치 증식 욕심에 비해 너무 많은 노동인구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경력이나 스펙이 모자라서 실업자가 된다는 현재의 통념은 잘못된 것이다.

    둘째 이윤율이 저하하는 상황에서 이윤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자본가들이 경쟁하다가 공황이 폭발하는 경우

    이윤율이 저하하면 자본가들은 자본 규모를 증가시켜 이윤량의 증대로 보상하려고 경쟁하게 된다. 자본가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많이 받아 사업을 확장하여 경쟁자의 시장을 빼앗으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은행의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노동자의 임금수준이 상승하며 기계와 원료의 가격도 상승하게 되어, 오히려 이윤율이 더욱 낮아진다. 이리하여 이윤율이 이자율보다 훨씬 낮아지고 기업들은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도산함으로써 공황이 발생한다. .

    셋째 자본축적에 따라 기업 규모가 증대하면서 이윤율이 저하하면, 투기가 더욱 활발해지고 투기의 실패가 공황을 일으킨다. 

    기업이 이윤을 얻기 위해 필요한 화폐자본의 규모가 증대하게 되면(대기업의 장악력이 커지면), 소규모 자본은 생산 영역에서 밀려나고 유통 영역에서 투기적 이익을 노리게 딘다.  투기적 거래와 투기적 생산은 은행의 과잉 대출을 낳게 되고, 상품들이 시장을 포화시켜 잘 팔리지 않고 가격이 폭락하면, 투기꾼들은 차입한 자금을 상환할 수 없게 된다.  도산함으로써 공황이 발생한다.  주식과 기타 유가증권에 투기하는 경우에는 주식 가격이 주식회사의 수익성과 너무 큰 차이(이것이 바로 ‘거품’입니다)가 나게 되면 누구라도 주식을 먼저 팔려고 하기 때문에 주식 가격은 폭락하고 주식 소유자는 도산함으로써 공황이 발생하게 된다.  2008년의 세계금융공황의 이유이다. 

 

  역사적 분석과 논리적 분석

   『자본론』  1권에서 3권 3편까지는 주로 산업자본을 다룬다.  3권 4편은 상업자본과 상업이윤,  5편은 이자 낳는 자본(고리대자본)과 이자, 6편은 토지소유와 지대, 7편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분배 이론 비판이다. 

  마르크스가 역사적 순서와는 반대로, 산업자본을 가장 먼저 서술한 이유는 『자본론』 집필 목적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목적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히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사회에서든 생산을 하지 않으면 지배계급이나 피지배계급이 먹고살 수가 없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을 장악한 자본이 바로 산업자본이다. 산업자본이 자본주의 사회의 두 개의 큰 계급 사이의 대립과 투쟁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며,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마르크스는 산업자본이 잉여가치를 어떻게 생산하며 이 잉여가치를 어떻게 자본으로 전환시키는가를 자세히 설명한 뒤에, 기타의 자본 형태들 — 상업자본, 금융적 자본, 토지 재산 — 은 산업자본과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증식하고 있는가를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이라는 『자본론』 3권의 4편부터 6편까지에 걸쳐 서술한다.

  첫째, 상업자본과 상업이윤

   산업자본가는 직판장을 만들고 판매원을 고용하여 생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팔기보다 상인에게 그 생산물을 곧바로 팔아 버리는 것이 오히려 이익이다.  따라서 산업과 상업 사이에 사회적 분업이 생기며,  이 사회적 분업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상인의 상업이윤은 결국 산업자본가가 공장 노동자를 착취하여 얻은 ‘잉여가치’의 일부이다. 

  둘째, 금융적 자본 financial capital

  금융적 자본은 『자본론』이 쓰여질 당시에는 대부자본을 자본가들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얻는 자본이 주된 고찰 대상이었다. 현재에는 금융거래가 매우 다양하게 발달하여, 온갖 금융 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예금 · 대출 업무 이외에도 주식 · 국채 · 회사채 · 기타 유가증권의 발행과 매매를 통해 투기 이득을 얻는 자본들을 모두 ‘금융적 자본’이다. 

  금융적 자본의 순환은 M—M′의 형태를 취하는데, 100원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300원이 되는것 입니다. 100원을 빌려주고 3개월 뒤에 300원을 받는다든가, 100원을 주식에 투자하고 6개월 뒤에 그것을 팔아 300원을 얻는다는 이야기이다. 이 자본의 증식에, 금융적 자본가가 실제로 행한 ‘생산적 노동’은 전혀 없다.  금융적 자본가는 불로소득자, 투기꾼 등으로 비난받고 있다. 그러나 금융업도 산업 및 상업과 함께 사회적 분업을 구성하여 사회적 평균이윤을 얻고 있다. 

  셋째, 토지 재산 또는 토지소유

토지 소유자는 자본가에게 토지를 빌려주고 토지의 사용료로 지대를 받는다. 

 

 금융적 자본과 이자 · 배당 · 투기 이득

    예금은행, 투자은행, 지방은행, 증권회사, 저축은행, 보험회사, 부동산 회사 등이 금융적 자본을 대표하는 기구들입니다. 예금은행은 금전출납을 도맡아 사회적 비용을 절약하고, 예금 · 대부 업무는 유휴화폐자본을 활동적인 화폐자본으로 전환시켜 잉여가치의 생산을 촉진한다. 

   투자은행과 증권회사는 예금은행이나 여유자금 소유자로부터 자금을 빌려 주식과 채권(국채와 회사채) 등 유가증권의 매매를 통해 수익을 올린다. 투자은행과 증권회사는 자금을 그 발행 회사에 모아 주기 때문에 산업자본에 의한 잉여가치 생산에 ‘간접적으로’ 기여한다. 그러나 이미 발행된 유가증권을 사고파는 시장인 ‘유통시장’은 산업자본의 자본 규모를 조금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유가증권의 유통시장에서는 투기를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제로섬  게임이 펼쳐진다.  특히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주식 회전 속도는 세계에서 1등이다.  주식에서 중요한 고급 정보와 자금력은 일부 엘리트에게 집중되어 있는데 이렇게 주식시장이 발달했다면 빈부격차가 격심해 질 수 밖에 없다. 

  주식회사는 재벌과 독점자본의 토대를 이룬다. 인수나 합병으로 새로운 주식회사로 만들려는 창업자들은 새로운 회사의 주식을 합병되는 회사의 주주들에게 이전 회사의 주식과 교환해 쉽게 기업들을 합병하고, 창업자들은 이 합병을 통해 거대한 창업자 이득(=새 회사 주식의 시장가격 - 새 회사 주식의 발행가격)을 얻는다. .이러한 인수 합병의 대부분은 기업의 합리화와 체질 개선보다 창업자 이득을 노리는 투기이다.     

  주식 소유를 통해 다수의 주식회사를 지배하는 회사를 지주회사라고 부른다. 주식 소유가 수많은 주주들에게 분산됨에 따라, 10% 정도의 주식을 소유하더라도 지배적인 대주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대자본가는 자기의 투하자본 규모를 훨씬 초과하는 사회의 자본을 마치 자기의 것처럼 지배할 수 있다. 한국의 재벌 총수는, 자기가 직접 소유한 주식은 2% 정도이지만 계열사들의 주식 소유 비율이 40% 정도이므로, 각 재벌 기업들을 마치 자기의 것처럼 지배한다. 재벌은 제2금융권(보험회사, 증권회사 등)을 지배하므로, 산업의 독점자본과 은행업의 독점자본이 결합한 ‘최고 형태의 독점자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재벌은 제1금융권인 은행까지도 소유하여 산업과 금융의 분리(이른바 금산분리)를 무너뜨리려하고 있다.

 

지대 : 토지 사용료의 자본주의적 형태

 토지소유자들이 얻는 소득이 지대이다. 자본주의적 농업은 ‘토지소유자’(지주), ‘농업자본가’(토지를 빌리는 농업가), 그리고 ‘농업노동자’로 구성된다 농업자본가가 토지소유자로부터 땅을 빌리고, 기계와 원료를 사고 농업노동자를 고용하여 농사를 짓는다.  농산물을 팔아 얻는 이윤의 일부를 토지소유자에게, 지대로 준다. 

   주류경제학, 부르주아 경제학, 속류경제학에서는 생산수단이 이윤 또는 이자를 낳고, 노동이 임금을 낳으며, 토지가 지대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마르크스는 삼위일체 공식이라고 이름 붙였다.  마르크스는 주류경제학의 이 삼위일체 공식을 비판한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에 따르면, 산업자본가의 지휘 · 감독을 받는 임금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새로운 가치 중 일부가 임금이라는 형태로 노동자에게 분배되고 나머지는 잉여가치로 산업자본가의 주머니에 먼저 들어간다.  이 잉여가치가 대 자본가에게는 이자로, 토지소유자에게는 지대로, 국가에는 세금으로 분배된다.  마지막으로 남는 잉여가치가 산업자본가의 기업이윤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지배계급과 국가의 수입 원천은 기본적으로 임금노동자계급이 창조한 잉여가치이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지배계급과 국가가 한마음 한뜻으로 노동자계급을 더욱 착취하려고 탄압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속류경제학의 삼위일체 공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농업에서 토지가 지대를 낳는 근거는 두 가지 이다. 첫째로 비옥도와 위치 등이 가장 열등한 토지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농산물의 시장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토지를 독점하여 토지의 사용을 제한하는 토지소유자 계급이 있기 때문이다. 

 

토지 가격과 농업의 자본주의화

    토지는 노동생산물이 아니므로 가치를 가질 수 없지만 지대를 얻는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장래에 얻을 모든 지대를 현재의 값으로 환산한 크기의 ‘기준가격’을 가진다.  토지의 기준가격은 지대에 정비례하고 이자율에 반비례하여 변동한다. 토지의 기준가격도 주식의 기준가격과 마찬가지로 불확정적이며 상상적이다.  장래에 얻을 지대는, 토지의 위치가 도로 · 항만 · 거주지 · 상가의 개발 등으로 크게 개선될 전망이 있으면 크게 증가할 것이므로, 토지의 기준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또한 토지의 ‘시장가격’은, 토지에 대한 수요가 산업입지 · 거주지 · 도로 · 공항 · 기차역 · 위락시설 · 환경보호 등의 이유로 계속 증가할 것이므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아파트 소유나 토지소유에 의거한 임대료 수입은 전형적인 ‘불로소득’이므로, 불로소득을 사회로 환원하는 조치(예: 보유세, 개발이익 환수)를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자본가(재벌) 대부분이 거대한 토지소유자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농업의 자본주의화는 공업의 자본주의화(기계화를 포함)와 마찬가지로 임금노동자를 착취하고 임금노동자를 실업자로 만들며, 토지의 생산력을 약탈하고,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동시에 파괴”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농업에서도 공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생산과정의 자본주의적 전환은 동시에 생산자들을 희생시키는 역사이고, 노동수단은 노동자를 예속하고 착취하며 가난하게 만드는 수단이 된다. … …농촌 노동자들이 넓은 지역으로 분산되어 있는 것은 그들의 반항력을 약화시키는데, 도시 노동자들의 집중은 그들의 반항력을 강화한다. 근대적 도시공업에서와 같이, 근대적 농업에서도 노동생산성의 향상과 노동 공급량의 증가는 노동력 자체의 낭비와 파괴[노동자를 해고하여 산업예비군으로 만드는 것]에 의해 얻어진다. 더욱이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를 약탈하는 방법들의 진보일 뿐 아니라 토지를 약탈하는 방법들의 진보이며, 짧은 기간에 토지의 생산력을 높이는 모든 진보는 생산력의 항구적 원천을 파괴하는 진보이다. 예컨대 미국처럼 한 나라가 대공업을 토대로 발전하면 할수록, 이런 토지의 파괴 과정은 그만큼 더 급속하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동시에 파괴한 뒤에야 비로소 각종 생산과정들을 사회 전체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게 된다[모든 부의 원천을 파괴하면, 그 사회의 주민 전체가 사회혁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 『자본론』 I(하): 678~680

 

  마르크스는 모든 사람들이 지구의 이용자일 뿐이므로 지구를 개량하여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을 권고 한다. 

   

새로운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에 대한 개개인의 사적 소유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사적 소유(노예제도)와 마찬가지로 불합리한 것이다. 게다가 사회 전체, 한 국민, 동시에 존재하는 사회들 전체도 지구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들은 다만 지구의 점유자 · 이용자일 따름이며, 선량한 가장으로서 지구를 개량하여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 『자본론』 III(하): 943

 

 

6월에는 오타나베 이타루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더숲) 와 프랜시스 윈의 『자본론 이펙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냉철하고도 뜨거운 분석』 (세종서적) 7월에는 요한 모스트의  『자본과 노동 - 마르크스의 숨겨진 자본론 입문』(한울). 8월에는 김수행의 『자본론 공부-김수행 교수가 들려주는 자본이야기』 ( 돌베개)와 강신주의  『오늘 『자본』 을 읽다』(길) 그리고 신승철의 『욕망자본론-욕망의 눈으로 마르크스 자본론 다시 읽기』(알렘) 9월에는 황태연의  『21세기와 자본론-한국사회를 중심으로』(중원문화). 10월에는 양자오의  『자본론을 읽다-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공부하는 이유』(유유) 11월에는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의 17가지 모순-이 시대 자본주의의 위기와 대안』(동녘)과 박세준의  『Why? 인문고전학습만화: 자본론』(예림당) 심지어 마지막 책은 만화다 ! 실로 죽은 마르크스가 무덤에서 살아 돌아 돌아와 출판계를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이원석, 자본의 귀환, 기획회의 381호(2014년 12월), 29p)

 

2014년에 출간된  『자본론』  관련 책이다.  오늘 독서 모임책이  공교롭게도 2014년 출간된 자본론 작가의 책이다.  고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 공부』 와   데이비드 하비의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였다.  자본론 공부 내용이 많아서  데이비드 하비 책은  다음주 모임에서 다루기로 하였다. 

 

『자본론 공부』는  고  김수행 교수님이  혜화동의 ‘ 벙커 원’에서 2014년 1월 8일부터 3월 12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에서 9시까지 행한 10번의 강의를 정리한 것이다. 벙커 원에서는 학생들에게 『자본론』 1~3권을 ‘가장 쉬운 수준’의 강의를 요청 했다고 한다.  책 내용도 이해하기 쉽게 자본론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자본론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지금의 현실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래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면 그리고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자본론>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독서 모임  2시간 동안 진행된다. 많은 내용을 공유하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오늘의 리더가  핵심 용어 위주로 설명을  진행 하였다. 머릿속에는  임승수 작가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도 같이 하고 있었다.  5년전에  한겨레문화세터에서 강의를 들었다.  강의때 들었던 용어가  다시 생각났다.  상품, 화폐, 자본, 이윤 저하  등의 용어  였다.

 

1. 자본주의 사회는 사라지지 않을까? 

2. 상품, 화폐, 자본 

3. 노동생산성의 향상과 자본의 축적 

4. 실업자의 형성과 자본-임금노동 관계의 유지 

5.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 

6. 자본의 유통과 자본의 가치 증식 

7. 1년 동안 생산된 상품들은 누가 구매하는가? 

8. 평균이윤율의 형성과 이윤율의 저하·상승 경향 

9. 상업자본과 금융적 자본 

10. 토지소유가 낳는 지대 

 

『자본론』은 자본주의 사회가 경제적으로 어떻게 발전하는가를 이야기한다

자본가는 경제 활동에서 ‘이윤’을 얻고, 재투자하여 자본이 증식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가 확대재생산되고 자본가계급의 권력은 증가합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를 해명하기 위해서, 먼저 자본가가 이윤을 얻는 방법을 이해해야 한다.  자본가가  산업이윤, 상업이윤과  이자, 투기 이익, 지대 등 이득이 ‘어디에서’ 나오는 가에 대해  과학적으로  최초 분석한 사람이 마르크스이다.  『자본론』 1권은 공장을 운영하는 ‘산업자본가’가 얻는 이윤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이야기 한다. 자본가가 얻는 이윤의 ‘실체’를 분석해 보면, 결국 자본가가 임금노동자를 ‘착취’한 것이 바로 이윤이라고 설명한다. 

 

사회를 올바로 파악하는 유물사관

  마르크스는 경제학을 연구하기 이전에 이미, 법학 · 철학 · 역사학을 공부하여 ‘유물사관’을 확립하였다.  마르크스는 사회가 경제 영역, 정치 영역, 법률 영역, 문화 영역, 사회 의식 등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하나의 유기체인 ‘사회구성체’라고 부른다.  그리고 경제 영역이 이 사회구성체의 ‘토대’이고,  정치 · 법률 · 문화 · 의식 등의 영역은 이 토대 위에 세워진 ‘상부구조’라고 본다.  토대인 경제 영역은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구성되며, 이것을 ‘생산양식’이라고 부른다. 

  생산관계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여 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 또는 직접적 생산자를  착취하는 것이 핵심이다. 생산관계는 생산력이 크게 증가하여 소수의 사람이 노동하더라도 다수의 사람이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은 계속해서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계급을 지배하고 착취하려고 한다. 결국 이해관계가 대립하게 되어 각각 자기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거나 확대하기 위해 정치 · 법률 · 언론 · 종교 · 교육 등의 상부구조를 통해 서로 투쟁하게 된다. 

 

노동: 상품 가치량을 재는 척도 

생산물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용가치’가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상품은 다른 상품과 교환 할 수 있는 ‘교환가치’도 가진다. 특성이 다른 상품들이 서로 교환되는 것은 이 상품들이 “서로를 동일하게 하는 동질적인 그 무엇”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이 교환이 근거가 된다고 한다. 어떤 상품을 만들더라도 ‘인간노동’이 투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상품을 만드는 ‘구체적’ 인간노동은 서로 ‘질적으로 다른 노동’이기 때문에 상품 가치의 실제가 될 수는 없다. 모든 ‘인간노동 일반’이라는 점에서는 동질적이라고 말한다. 즉  ‘인간노동 일반’ 이라는 추상적인 인간 노동이 바로 상품 가치의 실체라고 한다. 각 상품들이 일정한 비율로 교환되는 것은 각 상품의 이질적인 인간노동이 동질적인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전환하여 서로 양적으로 비교가 가능하다라고 한다. 인간노동 일반이 상품 가치의 실체이고 상품의 가치량을 재는 척도이다. 

 

화폐

서로 다른 구체적 노동에 의해 생산되었지만, 모든 상품들은 동질적인 ‘인간노동 일반’의 생산물이기 때문에 서로 동일한 것으로 여겨져서 교환된다. 금은 여러 상품들과 교환하는 과정에서 금이 가진 특수한 사용상의 성질 때문에 화폐로 선출되었다.  금은 작게 나누거나 크게 붙일 수 있고, 금의 질은 변하지 않으며, 금은 적은 양이라도 큰 가치를 가지고, 금은 운반하기 쉽다. 많은 국가가 금을 화폐로 사용하며 금본위제도가 오랫동안 세계 거래를 지배한다. 금이 이제 ‘화폐’로 기능하는 것이다. 금이 모든 상품의 가치를 표현하는 재료가 되고 ‘모든 상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을 얻습니다. 금이 화폐가 됨에 따라 상품은 교환이 훨씬 더 편리해졌다. ‘화폐’가 모든 상품들을 살 수 있는 ‘사회적 힘’을 가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이유는 지폐가 모든 상품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폐는  종이로 만들고 금화는 금으로 만들기 때문에, 지폐는 금화와 같은 의미의 ‘인간노동 일반’의 생산물은 아니다. 따라서 한국은행권, 미국 달러와 같은 지폐의 구매력이 크게 변동할 수 있다. 모든 상품과 화폐 금이 지닌 ‘가치의 실체’는 인간노동 일반이다.  '인간노동 일반'이 상품들의 가치를  '새로 만들어 낸다' 또는 ‘창조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자본 

화폐가 잉여가치를 얻어 더욱 큰 화폐가 될 때, 처음의 화폐를 자본이라고 부른다.  잉여가치가 어떻게 생기는가 이다.  내가 어떤 물건을 100원에 사서 120원에 팔았다면 20원의 잉여가치가 생긴다.  그러나 이 경우 사는 사람이 20원의 손해를 보기 때문에, 사회 전체로 보면 실질적인 잉여 가치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떻게 잉여가치가 생기는가 알아내기 위해서는, 교환 과정에서는 ‘상품들은 자기의 가치대로 매매된다’고 가정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상품을 사고 팔때 그 상품의 가치에 해당하는 금액대로 판다는 ‘등가교환’을 전제해야만 사회 전체에서 잉여가치가 생기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등가교환을 전제로하면서 잉여가치가 생길 수 있는 것은 노동의 투여이다. 노동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어떤 자본가가 30원(M)을 주고 30원짜리 상품(C)을 산다. 그가 이 상품을 이용해 50원짜리 상품(M’)을 만들어 50원에 판매하니 잉여가치가 20원(m) 생긴다. 이 경우 상품은 가치대로 교환되면서 자본가는 20원의 잉여가치를 얻는다. 이 자본가에게 잉여가치를 만들어 주는 ‘특수한 상품’이 바로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파는 노동력(C’)이라는 상품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노동력의 하루 가치를 임금으로 주고 그 노동력을 하루 동안 사용한다. 따라서 하루 임금은 노동력의 하루 가치이다. 노동력의 하루 가치는 “노동자와 그 가족의 하루 생활비(에덤 스미스)”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 생활비는 퇴직 이후의 생활비도 포함되어야 한다. 하루 생활비를 받은 노동자는 그 돈으로 가족과 함께 먹고 살고 다음날 다시 노동한다. 

 

쌍방이 모두 동등하게 상품 교환의 법칙에 의해 보증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동등한 권리와 권리가 맞섰을 때는 힘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에서 노동일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한계를 둘러싼 투쟁, 다시 말해 총자본 즉 자본가계급과 총노동 즉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 『자본론』 I(상): 309~310   

 

노동과 자본 사이의 투쟁을 통해 지금의 표준노동일 또는 법정노동일이 8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잉여가치의 원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여 자본의 가치를 증식시키는 자본은 위 그림과 같이 운동합니다. 라면 공장을 예로 들어, 산업자본가는 화폐 100원으로 ‘생산수단’(즉 기계와 원료 등)을 70원 구매하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하루 임금으로 30원을 지불한다. 노동자는 ‘생산과정’에서 기계로 원료를 가공하여 라면을 만든다. 하루 생산한 라면은 시장에서 120원에 팔았다. 그다음 날도 100원을 투자하여 120원에 팔았습니다. 우리의 가정대로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라면이 시장에서 자기의 가치대로 팔렸다면 100원을 투자해 만든 라면의 가치가 어떻게 120원이 될 수 있을까 ?

 

노동자의 하루 임금 30원을 살펴보면 이 임금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하루 생활비다.  이 30원으로 노동자와 그 가족은 하루를 정상적으로 생활하고(하루의 의식주 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노동자가 자식을 낳아 키우고 그 사회의 노동자를 유지한다는 의미를 포함),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재생산한다. 노동자는 기계로 원료를 가공하는 ‘구체적 노동’을 하지만 이 구체적 노동은 ‘인간노동 일반’으로써 상품의 ‘가치’를 창조한다. 이 인간노동 일반이 “상품의 가치를 창조한다” 혹은 “상품에 새로운 가치를 첨가, 부가 또는 추가한다”고 말할 수 있다. 노동력의 가치로 지불 받은 임금 30원으로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창조 또는 첨가(부가)하여 새롭게 만들어낸 가치는 임금 30원의 가치와 전혀 다르고 크기도 다르다. 

 

라면 가치는 생산수단의 가치로부터 옮겨 온 것(70원)과 노동자의 인간노동 일반이 첨가 또는 창조한 것으로 구성된다.  라면 가치가 120원이고 생산수단으로부터 라면으로 옮겨 온 가치가 70원이라면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라면에 새로 첨가(부가)한 가치가 50원이라는 것이다. 임금 30원은 노동이 창조한 가치 50원과 차이가 납니다. 노동자는 노동으로써 50원의 가치를 창조했지만, 노동력의 하루 가치로 30원을 받았으므로, 나머지 20원은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공짜로 준 ‘잉여가치’이다.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방법 1 — 노동시간을 연장한다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는 방법 2— 노동자의 생활비를 값싸게 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노동자를 착취한 잉여노동 · 잉여가치가 이윤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주류경제학은 마르크스의 이런 주장을 반박하지만 자기의 이윤 이론은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주류경제학의 반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절욕’에 대한 보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본가가 욕망을 억제하여 소비를 줄인 것이 어떻게 잉여가치를 창조하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자본가가 절욕을 통해 돈을 금고에 넣어 둔다면 잉여가치는 생기지 않는다. 또한 자본가의 자본이 어느 규모 이상으로 증가한 뒤에는 사치를 하더라도 자본은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절욕이 잉여가치를 낳는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둘째, 주류경제학은 자본가가 생산과정에서 수행한 감독노동과 지휘노동이 잉여가치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감독노동’은 그 어떤 가치도 결코 창조하지못한다. 노예사회의 노예 감독관은 노예중에서 뽑혀서 노예들을 감독만 한다. 시간이 흘러 노예의 통제가 힘들어지자 노예 감독관의 숫자는 점점 더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일하는 노예 수는 점점 더 감소한다. 오히려 노예 주인의 비용이과 손실을 증가된다고 한다. 

 

생산력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본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도 스미스는 노동자가 한 가지 일만 계속하면 하나의 능력만 발달하고,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들이 판단력이 부족한 바보가 된다고 경고하면서, 의무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하였다.  마르크스는 좀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자본가들이 경쟁하면서 새로운 상품 · 기계 · 생산방법을 끊임없이 발명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전면적으로 발달한’ 개인이 되지 않고서는 일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된다고 보았다.  이런 개인들이 결국 새로운 사회의 주체가 되어 차별을 없애고 협동해서 높은 노동생산성을 달성한다고 예측했다. 

 

두 라면 회사 A B의 경쟁은 ‘초과이윤’을 얻기 위한것

라면회사 A B의 생산조건이 동일하다고 했을때 두 회사는 라면 값을 떨어뜨려 더 많이 팔려고 경쟁할 수 있다.  A라는 회사가 특수한 원료를 개발해서 라면 1개값을 반으로 떨어뜨린다면 두 회사 라면 값의 차이가 두 배가 된다.  이렇게 되면 A는 ‘초과이윤’을 얻는다  이렇게 되면 회사B는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위협을 느낀 B가 A회사와 동일한 원료를 사용하면 라면1개의 ‘시장가치’가 반으로 저하된다.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상승하고 자본가의 ‘상대적 잉여가치’도 상승합니다.

  노동자의 생활필수품을 생산하지 않는 다른 기업들도 ‘초과이윤’을 얻기 위해 기술혁신을 도입하며 경쟁한다.  본래 목적은 경쟁사를 몰아내기 위한 것이지만 상품 값을 낮추는 과정에서 생활필수품 생산업체가 사용하는 기계와 원료의 값이 떨어진다면 생활 필수품의 가격이 낮아지고 노동자들의 생활비를 감소시키며 결국 모든 자본가들이 노동력의 가치(임금)를 인하시키고 상대적 잉여가치를 얻게 된다. 

 

자본의 축적

 자본가는 오로지 자신이 투자한 돈의 증식만을 원힌다. 자본가의 화폐 증식욕은 무한히 계속된다.  화폐를 증식하기 위해 자본가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을 가진 노동력을 구매해 한다.  라면 공장 자본가는 100원을 투자하여 하루 20원의 잉여가치(120원=100원+20원)를 벌어들입니다. 이 잉여가치는 노동력을 ‘착취’한 부분인데 이 부분이 자본가의 자본을 점점 더 크게 증식 시키는 것이다. .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요소가(상품, 화폐, 자본) 사라진 사회 형태가 성립할 수 있을까 ? 만약 어떤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 사회의 인적 · 물적 자원을 주민 모두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하기로 결심했다고 가정하자. 주민 모두를 민주적으로 대표하는 지휘부가  가까운 장래에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목록을 조사한다. 그러면 주민들은 다양한 필요와 욕구를 제출한다.  ‘자개연’(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은 사회의 자원이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충분한지를 조사한다.  이 사항을 토대로 주민들과 상의하여 그들의 필요와 욕구를 수정한다.  조정을 여러번 거쳐 계획이 확정되면, 각 공장은 계획에 따라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물건을 직접 전달한다. 이렇게 되면 공장에서 만들어진 생산물이 시장에서 상품으로 등장할 필요가 없어지고, 따라서 화폐도 필요 없고 누가 누구를 착취하는 자본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실업자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지렛대

 폭압적인 정치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사회는 대규모 실업자를 ‘산업예비군’으로 정해두고 취업노동자에게 온갖 잔인한 희생을 요구할수 있다.  

 

과잉 노동인구가 축적의 필연적 산물 또는 자본주의적 토대 위에서 부wealth의 발전의 필연적 산물이라면, 이번에는 이 과잉인구가 자본축적의 지렛대가 되고, 심지어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 『자본론』 I(하): 862

 

   산업예비군은 노동인구를 항상 공급할 수 있으므로 자본가는 출산율이나 노동인구의 자연적 증가율에 신경을 쓰지 않고 생산을 확대하고 자본을 축적할 수 있다.  새로운 해외시장이 개척된다면, 기계제 대공업은 당장 필요한 노동자를 산업예비군에서 고용하여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산업예비군은 호황기에는 산업현역군의 요구(예: 임금 인상, 노동조건 개선, 노동시간 단축, 경영 참가)를 억제하고, 불황기에는 자본가의 압력(예: 임금 인하, 노동시간 연장, 해고)을 강화하며, 자본가의 독재를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산업예비군과 산업현역군을 포함하는 노동자계급 전체의 단결을 강화해야만 자본가계급의 독재에 제대로 저항할 수 있다.  산업예비군은 ‘노동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항상 자본가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한다. 일자리를 찾는 산업예비군이 대규모로 있기 때문에, 자본가는 취업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의 연장과 노동강도의 강화를 강요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므로, 노동자에게 훨씬 많은 노동을 요구하고 시간당 임금수준은 크게 저하하여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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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면서 휴대폰으로 아트앤스터디 강의를 들었다. 전철에서 강의를 들으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한다.  장의준 철학자가 강의하는 "구조주의 입문" 중 롤랑바르트 기호학 부분이었다. 구조주의에 관심이 많다. 이해하고 싶은 분야 인데 쉽게 접근할 수는 없었다. 범위도 넓고 다양한 철학자가 있었다.  '푸코, 바르트, 레비 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강의 내용과  비슷하였다. . 부제가 "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 이다.  강의를 듣고 해당 내용을 책에서 다시 찾아 보았는데 읽었던 부분이었다.  강의 중에는 생소하게 느껴졌는데 이미 읽었고 연필 흔적을발견 할 수 있었다. 책을 읽을 때  롤랑바르트 기호학이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거나, 기억력 감퇴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사상가를 만나면  최성일의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을 찾아 본다.  사상가의 저작 중심으로 사상가를 설명한 책이다.  218인 사상가를 저작 중심으로 간략히 설명하고 있다. 사상가를 중심 생각을 대략적으로 살펴보고 국내에 출판된 저작들을 확인하기에 좋다. 큰 그림으로 볼수 있어서 가끔 찾아 본다.  '롤랑 바르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 롤랑바르트를  '변신의 천재’라고 설명 한다. 롤랑바르트의 연구 덕분에 우리는 문학, 패션, 레슬링, 광고, 자아/역사/자연의 개념에 대해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비평가 이면서 기호학자, 이론가이면서 수필가인 팔방 미인이라고 표현한다.

 

이책에서 소개하는 ‘현대의 신화’(동문선)은 강의 들었던 내용과 연관이 있었다. “대중문화의 언어활동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비판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언어활동에 대한 최초의 기호학적 분석서’라고 한다. 신화를 파롤로 보는 바르트가 “신화가 하나의 의사 소통 체계, 곧 하나의 메시지’라고 단언한다. 신화적 요소에 대한 바르트의 특유의 분석과 비판적 인식이 드러난다고 한다. 

 

강의에서  ‘상징'과 ‘기호'를 비교 하여 설명 하였다.  ‘상징’은 그것이 지시하는 것과  의미적으로 연결되었다. 예를 들어  법원  이미지에서 ‘저울’은 재판의 공정함을 상징한다. 저울의 무게 측정 기능이 재판을 공정한 제판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저울을 ‘주전자’로 대치하면 상징으로서 기능할 수 없다.  또다른 예로  화장실 문 앞에 걸린 ‘양복을 입은 사람모양이 이미지’는 신사용 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신사용'이라는 문자는 기호이다. 이 문자와 ‘남성은 여기에서 배설을 한다’라는 생활 습관 사이에는 ‘인위적인 약속’인 것이다. 기호라는 것은 어느 사회집단이 인위적으로 약속한 '표시와 의미의’ 결합이다. 기호는 ‘표시’와 ‘의미’가  하나가 되어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생긴다.  ‘표시’와 ‘의미’사이에는 어떠한 자연적 내재적 관계 없다.  ‘의미하는 것’과 ‘의미 되는 것’의 기능적 관계일 뿐이다.  

 

  장기를 두려고 하는데 졸이 하나 없는 경우 바둑알을 장기판에 놓는다고 했을 때 장기를 두는 사람이  ‘귤껍질’을 졸로 ‘약속’ 약속 하면 장기는 계속진행된다. 그러나 귤껍질과 졸사이에는 그 어떠한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결합이 없다. 이 것이  ‘기호’의 본질이다. 소쉬루는 ‘귤껍질’과 같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표시’를 의미하는 것 ‘시니피앙’으로 장기의 졸의 작용을 의미되는 것 ‘시니피에'라고 불렀다. 기호란 의미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의 세트이며 이둘을 합친것이 기호라고 한다. 언어 뿐만아니라 복장, 먹는 요리, 좋아하는 음악, 타고 다니는 자동차, 살고 있는 집 등이 모두기호로 가능하다. 기호학은 우리 주위에 있는 것이 기호가  될 수 있는지, 그 것이 어떤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발신하고 이떻게 해독되는지 등을 규명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롤랑 바르트는 소쉬르의 기호의 자의성에 관한 주장,  즉 소쉬르의 ‘기표가 기의와는 현실 속 에서 아무런 자연적 관계도 없다’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계승해서 “현실의 거짓된 자연스러움” 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신화를 비판하기 위해 신화 기호학을 창안하였다고 한다. 

 

“나는 프랑스 사회의 일상사가 지니고 있는 몇몇 신화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고찰의 소재는 신문기사·주간지의 사진, 영화, 공연, 전시회 등 매우 다양하였고, 주제 또한 매우 자의적이었으며 ... 시대의 현실과 관련되어 있다 는 것이다. … 현실이란 완벽히 역사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널리즘, 예술, 상식 등에 의 해 자연스러운것, 본래적인 것으로 둔갑해 버리는 현상, 즉 현실의 거짓된 자연스러움이 참 을 수 없이 느껴져서였다. … 이에 자명한 것으로 포장된 진술 속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되 는 이데올로기적 오용을 다시금 포착해 내고 싶었다.”(롤랑바르트, 『현대의 신화』, 동문선, 2002, 서문 p. 3.)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오늘날 문화는 신화에 의해 규정되는데, 신화의 기능은 특정한 세계 관을 자연화시키는 것에 있다. 신화가 특정한 세계관을 자연화시킨다는 것은 곧 신화가 ‘비정치화된 파롤’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해, 신화는 언어활동에 권력을 기재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신화의 기능이 기호에 권력을 기재함으로써 권력 을 끝임없이 재생산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모든 권력은 역사 우연성에 결부되어 있다. 하지만 신화는 권력에 결부된 역사를 자명한 것으로, 즉 자연적인 것 으로 바꾼다.  “현실의 거짓된 자연스러움”으로서의 신화는 역사적인 것을 자연적인 것 으로 전도시킨다. 

 

롤랑 바르트는 신화적 기호의 한 예로서 '파리 마치’  잡지의 표지에 인쇄된 사진을 언급하는데, 이 사진은 프랑스 군복을입은 한 흑인 소년 병사가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장면 을 담고 있다. 대상언어 체계(1차 체계)의 차원에서 볼 때, 이이미지의 의미는 ‘프랑스식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흑인 소년 병사’이다. 하지만 메타언어 체계(2차 체계)로서의, 즉 신화적 기호로서의 이 이미지의 의미는 '인종차별 없는 위대한 프랑스를 위한 순수한 충성’이다.

 

롤랑 바르트는 1차 체계의 언어를 대상언어라고 부르며, 2차 체계의 언어를 메타언어라고 부른다. 신화학자가 다루는 대상은 바로 이 메타언어, 즉 2차 체계의 언어이다. 신화의 출발점으로서의 대상언어에는 문자와 이미지가 모두 포함된다. 예를 들어, 언어, 사진, 회화, 광고, 의식, 사물 등은 모두 신화의 출발점(즉 1차 체계의 언어인 대상언어로 서의기호)이 될 수 있다.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신화는 ‘기호의 체계’이다. 신화가 기호의 체계 라는 것은 기호의 성질을 따르며, 층위야 어떻든 간에 기표와 기의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신화는 언제나 이중구조를 가진다. 신화는 신화 이전에 존재하는 기호학적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즉 1차 체계에서의 기호는 2차 체계에서 기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화역시 1차 체계와 마찬가지로 기표, 기의, 기호라는 삼원적 도식을 지니고 있다.  즉 신화의 ‘형식’은 기표에, ‘개념’은 기의에,  ‘의미 작용’은 기호에 상응하는 것이다.

 

'도심에서 낮에 입는 옷은 흰색으로 액센트를 준다'는 사실의 언급처럼 보이지만 다른 층위에서 새로운 기의 즉 ‘낮에 입는 옷에 강조된 흰색은 도시의 기호이다'를 위한 기표가 된다. 결과적으로 이 패션 체계의 사례들은 독자들이 수용하기를 바라는 이데올로기적 기호 혹은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수사적 약호는 이와 관련된 것이다. 이처럼 패션은 신화의 한 형식으로서, 인공적인 것을 자연의 기호로 전환시켜 자신이 행한 변형을 은폐한다.  '도심에서 낮에 입는 옷은 흰색으로 액센트를 준다'는 사실의 언급처럼 보이지만 다른 층위에서 새로운 기의 즉 ‘낮에 입는 옷에 강조된 흰색은 도시의 기호이다'를 위한 기표가 된다.

 

롤랑 바르트를 표현한 최성일의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변형하는 것이다.’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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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가입한 카페에 서평 이벤트가 있다.  관심있는 책에 대해  제한 기간 내에 서평을 쓰고 카페에 올리는 것이다. 블로그 글쓰기는 자유를 보장한다.  다른 일이 바쁘면 미루면 된다. 올리고 싶을때 자유롭게 올릴 수 있다.  제약 사항이 없다.  그래서 블로그 글쓰기는 완성도나 충실도가 떨어진다. 서평 이벤트 글쓰기는 ‘서평’이라는 글의 형식이 있고, 마감이 정해져 있다.  이벤트에 참여한 서평글을 같이 공유 하므로 글에 대한 압박감도 블로그 보다 높다. 서평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이벤트에 참여한 책에 대한 관련 정보도 필요해서 마음이 바빠졌다. 마음이 바쁠때 회사 일도 많아진다. 휴일 근무도 하고 월요일도 바쁜 하루를 보냈다.  

 

지난 주 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서평 이벤트 관련된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갔었다. 절판된 책이라 중고점에만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에 갔다가 그냥 올수 없었다. 서평관련 책을 발견했다. 이원석 작가의 “ 서평 쓰는 법” 이었다. 부제는 ‘ 독서의 완성’이다. 부제도 마음을 끌었다. 이원석 작가는 ‘ 거대한 사기극’을 출간한 작가이다.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있다. 자기 계발서를 비판한 책이었다. 책 날개에 작가 약력을 참조 하였다. 서평가이며 지금도 온 오프라인에 서평을 쓰고 있다고 했다.  ‘거대한 사기극’도 서평공모 당선이 단초 였다고 한다. 거대한 사기극은 작가의 첫단행본으로 2013년 출판평론상을 받았다. 작가의 책읽기와 서평쓰기의 결과 였던것이다. ‘ 거대한 사기극’도 자기 계발서를 사회적 환경과 해당서가 위치하는 전체 맥락으로 분석한 책이었다. 작가는 서평글쓰기에서도 책이 위치한 맥락을 중요시 하였다. 

 

작가는 부제처럼 읽은 책에 대해 서평을 쓰는 것이 독서의 심화이고,  완성이라고 이야기 한다. 좋은 책을 온전히 누리고,  어려운 책을 풀어내기 위해는 것이 서평의 이유라고 한다. 서평 쓰기가  지적 기초 체력을 유지하고, 지적 독립을 위해 필요하다고 한다. 이이러한 서평을 쓰기 위한 방법을 풀어 낸 책이다. 다양한 서평 사례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서 잘 읽힌다. 

 

작가는 서평작성 법을  설명하기전에 서평의 정체성 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즉 서평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한다. 평소에 궁금했던 내용 이었다. 독후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궁금 했는데 명쾌하게 설명한다.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감동과 깨달음을 쏟아 내는 것은 독후감이라고 한다. 즉  독후감은  정서적이며, 내향적이며 독백적 성격이 강하다.  반면에 서평은 해석작업이며 논리를 담아내며, 서평가가 읽은 책에 대한 조리 있는 설명과 평가를 문자화 한다고 한다. 독후감의 감동과 깨달음에 논리와 체계를 부여하여 설득력을 배가 시킨 것이 ‘서평’이라고 정의 한다.  작가는 서평을 비평과도 비교 한다.  비평은 무거운 서평이라 정의한다. 일반적인 서평이 특정한 책의 독서를 제안하는 것이라면 무거운 서평은 특정한 책에 대한 특정한 해설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미 읽은 책을 서평자의 해석을 따라 다시 읽어 보기를 권유하는 것이 무거운 서평이라고 한다. 

 

서평 쓰기의 목적은 자신의 내면 성찰에 있다고 한다. 독서가 자기의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서평쓰기는 책을 깊이 읽어 내며 내면에 몰입하게 한다. 읽은 책에 대해 글로 쓰려고 하면 두렵지만 당당히 직면하면  자아성찰의 보상이 따른다고 한다. 자아 성찰은 과정이라고 말한다. 서평의 진정한 목적은 성찰의 내용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한다.  삶의 변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독서를 통해 자아 성찰하고 타자의 이해를 바탕으로 삶의 지평을 확대하는 것이다. 서평을 읽는 독자의 관점에서는 서평을 읽음으로써 책에 대한 선이해 형성에 기여 한다. 물론 선입관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책을 읽을 수없기 때문에 서평을 참조하여 관심분야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서평은 잠재 독자의 독서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 좋은 서평은 잠재적인 독자가 선택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이는 서평에 대한 논리적 평가를 근거로 한다. 

 

서평을 쓰기위해 전제 되어야 할 게 있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다. 서평가는 소통의 목적에 따라 읽는다.  책의 종류보다는 왜 읽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성숙에 도움이 내용, 유용한 자료, 재미 있는 책의 내용도 될 수 있다. 분노 또한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감정을 동력으로 삼되 지적으로 준비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즉  문법과 언어의 기본 수준을 충족해야 하며 문자를 넘어서 맥락 파악이 가능해야 한다.  저자의 심층의도를 이해할 수 있는 독해력을 필요로 한다. 추가적으로해당도서가 자리하는 맥락(전공)에 대한 기본 이해가 필요하다.  내부적으로 책에 대한 인덱스 형성이 필요 하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이중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하다. 숭배자의 관점과  비판자의 관점을 가져한다.  책에 매료되어 다가가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책으로 부터 냉철하게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후 책에 대한 입장을 정해야 한다.

 

이후 서평 쓰기의  요소를 이야기 한다. 가장 중요한 두가지 요소는 “ 요약"과 “평가" 이다.  요약은  서평을 읽는 사람에게 책에 대한 선 이해의 정보를 제공한다. 충실한 요약이 평가를 위한 근거가 된다.  요약은 서평쓰기의 토대라고 한다. 서평을 읽는 독자는 평가라는 건축물을 보지만 그 건축물이 서 있는 토대가 요약이라고 한다. 토대가 부실하면 건축물은 무너지기 쉽다.  작가는 요약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각장을 읽고 난후에 생각으로 혹은 기록으로 핵심을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평을 작성하려면 그렇게 하는 편이 유익합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면 전체의 핵심 내용을  정리해야 합니다. 목차를 앞에 펼쳐 놓고 다른 이에게 장별로나 젋려로 요지를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리가 되면 좋습니다.  적어도 장별로는 정리해야 합니다 (87p)

 

서평의 핵심은 평이다.  평가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맥락화’이다.  하나의 책을 다른 책과 연결해 특정한 자리를 찾아주는 것이다. 책의 숲에서 자리 매김 한다.  자리 매김은 해석의 가능성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자신의 기준과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세상의 지식 영역에 대해 가능한 넓게 알아야 하고, 서평의 대상이 자리한 영역에 대해 깊게 알아야함을 강조한다. 차이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수준을 넘어서 폭넓은 공부가 필요하다. 한 측면에 대해 깊이 배워서 이를 통해 관점과 논리와 언어를 습득해야 다른 여러 측면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너른 이해의 토대가 깔려 있어야 특정한 이해의 건축물을 튼실하게 쌓아 올릴 수 있다.  세부 적인 평가항목은 책의 제목부터 목차, 문체, 지식의 적정성/정확성, 번역 등 다양 하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서평 쓰기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이야기한다. 슬로우 리딩으로 생각을 자극하는 문장을 발췌하라고 한다.  책을 읽고 생각나는 바를 바로 기록하라고 한다. 발췌한 문장이 촉발한 사유의 기록이다.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때나 막 서평을 쓰기 시작할때 머릿속에 그 책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지만 시작이 중요하다고 한다.  글을 쭉 써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글에 질서와 형상을 부여 할 수 있게 된다. 

 

첫문장 쓰기와 문단 구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전문작가가 아니라면 첫문장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대부분 첫문장이 소박하고 평범하다. 문단은 하나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 각문단의 분량은 비슷하게 조절 해야 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단어와 표현으로 이어딘다.  모든 단어와 표현은 독자가 알아 볼수 있도록 구성 해야 한다. 인용에 대해서 설명을 이어간다. 인용은 나를 돌아 보게 만들었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올릴때 가장 쉽게 올릴 수 있는 내용이 인용글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용이 과하면 서평이 스스로 서지 못합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단 한줄도 인용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종종 글의 대부분이 인용으로 이루어진 서평(이라기보다는 책의 소개 혹은 요약)도 있습니다. 이런 글은 서평이 아닙니다. 그저 글을 작성한 사람의 개인 작업 노트에 불과합니다. 그 인용문중에서 무얼 골라 어떻게 배열할지를 모색하고, 여기에 어떻게 자신의 생각으로 테두리를 지을 까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인용만 해 놓는다면 제아무리 멋진 문구라 해도 서평에 기여할 수 없습니다. 서평의 주체는 서평자 입니다. (158p)

 

서평의 마무리를 이야기 한다. 서평의 논지가 공격적일때 마무리는 책에 대한 비판이 저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책의 장점도 드러내라고 한다. 마무리로 끝나는 것이다. 모든 글쓰기가 강조하는 고치고 또 고쳐이다. 마지막으로  좋은 서평을 참고하라도 잊지 않는다. 책장에 꽂혀 있는 서평집에 눈이 갔다.  장정일, 강유원, 이현우, 강창래 서평이다. 대부분 이책에서 언급한 서평가들이다. 서평 쓰기를 시작하려는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된 책이다. 계속 참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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