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아카데미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되었다. 로자는 이번 강의에서 처음 들었다. 한국에서 인기 없는 맑시스트이지만 체게바라와 로자는 잘 알려졌다고 한다. 강의는 "맑스주의 역사 강의" 저자 한형식 선생님이 해주셨다.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했는데 지루하지 않았다. 강의수강으로 한형식 교육활동가(?)와 '로자 룩셈부르크', '에두아르트 베른 슈타인'를 만나게 되었다. 우연한 만남을 좋아 한다. 만남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다. 강의 수강으로 박민영, 허경, 임승수, 장동석 작가를 만났다.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고 앞으로도 줄것 같다. 로자 룩셈브르크 강의 내용을 요약해 보았다.
한사람의 철학적 사상 전체를 이해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 하다. 언어를 통해 옮겨지는 과정, 옮긴 언어를 통해 이해하는 과정, 번역함으로 인한 왜곡이 발생 한다.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 쉽게 플어 쓰는 과정 중에 왜곡이발 생할 수 있다. 왜곡이 나쁜거라고 볼 수 없지만 가능한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이전의 철학 사상의 전통을 결별하려고 하였다. 맑스도 예외는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 하였다. 낮에 생계를 위해하는 일, 일과가 끝나고 공부하는 일이 있는데 어느 일이 나를 나의 존재 기반이 되는 일인가.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단어는 무엇인지.. 아빠, 회사원,.. 어떤 것이 나를 표현하는 단어인가 현대의 대부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직업이다. 직업에 많은 시간을 쓰고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하는 정체성이 아닌 경우가 많다. 내가 원하는 정체성과 현실에서 나의 정세성의 괴리가 소외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되고 싶은 나와 현재 나외의 차이 이다.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있는 현실적, 경제적 조건 이해가 필요하다.
맑스는 철학으로 시작해서 청년 헤겔 학파, 고유한 사상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철학을 철학이 아닌 것으로 대체 하고자 했다. 관념론에서 유물론의 이데올로기, 과학으로 이해 했다. 맑스 철학의 목표는 철학을 철학이 아닌 것으로 하는 것이 목표이다. 레토릭, 포스트모더니즘 등은 전통적 의미의 철학자가 아니다. 현실에서 살고 있는 나의 모습, 현실적 상태가 정체성을 규정하며 객관적이고 철저하게 인식하는 비판적 인식이 필요 한다. 비판적 인식이라고 함은 배제, 공격의 의미 보다는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이다. 순수 이성 비판에서 비판의 의미는 순수 이성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가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맑스의 정치 경제학 비판(자본론 부제)은 경제학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의 관념에 있지 않고, 현실적인 모습이다.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은 관념에 영역에서 이루어 질 수 없다.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에서 가능하다. 철학적 세계는 물질 세계에 떠나 있다.
하이데거는 초월적 영역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하이데거가 나찌 전력이 있지만 독일 철학계의 우파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미군정 승인과 교황청 지원이 있었다. 동서 분단의 최대 수혜자이다. 맑스 이전의 철학은 추상의 영역이 더 높은 존재 발상의 영역 이었다. 생각을 잘 못 했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 인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가 로자의 출발점은 현실이 인식이 무엇인가 부터 시작한다. 현실에 대한 인식이 로자룩셈부르크 사상의 원천이다. 이의 이해를 위해 맥락적 인식이 필요하다.
선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사상이라는 배경을 필요로 한다. 즉 중국학을 공부하고 중국 사상을 이해하고 선불교를 이해하면 선문답의 화두를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도회 등의 청빈에 대한 사상은 논쟁을 통해서 발전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의 배경 없이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전화 통화하는 장면에서 수화자의 말만을 가지고 대화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로자는 유명한 사상가이면서 정치 지도자이며 실천자였다. 자기 스스로 정치 경제 지도자 역할을 한 것이다. 정치 지도자 역할을 하면서 상대방의 공격에 대해 단순화하며 과장되게 강력하게 대응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 하지 않고 문자로 그대로 받아 들인다고 하면 오해의 여지가 있다.
대중화를 위한 왜곡과 역사적 맥락의 배경없이 로자 룩셈부르크를 이해하였다. 대중 자발성의 철학자로 90년대에 소개 되었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liberty from, to)는 네거티브한 개념이다. 어떤 제약으로 부터의 자유, 대중은 억업과 착취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노예 노동이 6억명 이다. 내가 진짜 자유로운가 ? 무엇이 자유로운가?
객관적 조건은 자유로움에도 현실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모순이다. 대중을 억합 통제하는 모순이 있다. 모순을 인정할때 자발성이 발현된다. 지금 바로 자발적이다가 아니라 억합 통제에도 불구하고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자발적이다. 부정적인 객관적 조건을 철폐시킬 수 있는 힘이 대중의 자발성이다. 얼마 만큼 잠재적인가 ?
자유롭지만 생계가 요원하다. 일을 해야하고 필요에 따라 투잡을 가져야한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까지 자유로운가? 자유롭다는 인식을 가지더라도 잠재적으로 자유롭다는 말은 허울일 수 있다. 영원히 발현되지 않은 잠재력은 없는 것이다. 잠재력은 위안일 뿐이다. 자발성은 실제로 대중이 어떠한가 측면을 보아서는 알 수 없다. 객관적 조건과 결부되지 않은 지적인 잠재력은 발현될 가능성이 없다.
혁명의 주관적 조건은 얼마나 자발적일 수 있는가 ? 객관적 조건에서 억합과 통제로 부터 벗어 날 수 있는가 ? 혁명의 객관적 조건을 이야기 해야 한다. 상호 연관되며 상호 규정하고 변증법적 통일이 필요한 부분이다.
로자에 대해서 주체적 조건의 강조가 지나쳤다. 로자는 객관적 조건과 주체적 조건건의 변증법적 통일을 이야하기 하였다. 한국은 사상에서 독립적이지 못하게 종속되어 있으며 지적 식민지와 같다. 독창적인 사상의 역할 보다는 오파상 역할 상황이다. 이러한 지적 불구 상황이 오해를 만들었다. 로자의 주체적 조건만 번역이 되었으며 서유럽에서도 유행하였다. 자본의 축적이라는 객관적 조건은 최근에 번역이 되어 출간 되었다.
맑스 주의를 계승한 서유럽 신좌파, 구좌파의 복지국가 주장한 사민주의, 소련의 현실 사회주의 레닌주의가 있었다. 로자는 사회민주주의를 반대하고 베른 슈타인과 논쟁을 통해 유명해졌다. 레닌과의 논쟁에서 혁명의 주체적 조건에 대해 스스로 혁명의 주체가 되기는 힘든 상황에서 (교육수준, 경제적 수준 등) 지식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노동자라는 것을 밖에서 가르쳐 주어야 한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밖에서 접근해야 한다. 초기에 어떻게 조직해야 할 지, 어떤 조건에서 철회해야 할지 노동자 계급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 계급이 진짜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주인만 바뀌는 결과이다. 스스로 주체가 되는 것을 막는다. 대중의 자발성 및 주체적 조건에 대한 해석과 논쟁이 객관적 조건에 대한 로자의 오해가 퍼졌다.
자본주의로 부터 탈피가 객관적인 조건이다. 맑스주의적 관점에서는 주관적 조건은 객관적 조건들과 연계 되었다. 마음을 먹고 공부만 하면 서울대에 갈 수 있다는 말은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거짓말이다. 개관적 조건에 대한 충족이 필요하다.
우리의 억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 자본주의 붕괴의 필연성은 객관적 조건이며 자율성, 자발성은 주체적 조건이다. 우리의 바람은 주체적 개입이다. 자본주의 스스로가 객관적인 작동원리가 끝날 수 있는 조건은 공황이다. 1873~94 대공황, 분노의 포도 1929년~1945년, 1970년 오일 쇼크가 있었다. 우연히 일어났다면 주기성 없다. 주기적 공황의 매커니즘, 10년 모순 축적의 주기적 위기, 구조적 위기가 있다. 경향성의 붕괴론이 이야기 되었다. 주류 경제학은 불황을 설명할 수 있는 틀이 없어 경제 위기 발생시 맑스의 책을 보았다.
주관적 조건과 객관적 조건은 논리적 전제나 시간적 전제를 하지 않는다. 상호 작용이다. 시간 순서대로 선후 관계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최초의 권력 장악은 때이른 것이다". 때이른 시도들의 결과가 주체적 조건이다. 현실에서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 존재로 된다는 것이다. 물리적 탄압과 고통에서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부자들의 역계급 투표와 수동성은 어떻게 설명 될 수 있는가 대중의 양가성이다. 수동적 복무와 능동적 복무를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어떤 조건이 주어져야 진짜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주체적 측면의 끊임 없는 시행착오가 있다. 고전적 자본주의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이윤 확대를 위해서 더 많이 팔아야 한다. 수요보다 생산이 더 많아지고 축적되면 공황이 된다. 독점과 카르텔, 담합등이 생산과 유통을 조절하여 계획 경제 성격을 가졌다. 자본가가 생산을 조절 한 것이다. 새로운 영역에서 이윤이 창출 되지 않으면 다른 나라에 가서 창출해야 한다. 이 것이 제국 주의이며 세계 대전은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독점때문에 시장이 살아날 것이다. 사회민주당의 입장이었다. 식민주의 민중의 수탈이 이어졌다. 19세기 말 벨기에 초코렛, 리버플, 영국의 노예 무역등이 있다. 수탈에 초과 이윤을 창출하고 일부를 나눠줘서 분할 통치를 한다. 직장의 신에서 회사의 입장이 안나온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이 나오지 않는다. 노동 귀족이 등장한다. 베르슈타인 같은 수정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일부 잘못된 식민지 정책과 잔인한 식민지 관리들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로자의 <자본 축적>저서로 혁명적 객관적 조건을 해명하고 제국주의의 필연성에 대해 설명한다. 로자는 자본주의 붕괴가 경제적 붕괴로 일어나지 않고 정치적 출돌을 통해 나타날 것이라고 보았다. 즉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을 예견하였고 실제로 일어 났다.
대중의 자발성에 대해 한국에서도 널리 퍼진 오해는 대중은 지금도 충분히 능동적이고 자율성이 이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로자는 대중들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어리석고 무능한지에 대해 비판하는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대중의 자발성은 자본주의 붕괴라는 객관적 조건과 종응하게 되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경제 결정론적인 객관주의가 아니냐는 반박이 있지만 시간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중이 불충분한 의식 상태, 불충분한 조직 역량을 갖고 있더라고 끊임없이 미성숙한 실천을 통해서 자발성을 키워간다고 본것이다.
로자는 혁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붕괴라는 객관적 조건과 노동자 계급의 혁명주체화라는 주관적 조건이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보아다. 변증법적 접근을 하지 못하고 맥락에서 벗어나 로자를 해석하면 자본주의 객관적 조건에 대한 대중의 과학적 인식 수준을 톺이는 것보다 이데올로기나, 문화나, 의지의 문제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본질적인 것처럼 오해하게 된다. 또한 로자는 혁명의 주관적 조건인 노동자 계급의 주체화도 변증법적 과정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노동자 계급의 자발성은 수많은 때이른 시도와 그 시도가 가져온 쓰라린 실패 그리고 작은 성공의 경험들의 긴 과정 끝에 얻게 되는 것이고 어느 지점에 도달했다고 해서 멈추는 것도 아니다. 이두가지가 로자의 사상을 혁명의 변증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이다.(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