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성이란 무엇인가 ? 특이성이란 특이점들의 분포라고 들뢰즈는 정의 합니다. 특이점이란 미분이론에서 온 수학적 개념인데 미분 불가능한 점을 뜻합니다. 하지만 특이성은 효소 특이성과 같은 생화학적 개념이기도 하고, 특이점 또한 어떤 힘의 장에서 힘이 방사되는 점처럼 물리학적 개념이기도 합니다. 개성을 표현하는 독특성이나 고유성 같은 개념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흔한데 들뢰즈는 특이성을 전개체적 비인격적인 것이라고 말할뿐아니라 고유성과도 대비 합니다. 특이성은 또한 특수성이 아닙니다. 특이성은 모든 전칭적인 보편성, 일반성과 대비되지만 반복 가능성으로 인해 아주 다른 종류의 보편성을 함축하기도 합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자연학적 개념으로서의 특이성으로 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 합니다.
먼저 수학에서 특이점이란 미분 불가능한 점인데 가령 삼각형의 꼭지점 같은 첨점이나 끈어진 곡선의 첨점이 바로 그런 점입니다. 미분 가능하다는 말은 한점에서 곡선이 연속이고 좌 미분계수와 우 미분 계수가 같다를 뜻합니다. 쉽게 말하면 미분계수가 하나만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령 양쪽 각이 45도인 이등변 삼각형 밑변을 x축에 놓으면 상부의 첨점에서 우미분 계수는 1인데 좌 미분 계수는 -1입니다. 미분계수가 둘인거죠. 단지 둘만은 아닙니다. 알다시피 미분계수란 곡선상 한점에서의 접선의 기울기 이기에 그 첨점을 지나는 접선은 무한히 많아서 1과 -1사이의 모든 값이 미분 계수가 됩니다. 이처럼 하나가 아닌경우 수학에서는 미분 계수가 없다고 합니다.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없다고 합니다.
물리학에서 특이점은 힘이 방사되는 점입니다. 가령 자석과 쇳가루를 이용하는 실험에서 흔히 보듯이 자석이 있는 점이 그 자기장의 특이점 입니다. 자석들 수나 위치등 분포를 바꾸면 자기장이 크게 달라 집니다. 자기장의 특이성이 달라 지는 겁니다. 중력장에서는 지구나 태양처럼 중력을 갖는 물질들이 특이점 입니다. 기상학에선 저기압나 고기압의 중심이 바로 특이점 입니다. 이 특이점의 분포가 그날의 기상의 특이성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일기예보는 이 기상적 특이성에 통해 이루어 집니다. 한랭전선, 대륙풍, 집중호우, 마른 장마 같은 개념이 그겁니다. 이는 모두 특이점들의 분포 양상으로 인해 반복되는 기상의 특이성을 표현하는 개념입니다. 원자의 구조도 특이점인 입자들의 분포로 서술됩니다.
특이점은 어떤 힘이 방사되는 지점입니다. 물론 힘에는 당기는 힘이 있으면, 밀치는 힘이 있고 관성적 힘이 있으면 벗어나는 힘도 있습니다. 여러 양상의 힘이 있습니다. 입자들은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중력 등 상이한 유형의 힘을 방사합니다. 같은 전자도 이웃하는 입자들에 따라 당기기도 하고 밀치기도 합니다. 이런 힘들에 따라 특이점들은 결합하기도 하고 분해 되기도 합니다. 결합이나 분해에 의해 특이점들은 하나의 특이성에서 다른 특이성으로 이행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특이성은 특이점들의 이웃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성을 갖는 어떤 사물은 다른 특이적 사물과 결합되면 다음 층위에서 다시 특위성을 구성합니다. 즉 그 특이성이 특이점이 됩니다. 가령 시토신이라는 핵산은 이웃관계에 따라 다른 아미노산이 됩니다. 즉 세린이 되기도 하고 프롤린이 되기도 하고 알라닌이 되기도 합니다. 이 아미노산들은 다른 아미노산과 결합하여 단백질을 만듭니다. 이웃하는 아미노산이 달라지면 다른 단백질이 됩니다. 세린은 규정된 특이성을 갖는 아미노산이지만 단백질의 특이성을 형성할때에는 하나의 특이점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특이점은 특이성을 구성하지만 역으로 자신이 구성하는 특이성에 의해 다른 본성을 갖게 됩니다. 산소 원자는 산소 분자에 참여하여 불을 내는 성질의 특이성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물분자에 참여 하여 불을 끄는 성질의 특이성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특이성이란 불을 내고 불을 끄는 이런 개개의 성질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이런 성질들이 발생하는 모태라는 점입니다. 어떤 효소의 촉매적 성질이 아니라 촉매 반응을 가능하게 해주는 모태가 효소 특이성 입니다. 그렇다고 특이성이 특이점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집단이나 복합체의 특이성은 특이점이 하나라도 추가되거나 빠지면 다른 것이 됩니다. 같은 산소 원자로 이루어진 복합체이지만 산소 분자와 오존 분자는 아주 다른 특이성을 갖습니다.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특이점과 특이성의 이런 관계는 동일합니다. 하나의 동일한 개인이 어떤 축구팀의 특이점이 되기도 하고 가족이나 록밴드의 그것이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축구팀에 들어가면 수비수들을 빠르게 불러들이는 특이점이 되지만 다른 축구팀에 들어가면 답답하고 소심한 플레이를 만드는 특이점이 되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는 팀을 구성하는 다른 특이점들과의 관계로 인해 야기 되는 것입니다. 즉 내가 한집단에서 어떤 특이점이 되는 가는 내가 참여한 집단의 특이성에 의해 규정됩니다. 물론 내가 빠저버리면 크게 달라지는 게 그 특이성이니 그 특이성은 내가 만드는 것임은 분명합니다. 내가 빠져도 집단의 특이성이 변하지 않는다면 나는 특이점이 아니라 보통점입니다. 참여는 해도 특이성을 구성하지는 못하는 겁니다. 삼각형에서는 세개의 꼭지점 말곤 모두 보통점입니다. 덧 붙이면 극대점, 극소점, 변곡점 같은 점들은 미분 가능한 점이지만 곡선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특징점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특이적 집단은 전체지만 특이점에 의해 본성이 만들어 지고 달라지는 전체이니 전체라하기에 불충분합니다. 전체성 없는 전체, 일자 없는 다양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심이나 전체가 통합력이나 지배력을 갖는 유기체적 집단이 확고한 안정성을 갖는다면 상이한 특이점의 힘들이 살아있는 이런 집단은 준 안전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에서는 전체를 통합하는 중심만이 특이점입니다. 반면에 후자에게는 상이한 힘을 갖는 복수의 특이점이 있는 겁니다.
전자가 내부적 안정성이 강하다면 후자는 외부적 가변성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특이점이 드나들때 마다 달라지니까요. 이는 특이점들이 분리되면서 복합체 내 집단이 해체되기 쉽다는 뜻을 함축합니다. 특이점은 인력과 척력을 모두 갖기에 때에 따라서는 다른 특이점을 끌어들이는 업 트랙터가 되고 또 어떤 때에는 서로 멀어지고 밀쳐내는 반발점이 되기도 하는 겁니다. 록 밴드들이 쉽게 해체되는것이나 멤버 구성원 하나가 달라지면 밴드 색체 전체가 달라지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늑대의 무리도 그렇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들뢰즈와 가타리가 밴드나 무리라는 집단 형태를 유기체와 대비하여 긍정합니다.
특이점과 특이성의 관계는 기묘한 면이 있습니다. 특이점이 특이성을 구성하지만 구성된 특이성이 각 특이점의 본성을 규정하는 방식으로만 하니까요. 이는 특이점이 미규정성을 갖는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특이성을 갖는 복합체도 미규정을 갖기에 다시 특이점이 될 수 있습니다. 단순한 특이점도 특이성을 갖는 복합체도 규정성과 더불어 규정가능성들로 충만한 미규정성을 갖고 있는 겁니다. 들뢰즈가 말하는 잠재성 개념이 미규정성, 규정가능성, 규정성을 모두 갖고 있음을 안다면 특이성 개념이 잠재성 개념과 대응함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또한 들뢰즈는 의미란 사건이고 특이성이라고 정의 합니다.
차이 철학의 다른 개념이 그렇듯이 특이성 개념 또한 기존의 익숙한 개념들과 대결 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타격을 가하는 것은 전층적인 보편성과 그것의 짝인 특수성 개념입니다. 전통적인 보편성 개념은 모든 것의 공통된 어떤 특질을 그 내용으로 합니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모든 인간은 사고 능력이 있다. 모든 인간은 눈이 둘이다 등등.. 보편성 개념이 착목하는 것은 이처럼 모든 인간에게 있는 이런 특징입니다 . 인간의 동일성을 정의해주는 게 이런 겁니다. 그러나 이런 것 만큼 뻔하고 평범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니체는 보편성 만큼 별 볼일 없는게 없다고 한적이 있습니다. 특수성은 보편과 개별의 통일로 정의되는데 보편자가 개별자를 관통하는 특수한 양상을 뜻합니다. 개별자를 보편자가 포섭하는 방법 입니다.
반면 특이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이 평범한 보편성이 아니라 흔히 보기 힘든 면을 보려 합니다. 알다시피 특이하다는 말은 평범하다 통상적이다라는 말과 대비됩니다. 이런거야 말로 정령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란 말입니다. 심지어 당연해 보이는 보편성 조차 남다른 특이성으로 보려 할때 주목할 이유가 발생합니다. 모든 사물은 땅에 떨어진다는 얘기는 보편성을 갖지만 아무리 힘 주어 말해도 주목하는 이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를 중력이라는 특이한 힘으로 개념화 했을때 사태는 아주 달라집니다.
뉴턴의 업적이라고 부르는 중력의 보편성입니다. 그 특이한 힘의 매력에 이끌려 여기에도 저기에도 사용해보려는 게 보편성으로 나아가게 한 거 아닐까요. 실제로 중력 개념의 발전 과정이 그랬습니다. 애초에 자석의 특이한 힘에 매혹된 마술사들의 비밀스러운 전승이 있었습니다. 1269년 자석을 자르거나 구형으로 깍는 실험을 했던 패트롤 페르그누스도 그 중 한명입니다. 이런 관심은 지구가 거대한 자석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졌죠. 케플러가 이런 자석의 철학에 영향을 크게 받았음은 잘 알려진 사실 입니다. 갈릴레이는 이를 아주 싫어 햇습니다. 물론 뉴턴은 자기력은 열을 가하면 사라지기에 태양이 자기력을 가질까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직접 접촉 없이 당기는 별의 중력이란 발상은 자석의 특이한 힘에 대한 마술적 관심으로 부터 나온 것임은 분명합니다. 이와 달리 중력을 가속도와 연결 했을때 중력 개념은 다른 특이성의 장을 펼치게 됩니다.
사실 특이성 개념은 전칭적 보편성 개념을 비판하지만 다른 종류의 보편성 개념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자석의 특이성은 모든 돌의 평범한 보평성과 대비 됩니다 그렇지만 직접 접촉 없이 밀고 당기는 돌이라면 어떤 것이든 해당되는 것이기에 조건적 보편성을 갖습니다. 모든 시토신(사이토신)이 세린을 만들지는 않지만 양쪽에 우라실과 접속한 시토신이라면 어떤 것이든 세린을 만듭니다. 결국 핵심은 평범한 공통성을 모아서 전칭적 보편성을 구성하는 가 아니면 특이성을 통해 조건적 보편성을 구성하는 가의 차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들뢰즈는 특이성이란 비인칭적이고 전 개체적 임을 강조 합니다. 특이성은 개개인의 인격과 독립적일 뿐만 아니라 나라는 통합된 인칭적 주어와 무관하다는 점에서 비인칭 적입니다. 가령 나의 면역 특이성은 사실 내가 아니라 면역 세포에게 속합니다. 내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혁 질환이나 내게 필요한 음식에 반응하는 알레르기는 이를 잘보여 줍니다. 나란 주어 이하에 속하니 비 인칭적이고 나란 개체 이전에 속하니 전 개체적입니다. 스피노자 사유의 특이성은 단지 스피노자 개인에 속한 게 아닙니다. 그런 유형의 사고가 나타나면 언제나 우리는 스피노자적 이라고 부르는게 그걸 보여줍니다. 그래서 들뢰즈는 아이들은 스피노자 주의자라고, 스피노자를 읽지 않아도 스피노자주의가 될 수 있다고 한적이 있습니다. 반면 생각은 페미니즘적인데 손과 발은 가부장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상반되는 특이성이 한 개인의 인격안에 분열된채 공존하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특이성은 개체나 인격에 속하지 않습니다.
특이성이 대결하려는 또하나의 개념은 고유성입니다. 누군가에게만 고유하게 있는것 누군가 만이 갖고 있는 소유물 그게 고유성 입니다. 개인에게 고유한 것을 강조하려는 이들은 고유명사의 개별성을 강조하지만 인간에게 고유한 것을 강조하려는 이는 모든 인간이 갖는 인간만의 독특성을 강조합니다. 인간만의 독특성은 사실은 인간 모두가 갖는 보편성 가운데 일부를 자의적으로 선별한 겁니다. 눈이 둘이라는 동물은 맣으니 그건 빼고 생각하는 동물이나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은 없는 것 같으니 그게 인간 고유의 본성이라고 하는 식입니다. 왜 그걸 선택하는 가 통념적으로 자명해 보이고 그래서 남들이 쉽게 동의해 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이 갖는 성질은 사실 무한히 많습니다. 그러니 인간만의 고유성 처럼 자의적인 것도 없습니다. 무한히 많은 것중 하나일뿐이니까요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러한 고유한 본성이 실은 인간 아닌것에 대한 인간들의 나르시스적 편견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생각 언어 노동 도구 놀이 등 인간의 고유성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대부분을 다른 동물, 나아가 식물 또한 갖고 있으니까요.
다른 이에게 없는 개인적 차이를 뜻하기에 고유명사야 말로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습니다. 고유명사가 마치 차이 개념의 정수라도 되는 듯이 그러나 유행하는 옷을 입으며 개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실은 남다를 것 없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이들이 대부분 입니다. 고유 명사는 나만의 것이라는 착각속에 있는 평범성을 보여 줄 뿐입니다. 자신은 알지 못한채 남들과 공유하고 있는 즉자적 보편성에 다른 이름입니다. 게다가 고유명사는 인간말고는 안중에 없는 좁은 시야 안에 갇혀 있습니다. 고유 명사가 차이 철학의 관심대상이라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차이는 잡다가 아니다’라는 들뢰즈의 말을 상기하는 게 좋습니다. 평범한 모든 것은 개별적이든 누군가에게 고유하든 차이 철학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특이한 것입니다. 개인에게 고유하지 않고 특정한 사람들에게 공통된 것이라 해도 특이성은 중요합니다. 고유명사 가운데 소멸의 시간속에 살아 남은 것은 모두 어떤 특이성 때문입니다. 플라톤, 스피노자, 막스 모두 사유의 특이성 때문에 지금까지 소멸하지 않은 고유명사 들입니다. 스파르타쿠스도 마리앙뚜아네트도 혹은 스탈린이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도 잊혀지지 않는 특이성으로 인해 아마도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을 이름입니다. 따라서 고유명사 역시 다시 정의 해야 합니다. 고유명사란 비인격적 특이성의 이름이다라고. 어떤 고유명사로 표현되는 특이성을 누군가가 보여준다면 그이름은 다시 불려 나옵니다. 그런점에서 특이성은 영원성을 갖습니다. 반복될때 마다 불려 나올테니까요. 그러나 같은 이름으로 불려 나온다 해도 불려 나올때마다 다른 양상으로 불려 나올 겁니다. 모든 반복이 차이의 반복이듯이 말입니다.
특이점이 힘을 방사하듯 특이성도 힘을 방사 합니다. 우리의 시선이나 마음을 잡아 끄는 어트렉터 입니다. 자신이 소유한 고유성을 자랑하고 그것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자신이 알지 못했던 특이성에 매혹되어 자기를 떠나 휘말려 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휘말려 특이성의 장에 끌려들어갈때 우리는 다시 특이성의 표현이 되어 다른 이들을 끌어 당기게 됩니다. 특이성 그것은바로 매혹과 휘말림의 힘이 작용하는 장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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