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의 지식여행 다음 책이다. 니체(로런스 게인)이다. 작년에 문화센터에서 니체 읽기에 참여 했었다. 기억에 남는것은 디오니소스적, 포스트모더니즘만 기억하고 있다. 니체의 책들은 아주 광범위한 내용을 압축하여 표현 한다. 아포리즘 스파일로 철학 배경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는 이해가 어려운 책이다. 이책은 니체의 영향 준 철학자와 삶을 간단히 소개하고 니체의 저서에 담겨 있는 철학을 개략적으로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니체의 철학이 영향을 미친 현대 철학자 및 철학사상을 언급한다. 많은 내용을 소제목 위주로 설명하다 보니 전체적인 연관성과 맥락 이해는 어려웠다.

철학내용 언급위주로 발췌정리 하였다.     

니체의 첫번째 책 비극의 탄생은 합리적-철학적인 담론과 창조적-예술적 표현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관습을 무너뜨렸다. 인간의 문화와 사상에서 이성적인 경험과 미적인 경험을 뚜렷이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사고 방식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성과 현실, 빛을 상징하는 아폴론과 대비되는 술과 환락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이야기 한다.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언어와 신분 따위는 집어던지고 활홀경에 빠져 춤을 춘다. 음악과 술이 그들의 수단이라면 '신비한 집단적 활홀경'은 그들의 목적이다. 주관이 도취의 상태로 고양되어 몰아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음악에 있는 디오니소스적인 정신은 태어나는 것은 모두 자신의 고통스러운 소멸에 직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러한 그리스의 비극 정신이 당시 바그너의 가극에서 부활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디오니소스의 정신이 억압을 받으면서 우리는 감각을 통한 직관과 정신적 진리에 이를 수 없게 되었다

문화가 우리의 가장 높은 목표라면 이성만 가지고 현실의 근본 성격을 탐구하는 형이상학적 이론들은 어떻게 될까 ? 물론 형이상학적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의 절대적인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는 거의 반발할 여지가 없으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 인간의 머리를 통해 보며, 따라서 이머리를 잘라낼 수 없다. 머리를 잘라내면 세상에 과연 무엇이 남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라고 묻지 말고 "우리가 무엇을 아는게 좋을까?"라고 물어야 한다.

도덕적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상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 있을뿐..

덕이 있는 사람은(곧 좋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칭송을 받는 것은 그가 그들에게 좋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순종, 순결, 공정, 근면 따위)은 덕이 있는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네게 덕이 있다면 .. 너는 그 덕의 희생자다 "  따라서 우리가 다른사람의 덕을 칭찬하는 것은  우리가 거기서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장점과 이성을 자신의 보존과 발전 진보에 쓰지 않고, 우리의 보전과 발전 진보에 쓴다. 도덕적 믿음은 늘 집단의 믿음이며 이때 집단은 의견을 달리하는 어떤 개인보다도 위대하다." 도덕 때문에 개인은 자신이 집단에 이익이 되는 기능을 할때만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긴다."  도덕은 개인속에 있는 무리 본능이다. 그들의 도덕률은 그들을 보호해줄 뿐아니라(그들의 바람이지만) 그들과 그들이 사는 방식을 정당화 해준다.

도덕적 관념이 그저 인간의 이기심과 진화론적 생존 본능의 결과 뿐이라면 도덕적 원리와 계율의 오랜 원천인 종교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있을까 ? 그리고 우리의 신들은 어떻게 될까 ? 여기서 우리는 처음으로 니체가 말하는 신의 죽음과 만난다.

종교, 도덕, 과학, 이것들의 역사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것들은 자신이 진리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야심찬 희망일뿐이다. 이것들을 모두 비판적으로 고찰했을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사고는 그 밑바탕에 동기와 욕구를 깨닫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전반적으로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우리 기관 가운데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을 가장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의식은 유기체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가장 늦게 발달한 부분이며 따라서 가장 완성되지 않은 가장 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의식으로부터 수많은 오류가 발생해 사람이 필요이상으로 일찍소멸할 수 있다. "

나의 의지가 우연히 집단의 의지와 일치한다면 그야 말로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이것은 이른바 민주주의 역설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민주주의에서 나는 두가지 원칙을 따라야 한다. 하나는 다수의 의지(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내자신의 의지 이다.

어떤 이유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건다는 것은 '살려는 의지'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게 있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것은 곧 힘에의 의지이다. 이것은 모든 존재는 자신의 행동 반경과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확대하려 한다는 자신의 힘을 키우려 한다는 인간 행동의 원리, 인간 행동의 심리적 동인에 관한 원리이다. 모든 행동에 완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그행동에 대해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진리라는 말이 나오면 철학자들은 곧바로 아주 대단하고 고결한 소음을 내기 시작한다.철학자들은 그들의 이론이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과정에서 나왔다고 믿고, 이러한 '냉철하고 순수하며 객관적인 변증법'을 신비주의자들의 믿을 수 없는 주관적인 노력과 대비 시키기 좋아한다.하지만 철학자들의 사고에는 늘 그것에 앞서 욕망과 편견, 열망 또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소망 즉 비이성적인 욕구와 욕망이 있으며, 철학자들은 이것을 추상적으로 만들어 이성으로 보호한다. 더간단히 말하면 철학은 도덕적 믿음과 직관, 욕망에 합리적 주장이라는 옷을 입힌거다. 

기독교 신앙은 처음부터 희생이다. 그것은 모든 자유와 긍지, 정신의 모든 자기 확신을 희생시키고 스스로 노예가 되어 자신을 비웃고 자신을 불구로 만든다. 

인간이 존재한이래 인간의 무리(가족, 공동체, 부족, 민족, 국가, 교회 등)또한 존재했으며, 늘 명령하는 사람은 아주 적은데  비해 복종하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인간들 사이에 복종만큼 잘 그리고 오랫동안 훈련되고 훈육된 것도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제는 누구나 '너는 무조건 이것은 이해해야 하고 저것은 해서는 안된다'고 너는 어찌어찌 해야 한다고 명령하는 일종의 형식적 양심으로 복종의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해도 지난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욕구는 충족되고자 하고, 내용으로 형식을 채우고자 해, 자신의 힘과 조급함과 긴박함에 따라 거의 닥치는 대로 아무것에나 손을 뻗고, 부모와 교사, 법, 계급적 편견, 여론과 같은 명령자가 자기 귀에 대고 소리치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니체는 그런 명령하는 의지들은 대개 자신이 자기보다 높은 권위(조상, 정의, 법, 심지어는 신)을 대변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집단에 대한 권위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려면 대개 엄청난 자기 기만과 배신이 필요한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가치를 만들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가치를 어쩔수 없이 따른다.

인간이 이성을 통해 추론한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왜냐하면 이성은 직면하기 두려운것 어떤 아주 불쾌한 진실은 감추려 들기때문이다.

니체는 인간의 양심이라는 것을 파헤치고 더불어 죄책감 또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현상도 파헤친다. 양심은 인간의 심리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생긴거라고 말한다. 양심은 사회구조와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생겼고, 이것은 다시 본능의 억압과 합리성의 발달에 의존한다. 진화과정에서 일어난 이러한 도약 우리가 동물에서 벗어나 호모사피엔스가 된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불행의 원인이다.

좋다는 것은 사회 집단의 행동을 규정하고 규제하는 고귀한 강자들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니체는 우리에게 "지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라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제기했다. 권력을 위한것 그런데 누구의 권력 ? 병든 문화나 건강한 문화를 위한것 ?  신을 그리워하지 않고 존재하기 위한것

포스트모던 시대를 예견한 니체의 우화로 이책을 마무리 한다.

"지식의 돈 후안.... 그는 자신이 아는 것은 사랑하지 않지만 자기에게 완전히 해로운 것을 제외하고는 사냥할 게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지식을 추구하고 지식의 음모를 즐기려는 강한 욕망이 있따. 그는 마지막에는 압생트(쓴 쑥으로 맛들인 독한 술)와 질산까지 마셔버리는 술 고래와 같다. 그래서 그는 결국 지옥을 탐닉하고자 한다. 이것이 그를 유혹하는 마지막 지식이기에. 그러나 모든 지식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결국은 그를 환멸에 빠지게 할 것이다. .. 우주 전체에 이 굶주린 자에게 줄것이 하나도 남지 않을테니까 "  그런데 우리 인간은 아뭇도 의욕하지 않느니 차라리 허무라도 의욕하려고 할까 ?

니체처럼 진리가 아니라 진리의 의지만 존재한다고 하면 그래서 지식이나 판단을 진리의지란 차원에서 파악하게 되면, 어떤 지식이 진리인가의 여부가 아니라 그 지식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가 어떤 효과를 의지하고 있는가 하는 게 중요해집니다. 결국 이 질문을 통해 지식의 문제는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어떠한 효과를 의지하고 있는가 하는게 중요해진다.(철학과 굴뚝청소부)

'분야별 책 읽기 >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존주의_사르트르  (0) 2013.08.21
부조리_카뮈  (0) 2013.08.21
절대 정신_헤겔  (0) 2013.08.19
소설로 읽는 철학  (0) 2013.08.07
인문내공  (0) 2013.06.02

 

하룻밤의 지식여행 헤겔 편이다. 읽을 책 리스트에 들어 가있지 않은 책인데 도서관에 갔다가 발견한 책이다. 하룻밤의 지식 여행으로 플라톤에서 촘스키까지 수학에서 심리학까지 50권으로 정리한 책이다. 헤겔을 비롯한 니체, 카뮈, 사르트르 , 하이데거를 먼저 빌렸다. 텍스트가 많지 않아 하룻밤에 읽기에 적당한 분량이었다. 물론 한사람의 철학을 하룻밤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삶과 이론의 개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소피의 세계(요슈타인 가이더), 철학과 굴뚝청소부(이진경), 서양철학사(러셀), 철학 vs 철학(강신주), 철학의 교실(오가와 히토시)의 헤겔 관련 내용을 참조해서 읽으니 집중도가 향상 되었다.  

이 책에서 언급한 헤겔 철학내용을 주요사항을 발췌하였다.

헤겔은 계몽주의 시대의 고전적인 합리주의에서 후기 계몽주의 시대의 독일 낭만주의로 가는 길을 따른다.  헤겔은 결국 계몽주의를 정신적인 것으로 만들고 낭만주의를 지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이성을 신봉하며 교회와 국가의 사악한 동맹에 반대했다.  이때 철학의 역할은  신앙과 이성의 대립 시키는 것이었다.

칸트는 인식의 주체(인식하는 자)와  인식의 대상(인식되는 것)을 분리했고 이러한 분리는 주체 안에서도 일어났다. 칸트는 세비판서에서 인간의 능력,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다룸으로써 인간의 영역과 자유의 영역은 분리되어 잇음을 강조햇을 뿐이다.  피히테와 셸링, 그리고 헤겔은 칸트가 해소하지 못한 분리- 신앙과 이성의 분리, 교회와 국가의 분리, 무한과 유한의 분리-를 해소하려고 했다. 

네의지의 준칙이 동시에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너의 의지에 반하더라고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한 준칙에 따라 행동하라 

스피노자는 정신과 물질 또는 정신적인것(또는 지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모두 그 밑바탕에 있는 같은 실체의 다른 축면일뿐임을 증명하려고 해 이실체는 신과 같은 것이다. 신은 우주, 즉 모든 것의 총체와 같은 것이다.  

정신 현상학은 의식이-여행을 통해-단순한 직접적인 의식에서 채계적인 학문의 형태로 확장되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헤겔의 철학은 조각난 채 흩어져 있던 인류의 기억을 모아 복원한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자기 실현의 역사를 의미 있는 전체로 봄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파악하려는 인간의 고투이다.

헤겔이 재현한 인류의 진보 역사는 의식이 어떻게 자신을 의식하게 되는지 그럼으로써 어떻게 의식이 자기 의식이 되는지-또는 어떻게 의식이 이미 자기의식임을 깨닫게 되는지 보여준다. 자기의식 또는 주관성은 무엇인가-객체가-결핍되어 있다는 의식이다. 자유는 여기서, 욕망에서 시작된다. 자기의식은 자신의 통일성과 목적을 깨달은 의식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의식들과 분리되어 있는 다른 의식들로 부터 괴립되어 있는 의식이기도 하다.  욕망, 의식과 자기의식, 두려움, 소외, 억압된 노동의 결과로서 창조되는 세계-이 모든 것에서 일어나는 투쟁은 결국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이다.

정신 현상학은 14단계를 거쳐 감각적 확신에서 절대지에 이른다. 14단게에는 크게 의식, 이성, 정신으로 나누어진다. 헤겔은 이 여행을 절대정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이미지롤 끝맺는다. 역사가 걸어가는 길과 인식의 학문이 걸어가는 길은 절대 정신이 못 박히게 될 골고다 언덕위에서 만난다.  정신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고 창조한 세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이 생성된 과정, 즉 역사가 의식적인 자신을 매개로 한 과정이라는 것을 - 시간으로 외화된 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회나 역사로 외화된 절대정신은 역사의 발전 과정을 통해, 그리고 그속에서 자기 발전 과정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인식에 도달한다. 절대 정신은 다시 자기에게로 복귀한다. 이런의미에서 역사는 절대 정신의 실현이란 목적을 향해 발전해 가는 목적론적 과정이다.

헤겔에게 의식이나 정신이란 어떤 개인의 의식이 정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운동한는 절대자요 절대정신이다.  따라서 헤겔은 진리란 절대정신의 자기 의식이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진리의 기준을 계속 정정해 가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진리를 확인하고 보증해 주는 것은 발전해 가는 절대정신 자신인 것이다.(철학과 굴뚝청소부) 

헤겔에게는 전체만이 진리이다. 모든 단계와 국면, 계기는 부분적이고, 따라서 부분적으로만 진리이다. 여기서 헤겔은 총체성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떠 올린다. 총체성이라 자신이 극복하거나 포섭한 모든 생각이나 단계를 모두 자기안에 간직하고 있는 전체이다. 따라서 극복하거나 포섭하는 것은 여러가지 "계기"(단계 또는 국면)로 이루어진 발전적인 과정이다. 총체성은 이와 같은 모든 "계기"를 국면이나 단계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를 이루는 요소로서 간직하는 이런 발전적인 과정의 산물이다.

지양,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서로 연관성이 없는 명제들을 연역적인 추론형식으로 다룬다. 헤겔은 논리를 이렇게 정적인 것으로 보는 고전적인 견해를 해체하고 논리를 전체를 향해 나아가는 역동적인 운동으로 만든다. 전체는 자신을 극복하고 동시에 극복한 것을 자기안에 보존해가는 과정이다.  헤겔은 모순을 극복하고 동시에 보존하는 것을 지양이라고 부른다.

존재와 무, 양과 질처럼 서로 대립하는 개념들이 처음에는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서로 완전히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들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분석 또는 추론을 통해서만 알 수있다.  안과 밖처럼 서로 대립하느 개념들이 자기안에 상대방을 직접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하나를 정의하면 다른 하나도 동시에 정의된다.

개체성이 언뜻보기에는 서로 대립하는 원리처럼 보이는 보편성과 특수성으로 부터 형성되된다. 보편성=동일성,  특수성=비동일성,개체성=독특한 상호 관계망 따라서 '개체'는 자신을 유지하는 관계들과 자신과 비슷한 것들, 자기와 다른 것들로 짜인 망이다.

헤겔에따르면, 의지는 본질적으로 자유롭다. 우리가 짐승과 다른 것은 인간은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의지가 있다는 것은 자유롭기를 바란다는 뜻이고 따라서 어느정도 이미 자유롭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때는 추상적으로 자유로울 뿐이다. 자유의 실현은 - 자유가 구체적인 현실이 되는 것은 -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마지막 페이지의 문장이다.  "철학은 늘 현장에 너무 늦게 나타나서 세계가 어떠해야 한다고 가르쳐 줄수가 없다. 세계에 대한 사유인 철학은 현실이 거기 있을때만, 현실이 형성되는 과정이 모두 끝난 뒤에야 생기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철학이 회식에 회색을 첫칠할때 생의 한 형태는 이미 늙어버려 철학이 회식에 회색을 덧칠해도 생이 젊음을 되찾을 수는 없다. 그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깃들무렵에야 날기 시작한다"

'분야별 책 읽기 >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조리_카뮈  (0) 2013.08.21
지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 니체  (0) 2013.08.20
소설로 읽는 철학  (0) 2013.08.07
인문내공  (0) 2013.06.02
자신의 생각을 발견하는 책읽기  (0) 2013.05.30

 

 

재미 있게 읽은 소설이다.  소설책이지만 내용은 철학이다. 소크라테스부터 프로이트까지 철학자들의 사상을 쉽게 풀어썼다.  

" 철학적인 사색의 길이 비록 고통스넌 정신의 노동과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라 하더라 거기에는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는 책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철학적 삶과 태도에 자연스런 동경을 불러 일으킨다. 사람들은 철학을 대중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철학을 통속화 시키지만  작가는 철학에 아름다움의 옷을 입혔을 뿐이다". 이책을  감수한 이의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철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책이다. 이책을 읽는 도중에 러셀의 "서양철학사"와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을 일부 참조하면서 읽었다. 딸에게도 아빠가 적극추천하여 작은 딸의 읽을 책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소피의 철학적 물음으로 부터 시작된다.  나는 누구인가 ? 나는 어디서 부터 왔는가 ? 세계는 어디에서 부터 생겼는가?  우리가 자라면서 중력의 법칙에만 익숙해지는 것이 아나라 동시에 세계 자체에 길들여저 세상에 대한 의문과 놀라움을 잃어 버린다. 유년시절을 보내고 나면 모든 것이 당연하고 흡수하기 바쁘다. 

 이 책은 소피가 세상에 대한 의문과 놀라움을 풀어 가는 과정이다. 알바르토 크녹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부터 통사적으로 철학을 배우게 된다. 

칸트가 '사물자체'와 '우리에게 보이는 사물'을 구분한 일은 그가 철학에서 기여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사물 '자체'가 어떤지 우리는 절대로 확실히 경험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그 사물이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만 알 수 있다.  그 대신 우리는 사물을  사람의 이성이 어떻게 파악하는지는 경험하지 않고도 말할 수 있다.  크녹스 선생님의 칸트의 철학 설명 내용이다. 

언어가 이성을 빌어서 자기자신을 표현한다. 언어가 개인을 지배한다. 언어의 특성이 사고를 결정한다. 어느 강의에서 들은 내용이다. 헤겔 철학 설명에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이성은 특히 언어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는 태어나면서 어느 언어에 속한다. 노르웨이 어는 한센 씨가 없더라도 전혀 변하지 않지만 한센 씨는 노르웨이 어가 없으면 생활할 수 가 없다. 개개인이 언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개개인을 만드는 거다." 헤겔의 이성이나 세계정신의 '객관적 힘'이라고 부르는 것에 큰 중점을 두었다는 설명내용이다. 

처음에 생생한 현실이었던 소피의 세계는 딸에게 생일 선물로 주기위해 창작한 소설속의 이야기가 된다. 소설 속의 소설 세계 인것이다. 나의 세계 또한 절대자의 창작 세계 ? 서양 철학의 줄거리를 재미 있게 읽고 싶은 권한다.     


'분야별 책 읽기 >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 니체  (0) 2013.08.20
절대 정신_헤겔  (0) 2013.08.19
인문내공  (0) 2013.06.02
자신의 생각을 발견하는 책읽기  (0) 2013.05.30
긍정의 배신  (0) 2013.05.25

퇴근후 집사람과 탄천길을 걸었다. 길의 목적이 대부분 이동통로 이지만 탄천길은 운동 공간이다. 런링머신을 타고 TV를 보며 혼자 걷는 것 보다 같이 이야기 하면서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세상 돌아가는 일과 애들 이갸를 하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30분정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제법 땀이 난다.  

 

 

 

요즘 비가 많이 와서 탄천 물이 많이 불었다.  오늘은 사진기를 준비했다. 가끔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곤 한데 부족함이 느껴져 삼각대와 사진기 가방을 멨다. 집사람은 운동에 방해 된다며 반대 하였지만 설득을 했다.  삼각대, 카메라  모두 무겁다. 모두 오래된 모델이기 때문이다. 모래 주머니를 차고도 걷는데 사진기 쯤이야...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찍었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야경을 찍어 본일이 없어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느 밝기로 해야 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메뉴얼 모드로 하고 여러번 셔터를 눌렀다. 앞으로 많이 찍으면 낳아질 것이다.

 

길 사진 찍는 것을 좋아 한다. 길이 발달하면서 문명이 발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의 길은 많이 없어 졌다. 다행히 분당은 그런 길이 많아서 좋다. 길을 밝혀 주는 가로등이 좋았다. 

 

 

비가 와  탄천에 물이 많이 흐른다.

 

산에 흘러 내린 물로 길이 젖어 있다.  탄천, 비에 젖은 길, 가로등, 자전거 

 

 

탄천에서 바라본 정자동역 주변

 

 

흔들린 사진도 재미 있다.

 

'풍경 읽기 > 국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물머리  (0) 2013.08.21
홍천여행  (0) 2013.08.21
중미산 천문대  (0) 2013.07.06
전라도 여행  (0) 2013.06.10
현대 미술관 & 동학농민혁명유적지  (0) 2013.05.3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