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란 무엇인가

들뢰즈에게 있어서 사유란 굉장히 폭풍 같은 것이고 전쟁 같은 것이다. 그런 감정의 상태를 유발하는 게 사유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유를  논리적이고 분석이고 체계화시키고 합리적으로 설명해 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들뢰즈는 이런 것들을 사유의 규칙을 가지고 주어져 있는 틀에  맞춰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들뢰즈의  사유는 그런 게 아니라고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생각을 대상 속에서 찾아내고, 알아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유가 아니라 그저 재 인식이다. 다시 알아본다는 것이다.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대상 속에서 끄집어 내는 것이다.  알고 있는 생각을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서 여기에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장자 얘기가 영화 속에 이렇게 녹아 들어가 있다. 이런식으로 알아내는 것이다. 이거는 결코 영화 적인 사유도, 철학적인 사유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유하는 방식이  대부분 이런방식이다. 그렇다면 들뢰즈의 사유는 어떤 것일까 ?

 

사유의 강제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판단의 규칙, 체계화된 트을  벗어나는 어떤 대상과 만났을때에만 사유가 강제 된다고 한다.   별 생각 없이 살다가 어느 날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도대체 받아들일 수가 없는 사건과 맞났을때 사유가 시작된다고 한다. 갑자기 사귄던 애인으로 부터 이유 없는 이별 통보를 받았다거나,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만났을때라고 한다.  왜 그럴까,  왜 나한테 그랬을까  바로 물어보낟.  사랑이 안변한다고 지금까지 믿었지는데 변하였다. 사랑이 변하는 거라면 세상에 영원 한 것이 있을까?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여러 가지 것들이, 그런 것들이 과연 영원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믿는다면 도대체 내가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이일까 ?  삶을 살아야 하나?  온갖 생각을 다하게 된다. 수많은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바로 이런 사태에서 사유가 발생한다라고 이야기 한다. 

사귀던 여자가 무슨이유 인지 모르겠는데 헤어지자고 하였을때 나로 하여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나를 강제로 생각하게 만드는 어떤 사태에 직면한다.  바로 여기에서 사유의 강제가 시작된다고 들뢰즈는 얘기한다.  이런 사유는  기존에 있었던 사유의 규칙이나 체계들에 따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벗어나기 위해 사유를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유를 시작하게 되지만 답이 풀리는 것이 아니다. 답이 안 나오지 않는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사태가 내가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구나?  인생에 대해서도 몰랐고, 사랑에 대해서도 몰랐고, 사람에 대해서도 몰랐구나? 라고 어떤 사태를 파악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사유하고 있지 못했음을, 사유의 무능력과 마주치게 된다고 한다. 

 

사유의 무능력

이런 사유를 강제하는 어떤 사태를 만나는 것은 예정되었던 것도 아니고 필연적인 것도 아니다. 도저히 짐작조차 못하는 상황과 만나는 것이다. 어떤 사고처럼 우리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주침의 대상이 갖는 특징들이 바로 이런 우연성과  강제성을 들뢰즈는 이야기 한다. 

우연한 사태에 직면해서 사유가 시작되고, 그로부터 우리는 아무것도 사유하고 있지 않았음을 사유의 무능력을 마주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부터 사유가 시작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사유의 무능력을 마주치고 사유를 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그 마주치게 되는 대상이 어떤 것들일까 ?.

 

재현의 틀에 따라 걸러진 것들

규칙에 따라서 판단되고 체계화할 수 있는 것,  즉  전통적인 언어로 얘기한다면 현상계라고 말을 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차이와 반복에서 나오는 용어를 빌려서 감성적인 것이라고  쓸수 있는것이다.  시네마에 나오는 해당하는 것으로 보면  감각, 운동 이미지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천개의 고원의 용어로 이야기 해보면 지층이다. 각각 논의가 펼쳐지는 영역에 따라 완전히 똑 같이 일치하지 않는다.  영역에 따라서 조금씩 의미들이 다르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같은 층위에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떤 규칙에 따르는 것이다.  차이와 반복에 나오는  용어로 얘기하면 사유의 공준이다. 시네마에 나오는 용어로 이야기 하면 감각운동 도식 이다.  그 다음은 범주라고 할 수 있다.  들뢰즈가 싫어하는 재현(Representation) 어떤 틀에 따라서 걸러진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이 현상계에 속할 수 있다. 이 현상이라는 가장자리 즉 가장 위에 있는 껍데기에 해당이 된다. 

재현의 규칙에 따른,  범주에 따르는 것들을  철학사의 적으로 규정한다. 그 이유는 범주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들을  많이 제한시킨다는 것이다. 그게 언어적인 범주든, 예술에서의  범주든 어떤 규칙이건 해당 된다. 

 

재현의 틀로는 다 포착되지 않는 실체

맑은 날 유리창을 통과한 커튼를  묘사한다고 가정할때 우리 굉장히 버벅거리게 된다.  예쁘다, 따듯하다, 화사하다, 반짝반짝 하다라는 평범한 언어를 가지고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이미지가 설명이 잘안된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학교 도서관에서  창가에 기대어 책을 잡고 있고, 하얀 커튼이 펄럭거리면서 햇빛 비치는 장면이 있다.  굉장히 아름다웠다라고 느꼈는데,  그 장면이 그때 햇살의 느낌이 말로 표현이 안 안된다. 도저히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다. 그 햇살이, 그 느낌들이 전부 실재라고 한다면  우리의 언어라는 재현의 틀을 거치게 되면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빈약하고 그 중에 아주 일부이다. 그 일부를 제대로 표현이 어렵고 왜곡해서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떤 재현의 틀을 통해서 우리가 전체를  절대로 얘기를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대부분은 버리고 일부만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물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굉장히 엉성한 그물 즉 재현의 틀이라는 것은 굉장히 작고 제한적이기 때문에 결국은 실재를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게 만든다고 한다. 재현된 것. 이것이  바로 현상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들뢰즈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얘기하지만 이게 없을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실재라는  존재의 부산물 혹은 껍데기 표면 정도로 생각을 한다면 그 표 면을 벗겨 낸다면 그 속에 알맹이가 있다. 

 

사유의 시작

알맹이가 실재에 해당이 되고,  다른 말로 하면 본체계라고 이야기 한다.  재현의 틀로 다 포착되지 않은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는, 살아 움직이는 실체 그 자체라는 거다. 재현의 틀을 가지고서는 실재가 포섭이 안 되기 때문에 우리의 평상시 사유하는 방식으로는  판단하고 종합하고 체계화시키는 그런 사유로 전혀 포섭  되지 않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마주침의 대상이 들이라는 것이다.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는 이 사실을 설명할 수 없는 그 사태가 바로 마주침의 대상이고 실재라는 것이다. 그런 마주침의 대상이 나에게 다가 올때  사유가 시작된다고  설명을 한다.  사유의 시작점이기도 하고, 현상 들이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어떤 본체계에 해당되는데 이것을 가리킬 때 들뢰즈가 굉장히 많 이 쓰는 용어가 있다.  강도적, 강도들의 어떤 체계 강도적 본체계 라는  용어를 쓰는데 그 강도라는 현상계를 가능하게 한다. 

 

현상,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

우리가 강도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바로 다른 말로하면, 차이의 체계라고 이야기한다.  차이의 체계,  강도가  현상들을 가능하게 한다라고 한다.  “비가 오네.” 라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왜 비가 오는지, 비가 오 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바로 그 부분이 우리와 만나서 우리로 하여금 사유를 하게 한다. 비가 오는 사실이 감성적인 어떤 것이라면 이 감성적인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 중간 체계에 속하는 것이 바로 감각적인 것의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감성적인 것의 존재,  이것의 핵심이 바로 감각에 해당이 된다. 

 

예술작품-실재를 사유하게 하는 것

그렇다면 예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서 우리가 짐작을 할 수있다.  예술이 생산해내는 것, 예술이 우리에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감각적인 것을  우리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 감각적인 것, 그러니깐 영화를 빌어서 얘기를 하면지각이미지, 정감이미지 혹은 감응이미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어팩션이미지, 액션이미지, 동이미지 기타 등등이 나온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에 속하는 게  동이미지 다.  행위이미지하고 지각이미지 어디 중간쯤 끼어있는 것으로 보통 이야기 한다. 지각이미지와 정감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한 것으 이야기 한다.  들뢰즈 예술론 특히,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제시하고 있는 예술론에 따르면 감각이란 결국, 지각과 정감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지각과 정감의 구성물로 이루어진 게 바로 감각의 존재다. 우리로 하여금 실재를 사유하게 해주는 어떤 것. 즉, 그 마주침의 대상은 결국, 감각들을 생산해내고 감각들을 생산해내는 대표적인 것이 철학책 보다는 오히려 예술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사유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강요하는, 강제하는 어떤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 중에서 영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들뢰즈가 영화를 특별하게 생각한 이유

들뢰즈가 영화를 다른 예술들하고 좀 다른 방식으로 취급하는 부분들이 있다. 시네마 같은 경우는 매체 자체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생산해내는 감각적인 것이 우리로 하여금 사유를 강제한다고 들뢰즈는 생각했다.  다른 예술보다 영화라가 사유를 더 많이 강제한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들뢰즈는  감각은 지각과 정감의 구성물이고,  예술작품들은 구성의 평면 위에서 세워진다 라고 이야기한다.  (이지영의  들뢰즈 시네마 가의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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