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의 지식여행 다음 책이다. 니체(로런스 게인)이다. 작년에 문화센터에서 니체 읽기에 참여 했었다. 기억에 남는것은 디오니소스적, 포스트모더니즘만 기억하고 있다. 니체의 책들은 아주 광범위한 내용을 압축하여 표현 한다. 아포리즘 스파일로 철학 배경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는 이해가 어려운 책이다. 이책은 니체의 영향 준 철학자와 삶을 간단히 소개하고 니체의 저서에 담겨 있는 철학을 개략적으로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니체의 철학이 영향을 미친 현대 철학자 및 철학사상을 언급한다. 많은 내용을 소제목 위주로 설명하다 보니 전체적인 연관성과 맥락 이해는 어려웠다.
철학내용 언급위주로 발췌정리 하였다.
니체의 첫번째 책 비극의 탄생은 합리적-철학적인 담론과 창조적-예술적 표현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관습을 무너뜨렸다. 인간의 문화와 사상에서 이성적인 경험과 미적인 경험을 뚜렷이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사고 방식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성과 현실, 빛을 상징하는 아폴론과 대비되는 술과 환락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이야기 한다.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언어와 신분 따위는 집어던지고 활홀경에 빠져 춤을 춘다. 음악과 술이 그들의 수단이라면 '신비한 집단적 활홀경'은 그들의 목적이다. 주관이 도취의 상태로 고양되어 몰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음악에 있는 디오니소스적인 정신은 태어나는 것은 모두 자신의 고통스러운 소멸에 직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러한 그리스의 비극 정신이 당시 바그너의 가극에서 부활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디오니소스의 정신이 억압을 받으면서 우리는 감각을 통한 직관과 정신적 진리에 이를 수 없게 되었다
문화가 우리의 가장 높은 목표라면 이성만 가지고 현실의 근본 성격을 탐구하는 형이상학적 이론들은 어떻게 될까 ? 물론 형이상학적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의 절대적인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는 거의 반발할 여지가 없으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 인간의 머리를 통해 보며, 따라서 이머리를 잘라낼 수 없다. 머리를 잘라내면 세상에 과연 무엇이 남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라고 묻지 말고 "우리가 무엇을 아는게 좋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도덕적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상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 있을뿐..
덕이 있는 사람은(곧 좋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칭송을 받는 것은 그가 그들에게 좋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순종, 순결, 공정, 근면 따위)은 덕이 있는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네게 덕이 있다면 .. 너는 그 덕의 희생자다 " 따라서 우리가 다른사람의 덕을 칭찬하는 것은 우리가 거기서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장점과 이성을 자신의 보존과 발전 진보에 쓰지 않고, 우리의 보전과 발전 진보에 쓴다. 도덕적 믿음은 늘 집단의 믿음이며 이때 집단은 의견을 달리하는 어떤 개인보다도 위대하다." 도덕 때문에 개인은 자신이 집단에 이익이 되는 기능을 할때만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긴다." 도덕은 개인속에 있는 무리 본능이다. 그들의 도덕률은 그들을 보호해줄 뿐아니라(그들의 바람이지만) 그들과 그들이 사는 방식을 정당화 해준다.
도덕적 관념이 그저 인간의 이기심과 진화론적 생존 본능의 결과 뿐이라면 도덕적 원리와 계율의 오랜 원천인 종교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있을까 ? 그리고 우리의 신들은 어떻게 될까 ? 여기서 우리는 처음으로 니체가 말하는 신의 죽음과 만난다.
종교, 도덕, 과학, 이것들의 역사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것들은 자신이 진리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야심찬 희망일뿐이다. 이것들을 모두 비판적으로 고찰했을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사고는 그 밑바탕에 동기와 욕구를 깨닫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전반적으로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우리 기관 가운데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을 가장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의식은 유기체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가장 늦게 발달한 부분이며 따라서 가장 완성되지 않은 가장 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의식으로부터 수많은 오류가 발생해 사람이 필요이상으로 일찍소멸할 수 있다. "
나의 의지가 우연히 집단의 의지와 일치한다면 그야 말로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이것은 이른바 민주주의 역설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민주주의에서 나는 두가지 원칙을 따라야 한다. 하나는 다수의 의지(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내자신의 의지 이다.
어떤 이유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건다는 것은 '살려는 의지'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게 있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것은 곧 힘에의 의지이다. 이것은 모든 존재는 자신의 행동 반경과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확대하려 한다는 자신의 힘을 키우려 한다는 인간 행동의 원리, 인간 행동의 심리적 동인에 관한 원리이다. 모든 행동에 완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그행동에 대해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진리라는 말이 나오면 철학자들은 곧바로 아주 대단하고 고결한 소음을 내기 시작한다.철학자들은 그들의 이론이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과정에서 나왔다고 믿고, 이러한 '냉철하고 순수하며 객관적인 변증법'을 신비주의자들의 믿을 수 없는 주관적인 노력과 대비 시키기 좋아한다.하지만 철학자들의 사고에는 늘 그것에 앞서 욕망과 편견, 열망 또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소망 즉 비이성적인 욕구와 욕망이 있으며, 철학자들은 이것을 추상적으로 만들어 이성으로 보호한다. 더간단히 말하면 철학은 도덕적 믿음과 직관, 욕망에 합리적 주장이라는 옷을 입힌거다.
기독교 신앙은 처음부터 희생이다. 그것은 모든 자유와 긍지, 정신의 모든 자기 확신을 희생시키고 스스로 노예가 되어 자신을 비웃고 자신을 불구로 만든다.
인간이 존재한이래 인간의 무리(가족, 공동체, 부족, 민족, 국가, 교회 등)또한 존재했으며, 늘 명령하는 사람은 아주 적은데 비해 복종하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인간들 사이에 복종만큼 잘 그리고 오랫동안 훈련되고 훈육된 것도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제는 누구나 '너는 무조건 이것은 이해해야 하고 저것은 해서는 안된다'고 너는 어찌어찌 해야 한다고 명령하는 일종의 형식적 양심으로 복종의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해도 지난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욕구는 충족되고자 하고, 내용으로 형식을 채우고자 해, 자신의 힘과 조급함과 긴박함에 따라 거의 닥치는 대로 아무것에나 손을 뻗고, 부모와 교사, 법, 계급적 편견, 여론과 같은 명령자가 자기 귀에 대고 소리치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니체는 그런 명령하는 의지들은 대개 자신이 자기보다 높은 권위(조상, 정의, 법, 심지어는 신)을 대변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집단에 대한 권위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려면 대개 엄청난 자기 기만과 배신이 필요한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가치를 만들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가치를 어쩔수 없이 따른다.
인간이 이성을 통해 추론한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왜냐하면 이성은 직면하기 두려운것 어떤 아주 불쾌한 진실은 감추려 들기때문이다.
니체는 인간의 양심이라는 것을 파헤치고 더불어 죄책감 또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현상도 파헤친다. 양심은 인간의 심리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생긴거라고 말한다. 양심은 사회구조와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생겼고, 이것은 다시 본능의 억압과 합리성의 발달에 의존한다. 진화과정에서 일어난 이러한 도약 우리가 동물에서 벗어나 호모사피엔스가 된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불행의 원인이다.
좋다는 것은 사회 집단의 행동을 규정하고 규제하는 고귀한 강자들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니체는 우리에게 "지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라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제기했다. 권력을 위한것 그런데 누구의 권력 ? 병든 문화나 건강한 문화를 위한것 ? 신을 그리워하지 않고 존재하기 위한것
포스트모던 시대를 예견한 니체의 우화로 이책을 마무리 한다.
"지식의 돈 후안.... 그는 자신이 아는 것은 사랑하지 않지만 자기에게 완전히 해로운 것을 제외하고는 사냥할 게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지식을 추구하고 지식의 음모를 즐기려는 강한 욕망이 있따. 그는 마지막에는 압생트(쓴 쑥으로 맛들인 독한 술)와 질산까지 마셔버리는 술 고래와 같다. 그래서 그는 결국 지옥을 탐닉하고자 한다. 이것이 그를 유혹하는 마지막 지식이기에. 그러나 모든 지식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결국은 그를 환멸에 빠지게 할 것이다. .. 우주 전체에 이 굶주린 자에게 줄것이 하나도 남지 않을테니까 " 그런데 우리 인간은 아뭇도 의욕하지 않느니 차라리 허무라도 의욕하려고 할까 ?
니체처럼 진리가 아니라 진리의 의지만 존재한다고 하면 그래서 지식이나 판단을 진리의지란 차원에서 파악하게 되면, 어떤 지식이 진리인가의 여부가 아니라 그 지식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가 어떤 효과를 의지하고 있는가 하는 게 중요해집니다. 결국 이 질문을 통해 지식의 문제는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어떠한 효과를 의지하고 있는가 하는게 중요해진다.(철학과 굴뚝청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