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 무단뿌라 지역으로 향했다. 비단산업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건물 밖에 직조 공장 소리가 들렸다. 무슬림과 힌두의 싸움인 '마단뿌라' 폭동을 생각 하였다.
바라나시 하면 유명한 산업이 몇 가지 있다. 그중 예로부터 대표적인 것이 실크, 비단 산업이다. 바라나시의 실크 산업은 영국 식민지 이전부터 중국의 실크와 함께 경쟁하면서 유럽이나 타지로 수출되었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산업으로 현재까지 그 명성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산업에 종사하는 숙련 직조공의 대다수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모민 안사리'라는 무슬림 내에서도 특정 집단으로 분류되는 직조공 계급이다. 전통적으로 '줄라하'라고 불렸다. 바라나시 내에서 다수의 무슬림이 이 게급에 속한다.
이들은 바라나시 내에서도 특정 지역에 모여 사는데 그곳은 '마단뿌라'라는 곳이다. 약 2만명 이상의 모민 안사리 무슬림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중세 이슬람 침입 이후로 하층 카스트 계급에서 무슬림으로 개종한 사람들의 후예다. 독립된 인도에서 그리고 힌듀교의 최대 성지 바라나시에서 무슬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모민 안사리들에게 놀록치 않은 길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이어져온 가업에 따라 비단 직조공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용인으로서 지위만 허락된 가업일 뿐이다. 비단 산업의 무역상이나 공장주들은 거의 대부분 힌두교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혜택은 고용주들의 몫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그 모습은 변함이 없다. 두 집단은 공생관계에 있지만 불평등한 공생관계 일 뿐이다.
1991년 11월 마단뿌라에서 폭동이 일어 났다. 경찰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몇 명이 죽고, 45일간 통금이 이어졌다. 마단뿌라에서 힌두교의 칼리 여신 우상을 모신 가두 행렬을 향해 돌팔매질을 한 사건이 발달이 되어 그 지역에 사는 무슬림들을 향한 힌두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진압하던 경찰들은 힌두편에 서서 무슬림들을 일방적으로 공격했고, 그 과정에서 살마들이 죽었다 또한 마단뿌라 지역 무슬림 정치인 아니스 안사리 박사가 무슬림 폭도들을 비호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끌려가 맞아 죽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힌두계 지역 신문들은 무슬림은 테러리스트이며, 파키스탄의 사주를 받아 이런 폭동이 일어났다고 계속해서 여론을 조성했다. 사회적 소수자인 무슬림들은 여론 장악력에서도 수세에 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다.
이산건의 배후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바라나시 인구의 25퍼센트를 차지하는 무슬림들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오다 최근에 무슬림 직조공들이 힌두 무역상이나 공장주들을 거치지 않고 무슬림 상인들('가디다르')과 직거래를 통해 수입을 창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힌두 무역상과 공장주들은 즉시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었고, 무슬림에 대한 장악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힌두들 사이에서는 무슬림과의 새로운 경쟁관계를 넘어서서 자신들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무슬림이 무력시위를 하거나 테러행위를 감행하지 않았음에도 힌두들에게는 가상의 적이 된셈이다. 힌두 경제인들은 힌두 성지 바라나시의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여 소위 공권력을 지닌 정치인과 경찰을 등에 업고 힌두 성지가 무슬림들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고 선전하며 무슬림 직조공들을 공격했다. (p. 166, 또다른 인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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