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티(근대성)을 생각하다  20세기 초  경성의 모던 보이 ‘이상'을 떠올렸다. 이상은 시골은 권태이며, 근대화된 도시는 백화점과 화려한 상품들, 현란한 광고, 카페 등 강렬한 자극으로 가득차 있다고 표현하였다. 모던한 생활은 많은 순간성과 변화가 펼쳐진 환경을 의미 했다. 근대화된 도시의 원형은 서양의 자본주의적 대도시에서 출발했다. 대표적인 도시가  프랑스  파리였다. 데이비드 하비의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는 19세기 파리에서 행해졌던 자본주의적 도시 개조 작업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분석 하였다. 국내에  2005년  2월에 출간 되었다가 절판  되었다.  올해  ‘글 항리아리’에서  다시 출판 하였다.  번역자는 김병화로 동일한데  일부 번역어가  변경 되었다.  목차에서  변경된 용어를 확인할 수 있다. 1부  2장 의 '신체 정치(body politics)’가  ‘정치체'로 변경 되었다.  정치의 의미보다는 유기체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변경한 것 같다.  2부  '물질화(materialisations)’가  '형체를 갖다’ 로 변경 되었다.  도시의 자본주의적 물신화 과정과 연계한  물질화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저자  데이비드 하비는 1935년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에서 지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옥스퍼드대 존스홉킨스대 등을 거쳐  뉴욕시립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40여년간 마르크스의 '자본'을 강연하였다. 역사지리학 분야의 개척자로서 자본주의가 갖는 모순이 역사지리적 전환을 겪으면서 어떻게 재편 되는가를 추적하였다. 그의 가장 큰 관심분야는 자본주의와 도시의 관계다.  벤야민 이후 가장 강력하게 도시와 마르크스 주의를 결합시키고자 했던 사상가다. 대부분의 책이 국내에 번역 되어 있다. 1990년대에  번역된 ‘도시의 정치 경제학’,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등은 절판 되었다. ‘도시의 정치 경제학’은 1985년 출간된 '자본의 도시화'와 ‘의식과 도시경험’에서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 도시화에서 하비의 도시 및 공간에 대한 사회 이론을 살펴보는데 도움이 된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서 하비의 이론을 파리라는 곳에서 구체적으로 확인 할 수 있다.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은  자본주의 물신숭배와 그 의식의 조건으로서 시간,  공간, 도시 경험을 들을 분석 하였다. 모더니티 개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삶을 만들어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를 통해 읽을 수 있다. 우리가 19세기로  돌아가 파리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벤야민은 신화적 사유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상화 된 신화적 사유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올바른 인식을 가로막는다고 한다. 자본주의 도시화가 가져다준 진보와 행복이란 관념이 신화적 사유에 불과하다고 한다. 여성과 노동자의 삶은 더 나아 졌다고 하지만 실제로 나아진것은 미비하다. 억압의 양상과 방식이 변화 되었다고 한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과 대립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고 한다.  20세기를 살았던 벤야민이 19세기 파리를 연구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벤야민은 데이비드 하비 이전 “아케이드 프로젝트”로 파리를 연구한 철학자이다. 벤야민과 하비의 분석의 차이점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벤야민은 파리라는 도시의  물질적 생활과 문화 활동, 사고 유형에 관한 수많은 관점을 살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종의 전체적인 감각을 전달하는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는 온갖 종류의 2차 자료에서 얻은 수많은 정보를 집결시켰다. 그런 정보의 조각과 단편들을 이용하여 파리가 어떻게 작동했으며,  어떻게 해서 근대 탄생을 위한 중심 장소가 되었는지 보여주었다. 거대한 만화경의 일부인 것 처럼 열거해나가는 방식이었다. 전체성에 대한 이 단편적인 접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드러나 있다. 하비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19세기 파리에서 자본과 근대성이 어떻게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만났는지를 설명하였다. 이 만남에서 사회적 관계와 정치적 상상력이 어떻게 활기를 얻었는지를 재구성 했다. 역사적/지리학적 탐구에 기반한 정치경제학적 틀로 분석하였다. 이와 더불어  하비는 파리라는 도시의 구체적 상황들을 설명하고 분석하기 위해  보들레르, 플로베르, 발자크, 도미에를 호출한다. 그들의 작품에 들어 나 있는 생생한 묘사와 삽화는 그 시대의 모습을 독자가 받아 들이기 쉽게 한다. 하비의 인문학적 상상력이 발휘되는 지점이다. 우리는 하비의 도움으로  생생하게 복원된 파리 모습을 그려 볼 수 있고 그 안에 내재 되었던 이면을 통찰 할 수 있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는 1830년 부터 1871년 파리 코뮌 까지 이르는  기간 동안의  근대적 도시화 과정을 설명 하였다.  이간동안 파리는 1848년 6월 혁명과  1851년 제2제정의 시기를 거친다.  1848년 혁명은 노동자들과 부르주아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 하였다.  공화주의와 사회주의자들은 군주제와 상대하여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였으나 좌절되었다. 이후 1871년 파리 코뮌에서도 사회주의 공화국을 꿈꾸었지만  처절히 살해되는 비극을 겪게 되었다.  책의 구성도 서문 이후는 1848년을 기점으로 나뉜다. 1848년 혁명이 경제, 정치,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부는  1830년 ~ 1848년대의 묘사이다.  2부  형체를 갖다는  1848년부터 1871년 파리 코뮌까지를 다룬다.  이책의 주요 내용이다. 전체 18장중 15장을 할애 하였다.  제2제정 대부분 기간 동안 파리지사 오스만이  시행 했던  도시 개편 작업과  영향에 대해 상세하게 분석해 놓았다. 그 결과로 인해 발생한 1871년의 파리 코뮌을 상세하게 설명 하였다. 19세기 파리의  일상생활을  볼 수 있으며 그것이 갖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3부 코다는 샤크레콰르 바실리카의 건설을 다룬다. 바실리카 건설에 관련된 일화들을 통해  파리 코뮌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도시 개편 작업으로  변형된 도시공간에서의 계급 투쟁을 살펴 볼 수 있다. 

 

서문에서는 근대성을 다룬다. 익숙한 용어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머뭇거리게 된다.  근대성은  일반적으로  근대적 형태의 합리성을 뜻한다.  신비적인 것에서 벗어난 과학적인 것을 의미한다.  계산과 예측  그리고 그에 따르는 통제의 가능성이다. 이러한 것들이 근대적 삶의 합리성을 가능하게 했다고 한다.  생활에서  계산 가능성은 삶의 모든 것을 양적인 형태인 화폐로 표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화폐가 모든 가치 있는 것을 대신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상품화 되는 것이다.  관계는 물신화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서  이러한  자본이 만든 도시의 원류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현대라고 불리는 우리 시대에 지속되고 있다. 

 

하비는 근대성의 신화가운데 하나가  과거와의 근본적인 단절이라는 개념이라고 한다.  근본적인 단절이 발생하지도 않았고 발생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회질서도 기존 여건속에 이미 잠복해 있지 않던 변화를 만들어 낼수 없다는 입장이다.  근본적 단절의 가능성을  명백히 부정한다. 그와 동시에 혁명적 변화의 중요성을 주장 하였다. 이는 창조작 파괴와 만난다. 자본주의가 새로운 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생태계 조성차원에서 경제질서를 파괴, 재편 해야 하는 것이다.  달걀을 깨뜨리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다는 속담을 인용한다. 새로운 사회형태를 만들려면 어떤 방법으로든 옛것을 능가하거나 그것을 폐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근대성이 하나의 개념으로서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이 창조적 파괴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신호해주기 때문이다 라고 하비는 말한다. 

 

오스만은 제 2제정 시기의 도시 개편작업을 근본적인 단절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자신과 나폴레옹을 포장하기 위한 목적이며, 새로운 정권에 필수적인 건국 신화와 전제주의 정당성 확보에 기여 하였다고 한다. 하비는 이러한 단절 신화에 대해  발자크의 소설과 단편 분석을 통해 신화 임을 드러낸다. 그 당시 인간 전형과 공간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만보객이라는 인물형을 이용하여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것이다. 현미경에 나타난 모습은 자본주의 물신적 모습이었다. 철저한 단절 이라기 보다 기저에 흐르는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비는 1848년 이후에 달성된 급격한 변형이 그 이전 시기에서 어느 정도로, 어떤 방식으로 미리 예시되어 있었는가를 분석한다. 1830년대와 1840년대에 고작 ‘배아' 상태에 상태에 있던 사회적 관계들을 예고 했다. 발자크의 작품에서 파리의 장래 모습까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비는 또한 1860년대 보들레르가 정의한 근대성을 인용한다. 예술가의 목표는 “영원하고 확고 부동한 것”을 다루는 예술의 다른 절반과 관련하여 근대를 상대적으로 “일시적으로 덧없고 우연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어야 한다 (32쪽). 보들레르는 근대성이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측면과 영원 불변의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연속성의 측면이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도  어떠한 사회질서도 새로운 것의 특징들이 기존 상태에 이미 현존하지 않고서는 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 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하비는 근대성 개념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다만 하비는 오스만의  등장이  도시를 강제로 근대성으로 몰아 넣어다고 표현한다. 이책 부제가  '자본이 만든 메트로폴리스’이다. 자본이 만들어낸 대도시가 하비의 근대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추정하였다.   

 

하비는 근대성 개념에 대한 이야기에서 공간 분석으로 시야를 돌린다. 역사지리학자의 면모를 드러낸다.  발자크의 소설에 구체적으로 나타난  공간적 유형을 분석한다. 사회관계가 공간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공간 유형은 도덕적 질서의 반영이다라고 한다. 상류계급과 귀족은 자기들만의 중심을 가지고 있고, 평민들도 언제나 자기만의 특별한 구역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어떤 위치에 있음”이라는 사실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공간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인 것이다. 발자크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도시의 길거리와 이웃들의  ‘심리지리학’ 이다. 그의 인물들은 심지어 한 구역에서 다른 구역으로 이사하면 성격이 바뀌기까지 한다. 공간이 만들어 내는 영향이다. 자본주의의 지리적 팽창과 자본 순환의 가속화 경향이 갖는 혁명적 성질을 의미한다. 그것은 주기적으로 시공간 압축을 벌이려는 자본주의의 경향을 가리킨다. 오스만의 새로운 교통, 통신 체계에 대한 투자는 공간적 장벽을 감소시키고 자본 순환을 위한 지리적 경계를 축소시켰다.   

 

하비는 공간에 이어 기억을 이야기 한다. 발자크 작품에 나타난 역사적 상황 설명으로 기억이다.  발자크는 '희망은 욕구하는 기억이다’ 라고 한다. 기억과 욕구의 이러한 결합은 근대성의 신화가 어떻게 그 처럼 강력한 힘으로 유통되는 지 밝히는데 기여한다. 기억이란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유일한 기능이다. 그것은 수동적이고 관조적이라기 보다 활동적이고 원기가 넘치며 자발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것은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을 지금 여기서의 활동을 통해 통합할 수 있게 해주며, 기억은 과거의 엄청난 잠재력을 전부 현재로 끌어 온다.

 

공간과 기억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도시를 기억할 만한 것으로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집합적 기억을 위한 특별한 장소를 상상속에 구축한다. 이것은 혁명의 순간이 오면 '번뜩이는' 어던 정치적 감수성의 근거가 된다. 이것이 바로 작동중인 도시를 근거로 한 혁명적 변형으로서의 근대성의 신화라고 한다. 기억이 1830년에 '번뜩여' 혁명적 감수성을 이어 붙이는 데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고, 1848년 혁명과  1871년 코뮌에서 마찬가지 였다고 한다.  희망이 기억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욕망에 연결된 기억이 희망을 발생시킨다고 한다. 

하비는 이어 정치체를 이야기한다.  정치체는 자연적 신체의 은유를 사용하여 정치적 주체를 그와 같은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 하는 개념이다. 1840년대의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여성운동가, 개혁가들은 도시를 미래의 좋은 사회가 되어야 할 어떤 것의 기반이 되는 하나의 정치적, 사회적, 물질적 유기체 형태로 보고 관심을 가졌다. 하나의 신체적 정체인 것이다. 1840년대 사회를 거꾸로된 세계로 규정하고,  노동자와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사회주의적 대안이 고려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유토피아적 전망을 가졌다.  우리는 하비를 통해 다양한 사상가를 만난다. 

 

 블랑키 혁명을 준비한 사람들은 국가 권력을 떠맡고 대중을 교육시키고 자치 정부를 운영할 능력을 고취시키기 위해 프롤레타리아의 이름으로 독재 권력 구축을 이야기 했다. 생시몽 주의는 노동권과 조직 조직 결성으로 노동자 농민의 빈곤과 불안을 해소하려 했다. 푸리에는 생산과 소비는 ‘팔랑스테르’라 불리는 공동체 조직을 언급한다.다양한 노동과 사회적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여 욕구와 필요와 욕망의 충족 및 행복감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프루동의 상호부조주의, 르루의 공동체 주의, 푸리에의 열정적 매력과 해방의 이론, 카베의 공동체/공산주의 해석, 뷔셰의 생산자조합이론을 만날수 있다. 급속도로 바뀌는 도시 생활과 이러한 수많은 유토피아적 계획 사이에는 괴리가 있었다. 하지만 콩시데랑과 페레몽은 실용적이고 납득할만한 것이었다고 하비는 이야기 한다. . 1848년 6월 혁명에서 대로에서 실제로 근복적으로 상이한 개념이 충돌했다고 한다. 철저한 부르주아적 개념과 사회공화국의 이상에 기반을 둔 개념 이었다. 부르주아적 개념은 사유자산의 강고한 기반에 근거하여,  언론과 시장에서 행동의 자유를 추구하고 화폐권력에 수반되는 종류와 자유와 평등이 었다. 사회공화국 개념은 인구 전체를 양육할 수 있고 국민 대다수가 겪고 있는 빈곤과 몰락의 여건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제 2제정은 이와 다른 근대성을 추구 했다고 한다,  사유 재산의 존중, 민중주의적 기반을 배양하려는 주기적인 시도로 인해 정지되곤하는 시장에 대한 떨떠름한 존중이 권위주의와 뒤섞이게 되었다고 표현하였다.  발자크를 포함한 당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도시를 소유하고 자기것으로 만들며, 그것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사회절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자신은 개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고 한다. 1848년 이후 그 도시를 소유하고 그것을 자기만의 특별한 이익과 목적에 맞추어 개조한 것은 오스만과 개발업자, 투기꾼, 자금주, 시장의 힘이었다. 이는 대중에게는 상실감과 허탈감만 남겼다. 도시는 아무리 아릅답게 건설되고, 고상하게 꾸며졌다고 해도 그 위에 진행되는 인간 행동의 배경 구실을 할 뿐이었다고 한다. 도시는 죽은 대상이 되었다. 그  도시는 "감정을 가진 존재"나 “정치체”로서의 성격은 완전히 잃어 버렸다고 한다.

 

오스만의 파리 제편 과정을 다루는 제2부 형체를 갖다는 1848년 혁명부터 1870년대를 이야기 한다. 1848년은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한 단계에 올라섰을 시기 였다.  당시에 무모한 투자, 과잉생산과 관계가 있었다. 자본주의적 과잉 축적의 문제로 대규모 과잉 사태를 빚은 것이다. 자본과 노동력이 나란히 존재하는데도 그것들을 재통합하여 이윤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상태 였으며 제대된 위기 였다. 제 2제정 18년은 오스만의 작업이 도시의 물리적 바탕을 절개하고 개조하는 하였다.  도시 개조사업의 가치가 입증 되었고  파리는 그 뒤 30년이 지난 뒤에도 대체로 오스만이 규정한 노선에 따라 개발되었다고 한다. 하비는 개발 과정을 서로 맞물리고 교차하는 일련의 주제들에 기대어 제2제정기에 일어난 파리의 역사지리적 변형을 설명 하였다. 공간관계의 조직, 화폐/신용/금융, 임대료와 부동산 이권, 국가를  거쳐 추상적 구체적 노동 등을 구분하여 설명 하였다. 도시에 대한 역사지리학으로서 공간을 움직여 나가는 의식의 형성에 설명하고 도시 변형의 지정학으로 마무리를 한다.  

 

1848년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본과 노동력의 잉여는 건조환경에 대한 대규모 장기 투자로 흡수 되었다. 이는 수송과 교통 등 공간 관계의 개선 사업을 통해 자본이 순환을 개선 한 것이다. 새로 건설된 철도역 사이를 이어주는 흐름, 도심과 주변부 간의 흐름을 개선하였다. 도시구역내에서 상품과 인간의 유통 능력을 개선 시킨 것이었다. 자본의 순환 시간을 단축시킨것이다. 

 

이는 소매업의 혁명을 가져 왔다. 1840년에 처음 개설된 대규모 백화점의 성장하였고 이로 인한 상인과 제조업자간의 권력관계가 이동 되었다. 이는 부분적으로 새로운 공간관계가 낳은 산물이었다.  현지 생산물에 한정되고 안정적인 보급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공급선에 의존하는 관계에서 벗어나 지방과 외국으로 공급선을 확대한다. 관광객들이 몰려와 유효 수요를 더해 주었으며, 근교에서 쇼핑객들이 밀려 들었다.  파리 노동시장 또한 더욱 커지는 노동력 수요를 채우기 위해 더 먼지역까지 범위를 확대 하였다. 이러한  외부적 공간관계의 변형은 다시 파리 자체의 내부 공간을 합리화하려는 추진력에 강한 압력을 가했다. 오스만이 기여하여 만들어낸 것은 그 속에서 자본의 순환이 제국주의적 권력이 되어버린 도시 였다. 하비는 제 2제정은 시공간적 압축으로 인해 격렬한 발작을 겪었다고 표현한다.  이 현상이 낳은 모순적인 결과는 어디서나 눈에 뛰었다. 새로운 운송에 대한 투자의 방향은 행정과 재정, 경제, 인구가 파리에 집중되는 경향을 더욱 강화 했다. 도시 규모에 창조적 파괴를 수행 것이었다.  

 

신용체계의 혁신은 장기간의 투자를 가능하게 하고 근본적으로 다른 회전 시간을 갖고 있는 서로 다른 생산 체계와 가능한 병립할 수 있도록 하여 시간적 제약을 완화 시켰다.  제2제정 금융시스템은 공공사업의 투자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설립된 크레디 모빌리에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신용시스템은 자본의 연합을 통해 합리화되고 확장되고 민주화 되었지만 대개 무절제한 투기와 중앙집중화되고 위계적으로 조직된 시스템속으로 모든 저축을 빨아 들였다.  

 

파리의 부동산은 파리 재편이 진행됨에 따라 순수한 재정적 자산으로 자본,  일반적인 유통과정에 통합된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전적으로 지배하는 의제 자본 형태로 평가 되었다. 오스만의 계획에 따라 건설된 대로변과 그 뒷길 사이의 토지 가격의 격 차와 그로 인한 임대료 수준의 격차, 중심부에서 변두리로 갈수록 점층 적으로 낮아지는 임대료로 인해 파리의 여러 지역은 서로 다른 직업적, 계급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자본이 만드는 도시는 노동의 변화도 가져 온다. 점점 더 복잡하고 세부적으로 전문화된 노동 분업을 통하여  수많은 소기업 들이 보다 큰 조직 형태의 하도급 단위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다.  새로운 신용시스템의 등장으로  대규모 생산업과 서비스업의 창출을 용이하게 해주었으며  이로 인해 소생산자와 장인들의 입지는 더욱 축소 되었다. 거대한 생산 중심지에서 축적된 자본이 아무 제재도 받지 안았다. 일종의 합법적인 억압기구가 되어 노동을 통제하고 작업을 분배하고 좀더 전문화된 일자리를 만들어 내었다. 노동자들은 이들이 만들어 낸 명백하고 파괴적인 악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저항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노동계급에서 소득이 생계비 증가율을 앞질러 증가하는 소수의 특권노동가 집단과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는 불행한 범주에 속하는 대다수 노동자로 양극화 하는 현상이 일어 났다. 우리의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닮았다. 기술 없는 대규모 이주 산업  노동자는 도시 근교에 생활 하였으며, 코뮌이 일어 났을때  낮은 참여도를 보이며 뚜렷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하비는 이어 여성의 여건을 이야기한다.  여성은 또하나의 잉여 노동자로서 남성 노동자와 비교하여 대우는 매우 낮았다. 임금으로 임대료와 의류비 등을 제외하면 빵과 우유를 조금 살수 있었다. 여성 노동자로 삶은 암울 하였다. 이 당시 대부분의 매춘은 순전히 배고픔과 절망적 상황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프롤레타리아의 중의 프폴레타리아라고 표현된 노동계급 여성의 지위라는 것이 성별과 계급간의 긴장,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사이의 긴장이 당시에 상대적으로 약화 되었음을 의미한다는 점도 대체적으로 인정되었다고 한다.파리 코뮌에서 여성 조합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하비는 오스만이 시장이 된 이유중의 하나가 스펙터클을 성공적으로 연출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제2제정을 통해 오스만은 기회가 있을때마나 스펙터클을 연출한다. 이러한 스펙터클속에 개인은 관중으로서의 삶을 시청할 수 밖에 없는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개인은  도시라는 공적 공간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도시는 나와 상관없이 무심하게 저기 저렇게 거대하고 화려한 공간으로 놓여 있을 뿐이다. 구경꾼이 탄생이었다. 그들은 근대성이 만드는 스펙터클의 일부 즉  파리를 이루는 수천명의 뿌리 뽑힌 삶을 상징으로 본다. 공적 공간에서의 자아의 현시가 표상의 대체물이 되었으며, 자아의 현시는 점점 더 상품화와 스펙테클의 문제로 환원되었다. 제2제정이 시작이 되면서 제국이 제공하는 스펙터클이 어마어마하게 강조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품이 제공하는 스펙터클이 우세해 졌다. 개인이 스펙터클의 운반자가 되는 것이다. 보여주기 위한 스펙터클의 소비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본은 파리의 전경을 불가 항력적인 방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비는  경제와 사회 조직, 정치, 문화 영역에서 변형을 복합적인 방식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파리지앵은 모두 동일한 도시 공간 속에 들어 있었고, 이따금씩 대로나 바리케이드에서 서로 마주치기도 했고, 모두들 각각의 방식으로 그들 나름의 역사적이고 지리적인 존재의 사회적 여건을 형성하고 통제하려고 분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비는 사크레쾨르 바실리카  건설에 관련된 일화들을 통해  파리 코뮌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도시 개편 작업으로  변형된 도시공간에서의 계급 투쟁을 살펴 볼 수 있다.  몽마르트 언덕 꼭대기의 위차한 사크레쾨르 바실리카는 성스러운 장엄함의 이미지, 영원한 기억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하비는 무엇의 기억인가를  묻는다. 시크레쾨르는 성심의 의미다.  한 백인 대장이 십자가에서 고통 받는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을때 드러난 그 심장이 성심이다. 환상을 본 마르그리트마리는 성심 숭배로 변모 시켰다. 1870년 프러시아와 프랑스의 전쟁 기간중에 신께서 파리를 구원을  구해주신다면 성심에 봉헌된 성소를 만들겠다고 맹세하면서 사크레쾨르 바실리카가 건설이 이야기 되었다. 바실리카가 건설된 그 곳은 1871년 파리 코뮌시 정부군과 코뮌가담자가 희생된 장소였다.  군중에게 발포 명령을 내렸던  프랑스  르콩드 장군과 1848년 6월 혁명기간에 잔혹한 학살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토마 장군이 군중들에 의해 총살되었다. 32살의 코뮌의 지도자 였던  발랭이 총살되었다. 파리 코뮌은 가장 잔혹한 피의 폭풍이었다. 사크레쾨르 바실리카는 그 위엄과 경관으로 무덤 같은 침묵으로 그 비밀을 숨기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사를 알고 있는 자만이 진정으로 매장된 신비를 드러나게 할 수 있다며 마무리를 한다. 

 

이책은 번역자가 이야기 처럼 19세기 파리를 문화, 정치, 역사, 문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폭넓게 다루고 있다. 이책을 통해 생생하게 복원된 19세기 파리를 만나게 된다.  자본의 도시화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마르크스 자본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 갖추어져 있고 핵심 개념어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이 책에 발견 할 수 있는 자본의 도시 이해는 더 확대 될 수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 도시 이면에 감춰져 있는 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권장한다. 이책은 벤야민의 방대한 책 ‘아케이드 프로젝트’로 나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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