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념들의 구축과 다양성의 존재론
들뢰즈의 철학적 탐구는 독창적인 구성주의적 성격을 유지하며 전개되었다. 들뢰즈는 철학이 사고하려는 욕망이나 지혜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이나 필요성에 의해 탄생했고 이러한 상황을 결정짓는 것은 생각할 여지를 마련해 주고 결과적으로 해석해야 할 일종의 기호로 부각되는 무언가와의 우발적이고 때로는 충격적인 만남이라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철학은, 해석의 요구에 답한다는 차원에서, 어떤 ‘개념의 창조'에 가까웠다.
들뢰즈가 지닌 사유의 이미지는 '다양체' 개념에 집중된다. 무엇보다도 이 용어는 어떤 식으로든 통일적이고기초적인 성격의 단위나 원천적인 단계에서 주어질 수 있는 기본적인 단위의 특성을 가리키지 않으며 아울러 사유가 목적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상이한 '다양성들'을 하나의 체계 안에 조합하고 여기에 통일성을 부여할 수 있는 어떤 목적의 특성을 가리키지도 않는다. 들뢰즈는 어떤 기초 단위도 어떤 체계도 전제하지 않는 다양성의 이론을 구축 했다.
그렇다면 이 '다양체'라는 실체를 우리는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다양성의 어떤 '총체'를 생각한다는것은 가능한 일인가? 무엇보다도 다양체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가?
들뢰즈는 다양성의 어떤 '총체'가 실재한다고 보았고 이 '총체'가 어떤 “공존 가능성의 다양성"이라는 특성을 지니며 연쇄적 상관관계를 유지하는 다수의 '개별체'들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피에트로는파올로보다 작다'라 는 문장을 살펴보자. '크다'는 특성이나 '작다'는 특성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러한 개념들의 의미는 이들의 관계에서만 부각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 '더 작다'는 상대적인 특성은 어느 한쪽만의 특성도, 그렇다고 두 쪽 모두의 공통된 특성도 아니다. 다시 말해 이 문장은 피에트로라는 사람 자체가 객관적으로 작다는 말을 하는 것도, 그렇다고 피에트로와 파올로 가 모두 제삼자에 비해 더 작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적인 특성은, 이를 테면, 중립적인 위치에 머문다. 그런 식으로 상대적인 관계 자체는, 연루된 비교의 대상들이 불변하는 경우에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탁자 위 에 잔 하나가 놓여 있는 경우에 우리는 잔을 어느 한쪽으로 치울 수 있고 이때 이 두 대상의 관계에 변화를 주는 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잔이나 탁자 자체의 본질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문장, '엘리스는 자란다'를 예로 들어 보자. 이 문장에서는 한 명에게만 하나의 사건이 적용된다. 어쨌든 엘리스가 자란다고 말하는 것은 곧 엘리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게 성장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동시에 엘리스가 좀 더 크게 자라기 바로 이전 상태, 즉 좀 더 작았던 상황을 전제로 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단순한 문장속의 엘리스는 성장이라는 사건 자체를 기준으로 좀 더 큰 동시에 좀 더 작은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문장의 핵심을 이루는 '주체' 엘리스는 '크다/작다'라 는 상대적인 차별화의 관계 속에서만 주어지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해 어리둥 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지만 상이한 가치를 취하면서도 하나의 개별체로 남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결국에는 엘리스의 이야 기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적 관계란 비교의 대상을 변형된 동시에 차별화된 상태로 제시하게 될 변화의 요인이 주어지는 사건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들뢰즈가 프랑스 구조주의의 '구조' 개념과 유사한 형태로 제시하는 '존재'의개념은 개별체라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들의 상대적인 관계와 일치한다. 여기서 개별체들이란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변화를 겪으면서 가치가 정의되고 수정되는 요인들의 관계를 말한다. 존재의 개념이 관계와 일치한다 는 것은 곧 존재의 의미가 고스란히 생성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들뢰즈가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도출해 낸 철학적 가르침이다.
2 펠릭스 가타리와의 협력
들뢰즈와 가타리가 공동 집필한 여러 편의 저서들 가운데 가장 큰 관심과 인기 를 끌었던 두 권의 책은 안티-오이디푸스』와 『천 개의 고원』이다. 첫 번째 책 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라캉의 프로이트 재해석 작업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으로 이루어졌고, 반정신의학 운동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며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특별히 거부했던 것은 욕망을 결핍 혹은 거세 효과로보는 프로이트의 이론과 욕망의 가능성 자체가 궁극적으로는 유아기의 가족관계와 심리적 성장 단계에 집약되어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러한 시각을 대체하기 위해 저자들은 '기관 없는 신체 corps sans organs', 즉 유기체화하기 이전 상태의 신체이자 본능적으로 유기체화를 거부하는 신체의 구도 속에서 전개되는 욕망의 생산성 혹은 이른바 '욕망하는 기계'의 생동주의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두 번째 책 『천 개의 고원』은 '뿌리줄기'의 이미지와 함께 시작된다. 이 이미 지에서 저자들은 통일성 없는 다양성 혹은 통일적인 기초 단위의 단순한 전시라고 볼 수 없는 원천적인 형태의 다양체를 발견했다. 위계적인 체계와는 달리, 여기에는 미리 정해진 입장이나 일관적인 방향의 발전이 없으며 어떤 지점도 다른 것들에 비해 유리한 위치를 점하지 않고, 오히려 “뿌리줄기의 특정 지점이 다른 모든 지점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p.689~692)
움베르토 에코 저, 윤병언 옮김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2020, 아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