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었다. 독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어제 급하게 구매하였다. 전체 읽고 모임에 참석하려 했지만 의지만 앞섰고 앞부분만 읽었다. 작가에 대해서만 간략히 읽고 모임에 나갔다. 독서 모임 참석을 결정할때는 책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독서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함 이었다.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서 글로만 만난 사람이었다. 요즘 매일 글쓰기를 못하고 있어서 연초에 글쓰기 모임이 생각 났고 참여 했던 분들이 생각났다. 오프라인으로 만나게 된다면, 매일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임 장소는 도서관 카페였다. 많은 사람이 참석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전체 7명이었다. 독서 모임 하기에 적당한 인원이다. 주관자가 이름표도 준비 해 놓았다. 논제 중심의 독서 모임이었다. 내 자리에 논제가 놓여 있었다. 모임을 리더하는 분이 책에대서 소개 해주었다. 작가의 삶을 투영한 사소설이라고 하였다. 소설속 주인공 요조와 작가의 삶이 비슷한점이 많다는 것이다. 데카당스 문학으로 죽음, 폐허, 퇴폐성 등 부정적이 특성이 드러난다고 설명 하였다. 작가의 연이은 5번의 자살시도가 눈에 띄었다. 다른 책에서 보았던 문학하는 사람의 자살의 이유를 언급했던 글이 생각났다.
들뢰즈는 삶 자체를 노래하는 문학이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 자살하는 자가 왜 많은가 하고 물었습니다만, 그 이유는 저절로 분명해집니다. 읽고 또 쓰는 그 한 행 한 행에 어렴풋이 자신의 생사를 걸고 있는 것이니까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55쪽)
처음에 책에 대해서 별점으로 평가 하고 평가를 이유를 설명하였다. 대부분 3.5에서 4점 정도 였다. 잘 읽힌다는 점이 좋았다. 사소설로 일반인 같으면 드러내 놓고 싶지 않은 내밀한 부분까지 표현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었다. 여러 차례 자살시도하여, 인간이 되기를 부정하는 요조(주인공)의 모습에 부정적 의견을 주었다. 자칫 청소년들이 따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조는 본성과 다르게 집에서 장난꾸러기로 지내고, 학교에선 익살을 부리며 자신을 숨기를 생활을 한다. '익살'을 서비스 했다고 표현한다. 사회라는 곳에 살면서 본성처럼 살수는 없지 않을 까 생각했다. 무대위에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는 나의 모습 이었다.
뭐든 상관없으니까 웃게만 만들면 된다. 그러면 인간들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삶'이라는 것 밖에 내가 있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지도 몰라, 어쨌든 인간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돼 나는 무야, 바람이야, 텅, 비었어(19쪽)
세상. 저도 그럭저럭 그것을 희미하게 알게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 때만 이기면 된다. 노예조차도 노예다운 비굴한 보복을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오로지 그자리에서의 한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럴싸한 대의 명분 비슷한 것을 늘어놓지만,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개인. 개인을 넘어 또 다시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대양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라며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의 환영에 겁먹는 데서 다소 해방되어 예전만큼 이것저것 한도 끝도 없이 신경 쓰는 일은 그만두고, 말하자면 필요에 다라 얼마간은 뻔뻔하게 행동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97쪽)
책속의 주인공 요조의 삶은 책의 첫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13쪽)" 부끄럼 많은 삶이 "인간 실격"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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