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거실 불을 켰다. 무심코 바라본 스투키 옆에 작은 스투키 싹이 돋아 나고 있었다. 스투키는 일직선의 녹색 막대 처럼 보인다. 곧게 삐죽 삐죽 뻗어 있는 느낌이다. 용설란과의 다육 식물이다. 한화분에 아홉개를 심어 놓았다. 올 봄에 공기정화 목적으로 들여 놓았다. 선인장 처럼 오랫동안 외적인 변화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항상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자리를 지킬 것으로 기대 했다. 외부에서 보았던 스투키보다 크지 않아서 먼저 자랄 것으로 생각했는데, 3개의 스튜키에서 작은 싹이 돋아 난 것이다. 물도 거의 주지 않았고, 돌보지도 않았는데 생명력이란 놀라운 것이다. 신기 하였다. 올봄에 뱅갈고무 나무, 몬스테리아, 알로카시아, 파키라, 스투키를 들여 놓았다. 파키라만 중간에 말라 버렸다. 몇년전에도 커다란 알로카시아와 파키라를 키웠었다. 몇년을 키웠는데 이사하고 나서 말라 죽었다. 잎이 마르자 물을 듬뿍 주었는데 다시 살아 나지 못했다. 화분을 정리하면서 흙을 보았다. 물기가 많이 고여 있었고 뿌리가 썩어 있었다. 물을 너무 많이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름 살리려고 물을 주었는데 그게 죽음의 원인이 된 것이다.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동물에 대한 애정 표현이 의도하는 다르게 죽음을 불러 올수 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유럽과 북미의 국립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아기 사슴을 자주 만나게 된다. 어미가 멀리 있지 않음에도, 그 아기 사슴은 외롭고 쓸쓸해 보이기 심상이다 산보하는 사람들은 측은한 마음도 들고, 커다란 플러시 천 인형처럼 마냥 순하게만 보이는 동물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 기쁘기도 해서, 그 아기 사슴을 쓰다듬어 주고 싶어 한다. 그 손짓에는 공격적인 의도가 전혀 없고, 사람이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면 아기 사슴은 더욱 온순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만지는 것이 아기 사슴에게는 치명적인 행위가 된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 처음 몇 주 동안 어미 사슴은 오로지 냄새를 통해서만 자기 새끼를 알아본다. 그 손길이 아무리 다정스러웠다 해도, 일단 사람의 손길이 닿고 나면 새끼 가슴의 몸메 사람 냄새가 배어든다. 미약하지만 오염성이 강한 그 냄새는 새끼 가슴의 후각적인 신분 증명서를 쓸모없게 만들어 버린다. 아기 사슴은 가족을 다시 만나자마자 버림받는 신세가 된다. 어떤 사슴도 다시는 그를 받아 주지 않기 때문에, 아기 사슴은 굶어 죽는 형벌에 처해진 거나 다름이 없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스투키는 거의 방치한다는 느낌으로 키웠는데 작은 싹을 키웠다. 공원에서 아기 사슴에 대한 애정 표현이 아기 사슴의 죽음까지 이르게 하였다. 식물이나 동물에 대한 애정은 올바른 이해로 부터 시작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애정과 관심은 나의 관점이나 의도가 아닌 받는 대상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생각한 계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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