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정의에 따르면 “실체란 그 자체 이외에 다른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실체는 다른 존재를 끌어 들여 이해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이해가 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신, 정신, 물체의 세 가지를 실체로 보았다. 정신은 사유의 속성을 가진 실체이고, 신체와 물체는 연장의 속성을 가진 보았다. 그런데 그는 신=창조자의 관념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정신, 신체, 물체의 실체적 속성을 부인하는 모순을 빚었다. 피조물인 정신, 신체, 물체는 서로 연관될 수밖에 없으므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인식의 주체인 정신과 인식의 대상인 물체를 동등한 실체로 파악한 탓에 데카르트는 양자의 올바른 관계를 설명하지 못하고 결국 이원론의 수렁에 빠져들고 말았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가 정의한 실체의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데카르트는 실체가 아닌 것을 실체로 규정했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졌고 그 ‘실체’들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스피노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체와 양태의 개념을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데카르트가 실체라고 간주한 정신, 신체, 물체는 실상 실체가 아니라 모두 양태에 불과하다. 양태란 실체의 변용이다. 우리는 실체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의 속성을 인식한다. 다시 말해 속성이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실체의 측면이며, 양태와 마찬가지로 속성도 하나의 실체에서 여럿이 나올 수 있다. 이렇듯 양태와 속성은 다수로 존재하지만 스피노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실체는 오직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만약 같은 속성을 가진 두 개 이상의 실체가 존재한다면 그것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제약을 가할 것이기 때문에 실체라는 개념에 위배된다. 스피노자는 유일하게 존재하는 실체가 바로 신이라고 말한다. 세계속에서 유일하게 무한하고 자족적인 방식으로 존재한다. 개별자는 실체가 아니라 양태일 뿐이다. 세계속에 많은 등가적 실체들이 빼곡히 존재한다면 운동과 변화가 불가능해진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가 겪었던 자가당착-운동은 불가능하다-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실체를 최소화시키고 실체 대신 양태의 개념을 도입해 운동과 변화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실체적 사고를 버리고 관계적 사고로 이행하려는 시도다. “세상 만물의 근본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삶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 세상 만물의 보편자는 실재하는가” 모두 실체 혹은 실체적 진리를 찾고자 하는 시도 였다.
실체의 측면에서 자연은 처음도 끝도 없이 그저 무한하게 존재할 따름이지만 양태의 측면에서는 전혀 다른 약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에는 온갖 변화와 운동이 가득하다. “무한한 종류의 사물들이 무한한 모습을 띠고 생겨난다” 실체로서 자연은 필연성 이외에 우연성을 전혀 허용하지 않지만, 양태로서 자연은 숱한 사물들이 다양한 규칙과 법칙을 따라 인과적인 연속성과 우연적 상호 의존성을 무수하게 맺어가는 관계를 보여 준다. 이런 자연의 이중적인 존재 방식을 스피노자는 ‘생산하는 자연’과 ‘생산된 자연’ 즉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으로 구분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전자가 후자를 규정하고 대상화하는 관계라고 본 데카르트와 달리 스피노자의 자연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포함한다. 스피노자에게서 신은 곧 자연이므로 인간은 신의 일부이기도 하다. 모든 유한자는 유일한 무한자인 신=자연 안에 잠재하는 가능성이 발현된 결과로 생겨난 존재들이다. 하나의 실체는 여러가지 양태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사유와 연장은 같은 실체를 말하는 두 가지 양태일 뿐이다. 사유는 정신적인 속성이고 연장은 물체적인 속성이다. 이 속성이 같은 실체에 내재한다고 보는 것은 곧 외부의 사물과 내부의 관념 간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실체를 사유의 관점에서 인식할 수도 있고 연장의 관점에서 인식할 수도 있다.
(혼자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지식: 철학, 남경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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