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책임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피하지 않고, 내게 맡겨진 일은 어떻게든 끝내고, 조금 힘들더라도 버티는 것. 직장생활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미덕이었다. 더 많은 일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은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었고, 더 큰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힘든 일을 버텨냈을 때는 힘들면서도 묘한 만족감이 있었다. ‘그래도 내가 해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며 나는 조금씩 더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런데 니체의 낙타를 읽다가 이상한 질문이 생겼다. 무거운 짐을 잘 지는 것은 정말 강함일까.
낙타는 약한 동물이 아니다
『차라투스트라』에서 정신의 첫 번째 변신은 낙타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낙타가 약자의 정신이라면 왜 니체는 낙타를 그렇게 강인하게 묘사했을까. 낙타는 무거운 짐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묻는다. “무엇이 무겁단 말인가?” 그리고 더 무거운 짐을 등에 올려달라고 한다. 그 짐을 견디면서 자신의 강인함을 확인한다. 생각해보면 낙타는 결코 나약하지 않다. 잘 견딘다. 성실하다. 책임감이 있다. 고통도 감수한다. 어쩌면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의 모습과 닮아 있다. 문제는 힘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 강한 힘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였다.
누가 내 등에 짐을 올려놓았는가
직장에서 책임이 커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경력이 쌓이면 더 어려운 일을 맡고, 직급이 올라가면 더 많은 사람과 조직을 책임지게 된다. 그 자체가 잘못일 이유는 없다. 나 역시 그 과정을 통해 많이 배웠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책임을 많이 지는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과 같은 말이 되어버릴 때다. 바쁠수록 중요한 사람 같고,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필요한 사람 같고,감당해야 할 일이 많을수록 내가 조직에서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무거운 짐은 고통인 동시에 자부심이 된다.
나는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남들이 힘들어하는 것도 나는 견딘다. 내가 없으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짐을 내려놓는 것은 단순히 일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게 된다. 내 존재의 가치까지 내려놓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문득 묻게 된다. 나는 정말 이 짐을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짐을 잘 지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좋아서 계속 더 많은 짐을 받아들여온 것은 아닐까.
승진하면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나는 승진하면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높은 자리에 가면 지금의 답답함도 달라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지고, 무언가 분명히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자리가 달라지면 달라지는 것도 있다.
책임의 범위가 넓어지고, 판단해야 할 일도 많아지며, 내 의견이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 그런데 막상 승진한 뒤 내 삶 전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조금 허탈했다. 그토록 바라보던 곳에 도착했는데 왜 삶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까.
지금 생각하면 내가 기대했던 것이 너무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승진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내 삶의 의미까지 바꿔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리가 높아진다고 나 자신과의 관계까지 저절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짐은 더 무거워졌다. 그때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더 높은 자리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르는 것이니까. 하지만 니체를 읽고 나니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더 높은 곳으로 간 것일까. 아니면 더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는 낙타가 된 것일까.
책임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여기서 나는 조심하고 싶다. 니체를 읽었다고 해서 책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직장을 그만두고, 맡은 일을 내려놓고, 가족이나 조직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는 것이 곧 자유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너무 단순하다. 내가 선택한 책임도 있다. 기꺼이 감당하고 싶은 짐도 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기쁨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짐의 무게 자체가 아닌 것 같다. 같은 짐을 지더라도 누군가는 그것을 자신의 선택으로 감당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겉으로 보면 둘은 똑같아 보인다. 둘 다 열심히 일하고, 둘 다 책임감이 있으며,둘 다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낸다.
하지만 안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을 수 있다. 한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하고 있고, 다른 사람은 ‘그래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짊어지고 있을 수 있다. 그 차이는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자기 자신만 알 수 있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쉽게 알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해야 한다’는 말은 어디에서 오는가
낙타의 언어는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이다. 이 말을 읽다가 내 안에도 얼마나 많은 ‘해야 한다’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팀장이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직장인이면 책임을 져야 한다. 부모라면 이래야 한다. 이 나이에는 어느 정도 위치에 있어야 한다. 경력이 이 정도면 이만큼은 알아야 한다.
이 말들은 대부분 틀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 강하다. 완전히 잘못된 명령이라면 거부하기 쉽다. 그러나 어느 정도 타당하고, 사회생활을 위해 필요하며, 많은 사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말은 쉽게 내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나 자신에게 명령한다. 좀 더 해야 한다. 아직 부족하다. 이것도 내가 해야 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그때 시대의 명령은 더 이상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니다. 내 목소리가 되어 있다.
잘 견디는 것과 잘 사는 것은 같은가
나는 아마 꽤 오랫동안 ‘잘 견디는 것’과 ‘잘 사는 것’을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힘든 일을 감당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삶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능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 판단하는 능력. 어떤 짐은 기꺼이 지고 어떤 짐은 내려놓아도 되는지 구별하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등에 올려진 짐이 정말 내가 가고 싶은 방향과 관계있는 것인지 묻는 능력. 낙타는 강하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낙타라도 누군가가 정해준 방향으로만 걷는다면 그 강함은 자기 삶을 만드는 힘과는 다를 수 있다.
어쩌면 내려놓는 데도 힘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더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때로는 더 짊어지는 것보다 하나를 내려놓는 데 더 큰 힘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 인정받을 수 있지만 굳이 선택하지 않는 것. 모두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내 삶에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
이런 선택은 무능력해서 포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내가 어디에 힘을 사용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일에 가깝다. 낙타에게 필요한 다음 변화가 사자인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짐을 더 잘 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짐 앞에서 묻는 것이다. 왜? 왜 내가 이것을 져야 하는가. 그리고 필요하다면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힘.
무거운 짐보다 방향
이전글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를 물었다. 지금은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책임지고 있는 것은 정말 내가 책임지고 싶은 것인가.’ 삶에는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많은 짐을 지면서 살아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무 짐도 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내가 지고 있는 짐과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짐이 무겁다는 이유만으로 그 길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잘 견디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제대로 살고 있다고 안심하지 않는 것. 어쩌면 자기극복은 더 강한 사람이 되어 더 많은 것을 짊어지는 일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강해진 자신에게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일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짐을 얼마나 잘 질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이 짐을 지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글을 쓰고 남는 질문
나는 지금 무엇을 짊어지고 있는가. 그 가운데 정말 내가 선택한 책임은 무엇이고,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지고 있는 짐은 무엇인가. 그리고 만약 아무도 내 성실함과 책임감을 평가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래도 지금의 짐을 기꺼이 짊어지고 갈 것인가.

