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체란 무엇언가 ? 다양성과 관련된 개념이라 하겠지요. 물론입니다. 차이의 철학은 다양성을 위한 철학이다. 맞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맞지 않다 해야 합니다. 다양성이란 말이 상식에 따른 말이라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다양체란 말은 다양성이란 말에 대한 위화감으로 부터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다양체란 차라리 ‘어떤 다양성인가’ 라는 물음이 다양성에 대한 통념을 지운 자리에 나타나는 개념 입니다.
일단 전체성이나 단일성과 대비되는 다양성의 관념이 있습니다. 전체주의 비판이 근거로 삼는 것이 이것이죠.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 누가 봐도 전체주의적이라 할 이 슬로건은 레닌의 민주 집중제 이론으로 부터 도출된 겁니다. 하지만 그 이론도 의견의 다양성, 토론이나 논제의 자유를 말합니다. 다만 토론이나 논쟁 이후의 결정에 대해서는 복종할 것을 요구할 뿐이죠.
반대로 자유주의는 다양성의 보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자유주의 자라도 다수가 모여 뭘 하려면 결정을 해야지요. 이를 위해 토론을 하고 투표를 합니다. 다수의 지지를 얻은 것인 결론으로 결정 되죠. 패자의 미덕은 그 결정에 승복하고 따르는 겁니다. 토론과 복종이라는 레닌의 주장과 얼마나 다른 가요. 공산당 중앙 역시 표결로 결정합니다. 대중이 표결을 직접 참여하는가 여부가 양자를 갈라 주지도 못합니다. 대표 선출에 표결로 결정하는 대의제를 만들어 낸 것은 자유주의자들 이었죠.
더욱 난감한 건 의견을 모을 것도 없이 각자 자기 뜻대로 하는데도 놀라운 통일성을 보여주는 경우 입니다. 검은 색 옷이 유행할때 핫한 거리에 나가 보세요. 개성에 민감한 분들이 모두 검은 색의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니죠. 욕망의 다양성을 말하지만 다들 비슷한 상품을 선망하고, 취향의 고유성을 주장하지만 남들 보는 드라마를 보고, 남들이 듣는 노래를 듣습니다. 심지어 자기 세계를 추구한다는 예술가도 유행하는 사조에 따라 그리고 만듭니다. 합의도 승복의 서약도 없는 이 놀라운 통일성은 다양성 보다는 획일성에 더 가까이 있습니다.
남들과 달리 유행의 첨단에서 유행을 만들어 가는 분들은 어떤가요. 남들과의 차이를 만들며 치고 나가지만 그건 ‘당신들도 남다른 걸 추구해’ 라는 명령어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멋있지 어서 다들 따라하셔’ 그들의 명령어지요. 그 경우 차이란 동일화를 선동하는 변덕스러운 미끼에 불과 합니다 유행을 선도하는 이런 분들 예전엔 궁정 사회의 중심인 왕의 수족 이었는데, 지금은 자본가의 수족 아니 자본가 자체가 된 분들이죠.
차이 철학을 비판하는 이들이 큰 약점이라 생각하는지 자주 언급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본가야 말로 차이를 좋아한다.’ 자본가야 말로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 돈을 벌려 한다는 겁니다. 이로써 차이의 철학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임을 증명했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 그러나 자본가의 새상품은 대중적인 소비, 대중들의 추종을 전제로 만드는 겁니다. 자본가의 모범을 보고 대중들이 각자의 차이를 만드는 길로 간다면 ‘오마이 갓’. 세상에서 생산은 중단 됩니다. 그들의 관심은 차이가 아니라 대중의 구매력이고, 대중의 추동 다시 말해 대중의 동일화 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끊임없이 차이를 만들려 하지만 대중들은 쉽게 추종할 것인가 여부를 척도로 삼아 만듭니다. 이런 것이 바로 자본가들이 좋아하는 차이 이지요. 대중이 쉽게 따라올 것 같지 않은 차이는 아무리 멋지고 좋은 것이라도 내치고 묵살하지요. 이런게 차이의 철학에 속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다양한 의견들을 하나의 결정으로 통합하려는 방법을 철학자들은 다자와 일자의 통일이라고 합니다. 어느 경우든 차이나 다양성은 지배적인 하나로 귀착 됩니다. 이런 통일속에서 다양성은 사실 하나의 신하들 뿐입니다. ‘일자는 다자고, 다자는 일자다’ 라는 변증법적 명제에 대해 정작 중요한 것은 잡지 못하는 성긴 그물이라고 들뢰즈는 비판합니다. 정작 강하게 말하자면 통일 이라는 말을 미끼로 다자들을 일자에게 잡아 바치는 나쁜 그물입니다. 다양체는 다양성을 사유하려는 개념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런 종류의 다양성과 결별하려는 개념입니다.
다양체 개념으로 들어가려면 또 하나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다양체는 주어진 것들의 다양성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차이의 작용과 관련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두개의 영어 단어를 비교하는 것도좋을 것 같습니다. 다이버시티(diversity)와 버라이어티(variety)가 그것입니다. 알다시시피 버라이어티는 베리(vary)라는 동사로 부터 파생된 말입니다. 반면 다이버시티는 동사적 뉘앙스가 없는 명사인데, 다이벌스(diverse)라는 말로부터 파생된 말입니다. 이 다이벌스라는 말에대해 대해 들뢰즈는 ‘차이는 다이벌스가 아니다’라고 명시적으로 말합니다. 다이벌스라는 말은 주어진 것이 풍부함을 뜻하는 말인데 차이의 철학의 관심사는 이처럼 만들어진 차이의 풍부함이 아니라 현재 상태를 어느새 다르게 만드는 차이이기 때문이죠. 이런점에서 보면 동사적 의미를 함축하는 버라이어티가 다이버시티(diversity) 보다 다양체와 휠씬 가까이 있습니다.
다양체란 말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의견이나 성질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것이 변이 즉 베리에션(variation)의 과정중에 있느냐 하는 겁니다. 많은 것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그것이 변화속에 있는가, 멈춰있는가가 바로 문제라는 겁니다. 이를 철학적으로 부각시켰던 철학자는 베르그송 이었습니다. 그는 양적 다양체와 질적 다양체, 연장적 다양체와 지속적 다양체를 대비하여 구별 합니다. 종소리를 들으며 몇번째 치고 있는지 셀때 우리는치는 소리에 공간적 간격을 도입해서 소리의 지속을 분리합니다. 치는 소리는 크든 작든, 높든 낮, 횟수만 세워집니다. 음질이나 음향의 변화도 무시 됩니다. 동질화 된 채 숫자만 세워주는 거죠. 그래서 이를 양적 다양체라고 합니다.
반면 바흐의 푸가를 들을때 우리는 소리들을 분리하는 게 아니라 지나간 소리도 끌어당겨 결합하여 듣습니다. 다른 음고와 음가를 갖는 소리들이 서로 수축되어 하나로 결합될 때 소리는 선율이 됩니다. 여기선 소리의 횟수가 아니라 소리가 모여 만든 선율의 질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질적 다양체라고 합니다. 하나의 연주 자체가 다양성이 살아 있는 다양체인 겁니다. 질적 다양체에서 소리의 강약이나, 소리 하나의 길이 음색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합니다. 이 변화에 의해, 그변화를 만드는 연주자의 능력에 의해, 다른 다양체가 됩니다. 곡도 소리도 모두 지속적 다양체 입니다. 고저 장단과 상관없이 동질화된 다양체는 연장적 다양체 입니다. 변화 양상이 삭제되서 동질적 부분들의 연장이 된 다양체란 뜻이지요. 반면 지속적 다양체는 상이한 것들이 지속적으로 달라지면서 섞이기에 분할 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분할 하면 각부분이 결코 동질적일 수 없는 다양체 입니다. 하지만 질과 양, 공간과 시간의 대비는 들뢰즈에겐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가 보기엔 질이란 강도들의 분포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공간 또한 연장적 공간만 있는 게 아니라 강도적 공간도 있습니다. 수정란의 표면이 그렇죠 . 이렇듯 양적이면서 강도적인 공간까지 다루기 위해 들뢰즈는 리만의 다양체 개념을 도입합니다.
리만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일반화 하여 다양체 이론을 착안했습니다. 데카르트 좌표계로 표시되는 유클리드 공간은 어디서나 동질적이지요. 길이나 면적 20은 10은 2배, 5의 4배 입니다. 둘로 나누면 동일한 10자리 도형 둘이, 4로 나누면 동일 한 5짜리 도형 4개가 나옵니다. 동일한 단위를 척도로하는 좌표계는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동질적 연장으로 만듭니다. 이를 기준으로 공간안에서 도형이나 입체의 길이, 면적, 부피 등이 계산되고 비교 됩니다. 그런데 휘어진 공간인 경우엔 이게 잘 통하지 않지요. 지구본에 그린 정사각형 면적을 평면에 그린 것과 같은 방법으론 계산할 수 없지요. 공간이 휘어진 정도를 곡률이라고 하는데 곡률이 달라지면 좌표 축도 휘어진 정도가 달라집니다. 곡률이 커지면 직선적 좌표계에서 계산한 것과 편차가 더 커집니다. 좀더 난감한 경우는 곡률이 일정하지 않은 경우 일겁니다. 이런 공간에서 계산을 하려면 미시적인 스케일로 달라 지도록 계산의 척도를 바꿔야 합니다. 즉 계산의 척도 자체가 연속적으로 달라집니다. 여기선 미분적인 스케일의 미시적 척도를 사용합니다. 들뢰즈는 리만의 용어를 약간 바꿔서 유클리드 공간 처럼 하나의 척도를 가지며, 모든 부분이 동질적인 다양체를 이산적 다양체라고 합니다. 반면 미시적 척도가 연속적으로 달라지는 다양체를 연속적 다양체라고 합니다. 척도가 그대로인 체, 수나 종류가 늘어날 뿐 이라면 아무리 많아도 그건 모두 척도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게 그거 인 다양성 입니다. 화폐라는 척도에 메어 있는 한 친절함도 상품의 일종 즉 서비스 일 뿐이죠. 선택의 척도가 동일하다면 선택지가 3개든 300개든 동일한 결과에 귀착 됩니다.
질적으로 다른 선택지들이 있다고 해도 그 질이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이미 주어진 것 안에 갇힌 선택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분할 할때 마다 달라지고 더하거나 뺄때 마다 척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겁니다. 선택할 때마다 변화가 발생하는 것, 선택 자체가 변화를 만드는 겁니다. 말단에서의 변화가 중심으로 치고 들어가고 척도 마저 바꾸는 것, 모든 변화가 척도 자체를 잠식하는 것, 이것이 다양체 개념이 겨냥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다양체 안에서 선택하고 욕망하고 결정하고 있나요. 이것을 물어야 한다는 겁니다.
들뢰즈의 다양체 개념은 동질화될 수 없는 변화의 지속적 다양체와 척도 자체가 연속적인 다양체가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합니다. 이 다양체 개념에서 강도는 매우 중요 합니다. 강도의 변화가 슬그머니 척도를 바꾸고 본성 마저 바꿀 수 있기 때문이죠. 연주자가 만드는 소리의 강도가 정해진 악보의 곡을 아주 다른 곡으로 만들지요. 요리에 섞여 든 짠맛 쓴맛 등의 강도가 훌륭한 요리와 끔찍한 요리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아주 빠른 속도 즉 강도는 운동하는 비행체안에 시간 척도를 느리게 가도록 바꿉니다. 상대성 원리란 중력과 가속도가 같다고 하는 가정을 뜻하는데 중력을 가속도라는 강도로 제정의 하는 겁니다. 그런데 중력이 큰별이나 블랙홀은 공간을 휘어지게 만듭니다. 강도가 척도를 바꾸고 연장적 공간을 강도적 공간으로 바꾸는 겁니다. 동질화된 연장적 다양체로 부터 다수를 일절 복속 시키는 중심화된 다양체에서 벗어날때 다양성은 진정한 다양성이 됩니다. 즉 다이버시티는 진정한 멀티플리시티(multiplicity)되는 거죠. 이를 위해 들뢰즈는 일자를 미분적 크기로 축소하거나 아니면 아예 제거하자고 합니다. 이념이라는 미시적 일자를 통해 다양한 양상으로 구성되는 다양체 혹은 단일한 중심이 일절을 제거하여 무언가 더해지거나 뺄 때 마다 전체가 달라지는 리좀적 다양체가 그겁니다. 들뢰즈는 모든 것을 이런 다양체 개념 통해 사유하고자 합니다. 모든 것은 다양체다. 심지어 다자도 다양체다. 일자도 다양체다. 우주는 다양체고 지구도 다양체 입니다. 우리의 신체도 다양체입니다.
조프루아 샌틸레르(Geoffroy Saint Hilaire) 가 동물들의 신체를 미시적 잔뼈들로 구성된 다양체라고 보았다면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은 모든 생물이란 박테리아적 기원을 갖는 미생물들의 다양체라고 할 겁니다. 앙토네 아르토라(Antonin Artaud)면 신체의 표면과 심층을 오가는 힘들을 강도적 다양체라고 했을 겁니다. 우리의 영혼 또한 다양체 입니다. 읽는 책에 따라 뜻밖의 경험에 의해, 만나는 사람에 의해 판단기준이나 사고 방식이 달라지며 어떤 판단을 산출하는 다양체 입니다. 무의식도 다양체고 책도 다양체이며 문화도 정치도 다양체입니다. 이제 다양체란 일자와 다자의 통일이라 해도 좋습니다.그때 일자란 다자들을 하나로 묶어 전체로 만들어주는 거대한 숨은 실세가 아니라 차라리 상이한 다자들 속에 스며들어 각각의 힘과 방향을 규정하는 미시적 벡터입니다. 모든 다자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하나의 전체가 아니라 다자들 사이를 오가며 그것을 연결하며 소통시키는 리좀적 연결망입니다. 그 다자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흐름의 장입니다. 이질적인 다자들을 하나로 묶어서 서로 공명하며 하나처럼 작동하게 할 때 조차 각자가 갖는 이질성을 제거 하지 않는 일관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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