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얼굴의 정치학: 얼굴의 권력, 권력의 얼굴
사르트르는 지향성이라는 현상학적 관점에서 시선을 단순한 지각의 통로로 눈과 구별한다. 현상학자들에게 얼굴이나 시선이 중요한 사유대상이 된다. 타자가 단지 주체의 대상이 아니면서 또한 나에 대하여, 나를 위하여 나타나는 존재일 수 있는 가능성을 사유 한다. 타자는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사물과 달리 오직 내 눈앞에 내 관심 안에 있을 뿐인 존재며 나의 일부인 존재 이다. 반대로 타자가 나에 대한 어떤 지향성을 가지고 관심이 서린 시선을 바라본다면 나는 그의 시선에 들어간다. 그의 일부가 되지 않으면서 그와 쌍을 이룬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타자에 의해 보임’은 ‘타자를 봄’의 진리라고 한다.
레비나스가 타인의 고통스런 얼굴이야 말로 자아나 주체로 환원 불가능한 초월성의 영역을 증거한다고 말할때 사르트르가 타자의 시선을 두었던 자리에 타자의 얼굴을 두는 셈이다. 현상학적 관점을 약간 통속화해 말한다면, 시선을 통해 머리는 비로서 얼굴이 된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레비나스에게 타자의 얼굴은 나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나의 윤리적 행동을 촉구하는 윤리적 저항이 된다. 라캉은 보려는 충동을 부분 대상이라고 한다. 눈이 시선을 욕망하는 순간, 시선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다. 눈과 시선을 대립시켜 시선이 작동하는 곳에서 눈이 사라진다고 했던 사르트르의 명제와 다르지 않다.
이와는 다르게 들뢰즈는 현상학적 지향성 개념이 담긴 시선을 통해서 얼굴을 정의하지 않으며, 반대로 그런 시선에 대해 얼굴의 일차성을 주장한다. 사르트르 말 처럼 나를 보는 타자의 시선이 있어야 내가 얼굴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며 내 시선이 있어야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시선이 얼굴을 만드는 게 아니라 흰벽과 검은 구멍의 조합과 배열이 얼굴들을 만드는 것이다. 흰벽은 의미화의 기호체계에서 기호들의 주파수가 새겨지는 곳이며, 검은 구멍은 주체화체제에서 공명을 야기하는 곳이다. 기호가 안면화 되는 곳이다. 입을 통해 튀어나간 기호들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마주보는 얼굴에 대해 동조와 공명을 요구하는 표현 기계라는 것이다. 얼굴은 주파수로 요약되는 의미화의 잉여성과 공명으로 요약되는 주체화의 잉영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가타리는 무의식의 잉여성 공간적 형식을 안면성과 시간적 형식을 리토르넬로로 기본 범주로 나누어져 있다고 말한다.
* 리토르넬로: 영토화와 탈영토화에 관련되며, 시간을 주로하는 것으로서 특히나 음악적인 회귀, 또는 돌아옴으로의 형태
얼굴을 본다는 것은 눈과 입으로 만들어진 표정을 본다는 말과 동일하며, 표정을 갖는 신체의 표면은 모두 얼굴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으며, 얼굴이란, 표정이 다른 사람의 반응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질때 비로소 정의되며, 그것은 타인이나 타자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도구,기호이며 입에서 나가는 기호들의 실질적인 의미를 규정하는 조건이다. 얼굴이 만드는 고통, 슬픔,기쁨의 표정은 자연적인 감정의 발현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계산되고 조직된 표정이며 효과를 겨냥하여 만들어진 기호들이다.
레비나스의 타자의 고통스런 얼굴로 동정과 연민 윤리학의 모럴을 구성하려는데 부적절하다고 느끼는 이유중 하나이다. 얼굴은 고통으로 환원 불가능한 많은 표현능력을 갖고 있으며, 표정을 관찰하고 언제나 눈치를 보아야 하는 타자의 얼굴이 있음을 레비나스는 외면하고 있다고 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얼굴은 개인적인 어떤 느낌이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얼굴들을 조직하는 특정한 표현을 통해서 사람들이 기호를 사용함으로써 특정한 종류의 개인이 된다는 것이다. “특정한 권력의 배치가 얼굴의 생산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얼굴을 보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낸다. 기표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도 얼굴이며 해석할 것을 제공하는 것도 얼굴이다. 안면성은 이 모든 의미화 및 해석의 총체 위에 물질적으로 군림한다. 눈과 입이 움직여 만들어진 어떤 표정을 통해 얼굴을 본다. 자신을 보는 시선에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얼굴 표정은 표현하는 성질을 갖는 경우 만들어지기 때문에 특정한 사회구성체들만 얼굴과 풍경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얼굴이란 인간만이 고유하다고 할 수 없으며 얼굴을 필요로 하는 건물이나 자연물도 얼굴(풍경)을 가질 수 있다. 인간의 얼굴또한 머리를 벗어나 다른 신체나 의상 등으로 확장되어 인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얼굴은 신체의 표면이며 신체로부터 벗어나 탈코드화된 유기체이다. 얼굴의 유기체인 입, 코, 눈, 귀는 머리의 일부이며 신체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이런 저란 표정을 만들때는 눈, 코, 입은 신체적 기능에서 탈코드화되어 작동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얼굴은 머리와 독자적인 표면으로 되어 표정이라는 어떤 것에 의해 초코드화 된다. 얼굴의 탈영토화는 손이나 다른 신체처럼 어떤 도구나 대상에 재영토화되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 탈영토화라고 부른다. 얼굴은 도구라는 내용적 상관자에서 대신 풍경적이라는 표현적 상관자를 갖게 되고 서로 결합하여 특정한 표현 능력을 갖는 풍경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