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좀은 들뢰즈 가타리의 개념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일 겁니다. 리좀이란 땅속 줄기 내지 뿌리줄기를 뜻합니다. 식물학적으로 보자면 땅속 줄기는좀 더 상위 범주이고 그 아래 뿌리 줄기, 알 줄기, 덩이줄기, 비늘 줄기, 덩이 뿌리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적 개념으로서 리좀에서 그런 분류학적 구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그것이 뿌리나 나무를 타겟으로 하는 개념이란 점입니다.
뿌리는 중심이 되는 하나의 주축이 있으며 이로부터 잔뿌리가 차례로 뻗어 나가지요. 옥수수 처럼 수염 뿌리인 경우에는 주축은 없지만 잔뿌리가 하나의 중심에 모여 있습니다. 어느 것이든 확고한 중심이 있고 이로부터 가지를 쳐 나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죠. 지하에 뿌리 만이 아니라 지상에 나뭇가지도 그렇습니다. 나무 줄기가 뿌리 위로 뻗어 나가고 그로부터 가지들이 분기 합니다. 원줄기가 하나의 확고한 중심 되는게 교목 이라면 여러 개의 줄기들이 지면에서 뻗어 나가는 게 관목이지만 어느 것이든 하나의 중심에서 갈라져 나갑니다.
반면 땅속 줄기나 뿌리 줄기는 중심이 없이 서로 얼기 설기 엮여 있습니다. 뿌리의 경우에는 중심으로부터하나씩 차례로 갈라지며 분기 하기에 잔뿌리 끼리는 연결되지 않습니다. 하나의 잔뿌리 에서 다른 잔뿌리로가려면 상위의 중심으로 올라 갔다가 가야 합니다. 나뭇가지도 그렇지요. 하지만 뿌리줄기는 그물처럼 서로간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심으로 갈 것 없이 가지에서 가지로 잔뿌리 에서 잔뿌리로 직접 갈 수 있습니다. 하나씩 차례로 분기하는 중심화된 다양 체가 뿌리나 나무라면 어떤 중심도 없이 가지들이 서로 이어진 다양체가 리좀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핵전쟁이 발생했을 때를 염두에 둔 통신망인 인터넷이 바로 이런 리좀적 연결망을 컨셉으로 만들어 졌지요. 수목형 유형의 통신망은 모든 가지들이 상위의 가지와 하나씩 빠짐없이 연결 되기에 어디서든 중간에 절단 된 곳이 하나만 생기면 중심으로 가는 통신이 두절됩니다. 그래서 어떤 절단이 발생해 도중심의 도달할 경로가 끊어지지 않게 복수화 된 연결망을 채택해서 만든게 인터넷이죠. 이는 역으로 중심으로부터 하나씩 차례로 분화되는 연결망의 무능함을 보여줍니다. 이후 그러한 리좀적 연결 망이 갖는 강력한힘은 누구도 모를 수 없게 되었고 그것이 연결망의 시대라고 불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요. 연결망 분석이 통계학 못지 않는 영향력을 갖게 된 것도 이와 상관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리좀 이라는 개념은 이후도래할 세계에 대한 대한 선 지적 감각의 징후적 개념이었다 하겠습니다. 리좀 개념이 잘 알려진 것은 이와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인터넷이란 중심과의 통신 가능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중심으로 가는 경로를 복수화 했습니다. 중심으로 가는 길이 복수화된 연결망에서는 특권적 중심이 사라져 버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중심에 도달할 수 있는 연결 망은 중심 없는 연결망 이라는 역설을 보게 됩니다. 리좀이처럼 중심을 제거해버린 다양체 입니다.
리좀과 달리 나무나 뿌리는 중심을 같습니다. 그런데 나무나 뿌리라는 말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수학이나 생물학 등에서 자주 보게되는 수용도 입니다. 수용도란 점과 선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모든 경우의 수를표시하는 도식이죠. 가령 주사위 2개를 던져 둘다 6이 나올 확률을 계산할 때 앞의 주사위의 눈이 나올 6가지 가지를 그리고 각각의 가지 끝마다 다시 여섯 개씩 가지를 치지요 그래서 나온 전체 갯수 가운데 6 이두 번 나오는 가지의 수를 세서 확률을 구합니다. 인공지능이 길 찾기를 할 때도 이런 식으로 했었지요. 가지치기를 반복하여 그리고 각각의 경우마다 확률이나 비용 같은걸 계산했습니다. 이는 생물학을 비롯해 분류를 할 때도 흔히 사용합니다. 생물계를 세균, 고세균, 진핵생물 로 나누고, 진핵 생물을 원생 생물, 조류, 균류, 식물, 동물로 나두고 동물은 척추 동물과 무척추 동물로 나누고 하는 식으로 분류의 가지를 쳐나가지요. 진화의 역사도 이렇게 수용도를 그리며 분기되는 수용도로 그려집니다. 촘스키는 이를 언어에 대해 사용합니다. 즉 모든 문장을 명사구와 동사구로 나누고 나누어진 각각의 구를 다시 그 둘로 나누지요. 어느 경우든 한 점에서 나무 가지가 펼쳐지고 각각의 끝점에서 다시 가지가 분기하는 모양으로 그려지는 수용도가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생명의 역사는 이런 수용도가 부당함을 잘 보여 줍니다. 수용도로 표상되는 생물의 진화는 하나로부터 다른 가지들이 분화되어나온다는 걸 가정하고 있습니다. 영장류에서 침팬지와 인간이 갈라져 나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핵이 없는 생물이 분화되어 핵이 있는 생물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없던 핵이갑자기 생기는 기적을 가정 해야 하니까요. 이런게 돌연변이 라고 하면 돌연변이는 생물학적 기적의 다른 이름이 됩니다. 미토콘드리아 나 엽록체 에 대한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그런 세포 소기관은 한 미생물이 다른미생물을 잡아 먹었으나 소화시키는 데 실패함으로써 뜻하지 않게 시작된 공생의 산물이라는 겁니다. 다시말해 하나의 생물이 둘로 갈라지는 게 아니라 두 개의 다른 생물이 합쳐지며 세포 소기관을 가진 생물이 탄생한 겁니다. 다세포 생물 도 그렇습니다 단세포 생물이 아무리 갈라지고 분화되어 봐야 다른 단세포 생물이 될뿐 다세포 생물이 될 순 없지요. 단 세포 생물들이 결합되어 하나처럼 살기 시작할 때 다세포 생물이 탄생합니다. 이 역시 분기가 아니라 접속을 통해 진화가 이루어졌음을 듯 합니다.
이처럼 접속 내지 동맹을 통한 진화는 다른 종 뿐 아니라 다른 계, 역 사이에서도 발생합니다. 가령 지의류(이끼)는 균류와 녹조류가 결합되어 탄생한 공생체 입니다. 인간 세포 안에 미토콘드리아는 인간이란 종이 알파 프로테오박테리아와 고 세균이 합체한 사건의 산물임을 증언하고 인간의 유전체 안에 있는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그렇게 합체된 신체에 다시 바이러스가 합체한 사건의 증거 입니다.
들뢰즈 가타리는 난초와 말벌의 예를 통해 독자적 유기체로 개체와 된 생물 사이에서도 이런 접속과 동맹이존재함을 지적합니다. 난초는 꽃으로 말벌 암컷의 형태를 만들어 말벌을 불러들이고 꽃에 앉은 말벌의 꽃가루를 잔뜩 빨라 수정을 하지요. 이를 두고 말벌은 난초의 의태에 속한 것이니 일방적 이라 한다면 그건 말벌이나 생명체의 능력을 너무 졸로 보는 것입니다. 그저 속은 것에 불과하다면 기나긴 진화의 시간 동안 그런행동을 지속 했을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은 수정이나 섭식 만이 생명 활동의 목적 이라고 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입니다. 오히려 말벌의 그런 행동이 오랜 세월 지속되고 있다면 그들 나름대로 거기서 어떤 이득을 얻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은 과연 거기서 어떤 이득을 얻고 있는 것일까 를 물어야 합니다. 가령 포르노가 수정이나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씨라는 소중한 자원을 낭비 함을 잘알면서도 그걸 즐기는 어떤 종을 보면 말 벌 또한 그걸 즐기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인간보다 더 리얼하게 즐기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수용도의 모델은 순차적 분화의 가정으로 생명체 나 진화를 이해하려 합니다 반면 이러한 동맹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평 행적 진화는 비약적 접속이 진화의 분기점일 가능성을 보게 합니다. 씨를 퍼트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혈통적 분화 대신 혈통의 계보를 뒤흔드는 횡단적 소통이 사실은 생명의 역사를 이끌어온 것이라는 겁니다. 리좀이란 이런 점에서 생태의 본질과 역사에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생각과 잇닿아 있습니다. 마군 리스가 발견했고 전광우가 아메바를 연구하는 실험실에서 확인한 공생 진화는 리좀적 사유와 독립적으로 진행된 일종의 비평행적 진화의 사례라 하겠습니다. 유기체를 유전자의 생존기계로 다룬 이론이 씨뿌리기의 혈통주의를 미시적으로 확장 것이라면 리좀적 사유는 미생물과 유기체 사이, 종과 역 사 이를 넘나드는 횡단적 동맹주의를 모든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언어도 그렇습니다. 명사구와 동사구라는 두 개의 가지를 갖는 구조적 보편성 같은 것은 가령 ‘추워’나 ‘오늘밤’ 같은 단어 하나만으로 아주 다른 수많은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쉽게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거기서 같은 단어가 다른 의미를 갖게 만드는 것은 문법 구조가 아니라 어조이고 표정 이지요. 어떤어조, 어떤 표정이 접속 되는가에 따라 같은 단어도 다른 말이 되는 겁니다.문장이 명사구와 동사구로 분기하는게 아니라 단어와 어조, 표정 같은 이질적인 것이 접속함으 로써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질적인 것들의 접속 이것은 바로 리좀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원리입니다. 어떤 선도 다른 선과 이어지며 선위에 어떤 점도 다른 점과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접속의 첫 번째 원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접속이나동맹을 다룰 때에도 동질적인 것들 간의 동등한 층위에서 그렇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치적 동맹을 다룰때는 국가 간 혹은 부족간 등의 동등한 층위에서 다루고, 생물의 동맹을 다룰 때는 인간과 개, 악어와 악어새 등 동등한 수준에서 다루지요. 그러나 유기체인 우리는 우리 신체 내부에 미생물과 동맹을 맺고 있죠. 정치적 동맹 조차 국가와 부족 혹은 군대와 지형, 무장한 사람과 숲 등 상이한 층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어적 기호와 표정의 동맹도 있습니다. 이처럼 접속하는 것들의 이질성이 리좀의 두번째 원리입니다.
원리라고는 하지만 철학이나 과학 정치 등에서 흔히 원리 라고 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원리입니다 흔히 원리 라고 하면 거기에는 모든 것의 기원이자 모든 것이 귀착되는 중심 모든 것을 규정하거나 규명하는 하나의원리 모든 것을 통일하는 근거 등의 의미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를 철학에서는 흔히 일자라고 하지요. 그러나 접속이나 이질성 을 원리 라 할 때 거기에는 접속을 규제하는 통일성이나 구현 할 내용이 없습니다. 접속되는 것들을 통합하는 중심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는 원리라 하기 어렵습니다. 원리 아닌 원리인 거지요나아가 들뢰즈 가타리 는 이러한 일자를 제거함으로써 구성되는 다양 체가 리 좀 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통일하고 규제하고 동질화하는 원리를 제거하는 것을 원리로 한다는 점에서 원리에 반하는 원리를 갖는다 하겠습니다
리좀을 N - 1 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이런 의미를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n개의 부분들로 이루어지는 다양체가 진정한 다양체가 되려면 그 다양체 각 부분이 다양성을 구성하는 힘을 제대로 가동 시키려면 일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일자는 이데아 같은 초월적 모델일 수도 있고 신 같은 초월자 일수도 있으며 단일한 법칙이나 초월적 좌표계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동질화 된 최소 단위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환원적 사유 안에서 환원의 거점이 된 유전자나 원자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일자 를 제거할 때 비로서 부분마다 다르고 분할 할 때마다 달라지는 연속적 다양체가가능해집니다. 접속과 이질성에 이어 리좀의 세번째 원리가 다양체 라고 함은 이런 뜻입니다.
이러한 다양체는 주체도 대상도 없고 의미도 모델도 없습니다. 알파 프로테오 박테리아와 고세균이 공생체를 이룰 때 잡아 먹었지만 먹는데 실패했으니 고세균이 주체가 아니며 잡아 먹혔으나 먹히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박테리아 또한 대상이 아닙니다. 고세균이 주체 이고 박테리아가 대상이라면 먹이를 먹어 치운 고세균만 있을 뿐 공생체는 없을 겁니다. 뜻하지 않은 사건을 통해 접속한 공생체가 있는 것이고 , 그 새로운 개체에 말려 들어가간 박테리아와 고세균이 있는 겁니다. 난초와 말벌도 다르지 않습니다. 난초에게 말려 들어갈때 말벌은 난초의 욕망을 대응하기에 주체가 아니며 또한 그의 욕망만 구현한 건 아니기에 그저 대상인 것만도 아닙니다. 서로를 맴도는 쌍둥이 별 처럼 하나의 배치로 말려 들어간 것들의 공동체가 있는거지요. 의미도그렇습니다. 실패한 섭식기계의 공생체가 된 박테리아는 먹이라는 의미를 벗어나, 고세균 또한 포식자란의미를 갖 못합니다. 양자가 접속하여 출연한 사건은 차라리 포식 이라는 통상적 의미와 단절 하며 이루어지고 먹혔지만 살아남은 박테리아는 먹이라는 의미와 단절 하기에 동맹자가 됩니다. 이런 점에서 리좀은 의미화 하지 않는 단절을 또 하나의 원리로 합니다.
말벌을 불러들이기 위해 난초 꽃이 말벌 암컷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모방이나 모사라고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유사성 만을 보기에 그런 겁니다. 난초가 그런 모습을 만들 때 그것은 말벌을 흉내내기 위해서 가 아니라 말벌의 신체 활동을 자기 신체로 재영토화 하기 위한 겁니다. 말벌은 난초를 통해 자기 신체로부터 탈영토화 되어 다른 길로 이탈하게 됩니다. 현실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기위해 자신에게 없는 것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나 아닌 다른 이의 삶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모방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우리는 그저 모방 하는게 아니라 내 삶을 위한 새 길을 찾고 시험하고 있는 겁니다. 모사가 아니라 재 영토화탈영토화를 위한 지도 제작이 있는 것이라 함은 이런 뜻입니다. 이것이 리좀의 다섯번째 원리입니다. 이를달리 말하자면 지도를 만들며 난초와 말벌도 고세균과 박테리아도 그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의 코드를 포획하여 그 잉여 가치를 이용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모방 조차 사실은 애초의 코드를 탈코드화하는 것이고 모상을 코드의 여백을 이용해 해체하는 것입니다. 리좀의 6번째 원리가 모상의 해체를 뜻하는‘데칼코마니’ 이라 함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리좀은 모든 것 위에 군림하며 모든 것을 통일하는 일자 를 제거한 다양체 라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모든 것을 초월적 일자로 환원하는서구의 오래된 초월성의 사유와 반대 편에 있습니다. 일자가 사라지면모든 것은 그것이 접속하는 다른 것에 의해 그때마다 다른 본성을 갖게 됩니다. 다양체는 외부에 의해 정의된 다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그것은 추상적인 선에 의해 탈주선 내지 탈영토화의 선에 의해 정의 되며 이 선을 따라 가며 이루어지는 다른 다양체와 접속에 의해 다양체는 그 본성을 바꾸게 됩니다. 이는 내재성의 구도를 향해 사유를 개방합니다. 어떤 곳에 본성도 그것과 접속하는 것과의 관계에 내재적 이라는 의미에서 어떤 것도 자신이 접속하는 것의 원인인 동시에 그것에 의해 결국 자신이 규정한 이웃에 의해 규정되는 결과 라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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