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운동 형태

 

<자본론> 1권의 주제가 ‘자본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방법’, ‘자본이 형성되는 방법’ 이라면, 2권은 ‘자본이 가치를 증식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운동하는가’, ‘자본이 생산한 상품들은 어떻게 팔리는가’이다.  가치를 증식하려는 자본은 계속 ‘운동’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이 과정에서 자기의 형태를 계속 바꾼다. 

 

 

 -산업자본의 순환 M—W(MP)(LP)—P—W’—M’(S)(M)

  자본은 처음 화폐(M)로 투하되고, 상품(Ware)인 생산수단(MP: Means of Production)과 노동력(LP: Labor Power)을 구매하여 생산요소로 변하며, 노동자가 기계로 원료를 가공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생산과정(P)에서는 처음(100원)보다 큰 가치를 가지는 새로운 상품(W′)이 나타난다.  새로운 상품(W′)은 시장에서 팔려 다시 화폐 형태로 자본가에게 되돌아온다.  이와 같이 산업자본은 가치를 증식하는 운동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모습을 바꾼다. 주류경제학자들은 “자본은 기계”라고 말하지만, 사실 “자본은 화폐 · 생산요소 · 상품의 형태를 취하므로, 화폐나 생산요소나 상품은 모두 자본”이라고 답해야합니다. M은 ‘화폐자본’, MP와 LP는 ‘생산자본’, 그리고 W′은 ‘상품자본’이라고 부른다. 

 

 

자본의 회전시간

 

   

자본이 유통과정과 생산과정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자본의 회전시간은 각각 자본가가 시장에 가서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구매하는 시간(구매시간-유통과정①) , 생산과정, 생산품을 판매하는 시간(판매시간-유통과정 ②) 으로 되어 있다. 구매시간과  판매시간을 합해 ‘유통시간’이라 한다. 자본이 1회전하는 데 드는 시간은 유통시간+생산시간이다.   

제품의 생산시간을 짧게 하고 판매시간을 짧게 할수록 자본가에게 유리하다.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제품을 빨리 생산하려고 하고, 단골이나 주문생산을 통해 판매시간을 단축하려 한다.  이러면 기업 운영에 투자하는 자금이 빨리 회수되면서 일정한 기간에 얻는 잉여가치가 더욱 커진다.  제품을 판매하는 시간동안에도 생산을 쉬지 않고 해야하기 때문에 화폐자본이 여유있게 필요하다. 

 

자본의 회전시간과 이윤율

    어떤 라면 공장의 자본의 회전시간은 하루라고 가정하면,   투하한 화폐 100원이 하루 뒤에 화폐 120원(자본가치 100원과 잉여가치 20원)이 되어 다시 나타난다. 이 자본가는 ‘하루의 이윤율’ 20%라는 매우 높은 이윤을 얻는다.

 1년에 얻는 이윤은 7,300원(=20원×365일)이 된다.  연간이윤율은 1년 동안 얻은 잉여가치를 투하한 자본 총액으로 나눈 것을 퍼센트로 나타낸 것이므로, 이 라면 공장이 얻는 연간이윤율은 다음과 같은 공식에 의해 7,300%가 된다. 

 

최초 자기의 자본 100원만 가지고 1년 동안 365번 회전시켜 매일 이윤 20원의 365배가 되는 7,300원을 버는 것이다.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라면 제조 기술이 부족하고, 기계시장, 원료시장, 판매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라면을 만들어 파는 데 이틀이 걸렸다 가정해보자.  연간이윤율은 1년에 얻는 이윤 3,650원(=20원×365/2)을 투자금액 100원으로 나누고 100%를 곱하면 3,650%가 되며, 지금의 연간이윤율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생산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온갖 기술적 혁신을 개발하고 도입하며, 유통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판매 상점의 대형화와 상품 가격의 할인을 실시하고, 운송 · 통신 시설의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시설 투자는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고 장래의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자본가계급 전체의 이익을 증진하려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정보 · 운송 · 통신 시설을 혁신하였다. 

 

고정자본과 유동자본

 

 

 모든 상품의 생산에는 기계와 건물이 필요하고, 이런 생산수단은 오랫동안 상품 생산에 기여한다.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일반 경제학자들은, 자본가가 라면 공장에 투하하여 하루에 모두를 회수할 수 있는 자본을 유동자본이라 부르고, 오랜 기간에 걸쳐 회수하는 자본을 고정자본 이라고 불렀다. 이 둘은 자본가가 투자한 자본이 ‘어떻게 회수되는가’를 기준으로 분류되었다. 마르크스의 용어인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은 자본가가 투하한 자본이 ‘생산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가, 창조하지 않는가’를 기준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원료와 노동력의 구입에 투하한 유동자본은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면 모두 회수된다. 기계와 건물에 투자한 고정자본은 유동자본의 1회전시간을 넘어 여러 회전에 걸쳐 조금씩 회수된다.  노동력의 구입에 투하한 자본은 노동자가 생산과정에서 ‘새롭게 노동함으로써’, 잉여가치까지 생산하므로 가변자본이고, 기계 · 건물과 원료에 투자한 자본은 노동자가 생산과정에서 그것들의 가치(또는 가격)를 변화없이 그대로 상품에 옮기기 때문에 불변자본이라고 부른다. 

 

 기계와 건물에 투하한 고정자본은 생산과 유통시간이 지난 뒤에도 몇 차례나 더 유동자본의 회전시간을 지나야 회수될 수 있기 때문에, 고정자본의 회전시간은 ‘자본이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에 묶여 있는 시간’이다.  따라서 라면 공장에서, 상품의 생산시간과 유통시간의 합계는 하루이기 때문에, 유동자본의 회전시간은 하루이지만, 기계와 건물에 투하한 고정자본의 회전시간은 1년(365일)입니다. 정리하면 ‘유동자본(임금, 원료)의 생산시간과 유통시간은 상품의 생산시간과 유통시간과 동일하고’, ‘고정자본(건물, 기계)의 생산시간과 유통시간은 고정자본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기간이 된다. 

 

  고정자본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기간’은 사용해서 닳게 되는 것 외에 녹슬고 썩어 망가지는 것을 고려해야 하며, 더 좋고 값싼 새로운 기계나 건물이 등장하여 기존의 것을 사실상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기계 값이 폭락하는 것까지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를 처음 도입한 자본가는 기계를 조금씩 오랫동안 쓰기보다 개선된 기계가 나오기 전에 최대한 많이 사용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자본가는 거액의 자본이 투하된 기계가 밤에 쉬는 것까지도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손실’이라고 생각하며,  밤낮으로 24시간 일을 시킨 것이다. 

 

상품이 제값에 팔리지 않는 경우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그 상품에 들어 있는 자본가치와 잉여가치는 화폐로 실현되지 않고 자본가는 손해를 본다.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과 소비가 개별 생산자나 개별 소비자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따라서 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기는 쉽지 않다.  생산이 소비보다 적으면 상품 가격이 상승하여 생산이 촉진되고 소비를 억제하며, 생산이 소비를 앞지르면 상품 가격이 저하하여 생산을 억제하고 소비를 촉진한다.  가격 변동이 수요와 공급을 ‘즉각적으로’ 바꾸지 못하면, 상품 가격은 ‘폭등’하거나 ‘폭락’하고 경제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원료 가격이 폭등하면 그 원료를 생산하는 산업부문은 수익성이 나아져 원료를 더 많이 생산한다.  이 원료를 사용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산업부문은 완제품의 가격 상승으로 판매가 감소해 생산 규모가 줄어 노동자들을 해고하게 된다. 반대로 원료 가격이 폭락하면, 원료 생산부문은 가격의 하락이 판매를 촉진해 수입이 증가하는 경우에만 생산 규모를 유지 확대한다. 그러나 생산자들은 대부분 이전 상품 가격에 근거하여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하므로, 가격의 폭등과 폭락이 상품 판매 수입을 감소시킨다면 은행 빚으로 인해 대규모로 도산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경제를 시장에 맡기면 수요 · 공급의 법칙에 따라 문제없이 작동한다”는 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생산의 무정부성(무계획성)이 과잉생산 공황을 일으킨다.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독점자본주의로 발전하고, 이후엔 독점체와 국가가 유착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발달하면서, 생산의 무정부성(무계획성)이 약화하여 새로운 사회로 넘어간다고 주장했다. 엥겔스도 이렇게 주장한 측면이 있고, 스탈린이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지배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계획경제’라고 선언했다. 이런 주장은 사실상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개연’(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과는 큰 차이가 있다. 자개연은 노동자가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됨에 따라 자본가도 인간을 착취하는 비인간적 행동으로부터 해방되므로,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계급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소련련의 급속한 공업화를 통해 자본주의 선진국들의 ‘공격’을 물리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당과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전국적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할당하고 감독하게 되었다. 사실상 자본주의 체제의 임금노동처럼, 고위 관료의 명령에 의해 강제적으로 노동하는 노예노동이 되었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스스로 경제계획을 세우고 사회 현안을 함께 민주주의적으로 해결할 거라는 기대는 사라지고, 개인들은 노동을 싫어하게 되어 자발성, 창의성, 헌신성 등을 발휘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소련 붕괴의 근본 원인이라고 이야기 한다. 

  독점자본주가 생산의 무정부성을 억제한다고 말할 수 없다. 독점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 독점가격에서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고, 기술 혁신이 가열되므로 생산의 무계획성은 유지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들 사이의 이윤 획득 경쟁이 생산이 무정부성을 낳는 주요 원인중 하나이다. 

 

 

자본가들이 공급하는 1년간의 생산물은 누구에게 팔리는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의 무계획성을 잘 알았고 1년동안 생산된 상품들이 어떤 조건에서 다 팔릴수 있는가를 검토했고 이런 조건은 자본주의 사회가 충족시키기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준다. 생산수단은 공장을 가진 자본가가 구매한다. 그리고 생활수단은 먹고살아야 할 자본가와 노동자 둘 다 구매자가 된다

  어떤 자본가가 생산수단인 원료를 2014년 12월 31일에 구매했다면, 이 자본가는 그 다음 해인 2015년에도 생산을 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자본가들이 2015년에는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하면 원료가 팔리지 않는다. 노동자가 생활수단을 살 수 있는 것은 그가 자본가로부터 임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본가가 2015년에도 생산을 계속하기 위해 원료를 사고 노동자를 고용했기 때문에, 노동자가 임금을 받고 생활수단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모든 상품들 즉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이 팔리려면 자본가들이 2015년에도 생산을 계속하겠다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상품들이 팔리지 않아, 경제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실업자가 대규모로 발생하며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은, 자본가들이 내년에도 생산을 계속하겠다는 결정이다. 마르크스가 상품들이 누구에게 팔리는가를 이야기하면서 근본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점은, 왜 한 사회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근본 문제를 대자본가들 몇 명에게 맡기는가?  바로 이것이다. 

 

 

평균이윤율의 형성과 이윤율의 저하-상승 경향

  8장부터는 『자본론』 3권에 해당한다.  3권의 제목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입니다. 1권에서는 ‘자본의 생산과정’을, 2권에서는 ‘자본의 유통과정’을 다루었기 때문에, 3권에서는 자본주의 경제 전체를 다루기 위해 산업자본가들 사이의 경쟁, 상업자본과 상업이윤, 금융적 자본과 신용 · 이자 · 주식, 그리고 토지소유와 지대 따위를 고찰한다. 

이윤율은 얼마를 투자하면 얼마를 이윤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이윤율은 자본가의 투자 의욕을 자극하는 지표가 된다. 그리고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경우에는, 돈을 빌리는 이자율과 돈을 투자해 얻을 이윤율을 비교하는 것은 당연하다.  연간이윤율 r의 공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본의 회전 시간과 이윤율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자본가에겐 유동자본의 회전시간(=생산시간+유통시간)을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공장의 컨베이어벨트를 1시간에서 30분에 한 바퀴 돌리도록 하는 방식이 이윤율을 높이는 것이다. 

 

    연간이윤율의 공식에서 s/v는 지불받지 못한 노동/지불받은 노동이고 ‘잉여가치율’이며 다른 말로 ‘착취율’입니다. 이 착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연장시켜 s를 증가시키는 방법과, 필요노동시간을 감소시켜 잉여노동시간을 증가시키는 방법(v를 감소시키고 s를 증가시켜 잉여가치율을 높임)이 있다.

    표준노동일이 법률로 정해지면, 노동일을 연장하여 잉여가치를 증가시킬 수 없으므로 노동일 중 필요노동시간을 감소시켜 잉여노동시간을 증가시키게 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생산성 향상을 통해 노동자가 소비하는 생활필수품의 가치를 저하시켜 노동자의 임금수준 v를 낮추어야만 합니다. 이것을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산업자본가들 사이의 경쟁과 평균이윤율의 형성

    산업자본가들은 더 높은 이윤율을 얻으려고 경쟁한다. 다른 자본가가 새로운 생산방법으로 자기보다 높은 이윤율을 얻는다면,그것을 모방하여 이윤율을 높이려고 한다. 이런 경쟁 과정에서 모든 자본가들이 동일한 이윤율을 향해 간다. 이 동일한 이윤율이 이론적으로 ‘평균이윤율’이다.  서로 끊임없이 더 높은 이윤율을 얻기 위해 경쟁하기 때문에, 평균이윤율이 형성되더라도 곧 파괴되어 버린다. 따라서 평균이윤율은 모든 자본가들이 끝까지 경쟁하여 얻게 되는 동일한 이윤율이라고 가정한다. 

   평균이윤율이, ‘동일한 산업부문 안’에서 형성되는 과정과, ‘상이한 산업부문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과정은 서로 다르다. ‘이윤율의 저하 경향’은, 기계화가 잉여가치를 창조하지 않는 기계와 원료의 수량을 잉여가치를 창조하는 취업노동자의 수보다 상대적으로 증가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법칙이다. 다른 한편으로 기계화는 노동생산성을 향상시켜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윤율을 상승시키는 ‘경향’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되면, 잉여가치율 s/v가 증가하고, 투자총액(=c+v)은 감소하며, 유동자본의 연간 회전수 t는 증가하기 때문에, “이윤율을 상승시키는 ‘경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리하여 기계화 · 자동화 · 로봇화는, 한편으로는 이윤율의 저하 경향, 다른 한편으로는 이윤율의 상승 경향이라는 상반되는 경향들을 만들어 낸다. 이 상반된 경향을 ‘이론의 차원’에서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이윤율이 현실적으로 저하한다거나 상승한다고 예측하지는 않은 것”이다. 통계를 통해 자본주의의 긴 역사를 바라보면, 이윤율은 대체로 주기적으로 상승과 저하를 반복한 것 같으며, 일정한 상승 경향이나 저하 경향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이윤율의 저하 · 상승 경향과 공황

이윤율 저하와 공황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마르크스는 이윤율뿐 아니라 ‘이윤량’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윤율의 저하 경향과 상승 경향이 서로 작용하여 실제로 이윤율이 저하하더라도, 경제가 큰 혼란에 빠지는 경우는 대체로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이윤율이 저하하여 이윤량이 어떤 수준 이하로 감소하는 경우.

    이윤율은 실제로 저하하더라도 이윤량이 증가하는 경우라면 자본축적은 계속될 수 있다. 더욱 많은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구입하여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잉여가치 또는 이윤이 자본으로 전환하려면, 이윤의 규모가 최소한 기계, 원료와 노동력을 구입할 수 있는 수준 —‘자본의 최소 규모’ — 이상으로 커야만 한다.  어떤 주요한 대기업 A의 이윤율이 저하하여 이윤량이 자본의 최소 규모 이하로 감소한다면, A는 생산 규모를 확대할 수 없고, 이렇게 되면 사회 전체적으로 연쇄작용이 발생한다. 

A에게 생산재와 소비재를 공급하던 기업들은 재고가 생기고, 은행에서 차입한 금액을 갚을 수 없어 도산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A도 이윤율의 저하를 예상하지 않고 미리 생산 규모의 확대를 계획했다면, 은행 차입을 제때에 갚지 못해 도산할 수 있다. 이리하여 경제 전체에서 생산재와 소비재에 대한 유효수요가 부족해지고 채무를 제때에 상환하지 못해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공황이 발생한다.     

  이처럼 자본주의적 공황은 항상 ‘과잉생산’ 현상을 취한다.. 상품들의 과잉생산은, 상품들이 가격을 인하해야 할 정도로 생산되어, 자본가들이 자본의 가치 증식을 도모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 때 발생하는 실업자는 자본가의 가치 증식 욕심에 비해 너무 많은 노동인구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경력이나 스펙이 모자라서 실업자가 된다는 현재의 통념은 잘못된 것이다.

    둘째 이윤율이 저하하는 상황에서 이윤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자본가들이 경쟁하다가 공황이 폭발하는 경우

    이윤율이 저하하면 자본가들은 자본 규모를 증가시켜 이윤량의 증대로 보상하려고 경쟁하게 된다. 자본가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많이 받아 사업을 확장하여 경쟁자의 시장을 빼앗으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은행의 대출금리가 상승하고 노동자의 임금수준이 상승하며 기계와 원료의 가격도 상승하게 되어, 오히려 이윤율이 더욱 낮아진다. 이리하여 이윤율이 이자율보다 훨씬 낮아지고 기업들은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도산함으로써 공황이 발생한다. .

    셋째 자본축적에 따라 기업 규모가 증대하면서 이윤율이 저하하면, 투기가 더욱 활발해지고 투기의 실패가 공황을 일으킨다. 

    기업이 이윤을 얻기 위해 필요한 화폐자본의 규모가 증대하게 되면(대기업의 장악력이 커지면), 소규모 자본은 생산 영역에서 밀려나고 유통 영역에서 투기적 이익을 노리게 딘다.  투기적 거래와 투기적 생산은 은행의 과잉 대출을 낳게 되고, 상품들이 시장을 포화시켜 잘 팔리지 않고 가격이 폭락하면, 투기꾼들은 차입한 자금을 상환할 수 없게 된다.  도산함으로써 공황이 발생한다.  주식과 기타 유가증권에 투기하는 경우에는 주식 가격이 주식회사의 수익성과 너무 큰 차이(이것이 바로 ‘거품’입니다)가 나게 되면 누구라도 주식을 먼저 팔려고 하기 때문에 주식 가격은 폭락하고 주식 소유자는 도산함으로써 공황이 발생하게 된다.  2008년의 세계금융공황의 이유이다. 

 

  역사적 분석과 논리적 분석

   『자본론』  1권에서 3권 3편까지는 주로 산업자본을 다룬다.  3권 4편은 상업자본과 상업이윤,  5편은 이자 낳는 자본(고리대자본)과 이자, 6편은 토지소유와 지대, 7편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분배 이론 비판이다. 

  마르크스가 역사적 순서와는 반대로, 산업자본을 가장 먼저 서술한 이유는 『자본론』 집필 목적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목적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히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사회에서든 생산을 하지 않으면 지배계급이나 피지배계급이 먹고살 수가 없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을 장악한 자본이 바로 산업자본이다. 산업자본이 자본주의 사회의 두 개의 큰 계급 사이의 대립과 투쟁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며,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마르크스는 산업자본이 잉여가치를 어떻게 생산하며 이 잉여가치를 어떻게 자본으로 전환시키는가를 자세히 설명한 뒤에, 기타의 자본 형태들 — 상업자본, 금융적 자본, 토지 재산 — 은 산업자본과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증식하고 있는가를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이라는 『자본론』 3권의 4편부터 6편까지에 걸쳐 서술한다.

  첫째, 상업자본과 상업이윤

   산업자본가는 직판장을 만들고 판매원을 고용하여 생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팔기보다 상인에게 그 생산물을 곧바로 팔아 버리는 것이 오히려 이익이다.  따라서 산업과 상업 사이에 사회적 분업이 생기며,  이 사회적 분업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상인의 상업이윤은 결국 산업자본가가 공장 노동자를 착취하여 얻은 ‘잉여가치’의 일부이다. 

  둘째, 금융적 자본 financial capital

  금융적 자본은 『자본론』이 쓰여질 당시에는 대부자본을 자본가들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얻는 자본이 주된 고찰 대상이었다. 현재에는 금융거래가 매우 다양하게 발달하여, 온갖 금융 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예금 · 대출 업무 이외에도 주식 · 국채 · 회사채 · 기타 유가증권의 발행과 매매를 통해 투기 이득을 얻는 자본들을 모두 ‘금융적 자본’이다. 

  금융적 자본의 순환은 M—M′의 형태를 취하는데, 100원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300원이 되는것 입니다. 100원을 빌려주고 3개월 뒤에 300원을 받는다든가, 100원을 주식에 투자하고 6개월 뒤에 그것을 팔아 300원을 얻는다는 이야기이다. 이 자본의 증식에, 금융적 자본가가 실제로 행한 ‘생산적 노동’은 전혀 없다.  금융적 자본가는 불로소득자, 투기꾼 등으로 비난받고 있다. 그러나 금융업도 산업 및 상업과 함께 사회적 분업을 구성하여 사회적 평균이윤을 얻고 있다. 

  셋째, 토지 재산 또는 토지소유

토지 소유자는 자본가에게 토지를 빌려주고 토지의 사용료로 지대를 받는다. 

 

 금융적 자본과 이자 · 배당 · 투기 이득

    예금은행, 투자은행, 지방은행, 증권회사, 저축은행, 보험회사, 부동산 회사 등이 금융적 자본을 대표하는 기구들입니다. 예금은행은 금전출납을 도맡아 사회적 비용을 절약하고, 예금 · 대부 업무는 유휴화폐자본을 활동적인 화폐자본으로 전환시켜 잉여가치의 생산을 촉진한다. 

   투자은행과 증권회사는 예금은행이나 여유자금 소유자로부터 자금을 빌려 주식과 채권(국채와 회사채) 등 유가증권의 매매를 통해 수익을 올린다. 투자은행과 증권회사는 자금을 그 발행 회사에 모아 주기 때문에 산업자본에 의한 잉여가치 생산에 ‘간접적으로’ 기여한다. 그러나 이미 발행된 유가증권을 사고파는 시장인 ‘유통시장’은 산업자본의 자본 규모를 조금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유가증권의 유통시장에서는 투기를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는 제로섬  게임이 펼쳐진다.  특히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주식 회전 속도는 세계에서 1등이다.  주식에서 중요한 고급 정보와 자금력은 일부 엘리트에게 집중되어 있는데 이렇게 주식시장이 발달했다면 빈부격차가 격심해 질 수 밖에 없다. 

  주식회사는 재벌과 독점자본의 토대를 이룬다. 인수나 합병으로 새로운 주식회사로 만들려는 창업자들은 새로운 회사의 주식을 합병되는 회사의 주주들에게 이전 회사의 주식과 교환해 쉽게 기업들을 합병하고, 창업자들은 이 합병을 통해 거대한 창업자 이득(=새 회사 주식의 시장가격 - 새 회사 주식의 발행가격)을 얻는다. .이러한 인수 합병의 대부분은 기업의 합리화와 체질 개선보다 창업자 이득을 노리는 투기이다.     

  주식 소유를 통해 다수의 주식회사를 지배하는 회사를 지주회사라고 부른다. 주식 소유가 수많은 주주들에게 분산됨에 따라, 10% 정도의 주식을 소유하더라도 지배적인 대주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대자본가는 자기의 투하자본 규모를 훨씬 초과하는 사회의 자본을 마치 자기의 것처럼 지배할 수 있다. 한국의 재벌 총수는, 자기가 직접 소유한 주식은 2% 정도이지만 계열사들의 주식 소유 비율이 40% 정도이므로, 각 재벌 기업들을 마치 자기의 것처럼 지배한다. 재벌은 제2금융권(보험회사, 증권회사 등)을 지배하므로, 산업의 독점자본과 은행업의 독점자본이 결합한 ‘최고 형태의 독점자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재벌은 제1금융권인 은행까지도 소유하여 산업과 금융의 분리(이른바 금산분리)를 무너뜨리려하고 있다.

 

지대 : 토지 사용료의 자본주의적 형태

 토지소유자들이 얻는 소득이 지대이다. 자본주의적 농업은 ‘토지소유자’(지주), ‘농업자본가’(토지를 빌리는 농업가), 그리고 ‘농업노동자’로 구성된다 농업자본가가 토지소유자로부터 땅을 빌리고, 기계와 원료를 사고 농업노동자를 고용하여 농사를 짓는다.  농산물을 팔아 얻는 이윤의 일부를 토지소유자에게, 지대로 준다. 

   주류경제학, 부르주아 경제학, 속류경제학에서는 생산수단이 이윤 또는 이자를 낳고, 노동이 임금을 낳으며, 토지가 지대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마르크스는 삼위일체 공식이라고 이름 붙였다.  마르크스는 주류경제학의 이 삼위일체 공식을 비판한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에 따르면, 산업자본가의 지휘 · 감독을 받는 임금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새로운 가치 중 일부가 임금이라는 형태로 노동자에게 분배되고 나머지는 잉여가치로 산업자본가의 주머니에 먼저 들어간다.  이 잉여가치가 대 자본가에게는 이자로, 토지소유자에게는 지대로, 국가에는 세금으로 분배된다.  마지막으로 남는 잉여가치가 산업자본가의 기업이윤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지배계급과 국가의 수입 원천은 기본적으로 임금노동자계급이 창조한 잉여가치이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지배계급과 국가가 한마음 한뜻으로 노동자계급을 더욱 착취하려고 탄압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속류경제학의 삼위일체 공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농업에서 토지가 지대를 낳는 근거는 두 가지 이다. 첫째로 비옥도와 위치 등이 가장 열등한 토지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농산물의 시장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토지를 독점하여 토지의 사용을 제한하는 토지소유자 계급이 있기 때문이다. 

 

토지 가격과 농업의 자본주의화

    토지는 노동생산물이 아니므로 가치를 가질 수 없지만 지대를 얻는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장래에 얻을 모든 지대를 현재의 값으로 환산한 크기의 ‘기준가격’을 가진다.  토지의 기준가격은 지대에 정비례하고 이자율에 반비례하여 변동한다. 토지의 기준가격도 주식의 기준가격과 마찬가지로 불확정적이며 상상적이다.  장래에 얻을 지대는, 토지의 위치가 도로 · 항만 · 거주지 · 상가의 개발 등으로 크게 개선될 전망이 있으면 크게 증가할 것이므로, 토지의 기준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또한 토지의 ‘시장가격’은, 토지에 대한 수요가 산업입지 · 거주지 · 도로 · 공항 · 기차역 · 위락시설 · 환경보호 등의 이유로 계속 증가할 것이므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아파트 소유나 토지소유에 의거한 임대료 수입은 전형적인 ‘불로소득’이므로, 불로소득을 사회로 환원하는 조치(예: 보유세, 개발이익 환수)를 강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자본가(재벌) 대부분이 거대한 토지소유자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농업의 자본주의화는 공업의 자본주의화(기계화를 포함)와 마찬가지로 임금노동자를 착취하고 임금노동자를 실업자로 만들며, 토지의 생산력을 약탈하고,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동시에 파괴”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농업에서도 공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생산과정의 자본주의적 전환은 동시에 생산자들을 희생시키는 역사이고, 노동수단은 노동자를 예속하고 착취하며 가난하게 만드는 수단이 된다. … …농촌 노동자들이 넓은 지역으로 분산되어 있는 것은 그들의 반항력을 약화시키는데, 도시 노동자들의 집중은 그들의 반항력을 강화한다. 근대적 도시공업에서와 같이, 근대적 농업에서도 노동생산성의 향상과 노동 공급량의 증가는 노동력 자체의 낭비와 파괴[노동자를 해고하여 산업예비군으로 만드는 것]에 의해 얻어진다. 더욱이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를 약탈하는 방법들의 진보일 뿐 아니라 토지를 약탈하는 방법들의 진보이며, 짧은 기간에 토지의 생산력을 높이는 모든 진보는 생산력의 항구적 원천을 파괴하는 진보이다. 예컨대 미국처럼 한 나라가 대공업을 토대로 발전하면 할수록, 이런 토지의 파괴 과정은 그만큼 더 급속하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동시에 파괴한 뒤에야 비로소 각종 생산과정들을 사회 전체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게 된다[모든 부의 원천을 파괴하면, 그 사회의 주민 전체가 사회혁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 『자본론』 I(하): 678~680

 

  마르크스는 모든 사람들이 지구의 이용자일 뿐이므로 지구를 개량하여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을 권고 한다. 

   

새로운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에 대한 개개인의 사적 소유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사적 소유(노예제도)와 마찬가지로 불합리한 것이다. 게다가 사회 전체, 한 국민, 동시에 존재하는 사회들 전체도 지구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들은 다만 지구의 점유자 · 이용자일 따름이며, 선량한 가장으로서 지구를 개량하여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 『자본론』 III(하): 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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