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창문을 열자 나뭇가지에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이 들어 왔다. 붉은 색은 나뭇잎에 흰색의 눈이 아름답게 보였다. 아이들을 깨웠다. 첫눈을 알렸다. 창밖을 보자 외쳤다. “눈이다.” 눈을 보면서 어렸을 때 겨울 풍경을 떠올렸다. 시골에서 자랐다. 넓은 마당이 있었고 마당 앞에는 넓은 계단과 같은 논이 층층히 펼쳐져 있었다. 고개를 들면 앞산이 버티고 있었다. 시골에서는 아침이 되면 앞 방문을 활짝 열었다. 우리는 무조건 일어 나야 했다. 밤사이 눈이 온날,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하얀 세상이 펼쳐져 있는 풍경을 바라 보았을때 그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은 묘사하기 힘들다. 어렸을때 시골은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 지금도 겨울하면 처마 밑에 나란이 늘어뜨린 고드름과 마당 왼편 감나무 가지에 얹혀 있던 눈이 생각난다. 눈이 온날은 하루종일 바빴다. 아침부터 마당에 쌓인 눈을 치웠다. 비로 쓸고 넉가래로 눈을 밀었다. 강아지도 즐거운지 눈 밭을 뒹굴다가 나를 따라 왔다.
겨울 놀이를 즐기기 위해 지금 처럼 스키장이나 눈 썰매장에 갈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비닐 비료 포대를 들고 언덕으로 올라 갔다 .비료 포대를 타고 내려오면서 바람을 갈랐다. 언덕을 내려 오면 눈속에 파 묻혔다. 오전 내내 눈 썰매를 탔다. 옷과 양말이 젖어 온몸이 꽁꽁 얼어도 마냥 즐거웠다. 장작불을 지피고 양말과 옷가지를 말리던 기억도 난다. 그 장작불에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 먹으면 꿀 맛이었다. 그 때는 눈이 오면 오늘 처럼 하루에 녹아 없어지지 않았다. 몇일이 갔다. 그러면 인근 언덕에 쌓인 눈은 녹으면서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얼음위로 대나무 스키를 탔다. 대나무를 구부려 만든 스키 였다. 대나무 위에 발을 올려 놓고 서 있으면 속력을 내면서 미끄러져 나간다. 스키 처럼 방향을 틀 수 없다. 정해진 경로로 내려 간다. 눈 썰매와 비슷하지만 서서 탔기 때문에 스키 였다. 집 주변의 밭은 눈 사람을 만들 기 좋은 곳이였다. 작은 눈을 뭉쳐 굴리다 보면 어느새 큰 덩어리가 되었다. 여러 종류의 눈사람을 만들었다. 어른 눈사람, 강아지를 닮은 눈사람, 허수아비 눈사람... 솔방울로 눈을 만들고 나무가지로 팔을 만들었다. 추울까봐 모자도 씌워 주었다. 눈 사람을 만들고 난후 편을 갈라 눈싸움도 하였다. 서로 상대편을 공격하고 도망가고 따라가고 시간 가는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추웠던 기억은 거의 없고 흐린날에 구름이 걷히고 따사로운 햇살이 비쳐 내몸을 따사롭게 감싸주던 기억 만이 남았다. 가끔식 눈이 오면 그 시절이 그리움으로 다가 온다.
애들에게 비슷한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플라스틱 눈 썰매를 사서 공원에서 끌고 다녔다. 2개를 사서 눈썰매 시합도 하고 눈 싸움도 하였다. 동네 공원 넓은 잔디에 눈이 쌓이면 눈사람도 같이 만들었다. 나의 어렸을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동네 친구들과 만들었다. 애들 세대에는 같이 노는 놀이 문화가 많이 없어졌다. 어렸을때 부터 바쁘다. 유치원과 학원에 가야 된다. 놀시간이 없고 친구를 만나려면 학원에서, 유치원에서 만난다. 혼자 있는 시간에 핸드폰 게임을 하고 TV를 보고 인테넷에 접속해 있다. 디지털 시대이다. 디지털 세대이다. 디지털 세대는 우리가 어렸을때 경험하였던 아날로그적 낭만을, 인간적 감성과 아름다운 추억을 잃어 가는 것 같다.
현재의 낭만을 이야기 하면 분위기 좋은 카페를 생각한다. 음악과 함께 마시는 커피를 떠 올린다. 카페가 이국적 이거나, 다른 나라 카페 이면 낭만은 배가 된다. 야경이 보이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와인을 마시는 모습도 낭만적이다. 여행도 빼놓을 수 없는 낭만의 모습이다. 겨울의 낭만은 스키장이다. 스키를 타고 콘도에서 근사한 식사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을 우리는 TV, 영화, 광고에서 많이 보았다. 낭만을 위해서는 경제적 여유를 요구한다. 나는 가끔식 또 다른 낭만을 생각한다. 시간과 돈을 들여 멀리 가지 않아도 아름다운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낭만이다. 사진, 미술작품, 그리고 음악을 감각으로 이해하고 즐기는 낭만이다. 잠들어 있는 감각을 깨우고 열어주는 낭만이다. 인간적인 감성이 살아 있는 그런 낭만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